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해줘
임경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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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난 이와 헤어지는 것은 당연하고떠난 이는 반드시 돌아온다이는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이라는 고사성어를 풀이한 것이다이 고사성어처럼 영원한 만남이나 영원한 이별은 인간사에 존재하지 않는다많은 사람들이 이를 알고 있다그럼에도 사람들은 만남과 이별이라는 인간관계에서 결국 상처를 받고 만다.

 

  그 상처는 서로 얽히고설키며 공유했던 것을 단칼에 잘라냄에서 오는찢어짐과 같은 아픔일 것이다우리는 그런 상처들을 잊으려 하지만그 욱신거림에 신음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그렇기에 임경선 소설가의 기억해줘는 욱신거림과 신음에 관한 이야기다다시 말하면 인간사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인간관계의 실패거기서 파생된 상처에 관한 기록이다.


사랑과 상처의 인과관계

 

  『기억해줘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이별에서 시작된다그리고 한 남자의 기억에서 이야기가 흘러간다그렇다고 해서 모든 이야기가 연인간의 만남과 이별에 관한 이야기로 이뤄진 것은 아니다이야기는 한 남자가 맺는 관계와그 관계가 가지고 있는 또 다른 관계의 이야기가 곁가지처럼 퍼져 나간다그 속에서 연인간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과 상처 등의 이야기도 녹아있다.

 

  여러 등장인물의 이야기가 서로 교차하면서 사랑과 상처에 관한우리가 겪고 있을지도 모르는 익숙한 세상이 펼쳐진다사랑이 없는 부부유부남과의 불륜어린 시절의 풋풋한 사랑 등이는 우리의 곁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하지만 우리가 보고 듣는 것은 불투명한 무엇인가에 싸여있어 희미하지만 기억해줘에서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무런 포장도 없는 날 것이다그래서 낯설다.

 

  『기억해줘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로맨스소설이다그럼에도 이 소설이 끌리는 것은 사랑과 상처를 직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사랑이란 것은 합일의 경험이다인간은 본연적으로 혼자라는 사실에서 오는 외로움을 가지고 있다그렇기에 누군가와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이 가진 어떤 공백을 메우는완결성을 갖는 일이다태어날 때부터 천형과 같은 결핍을 가진 인간은 결국 사랑을 갈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랑은 결실을 이루기도 하지만 대부분 상처를 낳는다하나가 되었던 것이 다시 갈라진다는 것은 그 이전의 상태로 온전히 돌아간다는 것을 뜻함이 아니다박스를 밀봉하기 위해 붙였던 접착테이프를 떼어낼 때 박스의 표면이 테이프에 붙어 딸려나오는 것처럼사랑이 끝난다는 일은 상대의 잔여물을 갖고 나의 일부를 때어주는 작업이다.

 

  사랑한 후의 인간은 사랑하기 전과 다른 인간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사실 우리는 자신의 새로운 일부가 된 상대의 흔적을 떨쳐내려고만 한다헤어진 상대에게 항상 나쁜이란 수식어가 붙는 것을 보면 말이다눈물로 씻어내 보려고도 하고분노로 그것을 뜯어내보려고도 하지만 그것은 잘 떨어지지 않는다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가슴 속 깊이 묻어둔다면 결과는 누가 봐도 뻔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헤어짐의 경험을 터부시할 것이 아니라 나의 일부로 인정하는 것이다소설 속에서 주인공이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는 것은자신의 상처를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의식과도 같은 것이다그리고 홀연히 사라졌던 옛 연인을 만남으로써 그 의식은 완결된다.

 

그리고 기억해줘

 

  단편이든 장편이든소설의 마지막 장을 읽고책을 덮을 때면 항상 생각하는 것이 있다책을 덮기까지 읽은 소설의 내용과 소설의 제목과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제목은 단어의 뜻 그대로하나의 작품을 대표하기 위해 붙이는 이름이다과연 이 제목이 소설 전반의 내용을 대표할 수 있는지 곰곰이 생각하는 것은 꽤나 재미있는 일이다.


  『기억해줘의 제목인 기억해줘는 네 글자로 이루어진 짧은 제목이기는 하지만 소설과 상당히 잘 어울린다그 이유는 사랑이 남긴 상처가 단지 떠올리기 싫은 아픔만이 아니라는 사실을그 상처가 사실 자신이 살아왔던 삶의 일부였음을이를 깨닫고 그 상처를 기억해달라고 소설이 독자들에게 요청하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장황하게 기억해줘에 관해 떠들었지만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간단하다.

 

  기꺼이 상처받을 것그리고 기억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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