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사랑이었네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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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일을 하라!"

요즘 신문 칼럼이나 잘 팔리는 책마다 예외 없이 하는 말이다. 나 역시 책과 강의 등을 통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무엇이 가슴을 뛰게 하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라는 주문을 하곤 한다. 그러나 잘 알고 있다. 이것이 우리 젊은이들에게 얼마나 무리한 요구인지를.


한창 자기 인생의 밑그림을 그려야 할 중고등학교 때는 학교와 학원이라는 가마솥에 넣어놓고 ‘쓸데없는 생각 말고 공부만 해라, 공부만 잘하면 다른 것은 다 따라온다.’며 푹푹 삶아대던 어른들이, 아이가 고등학교 문을 나서자마자 갑자기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 딴생각말고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몰아붙이니 얼마나 황당할 것인가. 자신의 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기회나 시간이 없었는데 어떻게 하루아침에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는가. 그래서 많은 젊은이들이 자신의 꿈이 아니라 엄마의 꿈, 선생님의 꿈, 사회적으로 성공한 다른 이의 꿈을 꿀 수밖에 없는 거다. 남의 꿈이 자신의 꿈이라고 착각하며 살 수밖에 없는 거다.

길을 묻는 젊은이에게 144-145 -144-1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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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저드 베이커리 - 제2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구병모 지음 / 창비 / 2009년 3월
절판


옛이야기에서와 달리 지금 사람들이 마법의 과자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건 당장의 물리적이고 물질적인 필요보다는 대체로 추상적이고 감정적인 문제 때문. 과열된 감정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수소를 가득 담은 풍선만큼이나 끝없이 상승할 수 있다. 감정과 풍선의 공통점은 비가시권의 높이에서 제풀에 폭발해버린다는 것.
그에 비하면 현실이란 그네줄이나 위로 튀어 오르는 공과 같이 얼마나 건조하고 절망적인지. 언제나 눈에 보이는 곳까지밖에 오르지 못하며, 땅이 잡아당기는 힘을 뿌리치지 못하고 다시 내려오니까.

체인 월넛 프레첼과 마지팬 부두 인형 중-139쪽

머릿속에서 이성의 목소리가 내게 말을 건넨다. 추억은 그래도 상자 속에 박제된 채 남겨두는 편이 좋아. 그 상자는 곰팡이나 먼지와 함께, 습기를 가득 머금고서 뚜껑도 열지 않은 채 언젠가는 버려져야만 하지. 환상은 환상으로 끝났을 때 가지 있는 법이야. 한때의 상처를 의탁했던 장소를 굳이 되짚어가는 건 앞으로 나아가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아.
아직도 어린 시절의 마법 따위를 믿는 녀석은 어른이 될 수 없다고.
그러나 나는 그 목소리를 무시하고 더욱 빨리 달린다. 추억이라니. 환상이라니. 그 모든 것은 내게 있어서는 줄곤 현재였으며 현실이었다. 마법이라는 것 또한 언제나 선택의 문제였을뿐 꿈속의 망중한이 아니었다.
-2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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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슬픈 아시안
이시이 코타 지음, 노희운 옮김 / 도솔 / 2006년 4월
절판


뭄바이, 영국의 식민지 시절에는 붐베이라고 불렀다. 이곳은 인도 최고의 경제도시다. 세계 곳곳에서 기업이 모여들고, 화려한 영화배우의 집이 이곳에 있다. 고급 쇼핑가를 걷다 보면 메르세데스 벤츠나 샤넬, 그리고 최신 컴퓨터가 진열되어 있는 광경을 볼 수 있다.
그렇다고 ㅇ예전의 시내 풍경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어딜 가나 오래 되고 더러운 옛 흔적을 볼 수 있다. 도시의 상징은 식민지 시절 만든 인디아게이트다. 그 주변으로는 가난한 사람들이 오간다. 거지가 손을 내밀고, 장애인 간이 열차를 타고 손으로 땅바닥을 밀면서 돌아다닌다. 조금 떨어진 장소에는 거대한 빈민가가 끝없이 자리 잡고 있다.
또한 뭄바이는 매춘의 도시다. 북인도나 네팔에서 끌려운 여자 아이들이 지저분한 여인숙에서 아랍의 부호들에게 처녀를 빼앗긴다. 울며 소리쳐 보아야 누구 하나 귀 기울이지 않는다. 에이즈에 걸려 버려질 때까지 참지 않으면 안 된다. 가난한 사람들은 이 도시의 이름을 아직도 ‘봄베이’라고 부른다. 그들에게 이곳은 옛날 그대로 지저분한 도시인 것이다.

8장 신이 사라져버린 하늘 인도의 스트리트 칠드런 -263-264쪽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 봄베이’의 붐베이다운 모습이다. 굳이 알고 싶다거나 알고 싶지 않다거나 따지지 않겠다. 다만 이 취재를 할 때 나는 몇 차례 정신적인 공황이 찾아와 머리는 싸매야 했다. 눈물을 흘리며 신이 사라져버린 하늘을 향해 손을 모은 일도 있었다. 그래도 길거리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사람에게 말을 걸고 증언을 요청했다. 왜냐하면 믿지 않으려야 믿지 않을 수 없고, 부정하고 싶어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8장 신이 사라져버린 하늘 인도의 스트리트 칠드런 -263-2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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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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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명동촌에서 태어났소. 망명한 자산 계급 민족주의자들이 일군 동네라 늘 나라를 위해 살아야만 한다는 얘기를 많이 듣고 자랐소. 이등박문을 죽이기 위해 근처 선바위에서 사격 연습을 했다는 안중근이나 이상설을 따라 헤이그까지 갔다가 국제 대표들 앞에서 창자를 꺼내 보이며 죽었다는 이준 얘기 같은 것 말이오. 그때만 해도 나는 얼른 커서 독립군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소. 하지만 용정으로 나가 살아가면서 차츰 나라가 없다는 게 무엇을 뜻하는지 깨닫게 됐소. 태어난 나라가 없으니 우리에게는 당도 없소. 나라도 없고 당도 없는 자에게는 민족도 없는 것이오. 중공당에 가입한 뒤부터 나는 내 혈관에는 국제주의의 피만 흐른다는 사실을 알아냈소. 국제당만이 우리의 당이고 나라고 정부요. 내가 알기로 지금 간도 땅에서 진정으로 항일하는 조선인 공산주의자 중에 국제주의자가 아닌 사람은 아무도 없소. 나는 일본놈들만큼이나 민족주의자들을 증오하오. 지난 시기, 그들은 가짜 정부를 우리에게 강요하고 애국자들을 학살했소. 그런 내가 민생단 감투를 쓰게 될 줄을 정말 생각지도 못했소."

[1933년 7월 어랑촌] 중 박도만의 이야기 -231-232쪽

자신의 운명에 대해 알고 싶다면 지금 자신이 누구인지 말할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간절히 소망하고 무엇을 그토록 두려워하는지 알게 되면 자신이 누군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2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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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인디아 - 채유희 여행 에세이
채유희 글.사진 / 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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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 와서 처음에 나를 힘들게 했던 건 지저분함, 소음, 더위 등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보다 나를 더 힘들게 했던 건 바로 인간에 대한 실망이었다. 여행자를 상대로 계산을 속이고, 사기를 치고, 사람을 돈으로만 보고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무례함과 무책임한 행동들. 여행 책자에 떡하니 쓰여 있던, 영적인 빛으로 충만한 신들의 대지라는 문구는 어디로 가고 상식이 통하지 않는 혼돈으로 충만한 무개념의 대지라니.
인도는 명상을 하는 나라가 아니라 명상을 하게 만드는 나라라고 하더니, 인도에서 참 많이 참고 인내하는 법을 배우게는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뉴델리에 와서 며칠 만에 인도 사람들에 대한 나의 신뢰는 거의 제로에 가까울 정도로 급강하했다. 급기야 너희들이 이렇게 나온다면 나도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않겠다는 말까지 튀어나올 지경이었으니까.
인간에 대한 예의 중-34쪽

언젠가 인도 사람들은 왜 이렇게 다 나쁘냐고 묻자 한 인도 청년은 이렇게 대답했었다.
"사람의 열 손가락은 모두 같은 손가락이지만 다 다르게 생겼어. 인도 사람들도 모두 같은 사람이지만 다 다르기 마련이야. 인도에는 사람을 속이는 사람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아."
나중에 인도를 떠나게 될 즈음에는 나도 알게 되었다. 인도에는 곪고 거친 손가락도 있지만 예쁘고 곧은 손가락도 많이 있다는 사실을.
인간에 대한 예의 중-39쪽

누군가에게 잊혀지는 것, 누군가를 잊는다는 것.
인간에게 망각은 슬픔이 아니라 축복이다.
한때는 너무도 바라고 원했던 그 소원은, 그리고 너무도 바라고 원했던 그 소년은, 평생 내 심장에 끼얹어진 소금처럼 아릴 것만 같았던 그 기억들은 이젠 아스라해졌기에 지금의 나는 행복하다.
마법에 걸린 밤
-51-52쪽

깜깜한 날에는 울어도 괜찮다.
비오는 날에는 울어도 괜찮다.
깜깜하고 비가 와 마음이 질퍽한 날에는 울어도 괜찮다.
눈물로 내 눈을 씻고 나면 더 밝은 세상이 보이는 법이니까.
그런 날에는 6살 아이처럼, 소리 내어 울어도 괜찮다. 괜찮다.

여섯 살 아이처럼 중-98쪽

내 삶이 길을 잃은 것 같으면 길을 떠나봐.
내 삶이 꿈을 잃은 것 같으면 길을 떠나봐.
길 위에서 잃어버린 나를 다시 만나게 될 테니

내 가슴에 바람을 지펴봐 중-2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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