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너의 문화사 - 매너라는 형식 뒤에 숨겨진 짧고 유쾌한 역사
아리 투루넨.마르쿠스 파르타넨 지음, 이지윤 옮김 / 지식너머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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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너, 예절, 에티켓, 예의바름

이 책은 우리가 매너라고 부르는 행동 양식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다루고 있다.

주로 중세시대의 역사라 불러도 될만큼 중세시대 유럽의 문화를 돌아보고 있다.

저자는 현대에서 매너라고 불리우는 것들이 중세시대에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어한다.

우리는 유럽의 매너들이 멋있다거나 여자들을 존중해 준다는 생각들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영국을 '신사의 나라' 라고 한다거나 이태리를 '패션의 나라' 로 이야기 하지만 실상 그러한 매너들이 정착된 것은 불과 산업혁명 이후이니 200년이 채 안된 역사라 하겠다.

우리는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을 일단 경계하게 된다. 말아 안통하니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언어가 다른 민족을 옛날엔 야만인라고 불렀고 이방인이라 부르며 무시했다.

그러나 비단 언어만 다른게 아니라 외모도 다르다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현재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이민정책을 시행하였고 그들만의 문화를 이민자에게 가르쳐 경계대상에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을 기울였지만 실상은 이민자에 대한 적대감이나 차별적인 의식만 생긴 결과만을 낳고 말았다.

이처럼 매너가 어떻게 호의나 적대감을 표시하게 된 것인지 <매너의 문화사>는 밝히려 한다.

허리를 굽혀 인사한다거나 무릎을 꾾는 행위는 자신의 몸을 작게 만들어 덜 위협적으로 보이게 하는 행동이며 사람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것, 눈동자를 위로 치켜뜨는 것은 싸우겠다는 위협의 표시인 것이다.

말보다는 행동이나 제스처에서 이미 서로의 상태를 가늠하는 것이다.

그럼 악수는 어떨까.

멀리 아는 사람이 보이면 손을 들어 아는 체를 하는데 이것은 손에 무기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오른손을 들었다. 악수 역시 서로 손에 무기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다.

악수가 인사법의 기능을 하게 된것은 19세기 정도.

중세시대 삶의 위험성, 예측 불가능성 등에서 언제나 서로를 경계해야만 했던 것이다.

즉 예의범절과 인사법은 위험 사회에서 폭력성에 대응하기 위한 방어책이었던 셈이다.

식사예절과 음주문화는 어떠했을까.

중세시대 유럽이 얼마나 더럽고 지저분했는지 그래서 향수가 발달했다는 이야기는 많이 알려져 있다.

식사예절과 음주문화를 보건대 동양의 예법으로는 야만인이 따로 없을 듯 하다.

취하도록 마시자는 우리나라의 전통이 아닌 유럽의 전통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모임은 으레 참석자 모두가 테이블 아래에 뻗는 것으로 끝이 났고 그보다 일찍 자리를 피하는 것은 동석자들을 향한 엄청난 모욕으로 여겨졌다. 권한 술을 사야하거나 건배에 화답하지 않는 것 또한 상대를 향한 엄청난 모욕이었다. 술잔을 피하는 사람은 겁쟁이나 약골이란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 했다.

중세에는 음주가 영적 생활에 속했다. 깨끗한 식수가 부족한 탓에 알코올음료가 사랑을 받았던 탓이기도 한데 술에 강한 사람이 역시 우대받는 시대였던 것이다.

19세기 들어서야 만취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알코올 중독이란 개념이 생기기 시작하고 커피가 전해지면서 그리고 상류층이 일반대중과 차별화하기 위하여 음주 습관이 점차 바뀌게 되었다.

상류층은 점점 시민들과 차별화하기 위해 노력했고 격식있는 궁중 예법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유럽 역시 처음엔 손가락을 이용해 음식을 먹었었다. 숟가락은 귀족만의 전유물이었고 대중은 공동 대접에 담긴 수프를 돌아가며 입을 대고 마셨다.

이 책을 통해 아무 근거없이 유럽의 예절 문화를 동경했다면 그 생각을 고쳐야만 할 것 같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금의 예절 이전의 그들의 매너는 우리보다 더 지저분했고 더 약삭빠른 문화의 일부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하다못해 침밷는 통이 방의 중앙에 놓여 있었고 언제 하늘에서 오물을 버릴지 몰라 반드시 모자를 쓰고 다녀야 했다. 요강은 식탁 바로 옆에 있었고 밤이면 운하 옆에 죽 늘어서서 오줌싸는 만취객들의 모습을 보는것도 일상이었던 것이다.

향수가 발달한 문화인 만큼 개인위생 역시 좋지는 않는데 손과 얼굴은 씻되 생식기는 잘 닦지 않았고 속옷도 거의 갈아입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생활은 아무 거리낌 없이 공개됐다. 교회 성직자에 의해 욕망을 억제하기 위한 규칙들이 만들어지긴 했지만 실제 생활의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중세의 기사들은 거칠것 없이 성적 욕구를 표현했고 그 절정은 공중목욕탕에서 이루어졌다.

여자들의 사회적지위는 낮았고 남성중심적 사회였다. 여자들의 정절을 지키자고 외치는 것은 성직자들의 공허한 외침이였던 것이다.

이렇듯 다른 나라의 문화를 아는 것은 중요하지만 동경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자명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의 문화, 예의가 우월하다고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경계심을 갖지 않도록 그들의 매너를 지키기만 하면 될 것이다.

시대에 따라 예의나 매너 또한 바뀌게 되는데 직장 내 존칭의 변화라든가 갑질행위의 규제와 같이 유럽의 예의나 문화는 근 1~2백년 사이에 많이 바뀌었던 것 같다.

그것이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매너인데 그 이면의 숨겨진 이야기를 알고 나니 더 이상 그들이 신사라고 생각되지 않기도 하다.

물론 지금의 그들이 중세시대 사람들이 하던 행위의 뜻을 알고 하지는 않을 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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