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해문출판사에서 출간되는 애거서 크리스티시리즈를 높이 평가하고 싶다. 십수년전 처음 출간될 당시에는 불과 1500원의 저렴한 가격으로(당시에는 꽤 비싼편의 문고본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수준높은 작품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비싼 양장본으로 책값만 높게 책정해놓고는 마진이 남지 않는다느니 독자들이 독서를 하지 않는다느니 탓하는 다른 출판사들이 새겨두어야 할 부분이다. 당시에는 추리소설이라고 해도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축약본이 주를 이루던 때라서 제대로 된 번역의 직역본을 볼 수 있다는 것은 큰 기쁨이었다. 그런 작품집이 아직도 꾸준히 출간되고 있다니 매우 기쁜 일이다. 다른 출판사에서는 완전판을 빙자한 가격올리기로 독자들의 주머니를 노리기에만 혈안이 되어있는데 말이다.
이 작품 '오리엔트 특급살인'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들 중에서도 열손가락 안에 꼽히는 매우 뛰어난 작품이다. 정통적인 추리소설의 특징이라면 도저히 상황을 파악할 수 없는 충격적인 사건으로 시작해서 몇 명의 등장인물이 용의자로 떠오른다. 그리고 결말에서는 도저히 범인일 것 같지 않던 사람이 범인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오리엔트 특급살인'의 결말에서는 그런 추리소설의 전통적인 트릭의 허를 찌른다. 역시 인간은 죄를 짓고는 못산다는 당연한 교훈까지 선사하면서 말이다. 참으로 뛰어나고 색다른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