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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연명전집
도연명 지음, 이성호 옮김 / 문자향 / 2001년 10월
평점 :
본인이 그간 짧은 생을 살아오면서 적지 않은 서책들을 섭렵하였다고 자부하는 바, 독서를 함에 있어 본인도 모르게 내내 감탄을 하며 책을 덮으면서도 마지막까지 탄식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는데, 과연 이번에 양서 중의 양서를 만난 것 같다.
흔히 陶淵明이라 하면 실제 이름은 잠(潛)이며 연명은 字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기실 그의 자는 원량(元亮)이고 연명은 또한 자신이 개명한 이름이다. 그는 동진시대 사람으로서 전란의 시기에 네 번 관직에 나아갔으나 매번 사직하고 물러나와 전원 생활을 하다가 죽었다.
하지만 그가 은둔 생활을 하였다고 해서 염세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니며, 오히려 창생을 구제하고자 하는 마음은 굴뚝 같았으나 너무도 혼탁한 당시의 시대 상황으로 인하여 이상을 실천하는 것이 불가함을 깨닫고 한발짝 물러나 있었을 뿐이다. 그 증거로 그의 몇몇 시편들을 들 수 있는데, 여기에 모두 옮길 수는 없으므로 차치하겠다.
이 책에는 도연명의 4언시, 5언시, 사부(辭賦), 제문 등의 모든 작품이 실려있는데, 하나같이 명구에다 신묘한 어휘들이었으나 특히 나의 마음을 잡아끈 구절들이 있어 몇 수 적어보겠다.
백발은 양 귀밑머리 뒤덮고
살갗도 다시 실하지 못하네
비록 아들 다섯 있어도
모두 종이 붓을 좋아하지 않는다네
舒는 벌써 열여섯이나
게으르기 짝이 없고
宣은 열다섯이 되나
학문을 좋아하지 않네
雍과 端은 열세 살인데
여섯 일곱을 알지 못하며
通은 아홉 살이 되나
배와 밤을 찾기만 하네
하늘이 내린 운세 실로 이러하니
또다시 술이나 들이킬 뿐
-責子
이 시는 해학이 뛰어났고,
...(중략)...
집은 여인숙
나는 응당 떠나야 할 객과 같구나
가고 가 어디로 가려는가
남산에 우리 묘택이 있는 것을
...(중략)...
家爲逆旅舍
我如當去客
去去欲何之
南山有舊宅
-雜詩 七首
이 시는 시어가 대단히 멋있는 것 같다. 집은 여관이고 나는 마땅히 객일 뿐이다... 이 얼마나 뛰어난 비유인가?
이 책은 또한 번역이 대단히 훌륭하여 책의 가치를 더욱 빛내주고 있다. 이성호라는 사람이 번역을 하였는데, 역자가 시구 하나하나에 달아놓은 주석을 보면 - 한학과 중국 고전에 대하여 - 대단히 광범위하고 깊은 이해와 소양을 가지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또한 본인은 독서를 함에 있어 특이한 결벽증이 있는지라 책 안의 활자 하나하나를 절대 빼놓지 않고 전부다 읽어버리는 버릇이 있는데, 이 책은 원문과 번역문을 한 페이지에 병렬해 놓아 독자로 하여금 대조할 수 있도록 해놓은 바, 안되는 한문 실력으로 일일이 대조해가며 읽어보니 과연 그 번역문이 속되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황석영 역 삼국지를 제외하고 독서의 계절에 들어 처음으로 완독한 책이 이토록 만족스러우니 본인은 새삼 기쁘기 한량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