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중심인 다섯째 아이는 누구나 적어도 한 번 쯤은 봤을 법한 아이이다. 일명 문제아... 어떤 사람들은 이 다섯째 아이를 마치 호러영화의 주인공 처럼 생각한다. 전통적인 가치관을 가진 눈(부모의 눈, 조부모 그리고 그 집의 파티 방문객들의 눈)으로 본다면야 호러의 주인공 이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아이가 속한 집단의 눈으로 본다면, 그 아이도 다른 사람들과는 그리 다를 것 없는 아이인 것이다. 작가는 이 아이를 괴물처럼 그리고 있지만, 이는 그 부모 입장에서 본 것을 그렸기 때문인 것이고, 순수히 작가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 아이는 그냥 이 사회의 한 구성원일 뿐인 것이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게 무엇이었을까? 문제아가 등장함으로써 파괴되는 전통적인 가족? 문제아가 야기할 수 있는 문제들? 문제아들도 결국 이 사회의 구성원이니 우리가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이런 문제들은 이 책의 내용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이 책은 간단히 누구나 보아왔고, 알고 있는 그러나 그가 내 가족일 때 숨기고 싶어하는 그런 사람의 존재를 보여줄 뿐이다. 다섯째 아이 하나로 그렇게도 쉽게 무너질 수 있는 우리의 가족관, 인생관과 그 다섯째 아이가 가지고 있는 가족관과 인생관을 대비해서 생각해보고, 나 자신은 내가 가지고 있는 관념들이 옳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무엇을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사랑하는 지.. 여기에 그 방법이 있다. 그렇지만 결국은 나가서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있고 그 것들이 얼마나 가치있고 아름다운 것인지를 이야기 해주고 있다. 그렇지만 작가가 말하듯이 책을 버리고 나가서 느끼는 수 밖에 없다. 책을 읽고 나서 지적인 갈증을 느꼈다.
세계는 표상이고 의지는 그 본질이다. 세계의 본질인 의지의 발견으로부터 과학을 이야기하고, 수학을 이야기하고, 신학을 이야기하고 윤리학을 이야기하고 나중에는 생을 이야기 하고 있다. 생에 대한의지를 단념한 삶을 사는 사람을 이야기 할 때, 니체의 초인을 생각하게 되었다. 비관론자라고 들었지만, 자살은 삶에대한 의지의 단념이 아니라 삶에 대한 의지라는 것이고, 추구해야 할 것은 삶에 대한 의지의 단념이지 자살이 아니라는 내용을 읽을 때, 그리 비관론자 인 것 같지는 않았다. 세계에 대한 통찰력, 삶에 대학 해석이 너무나도 훌륭한 책이다.
신은 죽었다. 인간에 대한 동정심때문에... 어렵지만 어렴풋이 니체가 말하는 초인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 가까운데 두고 생각날 때마다 읽어야 할 책이다.
이중사고... 오웰은 사회주의 사상에 대한 이중사고를 이야기했지만, 그게 사회주의에만 국한된 것이라면, 1984는 그리 위대한 작품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벌어질 수 있는 것. 과연 민주주의는 우리에게 이중사고를 강요하지 않는가? 기독교는? 그 다른 무엇은? 어쩌면 우리는 항상 이중사고 속에 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고 이 책에서 주인공이 그랬듯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중사고에 빠져 오브라이언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동안 두려웠다... 위대한 소설이라는 것은 이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