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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한지 세트 - 전10권
이문열 지음 / 민음사 / 200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삼국지 때에도 그랬지만, 이문열은 원전을 중시하기 보다는 - 수정을 가하고 자신을 드러내는 데에 거리낌이 없는 스타일이다. 이 초한지 역시 그랬다. 특히나 서두 부분과 10(번째)권 전체 같은 경우는 『서한연의』가 아닌 『사기』의 이문열판 번역본에 다름 아니었다. 그밖에도 구리산 십면매복, 장량의 은거와 같은 - 초한지의 재미에 "心腹" 같은 역할을 하는 장면들도 사서와 내용이 다를 경우 가차없이 편집해 버렸다. 가히 七實三虛를 넘어 九實一虛라 할 만했다. 이렇듯 正史에 대한 이문열의 집착이 심하긴 했지만 전혀 예상을 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라 적당히 넘어갈 수 있었다.
1권 마지막 즈음에는 부록으로 '史記로 본 초한지 이전의 세계'가 실려 있었다. 잊고 있거나 모르고 있던 중국 고대사 이야기들을 볼 수 있었는데, 여기서 강자아를 얻은 周武王이 牧野싸움을 앞두고 후세에 남녀싸움의 단초가 될 명언을 남기기도 한다.
「"옛말에 '암탉은 새벽에 울지 않으니, 암탉이 새벽에 울면 집이 망한다.'고 하였소. 그런데 지금 殷王 紂는 오직 계집[妲己]의 말만 듣고..."」
또한 周厲王 당시 14년간 공화정이 들어섰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나는 범증을 좋아한다. 몇 해 전 나온 중국 영화 초한지에서는 범증이 장량보다 한 수 위인 것으로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비운의 천재 범증의 출사는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이번에는 蓍草로 항량과 항우의 身數를 보았다. 항량에게는 아예 군왕의 운세가 없고, 항우에게는 있어도 굵고 짧았다. 오래 주인으로 섬길 만한 신수들이 아니었다.」
그 끝은 너무도 잘 알려져 있다. 이러한 범증의 헤아림과 비극은 현대의 취준생들이 필히 보고 얻어가는 바가 있어야 한다. 사족을 붙이자면 범증은 하야 후 노상에서 죽었는데, 왜 하필 하야 직후에 죽었는지 의심해 볼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항우가 의리남, 순수남 이미지가 있어 대부분의 논자들이 말 꺼내기를 두려워 한 것 같은데, 내가 보기에는 항우가 부러 죽였을 수도 있지 않나 싶다. 물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말이다.
한편 성양에서의 승전 이후 포로들의 처리 과정에서 유방과 항우는 처음으로 극명한 대비를 보인다.
「'우리가 말하는 천하는 결국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사람도 그를 죽이면 슬퍼하고 성낼 사람이 백 명은 넘는다. 그런데 사람의 목숨을 저리 하찮게 여겨 앞으로 사게 될 그 많은 원한은 어찌할 것인가...'(유방)
...'부수어야 새로 세울 수 있고, 죽여서 더 많이 살리는 수도 있다. 바로 지금이 그러한 때다. 나에게 맞서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여기서 똑똑히 보여 주지 않는다면, 앞으로 함양에 이를 때까지 내가 아끼는 초나라의 병사와 장수들이 얼마나 많이 죽어야 할지 모른다....'(항우)」
이러한 대비가 『삼국지연의』에서의 유비와 조조같은 선악의 대비까지는 아닐 지라도 후세인들이 초한쟁패사를 즐기는 이유는 충분히 되고도 남는다. 심지어 유방과 항우는 계집질에 있어서도 서로 달랐다. 유방은 건달 출신답게 호색이 극에 달했으나, 항우는 명문가 출신으로서 우직한 상남자답게 고결하기 짝이 없었다.
「역이기가 객사로 찾아온 것은 마침 패공이 여자들에게 발을 씻기고 있을 때였다. 당시의 습속 탓도 있지만, 여자와 관련된 패공의 행실은 그리 단정하지 못했다... ...목이 잘릴 죄가 되지 않는다면 노소미추를 가리지 않고 여자를 마다하는 법이 없었다고 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 뒤 다시 3년 고달픈 전장을 헤매는 동안 이번에는 항우 스스로 하룻밤 잠자리 시중드는 여자조차 마다해 왔다... ...'저 아이는 바로 내가 마음속으로 그리며 만나기를 기다려 온 그 아이다... ...이제 저 아이(우희)를 내 여자로 거두겠다.'」
그러면서도 둘은 범인들이 가지지 못한 패기와 야망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었기에 천하쟁패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그 둘이 시황제의 순수 행렬을 보면서 내뱉은 말들은 놀랍도록 비슷하다.
"저것이라면 빼앗아 대신 차지해 볼 만하구나[彼可取而代也]!"(항우)
"아아, 대장부란 마땅히 저래야 하는데!"(유방)
나는 영웅이 되어 나와 친족들이 아울러 고통받고 대도 끊기느니 필부로서 가정을 보존하는 일이 더 소중하다. 초한지에 등장하는 수많은 영웅 및 권세가들이 대부분 끔찍한 최후를 맞는 모습들을 보면 노장사상이 절로 떠오른다. 예를 들어 이사 같은 경우,
「...죽기 전에 오형을 받았는데, 먼저 얼굴에 먹물로 글자를 새겨넣고[黥], 다음에 코를 베어 내고[劓], 이어 다리를 잘라 내고[剕], 다시 생식기를 도려낸[宮] 뒤, 마지막으로 머리를 쪼개는[大辟] 순서였다. 그런 다음 허리를 베고 목을 잘라 저잣거리에 내거니 보는 사람이 모두 끔찍하게 여겼다.」
유방의 애첩 척 부인의 최후는 그보다도 고약했다. "손과 발을 자르고, 눈알을 뽑고, 고막을 연기로 그을어 태우고, 벙어리가 되는 약[瘖藥]을 먹여 돼지우리에 던져 넣었다". 천하통일 후 유방의 토사구팽은 여후의 대살육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래봤자 여씨들 또한 10년도 못 가 청소 당했다. 여후 동생 여수(번쾌 와이프)도 언니가 죽자마자 맞아 죽었으니,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그 짓거리들을 하는가. 나는 유방이 공신들 다 죽여도 번쾌 노관은 끝까지 간 줄 알았는데, 노관도 번쾌도 아주 무사하진 않았더라. 아무 의미 없다.
또한 옛 중국인들 계책내는 데엔 꽤 독한 면이 있다. 동주열국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진평의 毒手는 실로 끔찍한 경우가 많았다.
「진평이 그중에서도 가장 장이와 비슷한 자를 골라 놓고 보니 漢軍 步卒이었다. 진평은 그를 데리고 자신의 장막으로 가 술과 고기를 대접한 뒤 말했다.
"한왕께서는 자네 머리를 빌려 큰일을 이루시려 하네. 부모와 처자는 한왕께서 돌봐 주실 것이니 아무 걱정 말고 죽어 주게..."
그러고는 보졸의 목을 벤 뒤 그 머리를 조나라로 보냈다.」
항우의 전투력은 신의 경지에 올랐다. 거록에서의 9전9승을 비롯해 유방에게 빼앗긴 팽성을 되찾을 때의 모습은 말 그대로 鬪神 그 자체였다.
「...패왕이 제나라 성양을 떠난 지 열흘 남짓 만의 일이었다. 3만 정병으로 출발한 패왕은 그사이 천 리길을 에돌며 56만 대군을 상대로 싸워, 다섯 장수의 진채를 짓밟고 세 개의 성을 떨어뜨린 뒤에 주머니에서 물건 꺼내듯 팽성을 되찾았다.」
무슨 타임머신 타고서 기관총을 들고 가 싸우는 것도 아니고 똑같은 무기를 가지고 저런 전과를 낼 수 있는가. 말이 안되는 인물이다. 하지만 사람 귀한 줄 모르는 항우는 유방을 이길 수가 없었다. 인간은 무리생활을 하는 동물이다. 게다가 두 사람의 '사람 귀한 줄' 아는지 모르는지는 제 스스로의 목숨에 대한 태도에서도 나타났다. 유방은 팽성에서 가루가 나고서 초나라에 쫓기던 도중 아들 딸을 구출하게 되는데, 초군의 추격이 급해지자 아들 딸을 여러 번 수레 밑으로 걷어차고, 집어던진다. 제가 살아야 무리를 다시 모을 수 있지 않느냐는 이론이다. 반면 항우는 자신의 목숨을 초개처럼 여기고 매번 싸움에 앞장 섰다. 군왕 신분으로서 누가 더 옳았는지는 결과가 말해준다.
특히 유방도 기재는 기재였다. 아무리 그가 무위자연 군주 이미지가 강하다 해도 그저 멍청해서는 무려 漢祖를 세울 수 있었겠는가. 그의 임기응변은 실로 신묘한 데가 있다. 예를 들어 인질협박범(?)을 대하는 태도에서는,
「"...죽은 무신군 앞에서도 또한 형제 되기를 맹세한 적이 있다. 따라서 나의 어버이가 곧 너의 어버이니, 네가 꼭 네 아비를 삶아야겠다면 난들 어쩌겠느냐? 그래도 너와 나는 형제의 의리가 있으니, 국이 다 끓거든 나에게도 한 그릇을 나눠 주기 바란다."」
이와 같이 상식과 틀을 깨 최상의 결과를 내었다. 이밖에 항우에게 가슴을 저격 당했을 때("저 종놈이 내 발가락을 맞추었구나[虜中吾指]!")도 그렇고 유방의 현명함은 유비의 그것을 뛰어넘는다. 물론 그럼에도 유방에게 항우는 항상 두려운 존재였다. 관중을 나온 이래 승승장구하던 유방은 팽성에서 깨박살이 나고, 내리 수십 차례를 지다가 광무산 대치 이후에는 항우 뒤통수를 치고도 쳐발린다. 그러다 보니 사면초가를 들은 항우가 도망갈 때조차 유방은 "스무 배가 넘는 대군으로 패왕의 진채를 에워싸고도 이틀이나 결판을 미"뤘다.
결국 전술한 두 왕의 사람 다루는 차이 때문에 대세는 기울고, 오강에서의 추격전에서 항우가 보여준 모습들은 그야말로 레전드 영상이다. 사람 한 명이 얼마나 용맹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용맹함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인류 역사상 최고의 명장면이라 아니할 수 없다.
「"...몸소 나가 싸우기를 일흔 번이 넘었으나 한 번도 진 적이 없어 마침내는 천하의 패권을 움켜잡게 되었다. 그런데도 지금 갑자기 이처럼 고단한 지경에 빠진 것은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해서이지 싸움을 못한 죄가 아니다[此天之亡我 非戰之罪也]. ...첫째 반드시 적의 에움을 흩어 버리고, 둘째 적의 장수를 베어 죽이며, 셋째 적의 깃발을 찍어 쓰러뜨리겠다. 그리하여 그대들에게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한 것이지 내가 싸움을 잘못한 죄가 아님을 알려 주고자 한다."」
28:5000 싸움을 앞둔 대장이 한 말이다. 그리고 그는 그대로 행했다. 그렇게 지치고 지친 몸으로 26명만 이끌게 된 상태에서, 오강 정장의 호의를 느닷없이 거절하는 항우였다. 이는 전술했던 '제 스스로의 목숨에 대한 태도'를 보여준다. 그러고는 말에서 내려 병사들과 26:5000 육탄전을 벌이는데, 걸어다니면서 혼자 최소 백여 명을 죽인다. 이렇듯 절륜한 무공 때문에 이 책에 없는 구리산 십면매복에서는 한꺼번에 한나라 장수 60명인가랑 혼자서 뜨는 걸로 나오기도 했던 모양이다. 여포 무력이 100이면 항우 무력은 1000이다.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나서 과거 부하장수에게 인심을 베푼 항우의 시체에게 돌아온 건 사지절단이었다. 이문열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한다.
「실로 비정하다 못해 처절하기까지 한 인간의 물욕이었다. 그리고 죽음을 맞이하는 패왕 항우가 보여준 기이한 정신적 고양에 견주면, 그 물욕은 끔찍한 자기 모독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 인간성의 추락이었다. 진정 이 세상의 무엇이 고귀하고 무엇이 下賤한가. 사람의 무엇이 위대하고 무엇이 卑小한가.」
오추마가 한 번 갈렸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항우가 오중을 떠날 때부터 타고 다니던 오추마는 진나라 평정 후 항우가 팽성으로 돌아가려하자 스스로 곡기를 끊고 죽은 것으로 나온다. 그리하여 항우는 함양에서 새로운 오추마로 갈아타고 팽성으로 가게 된다. 항우의 인생 2막과 함께 하게 된 All New-오추마는 Ex-오추마보다 더한 고생을 하게 된다. 또한 광무산 대치 때 유방이 貊族[北貊]을 용병으로 썼던 사실도 새로웠다.
장량이 黃石公을 찾아뵙고서 張家界에 들기는 커녕 장안에 머물며 하비의 황석공을 캐와 모시고, 차후 권력 암투에 까지 가담했다는 사실 역시 충격적이었다. 토사구팽 피비린내 나는 한나라의 심장부에서 그렇게 버티고 사는 게 잠수를 타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신비롭진 않더라도 오히려 더 대단해 보였다. 반면 한신은 장량 못지 않은, 어찌 보면 장량보다 훨씬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인간관계에 있어 약삭빠르지가 못했다. 공은 공대로 세워놓고 매번 유방에게 당하고, 결국엔 여후에게 카운터를 맞는다. 실로 불쌍한 캐릭터다.
말 나온 김에 한신이야말로 인류 역사상 가장 극적인 인생 역전을 한 사람이 아닌가 싶다. 칭기즈칸이나 유방 같은 사람도 인생 역전이긴 하지만 한신처럼 터무니없진 않았다. 한곳에 진드감치 충성을 다 한 것도 아니고, 집극랑하다가 뛰쳐 나오질 않나 치속도위하다가 도망가질 않나... 그러면서도 계속 자기가 최고라고 대장군을 해야 된다고 떠벌리고 다니는데, 누가 봐도 병신 취급을 면치 못할 처세였으나 하루 아침에 대장군을 맡게 되었으니 이런 사람이 고금을 통틀어 또 있을지 - 내가 아는 바로는 없다. 게다가 그렇게 급속 승진을 한 이후에 실제로 최고의 전략가임을 증명하였다. 어찌 보면 위나라 등애가 연상되기도 한다. 허풍선이에 모두가 무시했으나 까보니 천하의 기재였던 한신과 등애. 참, 한신이 파촉으로 가는 길에 탈영해서 약탈을 일삼다가 죽을 뻔했다는 건 처음 알았다. 또한 '다다익선' 고사가 통일 한참 이후에 있었던 일이란 것도 새로웠다.
그밖에 괜찮은 경구들도 있었다. 이를 테면 "새는 나무를 가려 둥지를 틀고 어진 선비는 주인을 살펴 섬긴다"든가 "물이 너무 맑으면 사는 물고기가 없고 사람이 너무 따져 살피면 따르는 무리가 없다[水淸則無魚 人察則無徒]", "아무리 사나운 범이라도 머뭇거리고만 있으면 벌이나 전갈이 쏘는 것만 못하고, 아무리 준마라도 닫지 않으면 늙고 느린 말이 천천히 가는 것만 못하다. 孟賁과 같은 용사도 쓸데없는 의심으로 망설이기만 한다면 어린아이가 일을 내는 것보다 이룸이 적고, 순임금이나 우임금 같은 지혜가 있어도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으면 벙어리나 귀머거리가 손짓 발짓으로 말하는 것보다 못하다" 같은 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