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29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이대우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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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두 권 짜리 책이 1400쪽이 넘는 건 보다 처음봤다. 책 표지는 좀 지나치게 현대적인데, 얼핏 봐서는 제정 러시아의 분위기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때문에 표지만 보고 느낀 인상과 책 안의 활자를 보면서 느낀 인상은 상당히 괴리감이 있었다.

 까라마조프 家의 가장 표도르는 쓰레기 중의 쓰레기였다. 19세기까지의 - 특히 러시아의 - 고전소설들이 그렇듯 캐릭터들의 특징은 상당히 장황하게 묘사되고 있었으며, 표도르는 그 중에서도 가장 노골적인 악당이었다(도스또예프스끼의 이름도 표도르이다. 이건 뭔가 시사하는 바가 있다). 표도르의 세 아들은 모두 버려지다 시피 했고, 성장하면서 아버지의 도움은 거의 받지 못했다. 비평가들은 표도르가 드미뜨리와 이반에게 惡을 물려주었다고 하는데, 나는 그것도 그거지만 알렉세이에게는 조시마 장로라는 새아비가 있었다는 점을 주목하였다(물론 정식적인 아비는 아니다). 도스또예프스끼는 세 아들들의 성장과정에 대해 묘사하면서 알렉세이는 처음부터 성스럽고 정교적인 마인드를 타고 났던 것으로 표현했는데, 나는 그것보다는 '청소년기에 조시마라는 아버지와 다름없는 사람을 만나 성격이 변모하게 되었다' 식으로 갔으면 더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표도르는 악 중의 악인데, 그의 뱃속에서 나온 세 자식들 중 알렉세이만 타고난 성자 스타일이라는 설정은 개연성이 좀 떨어지는 것이다.
 내가 표도르를 두고 전형적인 악인이라는 듯 표현했지만 그렇다고 그가 아무 소설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하디 흔한 악당은 아니었다. 그는 '어릿광대'였으며 그 복잡한 성격은 소설을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비단 표도르 뿐만이 아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아주 단순한 성격을, 그야말로 전형을 보여주는 인물은 조시마 한 명 뿐인 것 같다. 조시마는 그냥 무조건 잘난 사람이고, 선 중의 선이다. 그가 젊었을 적 악행을 저질렀던 사실 또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과거의 상처일 뿐이고, 그로 인해 성직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식의 뻔한 스토리다. 조시마가 죽은 후 시체 썩는 냄새를 두고 왈가왈부하는 사람들은 의혹에 빠진 악인들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톨스토이와 비견될 정도로 신앙이 깊은 도스또예프스끼에겐 배제할 수 없는 캐릭터였던 듯 하다. 실제로 도스또예프스끼가 하고 싶은 말은 '대심문관', '조시마 장로의 대화와 설교 중에서', 그리고 '검사의 논고'에 속하는 네 개의 장 속에 집중적으로 담겨 있다고 생각하는데, 즉 조시마는 '대화와 설교'를 통해 도스또예프스끼의 메신저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던 것이다.
 소설의 전체적인 내용이나 사건 전개 등은 굳이 늘어놓을 필요가 없을 것 같다. 확실한 것은 굉장히 장황한 문장과 중구난방식의 전개에도 불구하고 소설에 몰입하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더라는 사실이다. 명작은 명작이다.
 다만 스메르쟈꼬프의 혐의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석연치가 않았다. 무엇이 진실인지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범행장면이 끊겨 있는 것도 그렇고, 이반이 스메르쟈꼬프를 만나고 나서 곧장 50대 남자(환상의 인물, 망상증으로 인하여)와 만나는 것도 그렇고... 과연 스메르쟈꼬프도 환상이 아니었을까? 꿈이냐 생시냐? 거의 마지막 장인 '거짓이 순식간에 진실이 되다'도 그렇다. 까쩨리나가 돌발행동에 대해 후회를 하는 것이 - 거짓된 자가 진실되게 변했다는 것인지, 실제로는 거짓인 것을 진실로 믿게 되었다는 것인지 - 확실치가 않다. 무슨 莊周之夢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론이 이미 나온 것으로 받아들이는 모양이던데 나는 내가 이상한 건지 아직도 자신있게 판단이 서질 않는다. 참 의문이다.

 고전은 거의 항상 만족감을 준다. 오랜 세월을 거쳐 검증된 작품들이기 때문에 표지만 예쁜 소설들과는 격이 다르다. 때문에 얻는 바도 많다.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을 완독한 사람은 마지막에 꼬마들이 외치는 "까라마조프 만세!"를 보고 갖은 생각이 다 들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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