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 세트 - 전10권
이문열 지음 / 민음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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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삼국지 때에도 그랬지만, 이문열은 원전을 중시하기 보다는 - 수정을 가하고 자신을 드러내는 데에 거리낌이 없는 스타일이다. 이 초한지 역시 그랬다. 특히나 서두 부분과 10(번째)권 전체 같은 경우는 『서한연의』가 아닌 『사기』의 이문열판 번역본에 다름 아니었다. 그밖에도 구리산 십면매복, 장량의 은거와 같은 - 초한지의 재미에 "心腹" 같은 역할을 하는 장면들도 사서와 내용이 다를 경우 가차없이 편집해 버렸다. 가히 七實三虛를 넘어 九實一虛라 할 만했다. 이렇듯 正史에 대한 이문열의 집착이 심하긴 했지만 전혀 예상을 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라 적당히 넘어갈 수 있었다.

 

 1권 마지막 즈음에는 부록으로 '史記로 본 초한지 이전의 세계'가 실려 있었다. 잊고 있거나 모르고 있던 중국 고대사 이야기들을 볼 수 있었는데, 여기서 강자아를 얻은 周武王이 牧野싸움을 앞두고 후세에 남녀싸움의 단초가 될 명언을 남기기도 한다.

 

「"옛말에 '암탉은 새벽에 울지 않으니, 암탉이 새벽에 울면 집이 망한다.'고 하였소. 그런데 지금 殷王 紂는 오직 계집[妲己]의 말만 듣고..."」

 

 또한 周厲王 당시 14년간 공화정이 들어섰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나는 범증을 좋아한다. 몇 해 전 나온 중국 영화 초한지에서는 범증이 장량보다 한 수 위인 것으로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비운의 천재 범증의 출사는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이번에는 蓍草로 항량과 항우의 身數를 보았다. 항량에게는 아예 군왕의 운세가 없고, 항우에게는 있어도 굵고 짧았다. 오래 주인으로 섬길 만한 신수들이 아니었다.」

 

 그 끝은 너무도 잘 알려져 있다. 이러한 범증의 헤아림과 비극은 현대의 취준생들이 필히 보고 얻어가는 바가 있어야 한다. 사족을 붙이자면 범증은 하야 후 노상에서 죽었는데, 왜 하필 하야 직후에 죽었는지 의심해 볼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항우가 의리남, 순수남 이미지가 있어 대부분의 논자들이 말 꺼내기를 두려워 한 것 같은데, 내가 보기에는 항우가 부러 죽였을 수도 있지 않나 싶다. 물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말이다.

 

 한편 성양에서의 승전 이후 포로들의 처리 과정에서 유방과 항우는 처음으로 극명한 대비를 보인다.

 

「'우리가 말하는 천하는 결국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사람도 그를 죽이면 슬퍼하고 성낼 사람이 백 명은 넘는다. 그런데 사람의 목숨을 저리 하찮게 여겨 앞으로 사게 될 그 많은 원한은 어찌할 것인가...'(유방)

...'부수어야 새로 세울 수 있고, 죽여서 더 많이 살리는 수도 있다. 바로 지금이 그러한 때다. 나에게 맞서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여기서 똑똑히 보여 주지 않는다면, 앞으로 함양에 이를 때까지 내가 아끼는 초나라의 병사와 장수들이 얼마나 많이 죽어야 할지 모른다....'(항우)」

 

 이러한 대비가 『삼국지연의』에서의 유비와 조조같은 선악의 대비까지는 아닐 지라도 후세인들이 초한쟁패사를 즐기는 이유는 충분히 되고도 남는다. 심지어 유방과 항우는 계집질에 있어서도 서로 달랐다. 유방은 건달 출신답게 호색이 극에 달했으나, 항우는 명문가 출신으로서 우직한 상남자답게 고결하기 짝이 없었다.

 

「역이기가 객사로 찾아온 것은 마침 패공이 여자들에게 발을 씻기고 있을 때였다. 당시의 습속 탓도 있지만, 여자와 관련된 패공의 행실은 그리 단정하지 못했다... ...목이 잘릴 죄가 되지 않는다면 노소미추를 가리지 않고 여자를 마다하는 법이 없었다고 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 뒤 다시 3년 고달픈 전장을 헤매는 동안 이번에는 항우 스스로 하룻밤 잠자리 시중드는 여자조차 마다해 왔다... ...'저 아이는 바로 내가 마음속으로 그리며 만나기를 기다려 온 그 아이다... ...이제 저 아이(우희)를 내 여자로 거두겠다.'」

 

 그러면서도 둘은 범인들이 가지지 못한 패기와 야망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었기에 천하쟁패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그 둘이 시황제의 순수 행렬을 보면서 내뱉은 말들은 놀랍도록 비슷하다.

 "저것이라면 빼앗아 대신 차지해 볼 만하구나[彼可取而代也]!"(항우)

 "아아, 대장부란 마땅히 저래야 하는데!"(유방)

 나는 영웅이 되어 나와 친족들이 아울러 고통받고 대도 끊기느니 필부로서 가정을 보존하는 일이 더 소중하다. 초한지에 등장하는 수많은 영웅 및 권세가들이 대부분 끔찍한 최후를 맞는 모습들을 보면 노장사상이 절로 떠오른다. 예를 들어 이사 같은 경우,

 

「...죽기 전에 오형을 받았는데, 먼저 얼굴에 먹물로 글자를 새겨넣고[黥], 다음에 코를 베어 내고[劓], 이어 다리를 잘라 내고[剕], 다시 생식기를 도려낸[宮] 뒤, 마지막으로 머리를 쪼개는[大辟] 순서였다. 그런 다음 허리를 베고 목을 잘라 저잣거리에 내거니 보는 사람이 모두 끔찍하게 여겼다.」

 

 유방의 애첩 척 부인의 최후는 그보다도 고약했다. "손과 발을 자르고, 눈알을 뽑고, 고막을 연기로 그을어 태우고, 벙어리가 되는 약[瘖藥]을 먹여 돼지우리에 던져 넣었다". 천하통일 후 유방의 토사구팽은 여후의 대살육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래봤자 여씨들 또한 10년도 못 가 청소 당했다. 여후 동생 여수(번쾌 와이프)도 언니가 죽자마자 맞아 죽었으니,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그 짓거리들을 하는가. 나는 유방이 공신들 다 죽여도 번쾌 노관은 끝까지 간 줄 알았는데, 노관도 번쾌도 아주 무사하진 않았더라. 아무 의미 없다.

 

 또한 옛 중국인들 계책내는 데엔 꽤 독한 면이 있다. 동주열국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진평의 毒手는 실로 끔찍한 경우가 많았다.

 

「진평이 그중에서도 가장 장이와 비슷한 자를 골라 놓고 보니 漢軍 步卒이었다. 진평은 그를 데리고 자신의 장막으로 가 술과 고기를 대접한 뒤 말했다.

"한왕께서는 자네 머리를 빌려 큰일을 이루시려 하네. 부모와 처자는 한왕께서 돌봐 주실 것이니 아무 걱정 말고 죽어 주게..."

그러고는 보졸의 목을 벤 뒤 그 머리를 조나라로 보냈다.」

 

 항우의 전투력은 신의 경지에 올랐다. 거록에서의 9전9승을 비롯해 유방에게 빼앗긴 팽성을 되찾을 때의 모습은 말 그대로 鬪神 그 자체였다.

 

「...패왕이 제나라 성양을 떠난 지 열흘 남짓 만의 일이었다. 3만 정병으로 출발한 패왕은 그사이 천 리길을 에돌며 56만 대군을 상대로 싸워, 다섯 장수의 진채를 짓밟고 세 개의 성을 떨어뜨린 뒤에 주머니에서 물건 꺼내듯 팽성을 되찾았다.」

 

 무슨 타임머신 타고서 기관총을 들고 가 싸우는 것도 아니고 똑같은 무기를 가지고 저런 전과를 낼 수 있는가. 말이 안되는 인물이다. 하지만 사람 귀한 줄 모르는 항우는 유방을 이길 수가 없었다. 인간은 무리생활을 하는 동물이다. 게다가 두 사람의 '사람 귀한 줄' 아는지 모르는지는 제 스스로의 목숨에 대한 태도에서도 나타났다. 유방은 팽성에서 가루가 나고서 초나라에 쫓기던 도중 아들 딸을 구출하게 되는데, 초군의 추격이 급해지자 아들 딸을 여러 번 수레 밑으로 걷어차고, 집어던진다. 제가 살아야 무리를 다시 모을 수 있지 않느냐는 이론이다. 반면 항우는 자신의 목숨을 초개처럼 여기고 매번 싸움에 앞장 섰다. 군왕 신분으로서 누가 더 옳았는지는 결과가 말해준다.

 특히 유방도 기재는 기재였다. 아무리 그가 무위자연 군주 이미지가 강하다 해도 그저 멍청해서는 무려 漢祖를 세울 수 있었겠는가. 그의 임기응변은 실로 신묘한 데가 있다. 예를 들어 인질협박범(?)을 대하는 태도에서는,

 

「"...죽은 무신군 앞에서도 또한 형제 되기를 맹세한 적이 있다. 따라서 나의 어버이가 곧 너의 어버이니, 네가 꼭 네 아비를 삶아야겠다면 난들 어쩌겠느냐? 그래도 너와 나는 형제의 의리가 있으니, 국이 다 끓거든 나에게도 한 그릇을 나눠 주기 바란다."」

 

 이와 같이 상식과 틀을 깨 최상의 결과를 내었다. 이밖에 항우에게 가슴을 저격 당했을 때("저 종놈이 내 발가락을 맞추었구나[虜中吾指]!")도 그렇고 유방의 현명함은 유비의 그것을 뛰어넘는다. 물론 그럼에도 유방에게 항우는 항상 두려운 존재였다. 관중을 나온 이래 승승장구하던 유방은 팽성에서 깨박살이 나고, 내리 수십 차례를 지다가 광무산 대치 이후에는 항우 뒤통수를 치고도 쳐발린다. 그러다 보니 사면초가를 들은 항우가 도망갈 때조차 유방은 "스무 배가 넘는 대군으로 패왕의 진채를 에워싸고도 이틀이나 결판을 미"뤘다.

 결국 전술한 두 왕의 사람 다루는 차이 때문에 대세는 기울고, 오강에서의 추격전에서 항우가 보여준 모습들은 그야말로 레전드 영상이다. 사람 한 명이 얼마나 용맹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용맹함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인류 역사상 최고의 명장면이라 아니할 수 없다.

 

「"...몸소 나가 싸우기를 일흔 번이 넘었으나 한 번도 진 적이 없어 마침내는 천하의 패권을 움켜잡게 되었다. 그런데도 지금 갑자기 이처럼 고단한 지경에 빠진 것은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해서이지 싸움을 못한 죄가 아니다[此天之亡我 非戰之罪也]. ...첫째 반드시 적의 에움을 흩어 버리고, 둘째 적의 장수를 베어 죽이며, 셋째 적의 깃발을 찍어 쓰러뜨리겠다. 그리하여 그대들에게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한 것이지 내가 싸움을 잘못한 죄가 아님을 알려 주고자 한다."」

 

 28:5000 싸움을 앞둔 대장이 한 말이다. 그리고 그는 그대로 행했다. 그렇게 지치고 지친 몸으로 26명만 이끌게 된 상태에서, 오강 정장의 호의를 느닷없이 거절하는 항우였다. 이는 전술했던 '제 스스로의 목숨에 대한 태도'를 보여준다. 그러고는 말에서 내려 병사들과 26:5000 육탄전을 벌이는데, 걸어다니면서 혼자 최소 백여 명을 죽인다. 이렇듯 절륜한 무공 때문에 이 책에 없는 구리산 십면매복에서는 한꺼번에 한나라 장수 60명인가랑 혼자서 뜨는 걸로 나오기도 했던 모양이다. 여포 무력이 100이면 항우 무력은 1000이다.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나서 과거 부하장수에게 인심을 베푼 항우의 시체에게 돌아온 건 사지절단이었다. 이문열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한다.

 

「실로 비정하다 못해 처절하기까지 한 인간의 물욕이었다. 그리고 죽음을 맞이하는 패왕 항우가 보여준 기이한 정신적 고양에 견주면, 그 물욕은 끔찍한 자기 모독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 인간성의 추락이었다. 진정 이 세상의 무엇이 고귀하고 무엇이 下賤한가. 사람의 무엇이 위대하고 무엇이 卑小한가.」

 

 오추마가 한 번 갈렸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항우가 오중을 떠날 때부터 타고 다니던 오추마는 진나라 평정 후 항우가 팽성으로 돌아가려하자 스스로 곡기를 끊고 죽은 것으로 나온다. 그리하여 항우는 함양에서 새로운 오추마로 갈아타고 팽성으로 가게 된다. 항우의 인생 2막과 함께 하게 된 All New-오추마는 Ex-오추마보다 더한 고생을 하게 된다. 또한 광무산 대치 때 유방이 貊族[北貊]을 용병으로 썼던 사실도 새로웠다.

 장량이 黃石公을 찾아뵙고서 張家界에 들기는 커녕 장안에 머물며 하비의 황석공을 캐와 모시고, 차후 권력 암투에 까지 가담했다는 사실 역시 충격적이었다. 토사구팽 피비린내 나는 한나라의 심장부에서 그렇게 버티고 사는 게 잠수를 타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신비롭진 않더라도 오히려 더 대단해 보였다. 반면 한신은 장량 못지 않은, 어찌 보면 장량보다 훨씬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인간관계에 있어 약삭빠르지가 못했다. 공은 공대로 세워놓고 매번 유방에게 당하고, 결국엔 여후에게 카운터를 맞는다. 실로 불쌍한 캐릭터다.

 말 나온 김에 한신이야말로 인류 역사상 가장 극적인 인생 역전을 한 사람이 아닌가 싶다. 칭기즈칸이나 유방 같은 사람도 인생 역전이긴 하지만 한신처럼 터무니없진 않았다. 한곳에 진드감치 충성을 다 한 것도 아니고, 집극랑하다가 뛰쳐 나오질 않나 치속도위하다가 도망가질 않나... 그러면서도 계속 자기가 최고라고 대장군을 해야 된다고 떠벌리고 다니는데, 누가 봐도 병신 취급을 면치 못할 처세였으나 하루 아침에 대장군을 맡게 되었으니 이런 사람이 고금을 통틀어 또 있을지 - 내가 아는 바로는 없다. 게다가 그렇게 급속 승진을 한 이후에 실제로 최고의 전략가임을 증명하였다. 어찌 보면 위나라 등애가 연상되기도 한다. 허풍선이에 모두가 무시했으나 까보니 천하의 기재였던 한신과 등애. 참, 한신이 파촉으로 가는 길에 탈영해서 약탈을 일삼다가 죽을 뻔했다는 건 처음 알았다. 또한 '다다익선' 고사가 통일 한참 이후에 있었던 일이란 것도 새로웠다.

 그밖에 괜찮은 경구들도 있었다. 이를 테면 "새는 나무를 가려 둥지를 틀고 어진 선비는 주인을 살펴 섬긴다"든가 "물이 너무 맑으면 사는 물고기가 없고 사람이 너무 따져 살피면 따르는 무리가 없다[水淸則無魚 人察則無徒]", "아무리 사나운 범이라도 머뭇거리고만 있으면 벌이나 전갈이 쏘는 것만 못하고, 아무리 준마라도 닫지 않으면 늙고 느린 말이 천천히 가는 것만 못하다. 孟賁과 같은 용사도 쓸데없는 의심으로 망설이기만 한다면 어린아이가 일을 내는 것보다 이룸이 적고, 순임금이나 우임금 같은 지혜가 있어도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으면 벙어리나 귀머거리가 손짓 발짓으로 말하는 것보다 못하다" 같은 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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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29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이대우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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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두 권 짜리 책이 1400쪽이 넘는 건 보다 처음봤다. 책 표지는 좀 지나치게 현대적인데, 얼핏 봐서는 제정 러시아의 분위기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때문에 표지만 보고 느낀 인상과 책 안의 활자를 보면서 느낀 인상은 상당히 괴리감이 있었다.

 까라마조프 家의 가장 표도르는 쓰레기 중의 쓰레기였다. 19세기까지의 - 특히 러시아의 - 고전소설들이 그렇듯 캐릭터들의 특징은 상당히 장황하게 묘사되고 있었으며, 표도르는 그 중에서도 가장 노골적인 악당이었다(도스또예프스끼의 이름도 표도르이다. 이건 뭔가 시사하는 바가 있다). 표도르의 세 아들은 모두 버려지다 시피 했고, 성장하면서 아버지의 도움은 거의 받지 못했다. 비평가들은 표도르가 드미뜨리와 이반에게 惡을 물려주었다고 하는데, 나는 그것도 그거지만 알렉세이에게는 조시마 장로라는 새아비가 있었다는 점을 주목하였다(물론 정식적인 아비는 아니다). 도스또예프스끼는 세 아들들의 성장과정에 대해 묘사하면서 알렉세이는 처음부터 성스럽고 정교적인 마인드를 타고 났던 것으로 표현했는데, 나는 그것보다는 '청소년기에 조시마라는 아버지와 다름없는 사람을 만나 성격이 변모하게 되었다' 식으로 갔으면 더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표도르는 악 중의 악인데, 그의 뱃속에서 나온 세 자식들 중 알렉세이만 타고난 성자 스타일이라는 설정은 개연성이 좀 떨어지는 것이다.
 내가 표도르를 두고 전형적인 악인이라는 듯 표현했지만 그렇다고 그가 아무 소설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하디 흔한 악당은 아니었다. 그는 '어릿광대'였으며 그 복잡한 성격은 소설을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비단 표도르 뿐만이 아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아주 단순한 성격을, 그야말로 전형을 보여주는 인물은 조시마 한 명 뿐인 것 같다. 조시마는 그냥 무조건 잘난 사람이고, 선 중의 선이다. 그가 젊었을 적 악행을 저질렀던 사실 또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과거의 상처일 뿐이고, 그로 인해 성직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식의 뻔한 스토리다. 조시마가 죽은 후 시체 썩는 냄새를 두고 왈가왈부하는 사람들은 의혹에 빠진 악인들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톨스토이와 비견될 정도로 신앙이 깊은 도스또예프스끼에겐 배제할 수 없는 캐릭터였던 듯 하다. 실제로 도스또예프스끼가 하고 싶은 말은 '대심문관', '조시마 장로의 대화와 설교 중에서', 그리고 '검사의 논고'에 속하는 네 개의 장 속에 집중적으로 담겨 있다고 생각하는데, 즉 조시마는 '대화와 설교'를 통해 도스또예프스끼의 메신저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던 것이다.
 소설의 전체적인 내용이나 사건 전개 등은 굳이 늘어놓을 필요가 없을 것 같다. 확실한 것은 굉장히 장황한 문장과 중구난방식의 전개에도 불구하고 소설에 몰입하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더라는 사실이다. 명작은 명작이다.
 다만 스메르쟈꼬프의 혐의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석연치가 않았다. 무엇이 진실인지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범행장면이 끊겨 있는 것도 그렇고, 이반이 스메르쟈꼬프를 만나고 나서 곧장 50대 남자(환상의 인물, 망상증으로 인하여)와 만나는 것도 그렇고... 과연 스메르쟈꼬프도 환상이 아니었을까? 꿈이냐 생시냐? 거의 마지막 장인 '거짓이 순식간에 진실이 되다'도 그렇다. 까쩨리나가 돌발행동에 대해 후회를 하는 것이 - 거짓된 자가 진실되게 변했다는 것인지, 실제로는 거짓인 것을 진실로 믿게 되었다는 것인지 - 확실치가 않다. 무슨 莊周之夢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론이 이미 나온 것으로 받아들이는 모양이던데 나는 내가 이상한 건지 아직도 자신있게 판단이 서질 않는다. 참 의문이다.

 고전은 거의 항상 만족감을 준다. 오랜 세월을 거쳐 검증된 작품들이기 때문에 표지만 예쁜 소설들과는 격이 다르다. 때문에 얻는 바도 많다.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을 완독한 사람은 마지막에 꼬마들이 외치는 "까라마조프 만세!"를 보고 갖은 생각이 다 들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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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발명과 에디슨 옥스퍼드 위대한 과학자 시리즈 6
진 아데어 지음, 장석봉 옮김 / 바다출판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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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렸을 때 머리가 크고 털이 많아 고민이었다. 부모님은 내 고민을 덜어주기 위해 "털이 많아야 여자들이 좋아한다", "우리 땐 일부러 가슴털 나려고 발모제 발랐다" 등등의 말씀을 해주셨다. 하지만 아무리 어린 마음에도 저 말씀들은 전혀 신빙성이 없어보였고 위로가 되지 않았다. 반면 큰 머리에 대한 긍정의 말씀 - "머리가 커야 머리가 좋다" - 은 나름 효과가 있어, 나는 상당히 오랫동안 속아 지냈다. 그 이유는 大頭英才論에 대한 그럴듯한 근거가 뒷받침이 되었기 때문이고, 그 대표적인 근거가 바로 '에디슨'이었다.
내 최초의 장래희망은 '과학자'였던 것 같다. 유치원 당시에 그랬다. 하지만 7살 때쯤 에디슨 전기를 읽은 후, 난 꿈을 발명가로 바꾸었다. 그만큼 나는 에디슨을 좋아했고, 에디슨은 나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어느덧 대두소년이 어른이 되는 동안, 에디슨은 기억 한 켠으로 물러나 있었다. 그래도 내가 에디슨을 완전히 잊은 것은 아니었다. 과거 어린 나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던 에디슨!! 그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었는데, 시중에 나와 있는 에디슨 전기의 대부분이 어린이용이었다. 검색에 검색을 거듭한 끝에 찾은 책이 바로 이 책 - 그나마 청소년용 - 이다.

에디슨의 부친은 솜씨 좋은 목수였다고 한다. 타고 난 손재주는 유전이었던 듯 하다. 에디슨은 7남매 중 막내였는데, 과연 태어났을 때부터 의사가 '뇌척수막염'을 의심했을 정도로 엄청난 대두였다. 또 그는 매우 심한 장난꾸러기였는데, 여섯 살 때 헛간에 불을 지른 적도 있다고 한다. 이유는 단지 무슨 일이 일어날 지 궁금해서였다고 하니, 부모님이 자주 매를 든 게 이해가 간다. 에디슨의 이 버릇은 어른이 되어도 고쳐지지가 않아서, 그가 전기충격 같은 장난질을 하도 많이 해서 직장동료들도 그를 피했다고 한다.
책에서 본 새로운 사실 중 하나는, 에디슨에게 청각장애가 생긴 원인이 차장에게 귀뺨 맞았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에디슨은 이 추측을 부정했다. ...어느 날, 플랫폼에서 신문을 팔고 있을 때였다. 열차가 떠나자 에디슨은 기차를 따라 달려갔고, 그를 발견한 차장 스티븐슨이 그의 귀를 잡고서 들어올렸다는 것이다. 그는 그때를 이렇게 회상한다.
"귀가 찢어지는 느낌을 받았고, 그때 이후로 소리가 잘 들리지 않기 시작했지요."
그러나 오히려 어릴 때부터 오랫 동안 앓아 온 성홍열이 진짜 원인일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또한 에디슨이 디트로이트의 도서관에서 모든 책을 다 읽었다는 일화가 허구였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내가 어렸을 때 위인전의 그 부분을 읽으며 대단히 감탄을 했고, 에디슨을 더욱 존경하게 되었었는데, 이제 와 속았다는 기분이 들었다.

「1905년에 그는 친구에게 "도서관의 모든 책을 읽고 싶어 했지만 아주 무미건조한 책 10여 권을 힘들게 읽고 난 후 포기해 버렸지"라고 고백했다.
이 책 중에는 근대 과학의 초석을 놓은 아이작 뉴턴의 『자연 철학의 수학적 원리』도 있었다. 수학을 싫어한 에디슨이 그 책에서 얻은 것이라고는 '결코 회복되지 못할 수학에 대한 환멸' 뿐이었다.」

에디슨은 장가를 두 번 갔는데, 두 번 다 연애할 때는 미친듯이 쫓아다니다가 결혼 후에는 냉담하게 굴었다. 아니, 냉담하다기 보단 겨를이 없었던 건지도 모른다. 에디슨은 여자보다 일을 더 사랑했다. 첫째 부인도 이혼한 건 아니고 사별한 거였다. 그런데 그 부인은 에디슨의 관심을 못받아서 스트레스 풀려고 과식을 해서 비만해 졌는데, 아무래도 그에 따른 합병증으로 죽은 것 같다. 그런 걸 보면 에디슨이 좀 너무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수신제가를 해야 하는데 에디슨은 제가를 그냥 뛰어넘었다.

책은 일반적인 어린이용 위인전에 실리는 내용에 조금 더 살을 붙이고, 정치 경제적인 내용들을 추가한 형태였다. 그리고 책 중간중간 에디슨의 발명품과 관련해 그 원리와 비하인드 스토리 등을 따로 실어 놓고 있는데, 상당히 보기 좋았다. '에디슨은 필라멘트로 탄소를 사용했지만 현재의 전구는 텅스텐을 쓴다'든지 하는 이야기들로, 청소년들이 보면 많은 도움이 될 내용들이었다.
그밖에 어린이용에는 실을 수 없는 내용들 - 에디슨의 부정적인 모습에 대한 내용들도 꽤 많이 있었다. 에디슨은 경쟁사의 시스템을 깎아내리기 위해 동료와 함께 개, 고양이, 소, 말 등을 전기충격으로 죽이는 실험을 하기도 했으며, 경영자로서 사용인에 대한 의리도 별로 없었고 임금도 박하게 주었다고 한다. 이런 얘기들이 어린이 위인전에 실린다면 바로 컴플레인 들어올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남은 걸로는 에디슨의 부정적인 모습들에 대해 알게 된 것이 가장 컸다. 하지만 이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충격 때문에 머리에 좀 더 남았을 뿐이고, 기실 내 기억 속 영웅적인 에디슨의 모습을 지워 버릴 정도의 하자들은 아니었다. 에디슨 덕분에 20세기가 더 풍족해졌고, 각종 전기조명 및 음반산업이 번성할 수 있었던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현재 트랜스포머3를 볼 수 있는 것도 에디슨 덕분이다. 또한 GE社가 에디슨 작품이나 다름 없다는 사실 역시 주지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업적을 뛰어 넘어서, 나는 에디슨의 다음과 같은 삶의 태도가 너무나도 존경스럽다.

「엄청난 불길이 자신의 공장 건물들을 삼키는 것을 지켜보며, 그는 아들 찰스에게 말했다.
"어머니 어디 계시니? 어머니를 여기로 모셔 와라. 어머니 친구분들도. 이런 화재 장면은 절대로 다시는 구경하지 못하실 테니."
며칠 후 그는 건물을 다시 세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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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시 : 유럽의 운명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114
앙리에트 아세오 지음, 김주경 옮김 / 시공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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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시, 보헤미안, 롬, 치가니... 유럽의 한 유랑민족을 부르는 이름들이다. '집시'에 대해서 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그들이 어디서 왔고, 어떤 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듯 하다. 집시, 보헤미안 이란 단어를 들으면 뭔가 시적인 느낌이 들고, 자유분방한 모습이 상상된다. 나는 그들이 2차대전 당시 유대인과 더불어 대량학살의 피해자였다는 사실 또한 어렴풋이 알고 있다. 유대인은 워낙 잘 알려졌으니까. 그런데 집시는 왜 죽였지? 얘넨 정체가 도대체 뭐여? 궁금한 생각이 들어 사보게 된 책이다.

집시들은 중세 말에 갑자기 등장하여 유럽 전역으로 퍼져 갔다. 그들이 유럽에 처음 등장했을 때, 당시 유럽인들 사이에서도 그들의 출신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그들은 스스로 순례자라 칭했으며, 小이집트라는 곳에서 왔다고 했다. 어찌 됐든 크리스트교의 순례자라고 하니, 유럽인은 처음에 좋은 대접을 해주었으나, 차차 집시들의 "'부랑배, 사기꾼, 도둑'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집시들의 그런 부정적인 이미지는 어느 정도 실제와 근접했던 모양이다. 그들은 손금 봐주기를 좋아했으며(당시 손금 봐주는 일은 불법이었다) 구걸로 연명하는 한편 도적질을 자행하기도 했다. 국가들 입장에서도 - 국적도 없이 맨날 떠돌아다니는 - 집시들이 세금도 잘 안내면서 치안만 어지럽히는 골칫덩어리들로 보였을 것이다. 고민 끝에 어떤 국가들은 집시를 용병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마차를 끌며 유랑생활을 하고, 플라멩코를 추며 고슴도치 고기를 먹는 그들. 정부들의 온갖 정착화 노력에도 수백 년간 자신들의 생활방식을 고수한 그들은 2차대전 때도 옛날 그대로 였다. 옛날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야영할 때 천막을 치고 자던 것이 아예 캠핑카 같이 설계한 마차에서 자게 되었다는 정도였다. 나치는 집시의 순수혈통은 훌륭하다고 칭찬했다. 하지만 지금의 집시들은 죄다 '잡종'이며, 청소해 버려야 할 존재들이라고 했다. 집시들은 그렇게 50만 명 정도가 학살 당했다.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변해도, 고집스런 집시들은 좀체 변하려 하지 않았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지금 양립되기 어려운 두 가지 상반된 소망을 지니고 있다. 하나는 각 국가 안에서 시민권을 인정받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유럽 전역에서 소수 민족 집단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일치될 수 없는 이 상반된 소망이, 서구라는 약속의 땅을 찾아 동구에서 온 '새로운 이민자 집시들'과 대부분 17세기부터 서구 사회에 완전히 동화되어 자리를 잡게 된 집시들 사이에 점점 커가고 있는 잠재적인 갈등 속에서 표현되고 있다.」

즉 일부 정착한 집시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집시들은 아직도 유랑생활을 고수하려 하고 있다.

앞 서 집시들이 스스로를 이집트에서 왔다고 했다 했는데, 오랜 연구 끝에 학자들이 내린 결론은 그와 다르다. 그렇다고 그들이 보헤미아 사람인 것도 아니었다. 집시들은 유럽 전역, 심지어 아메리카에도 퍼져 살지만 모두 '로마니어'라는 특유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 언어의 기원을 따져 올라가 보면, 집시의 조상은 인도인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들의 외모나 풍습을 봐도 이는 타당한 이야기다. 집시들은 피임을 하지 않으며, 보통 십여 명의 아이를 낳는다. 조혼을 하는 데다 여성 인권도 형편없다. 다음은 그들의 결혼 풍습에 관한 내용이다.

「그 의식 중에는 나이 든 한 여성이 신부의 처녀성을 검사한 후, 그 증거로 얼룩이 묻은 손수건을 손님들을 향해 세 번 혹은 다섯 번 높이 들어 보이는 게 있다. ...손수건이 공개되는 동안 <알보레아> 혹은 <옐리옐리>라고 하는 집시들의 전통적인 결혼 축가가 연주되고, 하객들은 신랑을 헹가래치며 축하해 준다.」

그렇게 결혼한 신부는 시부모를 모시고 살면서 온갖 고생을 하게 된다. 또한 집시들은 여전히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한 채 일생을 마감하고 있다.

「롬들의 평균 수명은 주변 국가의 국민들보다 훨씬 짧다. 어떤 연구 자료에 따르면, 약 46세에서 50세 사이다. 유고슬라비아나 루마니아에는 집시들의 평균 수명이 29세에서 31세에 불과한 지역도 있다고 한다.」

집시들의 이런 생활을 가드조(집시들이 타 민족을 경멸 섞어 부르는 말)의 입장에서 보면 꼭 구제해 줘야만 할 것 같고 정착을 시켜야 할 것 같지만, 그들의 입장은 그게 아닌 모양이다. 이런 집시들의 특성은 그야말로 '집시' 자체가 시적인 이유를 말해준다. 21세기 다문화 사회에, 집시들이란 정말 다문화의 의미와 적용에 대하여 고민하게 만드는 매력있는 민족이라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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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신화 - 포켓북 세계명작 베스트
토마스 불핀치 지음, 오영숙 옮김 / 일송포켓북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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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지성인이라면 그리스 로마 신화 정도는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 나는 예전부터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살면서 그리스 로마 신화 접할 일은 은근히 많았다. 동화책, 만화, 테레비 방송 기타 등등... 이건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고집스럽게 책을 밝히는(?) 사람이라, 내 손에 쥐고 그 놈의 미쏠로지를 활자로 들여다 봐야 했다. 그런 고로 가장 많이 읽히는 토마스 불핀치의 책을 사보게 되었다.
읽어 보니 책이 무슨 입문서 같기도 하고 요약본 같기도 했다. 불핀치는 책의 마지막 장에서 그리스나 로마의 옛 시인들 - 호메로스, 베르질리우스, 오비디우스 - 의 작품들에서 이야기를 취했다고 밝히고 있다. 대중을 위해 정수만 뽑아낸 것이다. 구스타프 슈바브의 책은 총 6권에 달한다고 한다. 반면 이 책은 1권 짜리 어린이 삼국지와도 같다. 방대한 내용을 요약해 전달하려다 보니 스토리 진행이나 문장 호흡이 급한 경우가 더러 있었다. 하지만 그게 큰 불만은 아니었다. 우리나라 구비문학도 잘 모르는데 구라파 쪽 신화 정보는 이 정도면 족하다.

특기할 만한 내용들을 우선 정리해 보자면,

「야누스, 하늘의 문지기로 그가 새해를 열기 때문에 일 년 중 첫 달을 그의 이름을 따서 '야누아리우스(January)'라 부른다. ...로마에는 그의 사원이 굉장히 많았다. 전쟁이 있을 때에는 제일 큰 사원의 문을 열었고 평화 시에는 닫아놓았다. 그런데 누마와 아우구스투스가 통치하던 시절에는 단 한 번 문이 닫힌 적이 있었다.」

「프로메테우스는 아테네의 도움을 얻어 하늘로 올라가 태양의 수레로부터 횃불을 옮겨 붙였다. 땅으로 내려온 프로메테우스는 이 불을 사람에게 넘겨주었다.」 

인류 최초의 여자 '판도라'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대강의 내용보다는, 어떤 이야기에서는 제우스가 인간 엿먹이려고 판도라를 만들었다고 하고, 다른 이야기에서는 남자를 축복하려고 내려준 것이라고 하는 - 모순된 상황이 재미있었다. 왜 같은 소재를 가지고 전혀 반대되는 얘기가 나왔을 지 의문이다. 그러고 보면 서양 쪽 창세 신화는 꼭 남자가 먼저 만들어지고, 여자는 신이 추후에 별도 제작(?)해 내려보낸다는 특징이 있는 것 같다. 어찌 보면 나중에 성경을 쓴 중동쪽에서 그리스 로마의 이 판도라 이야기를 차용했을 수도 있겠다.
'황금시대' - '은시대' - '놋시대' 이야기도 있는데, 구석기 - 신석기 - 청동 및 철기 시대 순으로 비유를 한 모양이었다. 내용이 거의 맞아 떨어졌다. 그런 걸 보면 그 옛날 그리스 로마 애들은 과거 구석기 및 신석기 시대에 대하여 어렴풋이나마 기억을 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놋시대 때 사람들이 타락하고, 제우스가 벌을 내리는 장면은 뭐 거의 성경이랑 유사하다. 

「화를 부르는 쇠가 만들어지고, 더욱 큰 재앙을 부르는 금이 생산되었다. 이 두 가지를 원하는 전쟁이 계속 일어났다. ...이른 상속 때문에 아들은 아버지 죽음을 바라고, 가족 간 사랑은 땅에 떨어졌다. ...제우스는 땅에서 벌어지는 사람들의 행악을 보고 더할 수 없는 노여움에 떨었다...」

책 초반에는 어느 신이 어느 신 - 혹은 님프 - 혹은 사람 - 과 성관계를 해서 애 누구를 낳았고 그 애는 무얼 잘했고 그 애가 길 가다 누구의 아들(딸)인 누구를 발견해 사랑에 빠져서 쫓아다녔고 그러다 성공 - 혹은 실패 - 를 해서 자살을 했다, 저주를 받았다, 살해 당했다, 그래서 그 애가 변한 것이 이것이다, 하는 유의 내용이 주구장창 전개되었다. 해피엔딩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이 죽거나 장애인이 되는 걸로 이야기가 마무리됐다. 또한 애들 이름이 -스, -우스 천지라 누가 누군지도 헷갈리고 참 읽는 게 고역이었다.
한편 에로스와 프시케의 이야기에서 에로스의 일갈이 눈여겨 볼 만 했다.

「"아! 어리석은 프시케여, 그 꼴이 내 사랑에 보답하는 길이던가? 어머니 명령을 거스르면서까지 그대를 아내로 삼았는데! 그대는 나를 괴물로 생각하고 목을 자르려 하다니. 이제 어쩔 수 없으니 그대가 내 말보다 더 소중히 여긴 언니들에게로 돌아가라. 나는 그대와 영원히 이별하는 것 이외의 다른 벌을 그대에게 주고 싶지는 않도다. 사랑은 의심과 함께 있을 수 없는 것이니라."」 

프시케는 뒤늦게 후회하고 에로스의 어미 아프로디테를 찾아가 시험을 받기도 하고, 온갖 고초를 겪은 후 에로스와 다시 맺어진다. 에로스는 그 과정에서 묵묵히 프시케를 후원한다. 이것이야말로 정말 보기 드문 해피엔딩 이야기다. 이 전설은 2세기에 처음 등장했다고 하는데, 이 책의 다른 전설들에 비해 상당히 후대의 것이라고 한다. 다른 전설은 대부분 죽고, 죽이고 난리도 아니다. 단순히 질투 좀 나면 상대를 장애인 만들거나 죽인다. 보는 내내 정말 잔인하고 야만적이라고 생각했는데, 2세기 쯤 되니까 그리스 로마인 스스로도 조금이나마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걸까? 뭐, 알 수 없는 일이다.
전술한 야만적인 이야기 중 하나를 보면,

「...다이달로스는 세상에 자신과 맞설 이가 없다고 여겼다. 그의 누이가 아들 탈로스를 맡겨 삼촌의 기술을 전수받도록 했다. 탈로스는...바닷가를 거닐다 물고기 등뼈를 하나 얻었다. 그것을 모방해 쇳조각을 가지고 가장자리 날을 고르게 깎아 톱을 발명했다. 또한 쇳조각 두 개를 합쳐 한 끝에 못을 박아 서로 연결한 뒤 다른 끝들은 뾰족하게 갈았다. 바로 컴퍼스를 만든 것이다. 다이달로스는 조카가 남다른 재능을 발휘하는 것을 시기했다. 어느 날 함께 높은 탑 꼭대기에 올라갔을 때에 틈을 타서 그를 밀어 떨어뜨렸다...」 

미드 스파르타쿠스가 잔인하다고들 하는데, 거기서도 저런 어이없는 질투심으로 혈육을 죽이는 장면은 안 나온다. 이건 차라리 - 억지로 꼬아본다면 - 밥그릇 싸움일 수도 있겠다 싶기라도 하지, 그냥 나보다 이뻐서 장애인 만들고 나한테 까불어서 죽이고, 아니면 그냥 맘에 안들어서 죽이는 등 별의별 경우가 다 있다. 아귀로 변해 자기 팔다리까지 뜯어먹고 죽은 에리시크톤 이야기라든지 아폴론에게 산 채로 껍질이 벗겨진 마르시아스 이야기 등 잔인한 신화는 셀 수도 없었다.

20장부터는 트로야 전쟁 이야기였다. 나는 10여 년간이나 이어진 이 전쟁이 고작 여자 문제 때문에 일어났다는 사실이 좀 어이없었다. 여자 문제가 같잖다는 게 아니라, 멀쩡한 스파르타의 왕비를 트로이 왕자가 아프로디테의 도움으로 꼬셔가 버려서 전쟁이 났다고 하니까... 스파르타 왕은 당연히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 상황이고. 물론 신화이긴 하지만 너무 억지스러운 것 같았다. 나중에는 그리스인들끼리 전리품 분배 중 여자(전리품임) 문제로 서로 다투기도 한다.
한편 아이네이아스의 모험 중 고대인들의 사후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가 있었다. 

「창조주는 맨 처음 영혼을 구성하는 원료로 불, 공기, 흙, 물 네 원소를 써서 만들었다. 그것을 모두 합치면 가장 우월한 원소인 불의 모습으로 나타나 불꽃이 된다. ...그때 흙을 여러 비율로 섞어서 그 순수성이 낮아졌다. 어떤 합성물에 흙이 많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그만큼 그 개체 순수성이 줄어드는 것이다. ...이 불순성은 죽은 뒤에 깨끗이 씻어 버려야 한다. 이 일은 영혼을 바람 부는 곳에 내놓고 공기를 통하게 하거나 물에 잠기게 하거나, 불로써 태워버리는 방법으로 행해진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은 흙의 불순성이 깨끗이 사라진 뒤에 레테 강의 물로 전생 기억을 완전히 씻어 버리고 새로운 몸이 부여돼 이승으로 다시 돌려보내지는 것이다. ...옛 사람들이 이른바 메템프시코우시스, 즉 '영혼의 전생'이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베르질리우스의 견해였다. 호메로스는 낙원을 "죽은 자의 나라 일부로 보지 않았다." 호메로스는 현세에 지상낙원이 존재하며, 그곳은 서쪽에 있다고 했다. 이가 곧 '아틀란티스' 전설로 발전했는데, 불핀치는 이것이 상상의 산물이지만 혹여나 표류한 선원들이 아메리카 해안을 얼핏 보고 전한 이야기가 낳은 전설일 수도 있다고 추측하고 있다. 

인류는 참 대단하다. 최근 학설에 따르면 호모 사피엔스는 20만 년 전에 처음 등장했는데, 7만 년쯤 전에야 아프리카를 벗어나 전세계로 퍼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발칸 등 지중해 북쪽으로 진출한 건 불과 4, 5만 년 전. 그리스 인들은 엄청난 속도로 문명을 발전시켰고, 그 세력이 갈수록 커져 무려 기원전 1250년경에 트로이 전쟁을 벌이기에 이르렀다. 호메로스가 일리아스를 쓴 때도 기원전 850년경이란다. 말이 쉽지 상상이 안 간다. 앞서 내가 그리스 로마 신화가 잔인하고 야만적이라고 했는데, 비록 내용은 야만적일 지언정 그 신화들이 내포하는 뜻과 그 밖의 유물들은 세련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런 위대한 문명에 대해 탐구하는 일은 질리지가 않는다. 좋은 독서경혐이었고, 이제는 일리아스를 읽어야 할 차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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