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그리스도인을 찾습니다 - 위대하지 않은
이재훈 지음 / 두란노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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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to great!!

오래 전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가 유행했던 적이 있다.

자본주의 시대에 더 위대해지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일 것이다. 그러나 그 가치가 교회에 들어오면서

'좋은 교회를 넘어 위대한 교회가 되자' 는 표어가 나돌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는 선한 목자다" 라고 말씀하셨지 "나는 위대한 목자다" 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우리는 선한 목자이신 그리스도와 같이 선한 행실로 살아가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Great to good!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태복음 5:16)"

마틴 루터는 '선한 사마리안의 비유' 를 이렇게 해석했다. 강도 만난 자를 보고 그냥 지나간 제사장과 레위인에게는 마음속에 가장 먼저 이런 질문이 던져졌을 것이다.

'만약 내가 여기서 멈춰 이 사람을 돕는다면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

그러나 선한 사마리아인은 이 물음을 거꾸로 뒤집었다.

'만약 내가 여기서 멈춰 이 사람을 돕지 않는다면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

우리는 점차 이기주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무엇이든지 나의 이익이 우선이고 나의 권리가 우선이다.

광화문 앞엔 매일같이 사람들이 모여 자기들의 이야기를 주장한다.

젊은 세대든 중년 세대든, 자영업자든 직장인이든 자기가 더 힘들다고 한다. 남녀간의 대립도 점차 커지고 있다.

각 국가의 지도자들도 자기나라의 이익만 내세우지 평화와 공존은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의 꿈은 위대한 무언가가 되어야 한다고 세뇌되었다.

선한 영향력이란 말은 점차 힘을 잃어가고 있다. 돈의 영향력이 더 위대해진 느낌이다.

행복도 기쁨도 돈으로 살 수 있을것만 같다.

나는 누구의 이웃이 되어야 할까.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은 누구였을까? 그것은 제사장도 아니요 레위인도 아닌 차별받던 사마리아인이었다.

우리의 선한 행실로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

나의 선한 행실로 나의 동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

故 김영길 한동대학교 초대 총장이 주장하신 '공부해서 남 주자' '돈 벌어서 남주자' 란 말은 위대한 삶이 아닌 선한 삶을 살다가 가신, 나 중심의 삶이 아닌 이웃을 위해 살아야 하는 선한 그리스도인의 모습과 같다.

2019년을 돌아보며 이재훈 목사님의 '선한 그리스도인을 찾습니다' 을 읽고 나니 한 해를 정리하고 2020년의 새로운 마음가짐을 다지게 된다.

스스로의 고통에 매몰되지 않도록, 돈에 눈이 멀지 않고 아픈 사람의 아픔을 돌아볼 수 있는 예수님의 마음과 눈을 갖게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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