한밤중에 습격당하는 로마군단. 그리고 어두컴컴한 숲 속에서의 대혈투. 제작비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듯 대규모 전투 장면은 초반의 둘이 전부다. 이후에는 초라하게 살아남은 몇몇의 병사들이 포로로 잡힌 장군의 구출에 실패하고 고향을 향해서 도망갈 뿐이고, 그들을 쫒는 야만족 병사들의 추격이 이어진다. 끊임없이 자르고 쑤시고 쪼개는 고어한 장면들이 넘쳐나지만 '스파르타쿠스'의 화려함에는 못 미치고, 검투사 출신 퀸투스의 리더십은 '글래디에이터'의 막시무스와는 비교할 수 없다. 액션보다는 추격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300'같은 폭발적인 전투장면도 없다. 등장인물들의 카리스마도 적군의 압도적인 힘도 박력 넘치는 전투도 찾아볼 수 없다. 그저 끊임없이 계속되는 주인공의 독백으로만 설명될 뿐이다. (강렬한 인상의 여전사는 온전히 제몫을 다한다.) (강렬한 인상의 로마장군은 제몫을 못한다.) 미칠 것만 같았던 '디센트'의 긴장감은 어디로 간 것일까? 아마도 닐 마샬 감독의 재능은 그 무대가 커질수록 점점 더 작아지는 것일까. '반지의 제왕' 속 장쾌했던 뉴질랜드의 풍경을 능가하는 북유럽의 탁 트인 풍경들만이 오직 제몫을 다한다. 이 영화를 통해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은 영국은 그저 춥고 흐리기만 한 섬나라가 아니라는 것이다. 멋진 숲과 평원의 광활한 경치가 펼쳐져있는 멋진 섬나라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