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준식의 생각
서준식 지음 / 야간비행 / 2003년 3월
평점 :
품절


1. 나의 아버지는 '낙관적으로 살라'는 말을 싫어하신다. 세상이 비관적이고 서민들의 삶이 지랄 같은데 마냥 낙관적으로 살라니. 나도 같은 생각이다. 그래서 훈훈하고 따스한 드라마들을 마냥 좋아하지만은 않는다. '그래도 세상은 아직 살만한 거야'라고 나에게 속삭이기 때문이다.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는데도 말이다. 작은 희망에서 삶의 위안을 발견하는 것도 소중한 것임은 분명하지만, 거세된 분노를 되찾는 것이 지금은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두터운 일상에 눌린 분노.

2. 하지만 나는 낙관적으로 살고 싶다. 쳇바퀴 같은 일상을 깨고 분노를 되찾았을 때, 희망과 더불어 그 분노의 힘으로 내가 생각하고 실천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세상은 조금씩 변해갈 것이다. 세상은 변할 수 있고, 변화시킬 수 있다는 낙관.

3. 400여 쪽에 달하는 분량. 보통 사람들에게는 익숙치 않은 말들. 특별히 디자인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는 디자인. 친구와 소주 한 잔 나눌 수 있을 정도의 책값. 나는 이책을 사기 위해 집앞의 책방을 뒤졌고, 찾다 못해 점원에게 물었다. 한참을 해매다 찾은 그 점원은 '촌스런' 디자인과 '좋지 않은' 종이질 때문에 괜히 미안해했고, 나는 재생지가 환경적으로 좋다는 것과 이 책은 디자인이 중요한 책이 아님을 설명해야 했다. 이 책은 그런 대접을 받고 있었다.

5. '산뜻한 추상과 집단적 정열'이라는 '안락한 진보'와 '인간현실의 무한한 복잡성' 속에서 굳건히 지켜야 하는 진보. 많은 사람들이 학교를 졸업하면서 일상에 묻히는 것을 설명해주는 말이다. 나도 역시 다르진 않다. 적당히 진보적인 척, 아웃사이더인 척하기 참 쉽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참 낯뜨겁다.

'인간현실의 무한한 복잡성'이 새록새록 몸으로 느껴지는 요즘, 서준식씨의 말처럼 진보의 편에 서있기는 참 힘들다. 나는 앞서 말한 '분노'의 힘으로 버텨볼 생각이다. 그 분노가 주체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참으로 하찮은 일이지만 나름의 의미를 찾는다. 그리고 그 틈을 조금씩 넓혀갈 생각이다. 그래서 언젠가 켜켜이 쌓인 나의 일상이 ‘쩍’하고 갈라질 때, 나는 다시 이 책을 꺼내 볼 것이다. 이 책은 나에게 ‘구체성으로의 회귀’와 ‘자생에의 정열’이라는 화두를 던져주었다.

책은 덮었지만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 오늘 아침에도 문득문득 서준식씨의 글귀가 떠오른다. ‘우리는 고난에 찬 이 분단시대를 올바르게 살아온 것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