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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천재 이제석 - 세계를 놀래킨 간판쟁이의 필살 아이디어
이제석 지음 / 학고재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런 사람이 지구상에, 그것도 내가 사는 땅덩이에서, 나와 같은 언어를 쓰고 있다는 사실에 흐뭇해진다. 이제석은 코로 공기를 숨쉬는 사람이 아니라 광고라는 무기로 이 사회를, 이 세상을 숨쉬는 사람 같다.
저자가 왜 뉴욕으로 날아갔는지 배경을 밝히는 부분에서 “빌어먹을 학벌!”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는데, 결과적으로는 저자가 이렇게 여러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계기가 되었으니 잘 된 일이라고 해야하나...
나한테 광고는 얼굴 알려진 연예인들 데려다 소비자들 눈속여서 돈 빨아먹는 자본 노예들의 생존방식 정도로 인식되어 있었는데, 광고가 이런 거였다니 그동안 내가 귀신에 홀려있었나 보다.
인터넷에서 이 책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대기 오염을 고발한 굴뚝이 총으로 된 사진, 계단에 히말라야를 상징하는 차원에서 산 사진을 덮어씌워 장애인의 불편을 고발한 사진을 보았을 때, 그 인상이 강렬하게 남아 이 책까지 찾게 되었고, 책에서 손을 뗄 수 없어 바로 다 읽어버렸다. 책을 읽고 나니 괜히 그런 광고들이 나온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책에 실린 광고 사진 하나하나가 사람을 빨아들이지만 그 광고를 만들어내기까지 그가 고민한 흔적들을 볼 때 광고를 만들어내는 이제석 자신이 이미 걸어다니는 ‘작품’으로 보인다. 성공을 추구하는 사람과 가치, 의미를 추구하는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책에 실린 광고들을 하나씩 들여다보면 하나로 모아지는 게 있다. 사랑! 그 사람의 삶에 사랑이 흐르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발상들이 밑거름이 된 거였다. 그동안 내가 봐왔던 광고가 먹고 살기 위한 사람들의 광고였다면, 이제석의 광고는 사랑을 아는, 소통을 아는 사람의 광고라고 할 수 있겠다. 자기 세계가 있고, 자기 철학이 있는 사람은 원래 돈, 성공쯤은 이미 목표가 아니다. 따라오는 결과물일 뿐이다. 이제석은 자기 세계를 실현해 가는 소신가일 뿐이다. 그가 보여주는 역발상은 통쾌하기까지 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과 타협하지 않기란 쉽지 않은 일일 거다. 책 제목이 ‘광고천재 이제석’이다. 이제석 본인으로서는 삶의 본질을 놓치지 않은 거 뿐인데, 이런 광고쟁이를 사람들은 광고천재라고 불렀나보다. 이제석이 광고천재라면 광고전에서 수상을 많이 해서, 세상을 놀래켜서라기보다 광고주들과 타협하지 않고, 광고에 끌려다니지 않고, 자신의 광고 세계를 끌고 가겠다는 ‘내 길은 내가 만들겠다.’는 철학, 고집처럼 자신만의 광고쟁이 근성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라고 본다. 그러고 보면, 천재가 별 건가. 우리가 천재라고 칭하는 사람들은 세상과 타협하거나 세상에 길들여지지 않고 자기 세계를 실현해갔던 사람들이었던 거 같다.
Wayne W. Dyer가 쓴 Your Erroneous Zones라는 책에 보면,
People are always blaming their circumstances for what they are. I don't believe in circumstances. The people who get on in this world are the people who get up and look for the circumstances they want, and if they can't find them, make them.
사람들은 자신의 현 위치를 항상 자신이 처한 환경 탓으로 돌린다. 나는 환경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스스로 일어서서 자신이 원하는 환경을 찾았든가, 그런 환경을 찾아내지 못했을 때는 자기 스스로 만들어냈다.
이런 문구가 나온다. 바로 저자 같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겠다.
광고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쓴 책이지만, 광고를 소비하는 사람으로서도 생각해보게 만드는, 광고 소비자에게도 화두를 던진 책이었다. 내가 일상에서 쉽게, 가장 많이 접하는 광고는 TV 상업광고일 거다. TV 광고를 보다 보면 제품 모델과 제품이 뒤바뀐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알맹이가 없으면 눈에 보이는 겉이 화려해지게 마련이다. 제품 그 자체보다 잘 나간다는 연예인들을 내세워 소비자들 속물근성 자극하는 싸구려 발상 TV 광고들은 괜히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우리네 일상이 본질보다 악세서리에 집착해 사는 삶 아닌가. 성형 열풍, 명품 열풍, 유명대 열풍, 사교육 열풍, 토익 열풍, 스펙 열풍, 열풍, 열풍, 열풍 이런 게 다 자기 중심이 없다 보니까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에 눈을 돌리는 거 아닌가. 우리네 일상이 기름끼 쫙 빠진, 알맹이가 알찬 삶이라면 저런 광고가 먹힐 리가 없다. 결국, 인간을 생각하지 않는 그런 광고를 만들어내는 건 그 광고를 소비하는 우리네들 아닌가.
책 뒷 부분에 보면 저자의 사수였다는 클라우디오라는 사람이 술만 마시면 토로하는 고민이 “착한 상업광고를 하면서 살 수는 없을까?” 였단다. 일단 팔고보자는 식으로 밀어붙이기만 하는 소비자를 배려하는 문화풍토가 없음을 반성하는 말이라는데, 광고쟁이들이 이런 고민을 많이 할수록 살맛나는 세상이 될텐데... 그런데, 광고라는 게 만드는 사람만의 세계는 아니잖은가. 만들어진 광고를 소비하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소비자가 넘어가주지 않는다면 즉, 그런 광고가 먹히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면 개념없는 광고들은 자연도태되게 마련 아닌가. 소비자를 무서워하게 만드는 건 소비자들의 몫 아니겠는가.
광고천재의 유혹에 넘어가 결국 상업광고의 소비자인 내 모습까지 들여다 보고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