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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맹수의 눈을 갖게 되었다
조승연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3월
평점 :
품절
‘유럽피언 러브 스타일’이란 책을 읽고 저자의 또 다른 책을 검색하다가 이 책이 눈에 들어와 읽게 되었다. 내가 사는 나라, 내가 태어난 도시만큼 또 한 나라, 또 다른 도시를 사랑할 수 있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 같다.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는 사람은 밖에서도 내 모습에만 취해 있을 테니까. 이런 책을 과학도나 경제학도가 썼다면 어떻게 썼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가슴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쓸 수 없는 글 같다.
나 역시 뉴욕 하면 더러운 도시, 강도를 만날까 두려워 대낮에도 지하철을 함부로 탈 수 없는 도시, 월스트리트 그런 것들을 떠올렸는데, 이 책을 읽고 보니 역시 살아보지 않은 사람이라서 그런지 수박줄무늬만 보고 있었던 거다. 이제 뉴욕의 역사가 손에 잡히는 듯하다.
제목만 보았을 때는 저자의 힘든 유학생활이 투영되어 있는 제목인 줄 알았다. 그런데, 책을 읽고 보니 ‘맹수의 눈’이란 뉴욕사람의 눈을 ‘묘사’한 말이었다. 그리고, 내겐 맹수의 맹렬한 ‘눈빛’보다는 맹수의 ‘여유’를 가리키는 말처럼 들린다. 자기 멋에 살 줄 아는 뉴욕 사람들을 자기 중심을 잃지 않는 사람들이나라고 할까... 내가 명품인데 왜 굳이 명품이 필요한가라는 태도를 갖고 사는 그런 여유는 명품이라는 ‘타이틀’보다 명품의 ‘의미’ 를 파악하고, 명품의 ‘기능’에 충실할 줄 아는 사람, 천박한 자본주의의 속물근성에 물들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정신일 거다. 명품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우리네는 죽어도 따라가지 못하는...
거의 마지막 부분에 저자가 서울에 대해서 쓴 글에 공감한다. 서울에 갈 때마다 알 수 없는 그 답답한 기운을 나 역시 느껴보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을 알게 됨은 또 하나의 다른 문화를 접하는 일과 같다고 예전에 어떤 분이 TV 강의에서 그랬던 기억난다. 같은 맥락에서, 또 다른 도시를 살아보는 건 내 나라, 내 도시에 살면서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더 잘 볼 수 있는 일일 거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난 좀 불행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