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 남자를 살리다
권혁범 지음 / 또하나의문화 / 2006년 1월
평점 :
절판


젊은 제자들, 웬만한 여성운동가들 저리가라 할 만큼 여성주의자인 저자의 글을 여기저기서 많이 접했었기에, 이 책은 사놓기만 하고 몇몇 글만 읽고 잘 모셔놓고 있다가 최근에 꺼내들어 제대로 읽었다.


여성이 왜 좀 더 전투적이지 않냐는 지적에 많이 공감했고, 계급 문제로 다루어야 할 문제를 남성 자신들조차도 문제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약자인 여성에게 화살을 돌린다는 점, 창조적인 결혼식이 아니면 제자들의 결혼식 주례부탁을 거절하겠다는 내용이 와닿았다. 아쉬운 점도 보인다. 난 한국 현실에서는 주5일제보다 정시출퇴근제가 더 어울린다고 본다. 소위 지식인이라고 하는 사람들, 혹은 6시 퇴근의 기쁨을 누리는 사람들은 육체노동자들이나 상업쪽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의 장시간 노동에 둔하다. 주5일제라고 해봤자 육체노동자들은 ‘특근’으로 처리해 버리고 그대로 일을 시킨다. 특근이 해당되지 않는 회사에서도 주5일제이면서도 이 핑계 저 핑계 대어서 주말에도 회사에 나오게 해서 사무실에서 빈둥거리게 만드는 회사도 많이 봤다. 난 주5일제가 반갑지 않다. 여성계에서, 6시 땡하면 퇴근하게 해서 남편/아빠를 가정에 돌려주라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게 그저 신기할 뿐이다.


난 여성이 여성문제를 얘기할 때 여성문제에 '여성'을 얘기하지 않고 오히려 언제나 남성만 비판하고, 질타하는 판도가 이해가 안 된다. 여성을 여성 자신도 타자화하면서 이야기하는 건 어차피 해결책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같은 시대를 살아오면서 여성이 가부장제에 길들여졌듯 남성도 남성 우월주의에 물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한국 사회는 여성 자신이 가부장제에 적응하고 인내해면서 길들여져 온 세월이 가부장제를 더 공고히 굳혀놓는 데 일조했다는 사실을 자각, 반성하지 않고 남성만을 비판한다. 여성 마초는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비판에서 면제되는 현실을 여성은 애써 무시한다. 이런 사실들을 의식하고 이 책을 읽는다면 권혁범 교수가 남성을 향해 비판을 던졌듯 여성 역시 화살을 남성한테 돌릴 게 아니라 여성 자신에게 돌려야 한다. 난 여성이 없는 여성운동이 이상하다.


여성문제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문제가 아니라 강자와 약자의 문제라는 저자의 지적에 공감한다. 그리고, 이런 생각도 들었다. 분명, 여자라고 다 여성주의자도 아니요, 남자라고 다 마초도 아니다. 그렇다면, 여성문제는 의식이 깨인 남자와 여자(즉 페미니스트인 남자와 여자), 깨이지 않은 남자와 여자(마초인 남자와 여자)의 문제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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