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발견 - 어른들의 속마음을 파고드는 심리누드클럽
윤용인 지음, 양시호 그림 / 글항아리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제목인 ‘어른의 발견’은 어른‘을’ 발견했다는 얘기도 되지만, 어른‘이’ 발견했다는 얘기도 되니까 뜻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 그냥 ‘어른발견’이라고 하는 게 더 나앗겠다. 이 말은 어른‘을’ 발견했다는 뜻밖에 없으니까. 거기다, 읽고 보니 ‘어른(의) 발견’이라기보다 ‘결혼(의) 발견’이었다. 어른이 되어가는 성장기를 다루고, 지금의 이 한국 어른들이 왜 이모양 이꼴인지 그 현주소를 파헤쳤더라면 ‘어른의 발견’이 어울렸을 거다.

한국 남자들이 쓰는 책 중에 주어가 자기자신인 경우를 찾기가 쉽지 않다. 한국남성의 눈으로 결혼에 대한 고찰을 담아낸 책을 찾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이런 점이 이 책의 의미로 다가왔다.

결혼고시 제정이라는 발상이 신선했고, 부부가 각방을 쓴다는 건 ‘부부관계의 악화’라고 그 결혼생활을 들여다 보지도 않고 내 멋대로 고정관념을 키워왔었는데, 그게 부부가 처한 고유의 생활 모습일 뿐 꼭 사이가 나빠서 그런 것만도 아니라는 내용에 약간의 충격을 먹었고, 내가 그런 고정관념을 키워왔다는 사실에 실망도 했다.

사람들은 묻는다. 내가 왜 아직 싱글이냐고! 혹시 독신주의를 고집하는 거냐고!! 물론, “그걸 니가 알어? 내가 알어?”, “탱고 혼자 춰?” 이렇게 넘기곤 하지만, 도무지 혼자일 수밖에 없는 것이 좀 진지하게 만나보려고 해도 이 남정네들이라는 존재가 단순하기 그지 없는 데는 정말이지 두 손 두 발 다 들 수밖에 없었다. 데이트 하고 나서 매일 집까지 바라다 주는 일을 어떻게 하냐고 운전면허가 없음을 이유로 딱지 맞은 건 그래도 양반에 속하겠다. 키가 작다, 안경을 썼다, 가방끈이 짧다, 가난하다(이것도 이해할 수 있겠다.), 쭉쭉빵빵 아니다 뭐 이런 이유로 진지한 만남을 거부하는 존재들이랑 관계진척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거냐고! 당신이 생각하는 결혼의 모습은 어떤 거냐? 당신의 2세 교육관은? 당신은 어떤 남편이 될 것이며, 당신이 아내에게 기대하는 모습은? 이런 질문을 고리타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랑 어떻게 미래를 논하겠냐고! 결혼이라는 걸 밥해주고, 빨래해주고, 자기 대신 자기부모한테 효도해주는... 아내를 찾는 게 아니라 순전히 자기 엄마 대타를 찾는 작업이라고 생각하는 머리들이니 이런 질문을 머리를 고문하는 질문으로 받아들이더라.

올 여름 독신자 아파트에 들어가는 일로 작년 후반쯤 회사에다 필요한 서류를 부탁했던 적이 있다. 조용히 지나가고 싶었는데 그넘의 서류 때문에 회사 사람들이 다 알고 말았다. 그게 독신자 아파트임을 모르고 있던 회사 동료들이 이사가면 살림도 새로 들일테고, 이제 남자만 있으면 되겠네 보는 사람마다 이런 노래를 해대서 한동안 스트레스였다. 결혼이라는 게 내가 가지지 못한 걸 채워 넣는 작업은 아니지 않은가.


세상엔 준비하지 않고 덤볐을 때 의외의 재미를 주고 더 매력을 발하는 일들이 수두룩하다. 여행도 준비된 여행은 재미가 덜하다. 그런데, 결혼이라는 건 준비하지 않고 덤볐다간 이만저만 낭패를 보는 게 아니다. 준비 안 된 남녀들의 일단 하고보자형 결혼이 주목할만한 이혼률을 낳고 있지 않은가.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뭘 모르니까 결혼이라는 게 뭔지 성격파악도 안 한 상태에서 그렇게 쉽게 덤빌 수 있는 거 아니겠는가. 냉장고나 TV, 가구같은 쓰다 버리는 소모품들도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요모조모 살펴보고 사는데, 하물며 평생을 함께 할 사람을 떡먹듯 그렇게 쉽게 결정해서 결혼을 하는 것도 그렇고, 결혼이라는 게 뭘 의미하는 건 지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냐 이거다.

이땅엔 결혼을 재해석하고, 결혼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 필요하다. 물론, 그러자면 결혼을 ‘나 먹여살려줄 남자 구하는 일, 나 위해 밥하고 빨래해줄 여자 구하는 일’로 여기는 젊은 남녀들 머릿속도 수술해야 할테고, 결혼을 애들 소꿉놀이처럼 ‘역할놀이’로 여기는 분위기도 바꿔야 하고, 가정을 기업이 좌지우지 하는 풍토도 바꿔야 하고, 여성을 한없이 비하하는 아니 ‘나’를 나로 살게 하지 못하는 한국말도 손봐야 하고, 얽힌 실타래처럼 한두가지가 엮여 있는 게 아니다 보니 풀어야 할 숙제도 많다.

정치고, 교육이고, 직장생활이고 한국이 돌아가는 현실을 들여다 보면 그 기저에는 ‘남녀관계’ 즉 ‘부부’의 사는 모습이 흐르고 있다. 자기 아내를 존중하는 남자가 회사에 와서 여직원을 함부로 대할까? 자기 아내의 의견을 들어주지 않는 정치가가 국민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고, 상대당의 말을 경청할까? 회사에서 밤늦게까지 남아 야근을 하는 사람 뒤엔 분명 집에서 애들 돌보고, 자신을 대신해 집안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결혼을 ‘역할놀이’로 착각하는 한국남녀들은 이걸 당연하게 여겨버린다. 어린이집 가서 아이 데려와야 한다는 이유로 퇴근 시간을 칼같이 챙기는 거 이거 한국 회사에서는 싹둑! 가위질감이다. 칼같이 챙길 위인이 얼마나 있을까만은. 개인이 누리고 살아야 하는 최소한의 시간, 한가정이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 담보되어야 하는 가족 구성원의 시간조차 회사가 압류하고 있는 사회에서 결혼 생활이 제대로 돌아가길 바라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예리한 칼로 찌르듯 예리하게 꼬집어낸 부분도 분명 많지만, 결혼을 얘기하면서 이 사회 직장문화를 건드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불행히도 이 책은 제대로 된 어른발견이 아니었다.


남녀관계 이거 우습게 볼 게 아니다. 그렇다고, 여자인 나 혼자 노력해서 되는 일도 아니더라. 어쩌다 주변 남자들에게 남녀관계를 다룬 책, 연애론, 결혼에 관한 책, 남녀의 차이를 다룬 책... 을 선물하면 아주 경끼를 일으킨다. 심지어 다른 책은 다 읽어도 그런 책은 안 읽는다는 말까지 서슴없이 하더라. 모른다는 사실보다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날 힘들게 했다.

이책은 내게 희망보다는 절망을 준 책이다. 왜냐하면, 이렇게 의식있는 남자들도 애들 중심의 가정을 돌리며, 부부싸움을 살벌하게? 밥먹듯이? 하며 사는데, 정말 어지간한 생각을 가진 남자가 아니라면 내가 생각하는 결혼의 모습은 없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