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피 민음 경장편 1
김이설 지음 / 민음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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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을 전공하고 몇가지 변화가 있었다. 그 중에 하나가 누군가를 맹렬하게 원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일테면 이전에는 어떤 잘못을 했거나 상황이 좋지 않으면 내 탓을 했다. 그리고 끝도 없는 자기 혐오와 자기 비하의 날들을 보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누군가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퍼붓고 있었고, 전화로 악다구니를 쓰고 있었다. 어느 쪽이 더 낫느냐고 묻는다면, 두 쪽 다 못할 짓이라고 말해두겠다. 내 안으로 삭히는 것은(내 탓을 하는 것)은 골병이 든다. 남의 탓을 하고 원망을 하면 관계가 허물어진다. 어느 쪽도 좋지 않다. 최상의 방법은? 아직은 나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 모든 원망을 고스란히 받아야 했던 사람들 중에 당연한 듯이 가족이 끼어 있었다. 처음에는 너무 울어서 말이 말 처럼 나오지 않았다. 입안에서 돌돌돌 굴러가는 말은 당연히 상대방 귀에 가 닿지 않았다. 나는 그저 시뻘개진 얼굴로 가슴을 치고 그런 나를 보고 엄마는 너무 놀랐다. 하지만,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그 뒤로 나는 울지 않았다. 소리를 지르지도 않았다. 마음은 빠르게 식었다. 무엇을 봐도 놀랍지 않았다. 분노라는 감정도 애정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도 어떤 주기에 지나지 않았다. 결국 가족은 할 수 없이 연기가 필요한 공동체였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 처럼 행동하지만 모두들 조금도 잊지 않고 있었다.

화숙에게는 정신지체인 엄마가 있었다. 어린 화숙은 외삼촌에게 짓밟히도록 얻어맞는 엄마를 보았다. 외삼촌이 하는 고물상 인부들부터, 친척들, 동네 청년까지 집을 드나들며 엄마를 범했다. 자신은 그런 많은 남자들 중에 하나의 씨앗이었을 것이다. 화숙은 화를 먼저 배웠다. 외삼촌이 엄마를 때릴 때마다, 외삼촌의 고물상 인부들이 엄마를 범할 때마다 화숙은 외삼촌의 딸 수연을 때렸다. 수연을 괴롭히면서 화를 풀었다. 수연은 아무 말도 못하고 맞기만 했다.

삶은 갈수록 팍팍했다. 결혼을 한 수연은 애를 버려두고 도망을 갔다. 결혼을 하고도 그 전에 몰래 만나던 재현을 계속해서 만나왔다는 것을 화숙은 알게 되었다. 화숙은 사랑받는 수연에게 질투가 났다. 그래서 수연의 삶을 돌아보지 않았다.
화숙에게는 술만 마시는 외할머니만 있었다. 이제는 자신과 외삼촌을 보면 끝도 없이 욕을 해대는 할머니였다. 화숙에게 이 모든 인생은 '화' 그 자체였다.

'나쁜 피'에 나오는 수연과 화숙, 외삼촌과 진숙, 아저씨, 할머니, 곧 허물어질 상가에 빌 붙어 사는 사람들... 그 모든 이들의 삶은 커다란 다람쥐 통에 한꺼번에 몰아 넣은 듯 끊임없이 돌아갔다. 그것도 더욱 더 더럽고, 냄새나는 곳으로만.

모든 이들의 딜레마는 이것이다. 가족은 껴안기에는 맺힌 것이 많고, 버리기에는 그네들도 결국 불쌍한 인간들이라는 것이다. 결국 중간에 서서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면서 아침에는 버럭 화를 내고, 저녁에는 과일 한 봉지를 사갖고 들어간다.

그렇다. 결국 이 모든 것은 '나쁜 피'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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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도쿄 - 커피 향기 가득한 도쿄 여행
임윤정 지음 / 황소자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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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바람이 부는 것이 너무 좋다. 여름을 제외한 모든 계절을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좋은 날은 바람이 부는 날이다. 시원한 바람이 불면 뭐든, 상관없다는 기분이다. 아침에 바람이 불어서 오늘은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먹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점심 때 커피를 사기 위해 나왔는데, 밖에는 한 차례 소나기가 지나간 흔적이 남아 있었다. 아메리카노를 마시기에는 후덥지근한 기운이 가시진 않았지만 그래도 마음 먹은 대로 뜨거운 커피를 사가지고 사무실로 올라왔다.
그리고 커피를 마신 것 까진 좋았는데, 그 뒤로 식은땀이 나면서 점심 먹은 것이 꽉 얹혀버렸다. 까스 활명수와 소화제와 아메리카노가 범벅되어 있는 내 위장은 몇 시간동안 움직임을 멈춘 듯 더부룩했다.
잠시 쉬다 오라고 과장님께서 시간을 주셨다. 회사에서 이렇게 달게 잘 수 있다니. 잠을 자는데 내가 낯선 곳을 헤매고 있는 꿈을 꿨다.
낯선 곳을 헤매는데 내가 내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아주 신이 났다. 발걸음도 가볍고, 입 꼬리는 계속 움찔거리는게 좋아 죽겠다는 표정이다. 30분 동안 그렇게 거리를 헤매다가 돌아 온 것은 엑셀 창이 켜진 사무실 내 자리였다.

카페도쿄를 읽은 것은 아마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를 앞두고서였을 것이다. 원래 커피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카페에 가서 몇시간동안 책을 읽거나 무엇인가 끄적대고 오는 것을 좋아하니까 이런 책에 푹 빠질 수 밖에 없었다.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서는 궁금한 것도 없었다. (치아키 센빠이가 사는 곳이라는 생각 정도?)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는 당장 도쿄행 비행기 티켓을 끊고 싶어졌다. 골목 골목 숨어 있는 아기자기한 카페들. 그곳은 하나하나가 카모메 식당을 닮아 있었다. 주인이 정성들여 내린 커피와 금방 구웠을 맛있는 빵들이 나란히 진열되어 있을 것 같은.

커피는 단순히 음료나 기호식품으로서의 기능만 하는 것이 아니다. 어느 순간 커피는 나에게 휴식의 다른 말이 되었다. 쉼과 함께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 말을 많이 하고 싶은 날도, 전혀 한 마디도 하고 싶지 않은 날도 커피가 있어서 더 풍요로워진다. 스타벅스를 헤매고 다니는 내게 된장녀(된장)라는 별명이 붙었지만 사실, 좋은 커피 한잔에 대한 유혹을 뿌리치기가 쉽진 않다.

예전에 친구와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내가 마시고 싶을 때 돈 생각하지 않고 거리낌없이 커피를 사 마실 수 있을 만큼만 돈을 벌어도 좋겠다고. 아직은, 그런 여유가 오지 않았지만 그것은 어떤 여유로운 삶에 다른 말 처럼 우리에게는 들렸었다.


아, 밤이 되고 또 바람이 부니까 따뜻한 아메리카노 생각이 또 간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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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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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리뷰를 쓰는 일이 어려워진다. 그건 첫 마디를 떼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더구나 읽으면서 좋다!고 감탄한 책일수록 더 그렇다. 왜 좋은지 설명해봐!라는 것인데, 그게 말이야, 야! 읽어보면 너도 알아! 이렇게 끝낼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래, 그러니까 이제 박민규 작가의 신작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도록 하겠다.(여기까지 쓰는데 2시간 걸렸다.)



그리고 그녀가 그 사이에 서 있었다. 순간 몸이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그 느낌을...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늘 시청하는 토요일의 쇼프로에서...즉 정해진 공식처럼 아이돌과, 발라드 가수가 출연하는 무대를 보고 있는데...카레를 먹으며 보고 있는데...방청객들의 박수소리도 여전한데...한결같은 MC에 늘 보던 무대인데...어떤 예고도 없었는데...느닷없이 요들송을 부르는 아저씨가 나와
요로레이리요 레이리요 레이요르리
하는 기분이었다.

(82p)





혹자는 이것은 판타지라고 이야기했다. 못생긴 여자와의 로맨스를 그린 소설이 누군가에게는 판타지로 분류되는 세상이다. 속물이라고 욕하지만 80%이상의 사람들이 외모지상주의자라는 것에 한 표를 걸겠다. 내색하는 외모지상주의자와 내색하지 않는 외모지상주의자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스타워즈의 광선검과 다를 바 없다고 느끼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못생긴 여자를 보고 요들송을 들었다는 남자의 심정을 이해하려면 '그래. 이건 소설이잖아'라는 암묵적 동의와 다짐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나는 여자이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판타지가 아니라고 믿고 싶은 사람이기에 5장을 채 넘기기도 전에 가슴을 쿵하고 울릴만한 문장들을 턱턱 만나고 있었다.
일테면 이런 것이었다.



그녀에게 속삭인 요한의 말을 듣게 된 건 한참의 세월이 지나서였다. 그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를 이해하는 순간, 그녀의 아니, 아니에요를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날 선배는 그렇게 얘기했어요. 더없이 작은 목소리였지만 지극히 단호한 목소리였어요. 그땐 무척 놀랐어요. 마치 내 마음을 꿰뚫어본 듯한 말이었거든요. 뭐라고 했는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 하지만 쟤는
진심(眞心)이야.

(140p)




못생긴 여자이기 때문에, 누구나 자신의 눈을 의심하면서 뒤를 돌아볼 만큼 못생긴 여자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자신이 받게된 관심이 진심인지 아닌지가 가장 중요한 문제일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이 또 어떤 게임의 벌칙은 아닌지, 자신이 농락에 속고 있는 것인지 한 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 요한이 말했다. 그의 마음이 진짜라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 하지만 쟤는 진심이야'라는 문장을 만났을 때 방심하고 있다가 열려진 맨홀 뚜껑에 빠진 기분이었다. 이것은 생각지도 못한 공격이었다. 그러니까, 이것은 내가 항상 경계하고 있던 바로 그것이었다.
관심을 받는 것이 어색한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에게 친절한 말을 듣는 것이, 배려를 받는 것이 오히려 불편한 사람들이 있다. 이것이 어떤 목적을 띠는가?를 먼저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무관심과 냉담함은 오히려 괜찮다. 그것은 익숙하다. 애써 신경쓰지 않으면 될 일이다. 문제는 한번도 받아보지 못한 따뜻한 말들이다. 그래서 더 당황한다. 이런 것에 대한 대처법은 아직 습득하지 못했다.
여자의 마음이 전해져 왔다. 요한의 귓속말을 듣고 놀랐을 여자의 마음, 그럼, 정말로 믿어도 될까? 이것이 현실일까? 갖가지 물음들로 가득했을 여자의 머릿속이 그려졌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고통은 그것이었어요. 누구에게라도 사랑받을 수 없다는 사실...누구도 날 사랑해 주지 않을 거란 절망감...가난이나 그런 것은 이미 제게는 아무런 고통도 아니었습니다. 아버지가 쓰러지고 생활이 더욱 궁핍해졌지만 ...아무렇지 않았습니다. 고생을 하고, 조금씩 불편을 덜어가고...그래도 어쨌거나 기회란 것이 있는 고통이니까, 또 어쨌든 노력에 따라 소소한 회복이 가능한 일이니까요. 하지만 이 '사랑'의 문제에 관해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274p)



 
20살에 체념을 먼저 배운 여자에게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남자가 나타났다. 그리고 켄터키 치킨에서 희망을 이야기하며 맥주를 마셨다. 아주 오래 살아서 모르는 것이라고는 없는 영감같은 요한도 함께 있었다. 백화점에서 사람과 일에 치여 보냈던 하루를 셋은 닭다리와 맥주, 그리고 낯선 설레임으로 보상받았다. 남자와 여자는 조심스럽게 서로에게 다가갔다. 그것은 이어폰을 한짝씩 나눠끼고 같은 음악을 듣는 것이었다.

아무도 나의 나무에 오지 않아요.
나무가 아주 높거나 낮아야 했나봐요.
당신과 조화를 이룰 수 없다는 걸 알겠지만 그래도 괜찮아요.
그리 나쁘다고 생각지 않아요.
나와 함께 가지 않을래요? 난 딸기밭에 가는 중이에요.
실감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머뭇거릴 일도 없죠.
딸기밭이여, 영원하리

스무살의 그들은 조심스럽게 말을 놓고, 서로의 손을 잡고, 서로의 집을 향해 걷는다. 이야기를 하고, 이야기를 듣는다. 그 연애에는 못생긴 여자와 남자의 연애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저 남자와 여자의 연애일 뿐이다. 하지만, 모든 연애가 그렇듯이 언제나 순탄할 수 만은 없다.

나는 우선 남자와 여자의 조심스러운 만남, 또한 거기에서 여자가 느꼈을 복잡한 마음에 대한 묘사도 좋았지만 요한이 켄터키 치킨을 앞에 두고 남자에게 했던 이야기들에서 더 오래 머물러 있었다.



이 포크를 봐. 앞에 세 개의 창이 있어. 하나는 동정이고 하나는 호의, 나머지 하나는 연민이야. 지금 너의 마음은 포크의 손잡이를 쥔 손과 같은 거지. 봐, 이렇게 찔렀을 때 그래서 모호해지는 거야. 과연 어떤 창이 맨 먼저 대상을 파고 들었는지...호의냐 물으면 그것만은 아닌 거 같고, 동정이냐 물으면 그것도 아니란 거지. 뭐, 맞는 말이긴 해. 손잡이를 쥔 손으로선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상대도 마찬가지가 아닐 수 없어.
처음엔 어떤 창이 자신을 파고든 건지 모호해. 고통과 마찬가지로 감정이란 것 역시 통째로 전달되기 마련이지. 특히나 여자는 더 그래. 왜 그런지 모르면서도...그래서 일단 전반적으로 좋거나 싫어지는 거야.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하나의 창을 더듬어보게 돼. 손잡이를 쥔 손은 여전히 그 무엇도 알 수가 없는거지. 알아? 적어도 세 개의 창 중에서 하나는 사랑이어야해.

(122p)



박민규 작가의 전작 '핑퐁'을 읽었을 때도 나는 이것은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던 진리의 말씀을 발견한 것 마냥 호들갑을 떨었었다. 덕분에 도서관에서 빌려 온 책은 포스트잇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요한의 입을 빌려 이야기한 작가의 말들은 도대체 이 사람은 도인이야? 라는 물음을 갖게 만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여자의 마음과 또 한 인간의 마음을 이렇게 세밀하고 정확하게 짚어내고 설명할 수 있느냐 말이다.

책을 읽는 내내 여자의 마음에 공감하고, 그들 모두가 행복해지기를 바랐지만 결국 마지막 장을 덮고 나는 말할 수 없이 깊은 허전함을 느꼈다. 그것은 그러니까, 나도 모르게 이건, 결국 판타지일지도 모르겠다. 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을 숨기고 방어하고 있지만 누군가가 60억의 이 많고 많은 사람 중에 자신을 알아봐 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존재감이 없다는 것, 멀쩡히 하루를 살고 있고, 이 거리를 걷고 있는데 아무도 자신이 살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은 기분은 깊은 절망감을 느끼게 한다.
그저, 영원히, 평생에 한번도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거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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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밤은짧아 > 부끄럽습니다.

'무슨 일인가 일어난다. 그리고 그 순간, 예전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다. 그것이 내가 아는 리얼리티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 김연수
  

'세계의 끝 여자친구'를 읽다가 이 문장을 만났을 때 나는 파란색 색연필을 들고 있었고 이 문장에 아주 굵게 밑줄을 그었다. 그리고 한 열 두번쯤 이 문장을 반복해서 적었다. 바로 이것이었다. 내가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 이유 말이다. 무슨 일인가가 너무 많이 일어났다. 이미 나는 예전으로 되돌아 갈 수 없는데 거기에 진짜 내가 빠진 듯 했다. 요즘 내가 꽤 많이 듣고 있는 말은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라던가, '의도가 뭐야?' 라는 말이었는데 그럴 때 마다 나는 그저 웃었다. 바보같이 웃는 것도 한 두번이지 이건 정말 생각없어 보이잖아! 라고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기고 있을 때 어떤 문장이 두더지처럼 튀어올랐다.  

'넌 세계관이라는게 없어.'

그래서였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이제부터라도 세계관을 구축하기 위해 나도 생각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니,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 공부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인문학을 공부하면 나도 세계관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꿈같은 기대. 그러면서도 개념없는 내가 듣기에는 벽이 너무 높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운이 좋게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지만 강의를 들으러 가는 마음이 그리 편하지는 않았다.  

아, 그런데 채운 선생님께서는 '재현'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설명하시면서 기존의 세계관, 보편적인 관념을 부정하라고 말씀하셨다. 오. 선생님. 세계관이랄게 없었던 저는 어떻게 하나요? 부수고 말고 할 것도 없으니 다행인 것인가요? 아니면...이 강의를 통해서도 전 그럴듯한 세계관을 얻을 수 없는 건가요? 갖가지 의문과 불안감이 들고 일어났지만 나는 부끄러움을 타는 사람이기에 또 입을 다물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필기한 노트를 뒤적이며 생각했다. 선생님의 말씀대로라면 이 사회를 살아가려면 응당 '세계관' 정도는 가져야 지적인 인간이라는 소리 좀 듣지 않겠어? 라고 생각했던 그 것 자체가 내 세계관, 나의 보편적인 관념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 말이다. 그렇게 하나하나 따지고 보니 나는 얼마나 귀가 얇고 세뇌시키기 쉬운 사람인지. 보편적으로 자주 들리는 세상의 잣대에 얼마나 자주 나를 대보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 잣대에는 나는 언제나 한참 모자란 사람이었다.)

마지막에 선생님께서 해주셨던 말씀이 생각난다. 이미 여러분들은 샛길로 빠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이것은 어찌보면 김연수 작가의 말과 일맥상통한다. 그러니까 내가 이 강의를 들은 것도 나에게 무슨 일인가가 일어난 것이 된다. 나는 강의를 듣기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겠지. 그것이 기쁘다. 앞으로 남은 9개의 강의가 기대된다. 적어도 금요일만큼은 아무것도 머리에 들어있지 않은 상태로(뭐, 평소에도 무엇이 많이 들어있진 않지만) 강의를 들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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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우시절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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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결국 돌고 돌아 이곳에 도착했다. 아니,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남들을 속이느라 나를 속이는 일을 잊고 있었다. 춘천은 물론 변한 것이 없었다. 내가 숨이 턱 막히도록 좋아했던 소양강이나, 소양강에까지 가는 그 길, 오후 햇살이 심하다 싶을 정도로 넘치게 들어와 눈이 따가웠던 도서관.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하지만 변한 것은 나 였다. 나는 이곳에 와서도 몸도 마음도 편하지 않았다. 장소가 바뀐다고 몸도 마음도 바뀌는 것은 아니라고 다만, 그렇게 되길 기대하는 것 뿐이라는 사실을 나는 또 한번 깨달았다.

 호우시절을 보러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나는 무엇인가 할 일을 찾아 헤매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전부터 넘치는 시간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나는 꽤 아이러니한 인간인데 자유를 지향하는 보헤미안이라고 외치면서도 하루의 규범 따위가 없으면 곧 당황하고 안절부절하게 되는 것이다. 넘치는 시간에 두시간의 영화관람이라는 일정이 생겼다. 나는 기꺼이 영화를 받아들였다.




 건설회사의 팀장 동하가 중국 청두 공항에 내렸다. 시간이 좀 남는다는 지사장의 말에 그들은 청두에 있는 두보초당으로 향한다. 동하는 그곳에서 미국 유학시절을 함께 했던 메이와 우연히 마주친다. 그들은 처음에는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몇 년만의 해후에 그들은 변한 상대방의 모습과 생활이 낯설었을 것이다. 두보초당에서는 쉼없이 대나무가 바스락 거렸다. 영화에서 동하와 메이는 큰 소리 내지 않고 조근조근 대화했고, 풋 하고 슬핏 웃었다. 그 모든 작은 소리들이 모든 장면에 넘침없이 잔잔하게 배어들었다.

 현재의 일 때문에 출장을 왔지만 동하의 마음은 계속해서 과거로 흘러간다. 그는 자신이 유학생으로 있던 그 시절의 아주 사소한 기억들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메이가 자신은 동하와 사귄 일이 없다고 이야기 했을 때, 동하가 자전거를 가르쳐준 기억이 없다고 했을 때 동하는 계속해서 그것을 증명해 보이려고 한다. 동하에게 아름다웠던 그 시절을 자신만 기억하고 있다고 믿고 싶지 않은 것이다.

 메이와 동하가 사천 거리를 걷고, 춤을 추고, 입을 맞추며 자신들의 감정을 뒤늦게나마 확인하는 그 과정들이 아름다웠다라고 밖에는 달리 수식할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다만, 현실은 과거와 같을 수 없었다. 메이와 동하는 현실에서 다시 해후했기에 잠시 주춤 할 수 밖에 없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너무 좋아서 나는 오래도록 극장에 앉아있고 싶었다. 동하는 와이셔츠에 넥타이 차림이 아닌 유학생 시절의 동하처럼 면 티에 청바지를 입고 메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녁의 두보 초당 뜰 앞에서.

메이, 라고 동하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을 때 무슨 일인가가 일어났다. 사람이 외로운 것은 아주 오랫동안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다정하고 따뜻한 음성으로 내 이름을 듣는 순간 두보초당에서 불었던 사그락거리는 대나무 바람이 분다.

어째서 이렇게 달라졌을까? 고작 1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이었는데...라고 생각하고 있던 나에게 호우시절은 그야말로 좋은 비처럼 딱 알맞은 때에 찾아와주었다. 변했으니까, 또 그렇게 변하니까 더 깊어지고 좋아지는 것도 있을 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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