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가족 이야기
조주은 지음, 퍼슨웹 기획 / 이가서 / 2004년 1월
평점 :
품절


1. 제목만 봤을 때는 ‘전통’이 아닌 ‘현대’를 얘기하는 줄 알았다. 다 읽고 나서 생각해 보니 ‘현대’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현대 가족’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실제로 내가 이 책을 읽고 있을 때 친구와 전화 통화를 하다가 ‘현대 가족 이야기’라는 책을 읽고 있다고 얘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말을 들은 친구의 자세가 돌연 바뀌어 버리는 게 아닌가. "그러니까 정주영이 회장이었던 그 현대를 말하는 거지?" 이런 식의 확인을 몇 가지 하면서 현대측이나 언론이 노동자들을 귀족화시켜 이용해 먹는 현대 이야기를 읽는다는 둥, 바보 또 하나 탄생한다는 둥 이런 놀림을 받아야했다. ‘현대 가족 이야기’라고 하지 말고 좀 더 구체적으로 밝혀서 ‘울산 현대 노동자(근로자?) 가족 이야기’로 했어야 독자가 혼동을 안 하지 않았을까. 울산 현대 노동자 부인이 같은 처지의 아내들 18명을 인터뷰해서 여성의 시각에서 쓴 책이라고 설명을 했더니 사측이 아닌 정말 순수하게 노동자의 입장에서 쓴 책이라면 읽어볼만한 책이겠다며 입장을 바꾸긴 했지만 책 제목이 이렇게 오해를 불러올 줄은 몰랐다.

2. 여성문제에 관심이 많아 여성문제를 다룬 책을 많이 읽게 되는데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오늘날 이땅의 여성의 지위나 여성의 현실이 이 모양이 되도록 도대체 여성들은 어디서 뭘 했는지는 얘기하지 않고 왜 언제나 가부장제를, 사회를 향해서만 목소리를 외칠까 그런 의문이 들곤 했다. 심지어 어떤 책을 읽고는 작가한테 메일을 보내서 물어보기도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실망 그 자체였다. 회의와 절망을 느끼던 차에 이 책을 접했는데, 작가가 직접 자신이 개입된 입장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냈다는 점, 여성의 동조나 지지가 없었다면 오늘의 여성 현실이 이랬겠냐는 자성의 목소리도 반영한 점 반가웠다.

3. 책 뒤에 ‘가족 연구와 노동자 생활사 연구에서 선구적이며 독보적인 책’이라는 문구는 뒤집어서 여성계는 그만큼 이 부분에 대한 연구가 미진했다는 반증이 아닐까? 그 만큼 현실과 여성운동사이에 갭이 있다는 얘기 아닐까? 오히려 이런 연구가 이제야 나오게 되었음을 부끄러워하는 문구는 보이지 않고 선구적이며 독보적인 책이라는 광고를 하고 있으니... 아마도 출판사측의 상업성 의식??


4. 나 역시 2교대 작업장에서 일을 해 본 경험이 있기에 저자가 답답해하는 부분을 공감하고도 남았다. 바로 나의 현실이기도 했으니까. 울산 현대 노동자들은 거의가 남성 근로자들이었지만 내가 일하던 곳은 남성과 여성이 비슷한 비율로 일하던 곳이어서 결혼한 여자들의 삶을 비교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처음 일을 하게 되었을 때 12시간을 일하고도 집에 돌아가면 김치담그는 일이며, 가족들 식사준비와 살림을 도맡아가며 하는 아줌마들의 삶을 보면서 이게 진정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인가라는 생각과 함께 그런 삶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아줌마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집안 일을 하다가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하고 출근해서 기계 앞에서 조는 모습을 보면 같은 처지인 아줌마들끼리는 동의하에 휴게실에 올려보내 잠을 재우기도 하고, 부서를 잘못 만나 그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야식 시간에 밥을 먹지 않고 휴게실에 올라가 잠을 자다 내려오는 아줌마들이 부지기수였다. 여행비를 벌기 위해 갔던 곳이었기에 나야 잠시 다녀가면 그만이지만 그곳에서 일을 해서 자식 대학교육시키는 아줌마들의 삶과 작업조건을 보며 야만이 따로 없구나 이런 생각만 들었다.

할 말은 많지만 내용이 너무 길어지는 것 같다. 다 생략하고 저자가 독자에게 던져준 질문에 답을 하고 마칠까 한다.

어떻게 하면 ‘1가족 1인 생계부양자’ 모델이 바뀌고, 여성도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 이 모든 건 제도나 장치의 문제이기 전에 현실에 대한 인식부재가 관건이다. 우리 사회가 ‘1가족 1인 생계부양자‘ 형태를 당연시하는 건 결혼이라는 걸 남편, 아내, 아빠, 엄마 이런 ‘역할 분담 놀이’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아내에게도 야심이 있고, 꿈이 있고, 희망이 있고, 일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는 이해가 있다면 남편이 돈 벌어오고 아내는 살림하는 구조가 굳어질 수 없었을 거다. 가정을 ‘역할’ 논리만으로 돌리려하고 개인으로서의 존재는 간과하다 보니 한국 사회에서 직업이 가지는 의미도 ‘생계유지수단’ 인식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게 되었고, 그 연장선에서 가정이 기업에 담보잡혀 가정살림마저도 기업이 좌지우지하는 현실이 되어버렸다. 어떤 사람은 직업이 가지는 의미를 생계유지수단에, 어떤 사람은 자아실현에, 어떤 사람은 사회참여에, 어떤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한 자금줄이라는 데에 둘 것이다. 그런 여러 가지 의미 중에서 ‘생계유지수단’으로만 의미지운 건 우리 사회가 ‘남편은 밥벌이하는 사람, 아내는 살림하는 사람’ 이런 공식을 체화하고 있지 않다면 불가능했다.

“생활”하기 위해 직업을 갖는 것과 “생존”하기 위해 직업을 갖는 것, 우리 사회는 이걸 구분하는 걸 껄끄러워 하는 것 같다. 직업을 자신이 좋아하는 연구를 하기위해서라던가, 여행을 하기 위해서라던가, 발레를 하기 위해서라던가, 음악을 배우고 싶어서라던가 이렇게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추구하기 위한 자금을 조달하는 도구로 생각하는 선진국에 비하면, 한국사회에서는 ‘생존해결’이라는 원초적인 이유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역시, 각자가 남편, 아내, 아빠, 엄마 이런 역할이 아닌 개인으로서 창조적인 삶을 산다면 내가 좋아하는 일에 투자하기 위한 자금줄 해결창구를 직업이라 생각하지 않을까? 식구 각자에겐 자신의 삶이 있고 각 고유의 독립적인 영역이 존재한다는 걸 인식한 사회라면, 식구들 먹여살려야 된다는 이유로 회사에 그렇게 오래까지 남아 일을 한다는 게 얼마나 무모한 일인 지 깨닫지 않을까? 살림이든 자녀교육이든 이게 아내만의 일이 아닌 남편과 아내 두 사람 모두의 일이라는 인식이 있다면, 내가 정신을 쏟아붓고 시간을 투자하고 싶은 취미생활이 있다면, 가족과 식탁에 둘러앉아 하룻동안 인간정신을 실현하고 돌아온 각자의 경험을 얘기 할 수 있는 시간에 의미부여를 하고 있다면 그렇게 늦은 시간까지 남아서 회사에 충성할 수 있을까?/충성하도록 강요할 수 있을까? 부모라는 역할을 제대로 학습했다면, 개인으로서의 존재를 제대로 자각했다면 일하는 기계와 살림하는 기계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런 현실을 낳지는 않았을 거다. 이 사회가 제대로 굴러갈 수 있도록 가정이 올바른 정신구조를 갖춘 양질의 인적 자원을 길러내려면 기업이 가정살림을 좌지우지하지 않아야 된다. 근무외 시간을 요구하는 기업의 근무형태는 가정에서 남편 역할, 아내 역할, 아빠 역할, 엄마 역할을 고착화시키고 있다. 기업은 6시 이후의 시간을 가정에 돌려주어야 한다. 그러자면, 정해진 시간만큼 밀도높게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가족과 지내고, 자기 자신에 대한 투자할 수 있는 시간 확보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퍼져야 한다. 또한 여성은 여성의 자각없음이 여성의 현실을 좀 먹는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여자나 남자나 직업이 무엇이고, 결혼이 무엇이며, 가족이 무엇이며, 개인이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반성이 없다면 ‘1가족 1인 생계 부양자’ 에서 벗어나기 힘들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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