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애쉬블레스 > Clive Barker, 'The Thief of Always'
시간의 도둑
클라이브 바커 지음, 소서영 옮김 / 황금가지 / 2002년 1월
평점 :
품절


     

1995년 Grand Prix de l'Imaginaire Jeunesse 수상 (aka 'le Voleur d'éternité' in French edition)

이제 열 살 먹은 Harvey는 만사가 귀찮고 따분하기만 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Rictus라는 사람이 Harvey의 방에 마술처럼 나타나 자신이 멋진 곳, 매일 낮에는 태양이 따사로이 빛나고 매일 밤에는 섬뜩한 신비로움으로 가득 찬 the Holiday House로 데려다 주겠다고 제안한다. 처음에는 망설이던 Harvey도 계속되는 Rictus의 유혹에 넘어가, 엄마에게도 아무 말 없이 Rictus를 따라 집을 나선다.

그렇게 Rictus의 손에 이끌려 the Holiday House에 온 Harvey. 아침은 따스한 봄으로 시작해서 후덥지근한 여름인 점심을 지나 온종일 뛰어놀다 보면 저녁 먹기 전에 가을잎이 떨어지고 어느새 할로윈의 저녁이 찾아온 뒤 자정에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으면 하루가 지나간다. 이렇게 신선놀음을 즐기던 Harvey는 어느 날 the Holiday House와 그 주인인 Mr. Hood의 무서운 비밀을 알게 되고, the Holiday House에서 보낸 시간에 대해 자신이 치뤄야 할 대가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The Thief of Always'는 바커가 처음으로 쓴 young adult fantasy로, 에로티시즘과 적나라한 잔혹함으로 덧칠된 이전의 비블로그래피를 돌이켜 보면 상당히 이례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화기이기도 한 바커는 이 소설 안에서 사용된 30여 점이 넘는 삽화를 직접 그리기도 했다.

일단 소설을 처음 읽고 나면, 시간을 훔처가는 존재라는 모티프에서 많은 독자들이 미카엘 엔데의 '모모Momo'와 유사하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모모'에서 엔데가 시간과 대립쌍을 이루는 것으로 제시하는 것이 금전으로 환산 가능한 현대적 효율성인데 반해, 바커가 'The Thief of Always'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시간, 그리고 시간과 길항(拮抗)적 관계로 결부된 생명vitality의 문제라는 점에서 두 작품은 확연히 다르다. 이 점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이 바로 소설의 20장인 'The Thieves Meet'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기 위해 the Holiday House로 돌아온 Harvey는 다락방에서 드디어 Hood와 조우하게 되는데, 이때 Hood는 이곳에 머물렀던 아이들로부터 빼앗은 시간을 조그마한 공처럼 만들어 한창 빨아들이고 있는 중이다. 이 장면에서의 Hood는 흡사 에스파냐의 화가 고야의 작품인 '아이를 잡아먹는 사투르누스'의 모습을 방불케 하는데, 재미있는 건 로마 신화의 사투르누스가 그리스 신화에서 크로노스(시간)와 동일한 속성을 지닌 신이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자면, Harvey가 맞서 싸워야 하는 대상은 모든 것을 낳는 동시에 자신이 낳은 것들을 무(無)로 되돌리는 시간 그 자체인 것이다. Hood는 Harvey의 영혼도 손에 넣기 위해 Harvey를 회유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Now I understand," He said.
"Understand what?"
"Why it is you came back."
Harvey began to say: I came for what you took, but Hood was correcting him before he'd uttered two words.
"You came because you knew you'd find a home here," Hood said. "We're both thieves, Harvey Swick. I take time, you take lives. But in the end we're the same: Both Thieves of Always."

우리들 인간은 모두 각자의 분량만큼 시간을 지니고 태어나며, 그 시간을 생명으로 바꾸면서 살아간다. 따라서 우리가 가진 시간은 갈수록 줄어들고, 대신 생명은 그 시간이 다할 때까지 이어진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시간을 팔고 생명을 사는 불가역적인 거래인 셈이다. 이 거래의 천칭에서 Hood와 Harvey는 대척점에 놓여 있으며, 둘은 양립할 수 없는 관계로 끝없이 투쟁한다. 이런 이유에서 Hood는 Harvey 역시 자신의 동류이며 일종의 뱀파이어라고 말한 것이다.

"So I'll end up feeding on children, like you?" Harvey said. "No thanks."
"I think you'd like it, Harvey Swick," Hood said. "You've hot a streak of the vampire in you already."
There was no denying this. The very word vampire reminded him of his Halloween flight; of soaring against a harvest moon with his eyes burning red and his teeth sharp as razors.

실제로 앞부분에서 Harvey는 할로윈의 밤에 Hood의 종복 가운데 하나인 Marr의 도움을 받아 뱀파이어로 변신하는데, 아주 잠깐이나마 자신의 본능에 따라 친구 Wendell의 피를 마시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여기서 뱀파이어로의 변신은 Harvey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삶의 본질적인 조건, 살아남기 위해서는 끊임 없이 다른 생명들을 대신 희생시켜야만 한다는 평범하면서도 무자비한 진리를 상기시킨다. 이처럼 바커의 작품 속에서 빈번하게 나타나는 변신transformation이라는 모티프는 등장인물들로 하여금 자신의 존재와 이를 둘러싼 세계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계기를 제공함으로써 반대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한다. Harvey가 Hood의 네 번째 종복인 Carna를 어떻게 물리치는지 보라.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The Thief of Always'는 '모모'에 비해 작품 전체의 구도라는 면에서는 보다 중층적이고 복잡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작위적으로 작품의 엔트로피를 끌어올리려는 결말 처리에서는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그냥 깔끔하게 끝내는 것도 괜찮았을 듯 한데.

이제부터는 한국어판에 대해서 몇 마디 하겠다. 첫째, 제목인 'The Thief of Alwasy'는 앞서 언급한 대로 '시간의 도둑'인 Hood 뿐만 아니라 '생명력의 도둑'인 Harvey를 동시에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역자는 제목을 전자에 한정시켜 번역함으로써, 원제의 중의적 의미를 탈색시켰다. 'Always의 도둑', 다시 말해 '언제나 훔치는 자들' 쪽이 (좀 어색할런지는 몰라도) 의미상으로는 더 정확하다고 본다.

둘째, 왜 하필이면 이 책을 기획, 번역했는지가 의문이다. 읽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 책은 분량도 얼마 안 되고 어휘나 표현도 아주 쉽기 때문에 원서 처음 접하는 사람들도 큰 무리 없이 금새 읽을 수 있다. 게다가 작가의 전집을 번역할 것이 아닌 이상은 소개할 수 있는 작품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작가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들을 먼저 번역하는 것이 당연한 순서일 터, 그렇다면 바커의 장편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하는 'The Damnation Game'이 먼저 번역되었어야 했다.

PS. 제일 왼쪽의 표지는 바커가 직접 그린 Harpercollins의 하드커버 판으로, 앞뒤표지를 완전히 펼치면 the Holiday House의 사계절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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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09 22: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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