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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런던에서 사람 책을 읽는다
김수정 지음 / 달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사람 책을 읽는다고? 튀려고 일부러 이렇게 이름을 붙였나? 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정말 책사람을 빌려보는 <리빙 라이브러리Living Library >가 있다는 걸 이 책을 통해 알게 됐다.
<리빙 라이브러리>의 콘셉트는 단순했다. 도서관에 와서 ‘책’을 빌리는 대신 ‘사람’을 빌린다는 것. 대출시간은 30분. 독자들은 준비된 도서목록사람들 목록을 훑어보고 읽고 싶은 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 책사람과 마주 앉아 자유로운 대화를 통해 그 사람의 인생을 읽는 것이다. 도서목록에 있는 사람들은 다양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리 주변에 언제나 존재해왔지만, 스포트라이트를 받아본 적이 없었던 사람들. 남들과 언제나 약간 다른 독특한 이력 덕분에 ‘오해의 시선’을 받아온 사람들, 즉, <리빙 라이브러리“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대화하고 소통하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서로 잘 알지 못해 가질 수밖에 없었던 타인에 대한 편견과 선입관, 고정관념을 줄이자는 의도로 기획된 행사였다.
00 프롤로그 인터뷰 ․ 리빙 라이브러리 창업자-너도 내 입장이 되어보렴_로니 에버겔 中 9p
처음 들어보는 이 낯선 도선관이 ‘10년 남짓한 세월이 흐르는 동안 호주, 뉴질랜드, 오스트리아, 폴란드 등 수십 개국에서 <리빙 라이브러리>가 생겨’(13p)났단다. 와우!
런던에 살고 있는 작가가 <리빙 라이브러리>에서 빌린 책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열아홉에 싱글맘이 되었어도 명랑 100단은 족히 넘을 듯한 베일리 맘 크리스틴.
숨막히던 결혼 생활 40여 년을 보내고 나이 육십에 가출해 너무나 멋진 생을 다시 살고 있는 80대 멋진 진할머니.
우리 나라의 교육현장과 오버랩이 되는 장학사 스테판과의 만남
50년 동안 기다려온 사랑에 실연을 당하고 우울증 환자가 된 사람 책 조안.
여자 소방관 세레나
사회운동을 하며 나누는 삶을 살고 있으면서 죽은 후에도 신체 기증인이 될 사람 책 로버트.
정신병으로 아내를 잃고, 또 아들도 유전에 의해 정신병을 앓고 있어 그 치료를 하며 전 생애를 보내고 있어, 어찌 이리 고달픈 삶이 있을 수 있을까? 싶어 마음 아팠던 정신병 환자 가족 토니.
그게 직업이 될 수 있나? 싶은 휴머니스트 한나의 이야기.
정체성의 혼란이 관용을 알게 해 준 사람 책 아일랜드에서 온 엄마와 케냐 출산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사미어.
완전한 채식주의자 비간Vegan 하나 이야기.
뇌종양 수술의 후유증으로 정신 분열증을 앓게 된 존.
상류층이기 보다는 지식인이고 싶은 사립학교 졸업생 알렉스.
엄청난 대출을 보이는 당연히 궁금한 책. 나이 60에 성 정체성을 바로 하고 싶어 성전환수술을 한 트랜스젠더 캐리 이야기에서
1년 간 ‘돈 없이 살기 프로젝트’에 들어간 마크 보일의 에필로그 이야기까지 평범하지 않은 이들의 사람 책 이야기가 흥미롭다.
이야기하는 도중 존에게는 독특한 말버릇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 그는 자신이 너무 우니 좋다는 걸 자꾸만 강조하고 있었다. 말끝마다 ‘I am so lucky'를 반복한다. 그래, 지옥의 문턱까지 갔다온 건 알겠는데, 진심으로 자신이 그렇게 운이 좋다고 믿는 걸까? 혹은 단순한 말버릇, 아니면 의미를 부여한 주술 같은 걸까?
나는 몇 번을 망설이며 존과 헤어지는 인사를 하다 말고 결국 이 무례하기 짝이 없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존이 빙그레 웃는다. 한 박자 쉬더니, 또박또박 진지한 눈빛으로 대답을 건넨다.
진짜 감사한 건 우리가 이토록 살아 있는 거라고.
병마와의 투쟁이라는 터널과 그 극복 과정을 돌이켜보면 여기서 콜라를 마시고, 당신 앞에서 이렇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얼마나 가슴 벅찬 감동인지 모른다고. 이렇게 우리가 숨쉬는 것부터 사소한 모든 것들이, 문자 그대로 ‘기적’인 거라고.
- 사람책 12 ‘정신분열증 환자’를 읽다_ 존 레이크․진짜 감사한 건 우리가 이토록 살아 있는 것 中 250p
여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모든 공통점이라면
절대 절망하지 않고, 나이에 연연해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도전하는 삶을 산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삶들은 하나하나가 모두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사실 인터뷰이를 만나 쓰여진 책들은 더러 있는 편이긴 한데, 대화로 연결되는 이야기들인데다 짤막한 글들의 연속이라 그다지 큰 느낌이 없는데, 참으로 오랜만에 인상적인 인터뷰이와 인터뷰어 책을 만난 것 같아 반갑다.
나도 <리빙 라이브러리>를 만난다면, 책이 될 수 있을까? 상상해보며, 사람 책을 만나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