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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 떠나올 때 우리가 원했던 것
정은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2월
평점 :
블로그 이웃으로 그의 펜화와 글을 오래 동안 봐왔다.
막상 그의 블로그 글들에서는 어여쁜 배우자의 모습과
시대상을 반영한 글들이 유독 내 기억에 남았나 보다. ^^
책으로 나온 솔샤르의 글은 완전히 다른 느낌이라고나 할까?
여행에 관한 내용만으로 채워서 있어서 좋고,
글은 절제되어 있는데, 두고두고 읽고 싶은 글귀가 대부분이다.
대륙횡단열차를 탄다는 것은 무를 수 없는 무료無聊의 길로 들어선다는 뜻이다.
캐나다 국영열차 비라헤일의 중부 위키펙과 북부 처칠을 이어주는 노선 역시 매우 지루했다.
“이동 거리는 총 1,700킬로미터입니다.”
직원은 나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나는 거리보다도, 그 거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그의 태도가 조금 생급스러웠다. 마치 여의도역에서 같아타고 애오개역쯤에서 내리면 된다는 투였다.
70p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1,700킬로미터라니...
짧은 거리 홍콩과 심천과 마카오를 열차로 배로 옮겨다니면서도 실감이 나지 않고는 했는데, 1700km라니 분단국가의 시민으로 상상이 가지 않는 거리의 길이이다.
아름다움은 그저 오래된 것에 있는 게 아니라 오래도록 지켜낸 마음자리에 있었다.
83p
오스만 제국의 끈임 없는 침략에도 불가리아 인들이 지켜낸 릴라 수도원을 보며 그 마음을 읽어내는 글쓴이의 마음이 더 아름답다.
삶이 너절할수록 간절해지는 것이 여행이다.
여행하고 싶다는 바람도 한 꺼풀 벗겨보면 웃고 싶은 마음에 다름없을 것이다.
84p
스페인 여행에서 제일 생각나는 곳이 마드리드라고 했다. 많이 웃어서 란다.
나도 여행 중에 제일 기억나는 곳이 스페인이다. 그 곳에서는 많이 웃어서 행복했던 것 같다.
여름이 가면 좋은 여행지는 겨울에 가도 좋다. 죽기 전에 가봐야할 여행지는 누가 정해놓은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가 여행의 순간마다 우연처럼 발견하는 것이다.
149p
이야기에 이야기를 덧대는 일. 벼룩시장의 매력은 바로 이런 소소한 사건들이 부딪치는 데 있다.
바르셀로나 해양박물관 앞 일요일마다 열리는 벼룩시장에서 만년필로 그림을 그리는 글쓴이가 두 개의 만년필로 고민하다가 결국 펠리컨을 남겨두고 이녹스크롬 만년필만 손에 넣고 못내 돌아서는 아쉬움을 가지는 모습이 진정한 여행자의 모습을 보는 듯 하다.
별스럽지 않은 것들, 사소한 것들을 기록하다 보면 앞으로 이렇게 소소하게 쓰고 그리면서 살아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흔히 지구상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독서는 여행지에서 그곳을 배경으로 쓰인 책을 읽는 것이라고들 한다. 가령 이탈리아 베로나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을 읽거나, 시즈오카에서 『이즈의 무희』를 읽거나, 영국 요크셔 지방에서 『폭풍의 언덕』을 읽거나, 더블린에서 『더블린 사람들』을 읽는 식으로.
생각만 해도 황홀한 풍경이다. 고개를 들었는데 소설의 배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감동이란.
그 감동을 느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이런 사치를 부리는 것은 여행지에서만 가능하고 삶에서 다시 없을 경험이라는 것을.
173p
정말 나의 로망이기도 하다. 아직도 가보고 싶은 곳은 너무나 많고 바쁜 여행자라 편안하게 부피 있는 책을 가지고 가보지를 못한 것 같다. 이제 겨우 가이드 북을 지나 여행지과 관련된 여행 에세이 수준을 못 벗어나고 있다.
여러 번 읽어도 좋은, 곁에 두고 자주 꺼내어 보고 싶은 책이다.
여담 하나
‘세상이 이런 일이’에 안 나온 건 정말 잘 하신 일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