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아버지는 늘 내게 거대한 존재였고,
어머니는 늘 나를 품어주시는 넉넉한 존재였기 때문에
아버지가 나이 60을 넘기셨어도,
어머니가 병원을 찾는 횟수가 잦아져도
당신들께서 늙으셨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깨달음은 순간이다.
몇 해 전 추석이었을 것이다.
누이는 결혼해서 출가했고, 형은 유학가서 집에 올 수 없었다.
나 혼자 있어 어머니 명절 음식 준비를 돕고 있었다.
해표식용유를 두르고 명태전이며 호박전이며 굴전을 뒤집고 있는데
나보고 간을 보라신다.
좀 짜다.
하지만 당신께서는 그 간을 잘 모르셨다.
어머니의 음식이 더 이상 간이 맞지 않을 때 자식은 슬프다.
아버지와 등나무가지를 치는데
10여 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피곤해하신다.
생각해보라.
곧 칠순을 바라보는 노인네가 사다리에 올라 전정가위로 가지를 치고 있고
이십대 후반의 펄펄한 자식놈은 밑에서 사다리를 잡고 있는 꼬라지를.
나는 그렇게 철이 없었다.
어느 시인이
'병든 노모와 마주앉은 밥상은 제삿상 같다'고 했던 그 서늘함.
금세 피곤해하시는 아버지의 모습과 간을 못맞추시는 어머니의 모습
이를 보고서야 이 놈의 자식은 철이 듭니다.
괴로운 깨달음의 순간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