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비빔밥 인간을 만들고 싶다
박태견 지음 / 뷰스(Views) / 2006년 1월
평점 :
절판


나는 비빔밥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 재료 저 재료 섞어 놓아서 각 재료 고유의 맛이 묻혀 버리기 때문이다. 심지어 음식점에 가서 고기를 다 먹고 난 후 직원이 와서 비벼주는 비빔밥도 같이 먹는 사람들이 억지로 그릇에 퍼담아 내밀기 전까지는 웬만하면 먹지 않는다. 그런데, 이책에서처럼 오히려 재료 고유의 맛이 사라지는 학문의 ‘통합’을 얘기하는 비빔밥은 흥미롭다.

정운찬 총장이 원하는 서울대생은 ‘통합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인물이다. 입시에 논술고사를 부활시켜 고등학교에서 각 과목을 따로따로 가르치는 일본식 ‘칸막이 교육’을 버리고, 과목간 ‘연계성’을 살려 교육을 하도록 유도해서 학생들을 인문학적 마인드를 가진 자연과학도, 과학과 테크놀로지에 대한 식견을 갖춘 인문사회학도로 키우겠다는 게 정운찬 총장의 계획이다. 물론, 이런 정운찬 총장의 생각은 교육의 앞날을 내다보는 훌륭한 생각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내가 의문이 드는 건 학생들이 ‘통합적 사고’를 하지 못하는 게 왜 학생의 문제이기만 한 것처럼 얘기하느냐다. 학생은 학생 혼자 만들어지는 게 아니잖은가! 교사들이 어떻게 가르쳐야한다는 걸 얘기하지 않으면서 학생들은 어떠어떠해야한다고 주문하는 건 뭔가 촛점이 빗나간 것 같지 않은가? 과연, 이책에 나온 예대로, 독일의 초등학교 선생님들처럼 수학에도 답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개가 나올 수 있다는 걸 이끌어낼 수 있는 선생들이 이땅에도 있기는 하냐 이거다. 그리고, 서울대생들의 실력은 그렇다치고, 서울대 교수님들은 실력이 빵빵하다 이건가? 아니 실력은 차치하고라도 서울대 출신이 아니면 서울대 강단에 세우려고 하지 않는 풍토는 뭐지? 요즘은 좀 나아졌다는 소리도 들리지만. 국제 출판학계에서 서울대학교의 학술논문이 인용되는 경우가 드문건? 하긴 정작 문제는 이런 게 아니지.

초/중/고등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 현장을 들여다보면, 수업방식이 그 옛날 서당식 교육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땅에 대학 교육이 도입된 지는 고작 50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서당에서는 훈장이 주도적으로 제자들의 교육을 이끌어간다. 오늘날의 초/중/고등학교 교실에서 수업이 벌어지는 광경 역시 선생이 압도적으로 이끌어가고 학생은 이끌려간다. 한국의 교육현장에 유난히 ‘교권’이라는 게 강조되는 것도 서당 교육의 역사 때문 아닐까? 역사가 길고 긴 이런 고전적인 수업방식에 익숙해져 있다가 스승과 제자가 대등한 입장에서 ‘대화’를 통해 소통을 중시하는 최근에 등장한 서양식 대학 교육에 발을 들이는 교육현실을 생각해 보면 나는 이게 꼭 일본식 칸막이 교육의 문제라고만 보긴 어렵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서울대가 소위 세계 몇 위 대학에도 들지 못한다는 사실에 굉장히 예민하다. 국제경쟁력 관점에서만 서울대를 논할 뿐, 우리 자신의 눈으로 들여다 보지 못한다. 내가 보기엔, 몇 백년의 역사를 가진 다른 나라 대학과 고작 50년밖에 되지 않은 한국 대학을 비교하는 것부터가 뱁새가 황새를 따라잡고 싶어하는 현상으로 보인다. 우리는 왜 그렇게 비교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걸까? 사실 난 혹시 역사가 짧다는 열등감을 이런 순위에서 해소하려는 심리는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든다. 내가 처한 현실을 자각해야 타인과 내가 처한 현실이 어떻게 다른가도 눈에 들어오는 법이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교육의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해 헤매고 있느라 서당식 ‘일방적’ 교육과 서양의 ‘대화식’ 교육의 차이를 파악하지 못한 거고, 그래서 정운찬 총장도 교사의 독백으로 이루어지는 초/중/고등학교의 수업방식과 교사와 학생의 대화로 이루어지는 대학의 수업방식(사실 뭐 대학 강의 역시 고등학교보다 조금 나은 것뿐이지, 교수의 독백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을 어떻게 연계시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없이 통합적 인간을 노래한 것 같다.

오늘 우리가 처한 교육 현실은 서당을 버리지 못한 상태에서 대학을 도입했다는 거 여기서부터 반성을 하고 가야할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서당훈장을 버리냐, 대학을 버리냐 이게 한국 교육의 숙제 같다.


첫술에 배부르랴. 이 책을 읽고 나니까 그래도 기존의 서울대 이미지를 조금은 벗어버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점에서 약간의 희망이 보이긴 하나, 왜 한국의 교육문제는 꼭 서울대 문제로 풀어가는 거지?라는 의문이 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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