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우시절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결국 돌고 돌아 이곳에 도착했다. 아니,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남들을 속이느라 나를 속이는 일을 잊고 있었다. 춘천은 물론 변한 것이 없었다. 내가 숨이 턱 막히도록 좋아했던 소양강이나, 소양강에까지 가는 그 길, 오후 햇살이 심하다 싶을 정도로 넘치게 들어와 눈이 따가웠던 도서관.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하지만 변한 것은 나 였다. 나는 이곳에 와서도 몸도 마음도 편하지 않았다. 장소가 바뀐다고 몸도 마음도 바뀌는 것은 아니라고 다만, 그렇게 되길 기대하는 것 뿐이라는 사실을 나는 또 한번 깨달았다.

 호우시절을 보러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나는 무엇인가 할 일을 찾아 헤매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전부터 넘치는 시간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나는 꽤 아이러니한 인간인데 자유를 지향하는 보헤미안이라고 외치면서도 하루의 규범 따위가 없으면 곧 당황하고 안절부절하게 되는 것이다. 넘치는 시간에 두시간의 영화관람이라는 일정이 생겼다. 나는 기꺼이 영화를 받아들였다.




 건설회사의 팀장 동하가 중국 청두 공항에 내렸다. 시간이 좀 남는다는 지사장의 말에 그들은 청두에 있는 두보초당으로 향한다. 동하는 그곳에서 미국 유학시절을 함께 했던 메이와 우연히 마주친다. 그들은 처음에는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몇 년만의 해후에 그들은 변한 상대방의 모습과 생활이 낯설었을 것이다. 두보초당에서는 쉼없이 대나무가 바스락 거렸다. 영화에서 동하와 메이는 큰 소리 내지 않고 조근조근 대화했고, 풋 하고 슬핏 웃었다. 그 모든 작은 소리들이 모든 장면에 넘침없이 잔잔하게 배어들었다.

 현재의 일 때문에 출장을 왔지만 동하의 마음은 계속해서 과거로 흘러간다. 그는 자신이 유학생으로 있던 그 시절의 아주 사소한 기억들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메이가 자신은 동하와 사귄 일이 없다고 이야기 했을 때, 동하가 자전거를 가르쳐준 기억이 없다고 했을 때 동하는 계속해서 그것을 증명해 보이려고 한다. 동하에게 아름다웠던 그 시절을 자신만 기억하고 있다고 믿고 싶지 않은 것이다.

 메이와 동하가 사천 거리를 걷고, 춤을 추고, 입을 맞추며 자신들의 감정을 뒤늦게나마 확인하는 그 과정들이 아름다웠다라고 밖에는 달리 수식할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다만, 현실은 과거와 같을 수 없었다. 메이와 동하는 현실에서 다시 해후했기에 잠시 주춤 할 수 밖에 없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너무 좋아서 나는 오래도록 극장에 앉아있고 싶었다. 동하는 와이셔츠에 넥타이 차림이 아닌 유학생 시절의 동하처럼 면 티에 청바지를 입고 메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녁의 두보 초당 뜰 앞에서.

메이, 라고 동하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을 때 무슨 일인가가 일어났다. 사람이 외로운 것은 아주 오랫동안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다정하고 따뜻한 음성으로 내 이름을 듣는 순간 두보초당에서 불었던 사그락거리는 대나무 바람이 분다.

어째서 이렇게 달라졌을까? 고작 1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이었는데...라고 생각하고 있던 나에게 호우시절은 그야말로 좋은 비처럼 딱 알맞은 때에 찾아와주었다. 변했으니까, 또 그렇게 변하니까 더 깊어지고 좋아지는 것도 있을 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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