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의 전쟁
린바이 지음, 박난영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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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읽는 내내 뇌까린 한마디...그래 너 잘 났다... -,-

해설이나 역자후기에서 말하고 있듯이 이 소설은 잘 된 것이 아니다.

이따금 튀어나오는 몽환적인, 비현실적인 상황과 거기서 안개처럼 흘러나오는 독특한 감성은 충분히 훌륭하다. 그러나 그 모든 재능들이 오로지 자신을 자랑하거나 변명하려고 하는 것만 같아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때때로 그 자신을 삼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서술하는 것은 신선했다. 하지만, 허구라는 소설의 무기를 들었으나 사소설, 고백소설이라는 점에서 주인공 두오미는 분명 작가 자신일진데, 스스로를 바라보는 그 자아도취의 시선이 내내 거북살스러웠다. 특히 표절이라든가 유산, 결혼등에서는 소설을 자기합리화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는 씁쓸함이 느껴졌다. 자기의 지난 생을 '남김없이 토해'냈다는 그 처절한 문구에 걸맞지 않게도 지나온 생에 대한 나르시즘적 서술만 난무할뿐 자기 반성이나 성찰의 자세를 찾지 못한 것은 내 미숙한 독서탓일까.

린바이가 '여성으로 산다는 것, 그 절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가? 아니다. 린바이가 린바이로 살아왔던 것, 적어도 그 절망에 대해서는 확실히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린바이, 혹은 두오미의 삶이 여성으로 산다는 것을 대표할 순 없다.

남자보다, 혹은 그만큼 강해지고 싶고(나는 이런 생각에게서 위험을 느낀다), 남들 (다른 여자들?)과는 다르고 싶고, 그러나 별다른 수 없이 남자에게 의존적이고 순종적인 두오미는 확실히 교육으로는 페미니즘의 이론을 주입받았으면서도 전통적인 가부장권의 여성으로 살아왔던 많은 여성들의 딜레마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소설이 그 딜레마를 부각시킨다거나 거기서 오는 갈등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말했다시피 소설은 내내 자아도취와 자기합리화에 그 모든 자리를 할애했다.

또한 육욕이 없었기때문에 자신이 동성애자가 아니라는 부분에서 나는 린바이의 의견에 반대한다. 이것은 동성애가 육욕만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치명적 위험을 안고 있다.

비록 이 소설에서 많은 실망과 짜증스러움을 얻었으나, 그녀의 몽환적인 상황들과 그것을 더욱 찬란하게 만드는 감성덕에 그녀의 다른 소설은 어떤가 궁금해진다. 그러나 정말 이 소설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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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벌레 여자 - 윤대녕 장편소설
윤대녕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1년 4월
품절


"전 말이죠, 컴퓨터가 너무 좋아요. 또 냉장고와 휴대폰과 신용카드도
마찬가지구요.(중략) 밤에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얼마
나 안심이 되는지 몰라요. 커다란 남자가 옆에서 코를 골며 자고 있
는 것같아요."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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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벌레 여자 - 윤대녕 장편소설
윤대녕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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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새벽녘까지 윤대녕의 [사슴벌레여자]를 다 읽고나서 늦게 깬 아침(?)이었다. 펼쳐든 조간신문의 1면 하단에는 [사슴벌레여자]가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 진입!'되었다는 광고가 나와있었다. 생각했다. 팬이란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구나. 그리고 '윤대녕'이라는 명성에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어졌다. (내가 여전히 광고에 속고 있다해도..)


1. SF영화의 모방

...누군가 나의 등을 두드려 뒤를 돌아보는 순간, 오수의 잠결이
밀려와 눈을 감았다 뜨는 순간, 어두운 계단 모서리에 지친 다리를 끌
고 잠시 앉아 있다 일어나는 순간, 우리들의 기억은 한갓 낡은 실처럼
쉽게 끊어져버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또한 낯선 골목 모퉁이를 막 돌
아 나올 때, 술에 취해 심야 버스에서 혼자 잠들어 있을 때,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난데없이 이별의 말을 듣게 되는 순간에도 어쩌
면 그렇지않을까. (p.208)

3인칭관찰자시점의 소설에서 불쑥 작가가 튀어나와 친절히 설명해주고 있는 이 부분이 나는 윤대녕이 이 소설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의 전부가 아닐까 생각한다. (흠..사실 이부분의 소제목부터 시점은 1인칭으로 바뀐다. --;; )
기억과 정체성의 문제(또한 '화려한 변신''21세기형 문제작'등이라고 불리도록했던 저 디지털문화의 기호들과 공상과학류의 소도구들)은 그러나 사실 새로운 것은 아니지 않은가.
기억이식, 검은 트렌치코트와 중절모와 하얀 데스마스크의 M들을 읽어내려가며 나는 <다크시티>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윤대녕이 말하고자 하는 것 역시 <다크시티>의 감독 알렉스 프로야스가 이미 했던 "SF를 통해서 인류의 역사와 기억이라는 존재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싶었다" 는 그것 아닌가. 물론 소재와 주제가 늘 새것일수는 없다. 그러나 괘씸한 것은 이미 앞서나온 많은 SF영화에서의 이미지들, 특히나 <다크시티>에서 윤대녕이 따온 이미지들이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나있다는 것이다. (너무 많아 열거하기 힘들다. 그리고 뒤에 뭔가 거대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는 음모이론조차 우리는 영화에서 익히 보아왔다.)
자 그럼 이제 [사슴벌레여자]에서 차수정이 죽어가며 했던 말과 영화 <블레이드러너>에서 레플리칸트 로이가 빗속에서 죽어가며 했던 말을 비교해보라.

"그동안저는 남들이결코 가보지 못한 곳들을 다녀봤어요. 어두
컴컴한 습기로 가득 찬 하늘. 비둘기들이 모여 사는 시체 소각장.
문을 닫은 지 이미 오래 된 시계공장. 나쁜 꿈들이 도깨비처럼
우굴거리는 음습한 방. 일 년 내내 시커먼 불길이 솟아오르는 밤의
유전. 이제 이런 기억들도 내게서 사라지겠죠." (p.169)

"나는 당신네 인간은 믿지 못할 것들을 보아왔어. 오리온좌의 옆에
서 불에 타던 전함. 탠하우저 게이트 근방에서 어둠속을 가로지르는
C-빔의 불빛도 보았어. 모든 그 순간들은 시간 속에서 사라지겠지.
빗속의 눈물처럼. 이제 죽을 시간이야."

이건 패러디인가? ㅡ,.ㅡ


2. 여자

주인공 이성호가 키우게 된 사슴벌레는 수놈 한마리와 암놈 두마리이다. 그들에게도 엄연히 질서라는게 존재하는데, '수놈이 두 마리의 암놈 중 하나를 선택해 짝짓기를 하고 있으면 다른 암놈 하나는 뒤로 물러나 절대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 것이다. (p.92) 이 일부다처제의 운명을보며
주인공이느낀묘한 슬픔과 엄숙함은 무엇일까. 암만 아니라고 생각해도 이 벌레들의 삼각구도는 어쩔수없이 소설속 인물들과 맞물린다. 서하숙과 차수정, 그리고 이명구이기도하면서 이성호이기도 한 남자주인공. (슈..슈퍼맨이다...-.-) 이 사슴벌레컴플렉스(?)를 보며 괘씸한 생각이 드는건 나뿐인가.
서하숙은 스스로도 외모컴플렉스에 시달리며 주인공이 특별히 성욕을 느끼는 여자가 아니다. (비록 그것이 기억상실의 충격이라는 핑계가 있긴 하지만. 그리고 한번 해보니 그녀는 대단했다!) 그러나 그녀는 주인공에게 의식주를 베풀어주는 여자이며 그에게 결국은 매달리는 여자다. 반면 차수정은 옆테이블의 사람들이 흘끔거릴 정도의 미인대회출신 모델이다. 이명구를 빌리긴 했지만 그녀는 성욕과 살의의 대상이다. (살의란 얼마나 섹시한가!) 그러나 차수정은 차갑고 손아귀에서 자꾸만 달아나는 여자다. 이 극과 극의 여성들은 얼마나 지리하고 고리타분한 판타지인가.


3. 댄디

윤대녕 소설속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적극적인 문화의 향유자들이다. 나는 그런 댄디적 취향은 그만 작가만의 것으로 하고 인물들은 좀 다르게 만들어 보라고 말하고 싶지만사실,그것은 나만의 욕심이기에 어쩔 수 없다. 다만 영화에서 배경음악이 갖는 효과와 같은 그런 문화적 기호들의 도움 없이도 그들의 내면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작가일텐데도 윤대녕이 끝내 그런 댄디의 습관을 고집하기에 답답한 마음이다. 그런 것들이 바로 '윤대녕표'라고 말할수도 있겠지만, 그 상표부터 떼어내고 거듭났을 때 비로소 우리는 '윤대녕문학의 화려한 변신'이라는 광고문구에 고개 끄덕여줄 수 있을 것이다.


4. 사이보그가 아닌 인간

다분히 SF적인 장치들때문에, 그리고 디지털문화의 기호들때문에 이 소설은 유난히 '사이보그'라는 말이 부각되었다. (그런데 <가타카>는 사이보그가 아닌 유전자조작 인간들을 다룬 영화 아닌가...) 물론 그들은 사이보그 같은 인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서하숙이 한 말을 예로 들자면 이렇다.

"전 말이죠, 컴퓨터가 너무 좋아요. 또 냉장고와 휴대폰과 신용카드도
마찬가지구요.(중략) 밤에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얼마
나 안심이 되는지 몰라요. 커다란 남자가 옆에서 코를 골며 자고 있
는 것같아요."

사이보그의 갑옷을입은것 같지만 결국 서하숙이 원하는 것은 냉장고가 아닌 커다란 남자이다. 냉장고는 커다란 남자라는 본질에 대한 페티쉬(fetish)의 대상일뿐이다.

이 소설에서 내가 건진것은 이 몇줄이다. 이것이 바로 윤대녕의 진정한 능력아닌가. 다만 이 소설에서 윤대녕이 공상과학영화를 빌어 욕심을 부렸던 것, 여전히 고루한 여성에 대한 판타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등은 내내 찝찝함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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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방 2005-01-31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보.. 솔직히 난 윤대녕이 싫소이다..
 
서바이버 메피스토(Mephisto) 9
척 팔라닉 지음, 최필원 옮김 / 책세상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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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팰라닉의 소설은 다분히 시각적이다. 영화화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던.

페이지와 목차순이 거꾸로 되어있는 게 재미있던. ^ ^;

그러나 무엇보다, 툭툭 내던지는 듯한 문장 문장, 읽고 있는 나도 씨익~하고

삐딱하게 웃게 만들던 냉소, 그리고 무엇보다!

어떤 말로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건

책을 펼치면  "세상이 싫어"라는 팰라닉의 투덜거림이 들려서 좋았던!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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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트 클럽 메피스토(Mephisto) 1
척 팔라닉 지음, 최필원 옮김 / 책세상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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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팰라닉이 이 싫은 세상에 대응(?)하는 방법은 폭력적이다.

제목에서부터 적나라하게 주장하는 <파이트 클럽>.

이 으르렁거리는 짐승들, 이들의 과잉된 테스토스테론이 나에겐

조금 부담스럽기도 하다. 글쎄, '자연으로 돌아가자'라는 말이

'야수로 돌아가자'란 말과 상통하는 건 아닐것 같은데.

스트레스로 억눌린 현대인들에게 그것을 폭발시키라는 의견은

충분히 통쾌하고 후련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궁극적인 무언가를

해결해주진 못할께다. 팰라닉이 그 냉소적인 시선으로 현대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파악하고 풍자하는 탁월한 능력을 가졌음은 부인할 수 없지만,

그가 말하고 있는 것들을 해결책이라고 볼수는 없다. 어쩜, 그건 이 책을

읽고 난 우리가 생각하고 제시해야할 것인지 모른다.

 

어쩌다 내가 이렇게 평화주의자가 되었나...사실 나는 보기와 달리 (?)

매우 착한(?) 놈일지도 모른다.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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