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ver Image에서 퍼옴
내 기억 속의 무수한 사진들처럼 사랑도 언젠가는
추억으로 그친다는 걸 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신만은 추억이 되질 않았습니다. 사랑을 간직한 채
로 떠날 수 있게 해준 당신께 고맙단 말을 남깁니다.
- 다림에게 보낸 부치지 못한 정원의 편지 中에서
그를 만났습니다
-이정하
그를 만났습니다.
길을 가다 우연히 마주치더라도반갑게 차 한 잔 할 수 있는그를 만났습니다. 방금 만나고 돌아오더라도며칠을 못 본 것 같이 허전한그를 만났습니다. 내가 아프고 괴로울 때면가만히 다가와 내 어깨를 토닥여주는그를 만났습니다. 바람이 불고 낙엽이 떨어지는 날이면문득 전화를 걸고 싶어지는그를 만났습니다.어디 먼 곳에 가더라도한 통의 엽서를 보내고 싶어지는그를 만났습니다.이 땅 위에 함께 숨쉬고 있다는이유만으로도 마냥 행복한그를 만났습니다.
이정하 시집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중에서
행복론 - 최영미
사랑이 올 때는 두 팔 벌려 안고갈 때는 노래 하나 가슴속에 묻어놓을 것추우면 몸을 최댈한 웅크릴 것남이 닦아논 길로만 다니되수상한 곳엔 그림자도 비추지 말며자신을 너무 오래 들여다보지 말 것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은 아예 하지도 말며확실한 쓸모가 없는 건 배우지 말고특히 시는 절대로 읽지도 쓰지도 말 것지나간 일은 모두 잊어버리되엎질러진 물도 잘 추스려 훔치고네 자신을 용서하듯 다른 이를 기꺼이 용서할 것내일은 또 다른 시시한 해가 떠오르리라 믿으며잘 보낸 하루가 그저 그렇게 보낸 십년 세월을보상할 수도 있다고, 정말로 그렇게 믿을 것그러나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고인생은 짧고 하루가 길더라
이런 사람 하나 있었으면...
- 도종환
마음이 울적할 때 저녁강물 같은 벗 하나 있었으면 날이 저무는데 마음 산그리메처럼 어두워올 때 내 그림자를 안고 조용히 흐르는 강물 같은 친구 하나 있었으면 울리지 않는 악기처럼 마음이 비어 있을 때 낮은 소리로 내게 오는 벗 하나 있었으면 그와 함께 노래가 되어 들에 가득 번지는 벗 하나 있었으면 오늘도 어제처럼 고개를 다 못 넘고 지쳐 있는데 달빛으로 다가와 등을 쓰다듬어주는 벗 하나 있었으면 그와 함께라면 칠흑 속에서도 다시 먼 길 갈 수 있는 벗 하나 있었으면 - 도종환의 시집 [다시 피는 꽃] 중에서
도반-이성선
벽에 걸어놓은 배낭을 보면소나무 위에 걸린 구름을 보는 것 같다배낭을 곁에 두고 살면삶의 길이 새의 길처럼 가벼워진다지게 지고 가는 이의 모습이 멀리노을 진 석양 하늘 위에 무거워도구름을 배경으로 서 있는 혹은 걸어가는저 삶이 진짜 아름다움인 줄왜 이렇게 늦게 알게 되었을까알고도 애써 모른 척 밀어냈을까중심 저쪽 멀리 걷는 누구도큰 구도 안에서 모든 나의 동행자라는 것그가 또 다른 나의 도반이라는 것을이렇게 늦게 알다니배낭 질 시간이 많이 남지 않는 지금
**도반(道伴)이란, 같은 길을 함께 가는 사람이라는 뜻이다.끝줄을 되뇌어보니 마음이 아프다. 바로 얼마 전에 시인은 배낭을 땅에 가만히 내려놓고 일찍도 저세상으로 가고, 시만 이렇게 남았다. 결코 길지 않은 생을 그는 새의 길처럼 무던히도 가볍게 건너가려고 하였다. 강원도와 설악산의 맑은 자연 풍관이 시의 태반이었고, 마지막 목적지였다.[바람난 살구꽃처럼]-안도현이 가려 뽑은 내 마음의 시 中 32-33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