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 지상 최고의 맹수를 쫓은 9,000여 일간의 기록 BBC 자연사 다큐멘터리 5
스티븐 밀스 지음, 이상임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6년 4월
평점 :
절판


 BBC 다큐 제작자로 잔뼈 굵은 아재가 호랑이에 대한 최신 연구결과들을 적어낸 책이다(영문판 발행년도는 2003년). 거의 도감 같은 구성이지만 글의 내용도 상당히 알찬 편이었다.

 

 저자가 영국인인데다 인도 쪽이 워낙 호랑이 개체수도 많고 연구가 잘되어 있다보니 대부분의 내용이 벵골호랑이 이야기였다. 하지만 본문에도 나오듯이 호랑이 아종 간 유의미한 유전적 차이는 거의 없으며, 호모 사피엔스로 치면 몽골로이드와 중동사람 정도 차이로 보면 될 것 같다. 단 아무르호랑이는 혹독한 기후 속에 살다보니 먹잇감들의 밀도가 워낙 낮아서 활동영역이 벵골호랑이의 수 배 이상이라고는 하더라.
 책에는 '온갖'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호랑이의 습성들이 나와 있었는데 그 중에 몇 가지 이목을 끄는 것들이 있었다. 일단 사냥기술인데, 호랑이는 기본적으로 기습을 한다. 사냥감이 호랑이를 먼저 발견했다면 그 사냥은 십중팔구 실패다. 심지어 사냥감이 호랑이를 본 티를 내며 고함이라도 지를 경우호랑이는 그대로 사냥을 포기하고 돌아선다고 한다. 호랑이는 사자나 치타처럼 초원에 사는 게 아니다. 호랑이의 서식지에는 추격전을 벌이기엔 너무 많은 장애물들이 있다. 대신 호랑이는 영리하게도 그 장애물을 역이용하도록 적응한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인간을 잡아먹는 호랑이들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내 생각에 인간에 대한 호랑이의 두려움은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프로그램된 것이 아니라, 호랑이가 인간을 마주치는 그 순간에 느껴지는 것이다. ...호랑이에게, 지프차에 탄 인간은 단지 지프차이다. 호랑이는 지프차를 먹지 않기 때문에 그 안에 있는 이상 안전하다...
 ...나는 키가 1.8미터다. 호랑이의 키는 0.9미터 정도지만, 몸길이는 2.7미터에 이른다. 따라서 호랑이는 나를 보고는 내 몸길이가 5.5미터 정도나 될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냥 못생긴 짐승이 아니라, 몸집이 엄청나게 큰, 못생긴 짐승으로 말이다. 싸움이라도 하게 되면, 호랑이는 또 다른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커다란 영양을 공격할 때처럼 내 등 위로 올라타려다 내게 등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사냥하는 동물은 먹잇감을 쓰러뜨릴 때 성공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하는데, 당황하게 되면 이런 확신이 서질 않는다.」

 

 인류가 물론 몸길이와 체중만으로도 중대형 포유류에 속하긴 하지만, 직립보행 덕분에 다른 동물 눈에는 훨씬 더 커보인다는 이야기는 전에도 들은 적이 있다. 이런 거대하고 위압적인 - '인간'이라는 괴물을 사냥하는 일부 간 큰 호랑이들에게는 어떤 특별한 사연이 있는 걸까? 저자가 발견한 건 그런 류의 것이 아니었다. 원인은 인간에게 있었다. 쭈그려 앉아있거나 허리를 숙인 자세의 인간. 호랑이에게 사냥 당한 인간들은 하나같이 저런 취약한 자세를 하고 있는 상태에서 공격을 받았다고 하더라. 이는 참 신선한 이야기였다.
 책에는 호랑이의 성생활에 대해서도 잘 나와있었는데 호랑이끼리 서로 눈이 맞으면 며칠 동안 같이 지내며 운우지정을 나눈다고 한다. 그런데 그 횟수가 2~3일 동안 오륙십 번에 이른다고 한다.

 

「이런 까닭에 '호랑이'를 뜻하는 산스크리트어가 '비아그라'라는 것이나, 사람들에게 수컷 호랑이의 생식기가 정력제로 팔리기도 하는 것은 하나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호랑이는 개보다도 근친상간이 잦은 동물이라고 하더라. 책 군데군데 개체 간의 친인척 관계라든지 족보라든지 하는 정보들이 나오는데 범 족보가 개족보보다 못해 보였다. 하지만 다행히도 호랑이는 근친상간에 의한 기형 확률은 거의 없다고 한다. 근현대 들어 개체 수가 급격히 줄어든 호랑이에게 이는 종족 보존을 위한 큰 강점이 될 수 있다. 게다가 그런 친척들 사이에서는 큰 싸움이 잘 나지 않고 서로 존중하며 지내는 경향이 있어 번식에도 유리하다고 한다.
 저자는 말미에 호랑이 종 보존을 위한 이야기들을 늘어놓고 있다. 다른 모든 생물이 그렇듯이 호랑이에게도 서식지 파괴가 가장 큰 위협이다. 인간은 덩치가 너무 크고, 서식지를 돌이나 정제된 흙 등으로 꾸미기를 좋아하는 바람에 다른 생물들 살 곳을 지나치게 없애버리는 경향이 있다. 인간 외에 그런 환경에서 살 수 있는 생물종은 극히 드물다. 저자는 이러한 서식지 보존과 밀렵 예방 등을 위해, 서식지 인근 주민들에게 '살아있는 야생호랑이는 돈이 된다'는 생각을 심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직 호랑이들이 살고 있는 곳들은 개도국이거나 빈부격차가 상당히 심한 나라들이며, 설령 잘사는 나라일지라도 호랑이 서식지 정도면 굉장한 깡촌이라 거기 사는 사람은 대개 가난한 사람일 것이다. 이 사람들에게 호랑이 투어 등을 통한 관광수입이 돌아가게 된다면 어떨까? 저자는 참 훌륭한 사람이다. 이 사람은 공염불에 그치지 않고 책의 마지막장에 구체적인 관광 루트를 쭉 소개하고 있다. 인도, 네팔, 부탄, 방글라데시, 미얀마, 말레이시아, 인니,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중국, 러시아까지... 각 나라의 호랑이가 살고 있는 관광지에 대하여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내가 봤을 때 우리나라는 호랑이가 서식하기에 시베리아보다 훨씬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다. 한국이야말로 멧돼지에 고라니에 유제류의 천국 아닌가. 게다가 기후도 덜 사납다. 나중에 혹시라도 통일이 된다면 DMZ 자리에 호랑이 몇 마리 풀어놓고 영구적인 호랑이보호구역으로 지정하면 좋을 것 같다. 그렇게 해서 전술한 호랑이 관광 루트에 한국도 포함되는 날이 오도록 하는 일이야말로 - 200만 년 전부터 한반도에 살아왔던 호랑이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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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배와 항해 이야기 역사 명저 시리즈 4
라이오넬 카슨 지음, 김훈 옮김 / 가람기획 / 2001년 2월
평점 :
절판


 이거 가람기획의 역사명저 시리즈 중의 하나인데, 나는 고등학교 때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를 보고 큰 감명을 받은 적이 있다. B.C 시대의 이야기, 게다가 '모험'이라는 단어가 절로 떠오르는 - 배, 그리고 항해 이야기라면 도저히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다. 그리고 이 책이 들려주는 옛이야기들은 궁금증 해소를 뛰어넘어 TMI급이었다.

 

 저자는 해양고고학자이자 역사학자인 모양인데, 선사시대의 배에 대해서는 일절 이야기하지 않고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배들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하고 있다. 어찌 보면 대부분 나무로 된 뗏목 뿐이었을 선사시대의 배들은 자료도 부족하고 할 말도 별로 없을 테니 이해가 간다. 특이한 점은 옛날 배들의 경우 프레임을 먼저 짜고 벽을 치는 게 아니라 벽을 먼저 치고 프레임을 짰다는 사실이었다. 때문에 벽 역할을 하는 널판지들을 이어붙이는 기술이 조선의 핵심이었고 손도 굉장히 많이 가는 작업이었다고 한다. 어찌 됐든 이집트가 워낙에 고도로 발달된 문명을 이룩했기에 온갖 비비드한 컬러의 기록들을 많이 남겨놓았고 저자는 이것들을 참고해서 충분한 연구를 할 수 있었다. 보면 온통 B.C 2,000년, B.C 1,500년 막 이 시절 이야기를 하는데 도저히 감도 안 왔다.
 그러다 그리스로 넘어간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큰 전쟁이 있을 때마다 인류의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곤 했다. 그리스 역시 갖가지 전쟁을 치르면서 전함 위주로 조선술을 발전시켰다. 냉병기 밖에 없던 시절에 전함은 빠른 게 미덕이었다. 이에 따라 그리스에서는 날씬하고 노가 많은 전함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따른 일화도 상당히 재미있다.

 

「고대 국가들은 오늘날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아주 특별한 상황이 아니고서는 노예들을 전함의 노잡이들로 쓰지 않았다...
 ...국가가 소유한 노예들을 노잡이로 쓰는 것은 비경제적인 짓이었다. 힘 좋은 노예들을 사려면 적지 않은 돈이 들고, 또 그들이 전투하는 도중에 죽기라도 하면 그 돈이 한꺼번에 날아가는 셈이 되므로, 노예들을 노잡이로 쓰는 것은 엄청난 투자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반면에 돈을 주고 고용한 노잡이들은 노를 젓는 일을 할 때만 봉급을 받았고, 그들이 전투하는 도중에 죽는다 해도 고용주들이 그에 대해 배상을 해줘야 할 하등의 의무가 없었다.」

 

 대항해시대에도 그랬고, 기원전 그리스에서도 뱃사람들 임금을 일부만 주다가 항해가 끝나고야 전부 지급해주곤 했다고 한다. 이건 뱃사람이 항구에서 술먹고 창녀촌 가는 등등으로 봉급을 흥청망청 써버리는 불상사도 예방하고, 뱃일 힘들어서 도망치는 것도 방지하는 일석이조의 해결책이었다.
 알렉산드로스가 대제국을 건설한 후 바로 요절하자 헬레니즘 시대가 도래했다. 그 전까지는 도시국가들 뿐이던 유럽에 제국들이 출현하게 된 거다. 이 나라들은 충분한 자본력을 확보하게 되자 엄청난 크기의 갤리선들을 건조하게 된다.

 

「그 배의 길이는 128m, 폭은 17.3m, 뱃머리 장식까지의 높이는 21.9m, 고물 장식까지의 높이는 24.2m였다. ...시험운항 때 그 배에는 4,000명의 노잡이들과 400명의 승무원들이 탔고, 갑판에는 2,850명의 전투병력이 탔다.」

 

 2,000년 전에 저런 배를 만들어서 타고 다녔단다. 진짜 대단한 사람들이다.
 로마시대에는 이집트의 곡창지대에서 난 곡물 등을 이탈리아 반도로 옮기는 게 또 일이었다. 그래서 이 괴물들은 이번엔 거대한 상선들을 만들게 된다. 거기엔 닻장을 조립할 수 있는 2톤 가까이 나가는 닻도 쓰였다는데 이 기술이 실전돼서 나중에 18세기에야 다시 발명했단다. 이런 상선들의 적재량은 보통 1,300톤 정도였다고 한다. 이외에 헬레니즘 때 어떤 상선은 2,000톤 짜리도 있었다고 한다.

 

 책에는 그밖에 바이킹 배에 대해서도 기술되어 있었고, 프레임을 먼저 짜는 조선술이 대세가 된 이후 - 방향키를 고물 바로 밑에 배치하게 되어 - 우리가 흔히 연상하는 동그란 핸들만으로도 방향 조정이 가능하게 되고, 한 돛대에 돛을 여러 장 다는 기술 등이 발명되면서 대항해시대가 가능해졌다며 고대의 뱃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있다. 그런 걸 동양에서 먼저 발명했다면 참 좋았을 텐데, 아쉽기 짝이 없다. 어찌 됐든 - 범선 모형만 봐도 설레는 나로선 참 즐거운 모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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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win 2022-09-06 0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구입을 생각중인데, 좋은 정보글 감사드립니다. 한가지 여쭤봐도 될런지요. 서평은 상당히 호평이신데 왜 별은 3밖에 안되는지 궁금합니다. 구입결정에 약간 망설여지게 되네요.. 감사합니다.

司馬懿 2022-09-07 17:1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댓글 감사합니다.
제 기준으로 별점 3점부터는 양서에 해당하니 참고해주세요. 제가 별점에 좀 박한 편인가 보네요.
 
칼 마르크스 - 그의 생애와 시대
이사야 벌린 지음, 안규남 옮김 / 미다스북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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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자는 괴물이다. 나이 서른에 엄청난 명저를 써냈다. 맑스도 서른 살엔 뜨내기 공상가에 불과했다. 경의를 표한다.

 지구상의 자유민주주의국가 중에서도 상자유민주주의국가인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으로서 맑스는 애보다는 증의 대상이다. 내가 봤을 때 이는 한반도 거주민들이 온갖 지정학적, 역사적, 정치적 문제로 인한 비극을 겪은 탓도 크지만 - 맑스가 자초한 면도 상당하다고 생각한다. 이 양반은 늘상 폭력혁명을 주창했으며, 이에 따라 코뮌의 학살행위를 두둔 내지는 무시하고자 하여 많은 지성인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이런 폭력혁명은 악용될 소지가 대단히 많다. 이는 당장 스탈린, 모택동, 김일성만 봐도 아주 쉽게 알 수 있다. 맑스는 이른바 '혁명가'들을 너무 물로 봤으며, 인간이 다른 어떠한 종보다도 잔학한 동물이라는 자각도 부족했던 것 같다.

 물론 맑스는 기본적으로 인류 구성원 다수의 행복을 바란 사람이다. 이에 따라 그는 오히려 일견 비정해보이는 어투를 장착하게 됐다.

「마르크스는 모든 종류의 낭만주의, 주정주의 및 박애주의적 요소를 혐오했다. ...그가 서명한 성명서나 선언문, 행동강령에는 도덕적 진보, 영원한 정의, 인간의 평등, 개인이나 민족의 권리, 양심의 자유, 문명을 위한 투쟁 등의 문구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는 이와 같은 문구들이 일고의 가치도 없으며 사고의 혼란과 행동상의 비효율성을 조장하는 허구라고 보았다.」

 그리고 맑스는 엄청난 독서광에다 온갖 종류의 이론들을 잘 배합하여 정립한 사람이지, 자기 혼자 갑툭튀한 천재가 절대 아니었다. 스피노자, 홀바, 포이어바흐, 랭게, 생시몽, 시스몽디, 슈타인, 헤스, 바뵈프, 블랑키, 바이틀링, 블랑, 로크, 애덤 스미스, 푸리에, 슈티르너, 헤겔 등등 맑스의 스승은 책 속에 무진장으로 있었다. 맑스는 이들의 이론들을 적재적소에 배열하고 비판적인 안목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저자는 맑스의 개인사 - 그가 좋아했던 음식, 흥미로운 일화, 사랑했던 사람과의 추억 따위에는 거의 지면을 쓰지 않았다. 그는 맑스가 상기한 스승들에게서 사사(?)를 받는 과정 - 역시 플롯이랄 게 없는, 해당 이론에 대한 배경과 해설, 그리고 맑스가 그 이론 중 최종적으로 어떠한 내용을 취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들 - 에 대해 거진 책의 절반 이상을 할애하고 있다. 맑스라는 사람의 전기를 진행하는 데에 이보다 적절한 방식은 없으리라 본다.

「이 이론의 구조와 기본 개념은 헤겔과 청년 헤겔주의자들에게서, 동적 원리들은 생시몽에게서, 물질의 우위에 대한 믿음은 포이어바흐에게서, 프롤레타리아에 관한 견해는 프랑스 공산주의 전통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 이론은 완전히 독창적이다. 여러 요소들이 결합되어 있으면서도 절충주의로 흐르지 않고, 오히려 대담하면서도 정합적인 체계를 갖추고 있다.」

 맑스는 독일 사람이고, 인종으로 따지면 유대인인데, 본인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극단적으로 부정하고 싶어했다. 신기한 일이다. 유대인이란 종교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민족이다. 그들의 유일신은 현재 세계인구의 대부분을 - 다양한 형태로 통제하고 있다. 그런 유대인인 그가 스스로 유대인임을 부정하고자 한 것은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생각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고향, 그리고 조국은 전제군주에 의해 통치되고 있었고 그나마 맑스 만년에도 비스마르크가 건재했다. 한마디로 프로이센은 맑스를 품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 파이터는 파리에 머물게 되었고 엥겔스라는 파트너를 만나게 됐다. 엥겔스는 나중에 수급자나 다름없는 맑스 가족에게 온갖 수단을 동원해 후원을 해주기도 하고 공저한 모든 강령이나 책자 등을 맑스의 공으로 돌리기도 하는 등 그야말로 키다리아저씨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엥겔스가 없었다면 맑스도 없었다.

「엥겔스는 마르크스를 경쟁자로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마치 성실한 학생처럼 마르크스가 가진 모든 지적 자양분을 무조건 받아들이고 싶어 했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그는 건강한 판단, 열정, 활력, 쾌활함을 마르크스에게 제공했으며 마르크스가 빈곤으로 절망적인 상태에 빠질 때마다 생계수단을 지원했다.」

 저자는 맑스의 노동에 대한 기본적인 견해를 다음과 같이 찰지게 표현하고 있다.

「마르크스의 우주적 비전에서 노동이 차지하는 비중은 과거에 단테의 작품에서 우주적 사랑이 차지했던 비중만큼이나 크다.」

 맑스는 대단히 현실적인 사람이었으며 과거에 필요했던, 또는 미래에 필요할 사상보다는 현재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이론과 사상을 설계하고자 했다. 그의 눈에 19세기 중반의 현실은 다음과 같았다.

「인간의 노동력을 매매하고 노동자를 그저 노동 공급원으로만 취급하는 자본주의는 분명히 인간이 어떤 존재이고 어떤 존재일 수 있는지에 관한 진실을 왜곡하고 역사를 하나의 계급 이익에 종속시키려고 하는 체제이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분노한 희생자들의 결집된 힘에 의해 새로운 것으로 대체되도록 운명이 정해져 있는 체제이다.」

 맑스는 뚜렷한 직업이 없는 선동가이자 사상가였다. 고정적인 수입이 없다. 경제적으로는 하층민 중에서도 최하층민이었다. 그런 그이기에 더욱 간절하게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을 바랐는지도 모른다. 1848년에 파리에서, 그리고 유럽 곳곳에서 혁명의 시도가 있었다. 맑스는 기회라고 생각하여 부지런하게 펌프질을 했으나 역사는 그의 실패를 알고 있다. 그는 재판을 받게 됐고 그걸 PR 기회로 삼는다 - 이 점은 안중근 의사와 일견 유사하다.

「마르크스는 반란 선동죄로 체포되어 쾰른 법정에 서게 되었다. 그는 이 일을 오히려 국내외의 사회적, 정치적 상황에 대한 자신의 상세한 분석을 해박한 지식을 동원해가며 일장 연설을 하는 기회로 이용했다. 결과는 뜻밖이었다. 재판의 배심장은 피고의 무죄를 선고하면서, 자신들 모두에게 교훈적이고 흥미로운 강의를 통해 커다란 도움을 준 데 대해 자신과 재판정의 이름으로 피고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도마께서는 맑스와 다를 바 없는 일장연설을 논리정연하고 일관되게 펼쳤음에도 미개한 왜놈들에게 사법살인을 당했을 따름이다. 이게 국격의 차이다.

 맑스라는 사고뭉치는 이제 프랑스에서도 거부 당하게 됐다. 그는 반평생을 보낼 잉글랜드로 망명하게 된다.

 맑스는 변증법적 유물론을 기본도구로 모든 사회현상을 설명하고자 했으며 찰스 다윈을 매우 좋아했다. 그러다보니 이 인간 눈에는 아시아라든지 러시아 등지는 아직 진화가 덜 된 사회로 보였고, 영국의 식민지배는 악한 일이지만 그로 인해 해당 식민지가 더 빠르게 진화할 수 있고 이에 따라 혁명이 앞당겨질 수만 있다면 그리 나쁘기만 한 일은 아니라는 식의 글을 쓰기도 했다. 얜 모든 목적이 혁명으로 귀결된다. 때문에 자연히 Nationalism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었다. 정말 완벽해보이면서도 여하한 구멍이 많은 것이 맑스의 이론이었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기도 한다.

「대기업 - 마르크스는 대기업의 출현을 예견한 몇 안 되는 인물 중의 하나이다 - 은 그 동맹 세력인 군대와 함께 자유방임주의와 개인주의를 파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국가의 통제가 강화되고 그에 따라 민주적 저항이 증가하면서 생길 결과를 고려하지 못했다. 또한 정치적 민족주의가 자본주의 자체의 발전을 방해하고 변형시키는 힘이나 무제한적인 착취를 방해하는 장애물이 될 수 있는 것, 혹은 부르주아지 중에서 점차 빈곤해지는 계층이 프롤레타리아로 전락하게 될 운명을 피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반동 세력과 동맹을 맺게 될 때 그들이 구체제를 지키는 보루가 되리라는 것을 예측하지 못했다. 다시 말해 마르크스는 파시즘도 복지 국가도 예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인간은 이성과 감성의 동물이고, 협상과 타협을 통해 기존의 체제를 크게 파괴하지 않고도 상호발전하는 법을 아는 종족이다. 당대에도 비스마르크가 복지 국가를 만들기 시작했지 않은가. 모든 인간이 중세 몽골 전사 같지는 않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맑스가 주장하는 바는 매우 그럴듯하면서도 심금을 울리는 면이 있다.

「대자본가의 수가 점차 감소함에 따라, 즉 자본이 소수에게 집중되는 현상이 심각해지면서 빈곤, 예속, 타락, 착취의 강도는 점차 증가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노동계급의 역할도 꾸준히 강화된다. 노동계급은 갈수록 그 수가 점차 늘어나고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의 매커니즘 자체에 의해 훈련되고 단결되고 조직된다.

 생산 수단의 집중과 노동의 사회화는 마침내 그 자본주의적 외피와는 양립할수 없는 지점에 도달한다. 자본주의적 외피는 파열한다. 사적 소유의 조종이 울린다. 수탈하던 자가 수탈 당하게 된다.」

 인터내셔널도 망하고, 맑스는 평생을 바쳐온 작업의 결과가 생전에는 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을 것이다. 그러면서 나이들고 나서는 러시아처럼 자본주의가 성장하지 못한 환경 속에서도 혁명이 일어날 수 있겠다고 느끼는 등 이른바 수정주의자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아무리 공산주의 거두라고 해도 호르몬 변화는 어쩔 수 없었나보다. 그러다 본인이 그렇게 좋아하던 책 속에 파묻혀 잠들듯이 떠난 그가 부럽기도 하다.

「마르크스 이전에도 계급투쟁을 말한 사람들은 있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한 계급이 오로지 계급으로서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싸우는 정치 조직을 만들 계획을 구상하고 성공적으로 실천했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함으로써 정당과 정치적 투쟁의 성격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마르크스의 사상은 '역사 과정을 규정하는 요소는 관념이다'라는 명제를 논박하기 위해 출발했다. 하지만 마르크스의 사상은 인간사에 강력한 영향을 미침으로써 스스로 테제의 힘을 약화시켰다. 왜냐하면 마르크스의 사상은 개인이 환경이나 다른 개인들과 맺는 관계에 대해 그때까지 널리 퍼져 있던 인식에 변화를 일으켰고, 또 그러한 관계 자체까지 변화시켰다. 그 결과 오늘날까지도 마르크스의 사상은 인간의 행위 방식과 사유 방식에 지속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적 힘들 중에서 여전히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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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 순환선 - 최호철 이야기 그림
최호철 지음 / 거북이북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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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대 가기 전이었던 거 같은데, '을지로 순환선'이라는 작품에 대해 신문에서 보고 인터넷 기사 들어가서 이미지를 저장해놨던 기억이 있다. "기가 막힌 그림이다." 처음 감상이다.

 

 알고 보니 작가가 동문 선배님이다. 심지어 와우산 토박이라고 하는데, 84학번이니 어마어마한 분이다. 이 도록 같은 책에 실려있는 첫 작품이 '와우산'이다. 95년작이라고 하는데 우리학교 위에 있던 발칸부대부터 해서 아직 공사 중인 서강대교, 63빌딩만 우뚝한 여의도, 당인리발전소, 하늘공원이 되기 전 상암의 쓰레기장 등등이 펼쳐져있다. 아직 개발 안 된 와우산 달동네엔 삼성아파트도, 쌍용예가도, 금호아파트도 보이지 않는다. 이는 풍속화이자 하나의 역사다. 나는 지금도 마포구 일대를 돌아다닐 때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 지나치게 생동하는 제2의 고향의 모습에 놀라곤 하는데, 기록을 좋아하는 나로선 이렇듯 추억의 모습을 새겨놓은 대선배님이 존경스럽기 그지없다.
 대망의 '을지로 순환선'의 내선순환열차는 지금의 '구디'역 일대를 지나는 것으로 보인다. 스케일이 다르고 전하는 바도 남다르다. 이 그림은 본 사람만이 그 느낌을 알 수 있다.
 이 외의 그림들은 퀄리티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시민 - 주로 서울시민 - 들의 일상사들을 그려놓았는데, 나름 정감있고 전달하는바도 많지만 상기한 대작들에 비해 달리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림책이라 주절주절 쓰기도 애매하다. 난 여기서 '와우산'이랑 '을지로 순환선' 건진 것만으로도 매우 만족한다. 민족사학! 단결홍익! 마포의 아들, 마포의 추억,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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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 우화
수잔 펠드만 / 선영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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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이야기. 시적이고 순수한, 석기를 다루며 문자를 쓰지 않던 - 원시인류의 모습을 간직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말 그대로 구비문학 모음집이다. 북아메리카 각지의 부족, 심지어 이누이트까지 포함하여 그들의 창세신화, 영웅신화 등을 실어놓았다(남미쪽 우화는 몇 편 안 됨). 대단히 흥미로웠다.
 이걸 보며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세계관이나 취향들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는데, 대부분의 부족이 4라는 숫자를 좋아하여 등장인물이 뭘 시도하더라도 꼭 네 번은 해보거나, 넷째 아들이 훌륭하거나 하는 식이던데 얘네한테는 4가 극동 아시아에서의 3과 비슷한 이미지인 것 같다. 또한 고슴도치 가시로 신발 장식을 한다든지 주로 수렵 채집을 하는 통에 농사 관련된 내용을 거의 찾을 수가 없다든지 하는 특징들도 눈에 띄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에피소드가 경황없고 인과관계가 불분명한 경우가 많았다. 서양에 비해 상대적으로 추상적인 동양의 구비문학들도 논리나 상황설정의 오류 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한데, 얘네들은 마치 꿈을 꾸는듯이 - 수시로 설정이 바뀌고 등장인물이 급작스럽게 변덕을 일으키는 등 실로 자유롭기 그지 없었다. 꿈같은 경우 - 이 표현이 가장 적당해보인다 - 가 대단히 많았다. 특히 동식물이나 갖가지 사물이 의인화가 되다 못해 사람으로 수시로 변하곤 하는등 자연과 인간 사이의 경계가 없는 모습이었다.
 또 한가지 특이한 점은 유라시아 대륙에서는 거의 절대적인 존재로 떠받들어지는 태양이,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는 결코 완전무결한 존재로 취급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려' 태양이 - 빛을 도둑맞는 등 - 바보천치거나 - 사위를 죽이려고 애쓰다가 그마저도 실패하고 망신만 당하는 - 속좁은 소인배로 나오기도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사람 생각이 완전히 다르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예를 들면 주니족Zuni族 같은 경우 다음과 같이 근친상간을 경계하기도 했다.

 

 「"우리 옥수수족의 타락 때문에 홍수가 났어. 당신들은 키바에서 쾌락을 즐기곤 했지. 그래서 유령이 와서 키바를 보고는 홍수가 나게 한 거야. 같은 부족 사람들끼리는 형제 자매로 지내야지 결코 서로의 육체를 탐내서는 안돼."」

 

 그리고 대평원에 살던 블랙풋족Blackfoot族은 - 마치 창세기처럼 - 조물주(노인)가 진흙으로 여자와 어린아이를 만들었다고 생각하기도 했으며 윈네바고족Winnebago族 같은 경우엔 아예 창조주가 진흙으로 본인과 꼭 닮은 형상을 만들었다고 하기도 한다.
 '산토끼의 모험'이라는 에피소드는 상식을 뛰어넘는 내용들을 여러 번 보여주는데, 토끼가 칠면조도 잡고 철갑상어도 죽이더니 급기야 사람과 곰도 때려잡는다. 게다가 같이 사는 할머니는 토끼가 누구 죽이고 왔다는 얘기만 하면 니가 내 동생을 죽이고 말았다느니 하면서 화를 내는데 - 여기에 토끼의 대답이 걸작인 게, "오! 이런 사악한 늙은이 같으니. 내 당신도 쏘아 죽여서 태워버릴 거예요."라는 전례없는 패드립을 날리곤 한다. 그러면 할머니는 농담이었다느니 잘죽였다느니 하는데 참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졌다.
 또한 위시램족Wishram族에 따르면 인간은 본래 윤회를 했는데 코요테가 정한 규칙에 따라 그것이 멈추어버렸다고 한다.
 이밖에 널리 알려진 박쥐 이야기도 있었는데 이게 아메리카 원주민 우화였는 줄은 몰랐다. 개미가 누가 가장 센 지 부등호 놀이를 하다가 눈<태양<바람<집<쥐<고양이<막대기<불<물<소<칼<돌로 결론이 나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이건 내가 아는 이야기랑은 결론이 좀 다르긴 하다.

 

 참 오랜만에 북아메리카 원주민 관련 서적을 읽었다. 흔히 볼 수 없는,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직접 접해 보니 흥미롭기 그지없었다. 매우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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