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거포스트, 1663 2 - 리비우스의 책
이언 피어스 지음, 김석희 옮김 / 서해문집 / 2004년 12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집어들고서, 흔히 추리소설이 제공하는 엄청난 두뇌놀이나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기대하고 있다면 차라리 내려 놓는 게 낫다. 만약 '장미의 이름'처럼 엄청난 지식을 동반한 추리를 원한다면 어김없이 이 책을 들라.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처음 등장할 때 '장미의 이름'과 비교되었다. '장미의 이름' 못지 않은 엄청난 학식과 시대적 풍미를 반영한 지식적 추리소설이라나. 사실 이건 내가 처음 '장미의 이름'에 버금가는 추리소설이란 말에 생각한 것이고, 의외로 내 생각은 맞아떨어졌다. 문제는 역사적 무대에서 풍부한 학식으로 추리소설적 기법을 사용하여 내용을 전개했다는 것 외에는 공통점이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핑거포스트는 추리에 집중했다기보다는 추리를 이용한 편견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해 썼다고 하는 게 차라리 맞을 것이다.

핑거포스트 1663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저서 "노붐 오르가눔'에 나와있는 네 가지 우상과, 역시 "노붐 오르가눔"에 나오는 말이자 이 책의 원제이기도 한 'An Instance of the Fingerpost(길안내 표시가 가리키는 예)’를 그 바탕에 두고 있다. [시장의 우상]의 마르코 다 콜라의 증언, [동굴의 우상]의 잭 프레스콧의 증언, [극장의 우상]의 존 월리스의 증언, 그리고 마지막으로 [핑거포스트]의 역할을 하는 앤소니 우드의 증언. 작가는 종족의 우상만 제외한 채 세 가지 우상과 핑거포스트를 갖고 스토리를 진행해 나간다. 한 증언을 읽고 다음 증언을 이어 읽으면서 그 전 증인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는지 발견하게 될 때마다, 또 각 증언과 상관없이 증인 스스로가 갖고 있는 생각들이 얼마나 무지에 의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지 발견할 때마다 어서 마지막 핑거포스트를 읽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가장 큰 문제점은 마지막 '핑거포스트'에 있다. 앞의 모든 편견을 뒤흔드는 이 길라잡이가 과연 정말로 편견이 없는 정직한 길라집이일까? 앞의 편견들로 인해, 이 마지막 증언마저 편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오히려 네 가지 우상 중 어찌된 영문인지 혼자만 빠져버린 [종족의 우상]을 범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어쩌면 작가는 말하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아무리 사람이 애써 모든 것을 객관적으로 보려하고 편견없이 인정하려 들어도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전지전능함이 없는 한 결국 편견에 사로잡힐 수 밖에 없음을...

아니, 어쩌면 저것마저 나의 편견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을 자신 있는 사람, 혹은 독특한 구조의 추리 소설을 통해 깊이 생각할 거리를 한 번 얻어보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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