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지 않습니다 - 최지은 기자의 페미니스트로 다시 만난 세계
최지은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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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심은 있었지만 누군가 이 책을 읽고 또 읽었다는 말을 듣고 더 읽고 싶어졌다.

 

 수많은 통계와 기사, 연구서를 각주로 단 이 작품은 소설의 형식을 빌린 일종의 한국 사회 보고서이자, 완곡한 방식으로 쓰인 고발장이기도 하다. <82년생 김지영>을 읽은 남자들 중 상당수가 "일부러 극단적인 사례만 모아 왜곡, 과장한 것 같다"며 떨떠름한 반응을 보인 것과 달리, 김지영 또래의 많은 여자들은 "김지영 정도면 비교적 운 좋게 무난하게 산 편"이라며 쓴웃음을 지은 것처럼.

 

                                                                                     -본문 35쪽-

 

오늘날 많은 페미니즘 서적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베스트셀러 순위에도 몇 권 쯤은 꼭 상위에 올라와 있는데 번역서나 학자들이 쓴 대다수의 책들은 난해하고 어렵다는 장벽이 있다. 이 책은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TV, 영화, 연예인들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보니 일단 친숙하고 재미있다. 그리고 평소에는 심각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부분들도 다시금 되새기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지금은 사라진 커뮤니티, 메갈리아에 대한 내 기억 또한 새벽 무렵 종종 올라오던 근친 성폭력 생존자들의 고백 글들에서 시작된다. 아버지, 오빠, 남동생, 삼촌, 사촌 등 가까운 사람에게 입은 상처를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는, 심지어 어렵게 털어놓았음에도 가족들이 가해자를 격리하거나 징벌해 주지 않고 조용히 넘길 것을 종용해 혼자 잊으려 노력해 왔다는 글들 아래에는 "네 잘못이 아니다"라는 댓글이 수십개씩 이어졌다. 그리고 생존자들은 말했다. "이렇게 말해 주는 사람은 너희가 처음이다." 메갈리아에서 읽었던 수많은 글 가운데, 나는 유독 그 말들을 잊지 못한다.

 

                                                                                    -본문231~231장-

 

 

 

그래서 자신이 페미니스트임을 드러내는, 혹은 누군가 페미니즘을 지지한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믿는 사람들은 '메갈'이 된다. 그가 메갈리아의 회원이었든 아니든, 실제로 어떤 말과 행동을 했든 중요하지 않다. 과거 '꼴페미'라는 표현이 그랬듯, '메갈=여자 일베'라는 낙인은 메신저를 모독함으로써 메시지의 가치를 떨어뜨리기 위해 겨누어진다.

"너 메갈이지?" 는 사상 검증과 낙인찍기의 언어다. 메갈리아가 등장했을 때 '진짜 페미니즘'과 '메갈'은 다르다고 주장했던 이들은 수십 년 동안 여성운동가로 활동해 온 여성 국회의원을 향해서도 '골수 메갈'이라고 외친다.

 

                                                                                    -본문 234쪽-

 

2016년 11월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로 시작해서 작년 한 해 몇 권의 페미니즘 도서를 읽었다. 2016년 11월의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었지만 2018년 1월의 나는 페미니스트이다. 페미니즘을 잘 몰랐던 내가 페미니즘을 읽고 듣고 보고 이야기하는 내가 되어 가는 동안 세상은 많이 불쾌해졌고 나는 많이 유쾌해졌다. 마치 이 책의 내용처럼...

 

학교에서 양성평등교육이 아닌 페미니즘교육을 실시하는 그 날이 올 때까지 우리는 계속 달려야 한다.

 

 "너 빨갱이지?" 라는 말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투쟁이 있어 왔던가?

 

후대에는 "너 메갈이지?" 라는 말이 통용되지 않을 수 있도록 넘어지고 다쳐도 한 발 한 발 내딛는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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