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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있는 풍경
이혜리 지음, 홍현숙 옮김 / 디자인하우스 / 1997년 2월
평점 :
절판
철저히 미국인으로 살아온 손녀의 눈에 비친 한국 외할머니의 일상은 어떤 느낌으로 다가 올까? 과연 한국인의 삶을 생생히 전달 할 수 있을까? 이런 의구심을 품게하는 '할머니가 있는 풍경'은 그 첫 장을 넘기는 순간부터 그 불신을 말끔히 씻어준다. 400여 페이지에 이어지는 할머니의 태어나서 지금까지의 삶을 그린 이 책에는 나아가 우리 할머니, 어머니들의 일대기가 담겨져 있다.
소설의 주인공인 백홍용 할머니가 평생을 두고 소중히 간직해 온 가족사진들을 빛바랜 사진첩에 모두 모아 형상화한 표지 또한 독자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책 뒤쪽 표지에는 백할머니의 평생의 한이 되어버린 북에 살고 있는 큰 아들이 41년만에 보내준 빛바랜 아들의 흑백사진이 있음은 물론이다.
한 인물의 삶에는 희노애락이 녹아 들어가 있다. 소설은 그런 인물들의 단편을 피상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인생을 맛보기 정도로만 독자에게 느끼게 한다. 하지만 이 소설은 다르다. 삶의 단편이 아닌 한 인물의 일생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이야기 또한 다른 소설들이 작가가 만든 픽션일 뿐이라면 이 소설은 주인공이 숨쉬며 생생히 들려준 살아 있는 이야기인 것이다. 이 소설은 두가지 관점에서 이야기를 이끌어 가고 있다.
바로 주인공인 백할머니와 그의 외손녀이자 이 소설의 작가 이혜리씨이다. 백할머니가 거부할 수 없는 운명에 맞서 삶을 개척해 나가는 한국 어머니상의 표본이라면 이씨는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자신의 근본에 대한 끊임없는 갈등을 겪고 있는 이민 2,3 세대를 대변해 주고 있다. 이 서로 다른 삶의 인물들은 할머니가 이야기를 하고 손녀가 그 삶을 글로 씀으로써 화해점을 맞이한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누구나 읽고 공감할 수 있을 정도로 이야기는 쉽게 풀어져 전개된다. 왜냐하면 그 글을 쓴 작가가 한국에 대해서는 무지한 한국계 미국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감동은 전혀 인위적이지도, 질이 낮지도 않다. 삶이란 너와 나,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공통분모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