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 - 제19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문미순 지음 / 나무옆의자 / 2023년 5월
평점 :
품절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

 

문미순 장편소설

나무옆의자

제19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

향년 76세 엄마가 돌아가셨다. 자신도 몸이 좋지 않은 50대 명주는 엄마의 연금 100만 원을 수령하기 위해 죽은 엄마를 13평 오래된 임대아파트 701호 나무관에 보관한다. 연금부정수령을 검색하며 불안한 마음대신 저지른 일을 무모하기 위해 위조, 부정의 방법을 찾기도 한다.

 

❄️

뇌졸중에 알코올성 치매인데도 술을 끊지 못하는 아버지의 돌봄과 생활비를 버는 옆집 702호 스물여섯 준성은 힘겹다. 아버지의 집안 생활만 있게 하기보다 공원 산책으로 바깥 활동도 시켜주고, 집안일, 대리기사일을 하며 물리치료시를 따기 위해 준비한다. 아버지 국민연금 62만 원, 한 달 평균 대리운전 수입 100만 원을 벌지만 형이 집을 담보로 대출해간 돈이 3천만 원의 이자를 갚는 것 외에 대리운전 중 벤틀리를 긁게되고 차주로 부터 2천만 원이라는 큰돈을 요구한다.

 

❄️

명주는 백화점 신발 가게 매출 올리느라 진 빚이 2천 만원에 철 없는 딸 은진의 사고 수습 2천만 원까지. 시댁에 이혼을 하고도 돈 한푼받지 못해 생활이 어려워져 도망치다시피 엄마집으로 왔다. 돌봄과 자신의 힘겨운 처지가 더해져 윤리따윈없이 생존을 위해 엄마의 죽음을 은폐하는 결정을 내렸다.

나는 과연 그런 상황에 놓여 엄마의 연금을 받기위해 죽음을 덮음으로 잠시 몸이 편해질 수 있다면 그런 일을 벌였을까. 도리를 다하고 길거리에 나 앉을정도의 궁핍함으로 기초생활조차 할 수 없을 미래 때문에 스트레스로 하루하루 버티며 살지 않았을까.

 

❄️

명주도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엄마의 시신을 두고 있지만 힘들 때 엄마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었을 것이다. 엄마의 얼굴을 마주 본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따뜻함이 느껴질텐데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이 사무치도록 그리움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

삶의 곳곳에 존재하는 불안들 중 하나는 자식된 도리로 부모님요양을 해야할 것이라는 불안이 있다. 이 책은 불안이 현실에 놓여 있는 인물들을 묘사하는데 임대아파트 살고 소득도 일정하지 않다. 그래서 일정 소득이 있고 계획을 세울 수 있는 사람들과 더 비교되는 삶과의 전쟁같다. 먹고 살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병원비에 요양원은 커녕 기저귀와 약값에 대한 부담이 증가되어 암울한 생각과 어둠이 가득이다. 하지만 순박한 인물들은 그래도 잘 살아보겠다고 삶을 놓치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

충분히 간병을 할 수 있다고 마음을 먹지만 자신의 착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무너지게 되는 것 같다. 돈을 벌어야 할 시간, 그 시간을 줄여 간병을 하면 될 것 같았지만 생활이 되지 않고, 돈을 벌기 위해 간병인을 고용하기엔 돈은 턱없이 부족하니까.

 

❄️

평범한 일상과 균형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을 준비할 수 있는 지금을 감사한 마음이 든다. 생존이 달린 문제에서 윤리라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지 질문을 던져주는 책이었다.

 

 


 


📖 책 속 밑줄긋기

 

명주는 엄마가 누워 있던 자리를 다시 바라보았다. 이제 곧 쉰 살이 되고, 더 이상 엄마가 벨을 눌러 자신을 부를 일이 없으리란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마침내 긴 간병의 터널에서 벗어났다는 홀가분함도 잠시, 혼자가 되었다는 두려움이 벨소리의 여운처럼 온몸으로 퍼져갔다. P11

 

아무도 명주가 누구인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통장에는 한 달간 먹을거리를 살만한 돈이 있고 아직은 따뜻한 햇빛이 머리를 비춰주는데, 명주는 신경이 곤두서 잠시의 햇빛조차 만끽하지 못하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 P16

 

진천할아버지의 등장은 명주의 계획에는 없던 일이었다. 할아버지는 계속 엄마의 안부를 묻고 퇴원 여부를 확인하러 올 게 분명했다. 문을 닫아걸거나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명주는 엄마의 핸드폰을 닫고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언제고 훌쩍 서랍 속의 약을 털어 넣고 미련 없이 떠날 수 있는 자유를 빼앗긴 기분이었다. P37

 

🔖연금 100만 원에서 한 달 생활비를 제하면 28만 원이 남았다. 명주는 몇 번이고 다시 계산을 한 뒤 28만 원에 동그라미를 쳤다. 28만 원은 엄마의 진료비를 내고, 병원 약, 기저귀와 패드, 영양 캔과 속옷 들을 사던 금액이었다. 이젠 그런 지출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다.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돈이 손에 쥐여진다는 얘기였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었다. 명주는 엄마가 남겨준 풍요와 여유가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P52

 

자린고비에 수전노처럼 아끼고 모아온 돈을 아버지는 든금없이 친구의 탄광 사업에 투자해 전 재산을 잃었다. 명주는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어야만 했고 관절염으로 일을 쉬었던 엄마는 다시 일을 나가야만 했다. 남동생이 대학 입학을 앞두고 피자집 알바를 하다 오토바이 사고로 죽은 것도 그 즈음이었다. P67

 

🔖아직도 이 지겹고 지겨운 가난 스토리를 반복하나 싶어 짜증이 났다. 하지만 어느 순간 가족이 있는 집으로 총총히 돌아가는 그들을 보니 마음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이 꿈틀거렸다. 누구보다 자유롭고 홀가분하다 생각했는데 불쑥 엄마가 보고 싶었다. 그토록 지긋지긋해 마지않던 엄마가 사무치도록 그리웠다. P62

 

🔖엄마의 집을 빼앗고 요양원에 유폐시켜놓은 아들이나, 엄마를 미라로 만들어두고 연금을 빼먹는 자신이나 하등 다를 게 없었다. 하물며 자신은 죽은 엄마가 흙으로 돌아갈 수조차 없게 만든 패륜아였다. 얼른 집으로 돌아가 숨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P101

 

🔖명주는 준성의 말을 들으면서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차라리 고아가 되는 게 나을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간병은 그 끝이 너무나 허무하고 너의 젊음을 앗아갈 뿐 아니라 결국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 수도 있다고. P124

 

🔖품위 있는 삶까지는 바라지도 않아. 생존은 가능해야 하지 않겠어? 나라가 못 해주니 우리라도 하는 거지. 살아서, 끝까지 살아서, 세상이 우리를 어떻게 하는지 보자고. 그때까진 법이고 나발이고 없는 거야. P218

 

 

 

#우리가겨울을지나온방식 #문미순 #장편소설 #나무옆의자 #북앤북 #제19회 #세계문학상수상 #신간도서 #서평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연금 100만 원에서 한 달 생활비를 제하면 28만 원이 남았다. 명주는 몇 번이고 다시 계산을 한 뒤 28만 원에 동그라미를 쳤다. 28만 원은 엄마의 진료비를 내고, 병원 약, 기저귀와 패드, 영양 캔과 속옷 들을 사던 금액이었다. 이젠 그런 지출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다.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돈이 손에 쥐여진다는 얘기였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었다. 명주는 엄마가 남겨준 풍요와 여유가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 P52

아직도 이 지겹고 지겨운 가난 스토리를 반복하나 싶어 짜증이 났다. 하지만 어느 순간 가족이 있는 집으로 총총히 돌아가는 그들을 보니 마음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이 꿈틀거렸다. 누구보다 자유롭고 홀가분하다 생각했는데 불쑥 엄마가 보고 싶었다. 그토록 지긋지긋해 마지않던 엄마가 사무치도록 그리웠다. - P62

엄마의 집을 빼앗고 요양원에 유폐시켜놓은 아들이나, 엄마를 미라로 만들어두고 연금을 빼먹는 자신이나 하등 다를 게 없었다. 하물며 자신은 죽은 엄마가 흙으로 돌아갈 수조차 없게 만든 패륜아였다. 얼른 집으로 돌아가 숨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 P101

명주는 준성의 말을 들으면서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차라리 고아가 되는 게 나을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간병은 그 끝이 너무나 허무하고 너의 젊음을 앗아갈 뿐 아니라 결국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 수도 있다고. - P124

품위 있는 삶까지는 바라지도 않아. 생존은 가능해야 하지 않겠어? 나라가 못 해주니 우리라도 하는 거지. 살아서, 끝까지 살아서, 세상이 우리를 어떻게 하는지 보자고. 그때까진 법이고 나발이고 없는 거야. - P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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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2023.6
샘터 편집부 지음 / 샘터사(잡지) / 2023년 5월
평점 :
품절


『SAMTOH』 샘터 2023. 06

-운동의 즐거움

 


 

 

🏃‍♀️

운동을 매일 꾸준하게 해야한다는 것도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려면 꼭 해야한다는 것도 알지만 시작하기까지가 귀찮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운동하는 것을 유지하는지 운동을 통해 어떤 변화가 왔는지 읽고 싶어졌다.

 

🏂

특집에서 소개된 에세이, 독자사연, SNS 에세이, 공통인터뷰에서 달리기, 역도, 요가, 헬스, 걷기, 점핑 피트니스, 아쿠아바이크, 와인 요가, 크랙등반 등의 다양한 운동을 하는 사연을 읽으니 나는 왜 집에 소파에 누워 쉬기만을 바라고 있나 생각과 밖으로 나가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앉아 있을 수 없었다.

 

🚴‍♀️

운동하면 필라테스나 요가를 끊어 수강을 해야한다고 생각했는데 돈들이지 않고도 걷기, 달리기 등으로 쉽고 앱만 깔아 자신만의 루틴을 만들어 꾸준하게 하려는 모습이 많이 보였다. 퇴근 후 저녁시간에 운동을 하면 피곤하고 집안일과 아이들을 케어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핑계거리 삼곤했는데 늘어가는 몸무게와 잠깐 뛰어갈 일이 있을 때 근력이 딸리고 호흡이 가빠지는 내 모습에 이러다간 운동을 건강을 위해서가 아니라 필수적인 요소가 될 것 같았다.

당장은 어떤 운동이 나에게 맞을지 모르지만 하루 1시간 빨리 걷기를 하면서 변화되는 내 모습과 몸무게 감량을 꿈꾸어본다.

 

🏌️‍♀️

이번호를 끝으로 물방울서평단도 끝나는데 에세이, 행복일기, 이소영 아크컬렉터, 반려식물처방, 유희경의 흑백풍경 등 재미뿐만 아니라 내 주변의 감동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아 마음이 따뜻했었다.

 


 

 

📖특집_에세이2

<달리기가 길러낸 마음 근육> 최다정

 

심신의 균형을 잡으며 일과 생활 모두 끌어안고 가는 문제는 평생의 숙제이다. 공부에 집중하는 일상을 무심히 살다 보면 몸의 건강을 놓치고 생활이 망가지는 날은 또 찾아올 것이다. 그러나 그때마다 바깥으로 나가 몸과 화해했던 기억을 떠올려 운동하면, 다시 괜찮아질 거라 믿는다. 과거에 내 생활을 살렸던 달리기 경험이 뜻밖의 자극으로 되살아나 요즘 생활에 활력을 되찾아준 것처럼 말이다. 땀 흘려 삶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었던 경험의 힘은 아주 세서,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고 몸과 마음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P21

 

📖특집_에세이3

<‘중꺽마’의 자세로 들어올리는 무게> 정연진

 

기록이 꺾이기 시작하는 시점은 하늘만 안다고. 하지만 마음이꺽이기 시작하는 시점은 자신만이 결절할 수 있다고. 마음이 꺾이지 않는 한 지구를 들어올릴 힘은 충분하다. P25

 

📖특집_독자사연

<갱년기 우울증을 날려준 마라톤> 강현량

 

달리기를 시작한 지 어느덧 7년째인 지금, 난 여전히 조깅을 즐기고 있다. 운동하기 싫은 날도 있지만 그럴 땐 마라톤경주에 참가해 새로운 자극을 받는다. 올해 초에 참가한 ‘새해맞이 마라톤’에서는 유모차를 밀여 뛰는 아빠, 샴페인 병을 들고 마시면서 뛰는 청년들을 보면서 달리기릉 진정으로 즐기는 모습에 감명받기도 했다. P26

 

📖 오늘의 언박싱

<책과 거닐고 싶은 날엔 ‘산책가방’> 이승희

 

책을 읽는 행위는 산책과 많이 닮았다. 몰두하고 있던 일에서 잠시 벗어나 머리를 식히는 시간이니 말이다.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산책과 독서, 책과 함께 거니는 시간을 더욱 평온하게 만들어주는 가방 덕분에 일상의 여유는 더욱 농도가 짙어진다. P75

 

📖다시 읽는 법정

<스승이 떠난 자리에 남은 향> 원경

 

차담을 마치고 일어나 댓돌에 놓인 신발을 신고 방안에서 느끼지 못했던 바람이 일었다. 마당 앞에 내려다보이는 너르고 푸른 대숲이 파도처럼 일렁거렸다. 죽림(竹林)이 너른 금(琴)을 타는가. 한 칸 집에 살면서도 천 평 대밭이 푸르게 펼쳐져 있으니 청빈의 묘락이 여기에 있음을 그리 알았었다. P94



 

 

#SAMTOH #샘터 #월간샘터 #잡지 #매거진 #월간지 #정기구독 #잡지추천 #6월추천 #운동의즐거움 #운동 #오운완 #물방울서평단 #서평

 

❤︎ 물방울서평단으로 ‘샘터’로부터 도서지원 받았습니다.

심신의 균형을 잡으며 일과 생활 모두 끌어안고 가는 문제는 평생의 숙제이다. 공부에 집중하는 일상을 무심히 살다 보면 몸의 건강을 놓치고 생활이 망가지는 날은 또 찾아올 것이다. 그러나 그때마다 바깥으로 나가 몸과 화해했던 기억을 떠올려 운동하면, 다시 괜찮아질 거라 믿는다. 과거에 내 생활을 살렸던 달리기 경험이 뜻밖의 자극으로 되살아나 요즘 생활에 활력을 되찾아준 것처럼 말이다. 땀 흘려 삶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었던 경험의 힘은 아주 세서,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고 몸과 마음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 P21

기록이 꺾이기 시작하는 시점은 하늘만 안다고. 하지만 마음이꺽이기 시작하는 시점은 자신만이 결절할 수 있다고. 마음이 꺾이지 않는 한 지구를 들어올릴 힘은 충분하다. - P25

책을 읽는 행위는 산책과 많이 닮았다. 몰두하고 있던 일에서 잠시 벗어나 머리를 식히는 시간이니 말이다.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산책과 독서, 책과 함께 거니는 시간을 더욱 평온하게 만들어주는 가방 덕분에 일상의 여유는 더욱 농도가 짙어진다. - P75

차담을 마치고 일어나 댓돌에 놓인 신발을 신고 방안에서 느끼지 못했던 바람이 일었다. 마당 앞에 내려다보이는 너르고 푸른 대숲이 파도처럼 일렁거렸다. 죽림(竹林)이 너른 금(琴)을 타는가. 한 칸 집에 살면서도 천 평 대밭이 푸르게 펼쳐져 있으니 청빈의 묘락이 여기에 있음을 그리 알았었다.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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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문학동네 30주년 기념 특별판) 문학동네 30주년 기념 특별판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5월
평점 :
절판


『고래』


천명관 장편소설

문학동네 출판

 


 

첫 장부터 낯설게 느껴졌던 것이 설화소설이라고 할 만큼 초인적 인물이 등장하는데,

붉은 벽돌의 여왕이라 불리는 벙어리 여자 벽돌공 ‘춘희’이다. 춘희는 평대 마을에 팔백 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화재의 방화범으로 교도소 수감되었다가 오랜 교도소 생활 후 벽돌공장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평대 마을로 돌아오는 과정도 더위에 옷을 벗어던지거나 허기짐에 뱀을 익히지 않고 생으로 뜯어먹는 모습은 인류의 초기모습처럼 야만적이다.

 

고래 소설은 금복, 금복의 딸 춘희, 국밥집 노파, 노파 딸 애꾸, 금복의 남자들(생선장수, 걱정, 칼자국, 文 등), 쌍둥이자매, 코끼리 점보, 고래, 엿장수, 약장수, 벽돌공장, 영화관, 감옥, 다방 등 강렬하고 다채로운 캐릭터와 장소가 나온다.

 

시작은 거대한 몸집의 벙어리 춘희이야기였지만, 소설은 금복의 휘황찬란한 삶이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전설같은 이야기들이다. 책을 덮고나서 얼마나 금복이 남자들을 만났는지 남자들이 끊이지 않았던 기억밖에 없었다;; 첫 번째 남자인 나이많은 생선장수에게 재산을 불리게 해주고(금복이 생선을 10월에는 말리지 말라고 했지만 말을 안듣고 태풍을 만나 재산을 다 날린다), 춘희 아빠일 것 같은 임꺽정처럼 힘세고 거구인 걱정, 걱정이 다친 후 영화관의 서부영화를 보여주는 칼자국을 만나는데 이 칼자국이라는 인물은 이름 한번 길다 ㅋㅋ

'희대의 사기꾼이자 악명 높은 밀수꾼에 부둣가 도시에서 상대가 없는 칼잡이인 동시에 호가 난 난봉꾼이며 모든 부둣가 창녀들의 기둥서방에 염량 빠른 거간꾼인 칼자국'

게이샤를 사랑해서 손가락 6개를 자르며 오야붕이 되어야 했던 칼자국이란 인물을 죽이면서 금복은 거리의 부랑자 생활을 하게 된다.

 

춘희를 낳은 금복은 (생물학적으로 죽어 부랑자 중 누구일테지만) 죽은 걱정과 똑닮은 것을 보고 자식이지만 자신이 저지른 과오때문인지 멀리한다. 그 때문에 춘희는 항상 엄마의 품을 그리워하고 보고 듣지만 말할 수 없는 벙어리의 신체적으로 제한된 상황 때문에 더 삶이 외롭게 느껴졌다.

 

박색으로 인한 자격지심으로 세상의 원망만큼 돈을 많이 모은 국밥집 노파가 있다. 건달들이 찾아오고 자신이 눈을 찔러 애꾸가 된 딸도 찾아오지만 노파의 돈은 찾지 못했는데 시간이 흐른 후 금복이 그 국밥집을 사게된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날 추한 노파의 국밥집 지붕에서 쏟아져 나온 돈으로 남발안에 넓은 땅을 사서 벽돌 공장에서 벽돌을 찍어내는데 노파의 딸 애꾸가 벌을 뒤집어 쓴채 기이한 모습으로 나타나 금복에게 자신의 것이라며 돌려 달라 말한다. 노파는 귀신인지 실제 인지 모르겠지만 자신이 평생 모은 돈으로 사업 성공한 듯 보이는 금복에게 복수하는 듯 모든 것을 빼앗는다.

 

소설에서 자본주의의 법칙, 사랑의 법칙 등 법칙은 40번도 넘게 나오는데 꼭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야 만다는 것일까. 벗어날 수 없는 운명같은 느낌으로 그놈의 법칙들은 계속 된다.

 

개망초는 일제강점기때 우리나라에 들어와 강한 번식력으로 농사를 망칠만큼 많이 피어 개망초라 불리었다고 하는데 춘희가 가는 곳마다 개망초가 있었다. 그만큼 생명력이 강하다는 의미로 춘희가 죽음을 깨닫고 삶을 이어가는 모습이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기차를 타고 평대 도착해서부터 친근한 개망초를 글 모르는 춘희는 서명란에도 개망초로 사인을 했는데 이상하지 않았다. 책의 마지막 춘희가 벽돌을 굽고 죽음과 가까워지는 페이지에서도 텅빈 페이지에 개망초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어 춘희의 쓸쓸함이 더 느껴졌다.

 

작가는 중간 중간 “독자여, 조금만 더 들어보시라.” 라고 말하여 이야기꾼이 되어 읽는 재미를 더 돋우어주고, 화법은 아주 능란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책 속 인물들의 개성들을 화려하게 표현해주었다. 소설 전반적으로 금복의 특이한 향과 풍만함같은 전설적인 표현을 위해 쓰여야 했겠지만, 금복을 향한 남자들의 색정에 대한 묘사와 더불어 외설스런 느낌이 많았다.

 

교양있는 지식인, 일반적이고 평범함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가기 급급했던 밑바닥 인생들의 모습이 많았던 『고래』 속 여성들은 소설의 주인공이었고 남자들을 이용하고 죽이면서 욕망을 채워가는 모습이 흥미롭게 기억되었다.

 

 

📖 책 속 밑줄긋기

 

살들,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했던 비극적 운명의 주인공이자 영원히 벗어던질 수 없는 천형(天刑)의 유니폼처럼 그녀를 안에 가둬놓고 평생 이끌고 다니며 멀고 먼 길을 돌아 마침내 다시 이곳 벽돌공장까지 데리고 온 그 살들을 춘희는 문지르고 또 문질렀다.

P19

 

그녀가 진정 사랑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녀를 불안하게 만드는 그 단순한 세계였다. 그녀는 그의 육체를 신뢰했으며 그 거대한 존재 안에서 깊은 안도감을 느꼈다. 그래서 행복했다.

P72

 

그가 원하는 것은 그녀의 투정이었고 그녀의 눈웃음이었으며 그녀의 포옹과 눈물, 그녀의 숨소리, 그녀의 사랑만이 그가 진정 바라는 모든 것이었다. 그가 얻고자 하는 것이 궁극은 나오꼬, 금복의 모든 것이었으며 그것을 영원히 소유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사랑의 법칙이었다.

P107

 

🔖❁개망초.

그것은 춘희가 금복의 손을 잡고 평대에 처음 도착했을 때 역 주변에 무성하게 피어 있던, 슬픈 듯 날렵하고, 처연한 듯 소박한 꽃의 이름이었다. 이후, 그 꽃은 가는 곳마다 그녀의 뒤를 따라다녀 훗날 그녀가 머물 벽돌공장의 마당 한쪽에도,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혹독한 시간을 보낼 교도소 담장 밑에도, 그녀가 공장으로 돌아오는 기찻길 옆에도 어김없이 피어 있을 참이었다.

P150

 

춘희는 비로소 생전의 점보가 말하던 죽는다는 것의 의미를 깨달았다. 그것은 영원히 움직이지 않는 거였다. 파리가 눈에 앉아도 눈을 깜빡여 쫓지 못하는 거였고 차가운 비가 내려도 피하지 못하는 거였으며 다리가 아파도 앉아서 쉴 수 없는 거였다. 춘희에게 있어서 박제된 점보는 더이상 점보가 아니었다.

P218

 

사람들은 하는 일이 없어도 괜히 마음이 헛헛해 다방을 찾아가 독한 커피라도 한 잔 들이부어야 겨우 속이 차는 듯싶었다. 또한 다방에 앉아 하릴없이 이 말 저 말 옮기다보니 사람들간의 관계는 더욱 번잡스러워졌고 시비는 늘어났으며 오해를 풀고 화해를 하느라 술값이, 혹은 커피 값이 더 많이 들어가 소비가 더욱 촉진될 수 밖에 없었다. 사람들 마음속엔 어느덧 공허가 가득 들어찼고 금복은 이를 차곡차곡 돈으로 바꾸어나갔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법칙이었다.

P220

 

🔖그녀가 좁은 산골마을을 떠난 것도, 부둣가 도시를 떠나 낙엽처럼 전국을 유랑했던 것도, 그리고 마침내 고래를 닮은 거대한 극장을 지은 것도, 모두가 어릴 때 겪은 엄마의 죽음과 무관하지 않았다. 그녀가 고래에게 매료된 것은 단지 그 크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언젠가 바닷가에서 물을 뿜는 푸른 고래를 만났을 때 그녀는 죽음을 이긴 영원한 생명의 이미지를 보았던 것이다.

P271

 

그리고 마침내 그녀가 바라던 궁극, 즉 스스로 남자가 됨으로써 여자를 넘어서고자 했던 것이다.

P271

 

그날 춘희가 종이 위에 정성스럽게 그려넣은 것은 바로 공장 주변에 지천으로 피어 있던 개망초였다. 춘희가 서명란에 왜 개망초를 그려넣었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녀가 기차를 타고 평대에 처음 도착할 때부터 단숨에 그녀의 눈길을 사로잡은 이후, 개망초는 언제나 그녀에게 가장 친근한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던 터라 그녀가 조서에 개망초를 그려넣었다고 해서 이상할 건 하나도 없었다.

P309



 

 

 

마당엔 다른 잡초는 눈에 띄지 않고 오로지 개망초만이 하얗게 꽃밭을 이루고 있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마당 한쪽엔 짐승의 뼈로 보이는 뼈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으며 벌통으로 보이는 썩은 나무통이 몇 개 나뒹굴었다. 살림집으로 쓰인 듯한 건물은 이미 폭삭 주저앉아 그 위에도 개망초가 무성했다.

P402

 

 

그녀는 우리와 달랐으며 다르다는 이유로 평생 고독 속에서 살았다.

P415 에필로그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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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망초.

그것은 춘희가 금복의 손을 잡고 평대에 처음 도착했을 때 역 주변에 무성하게 피어 있던, 슬픈 듯 날렵하고, 처연한 듯 소박한 꽃의 이름이었다. 이후, 그 꽃은 가는 곳마다 그녀의 뒤를 따라다녀 훗날 그녀가 머물 벽돌공장의 마당 한쪽에도,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혹독한 시간을 보낼 교도소 담장 밑에도, 그녀가 공장으로 돌아오는 기찻길 옆에도 어김없이 피어 있을 참이었다. - P150

사람들은 하는 일이 없어도 괜히 마음이 헛헛해 다방을 찾아가 독한 커피라도 한 잔 들이부어야 겨우 속이 차는 듯싶었다. 또한 다방에 앉아 하릴없이 이 말 저 말 옮기다보니 사람들간의 관계는 더욱 번잡스러워졌고 시비는 늘어났으며 오해를 풀고 화해를 하느라 술값이, 혹은 커피 값이 더 많이 들어가 소비가 더욱 촉진될 수 밖에 없었다. 사람들 마음속엔 어느덧 공허가 가득 들어찼고 금복은 이를 차곡차곡 돈으로 바꾸어나갔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법칙이었다. - P220

그녀가 좁은 산골마을을 떠난 것도, 부둣가 도시를 떠나 낙엽처럼 전국을 유랑했던 것도, 그리고 마침내 고래를 닮은 거대한 극장을 지은 것도, 모두가 어릴 때 겪은 엄마의 죽음과 무관하지 않았다. 그녀가 고래에게 매료된 것은 단지 그 크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언젠가 바닷가에서 물을 뿜는 푸른 고래를 만났을 때 그녀는 죽음을 이긴 영원한 생명의 이미지를 보았던 것이다. - P271

그날 춘희가 종이 위에 정성스럽게 그려넣은 것은 바로 공장 주변에 지천으로 피어 있던 개망초였다. 춘희가 서명란에 왜 개망초를 그려넣었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녀가 기차를 타고 평대에 처음 도착할 때부터 단숨에 그녀의 눈길을 사로잡은 이후, 개망초는 언제나 그녀에게 가장 친근한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던 터라 그녀가 조서에 개망초를 그려넣었다고 해서 이상할 건 하나도 없었다. - P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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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안부
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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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안부』


백수린 장편소설

문학동네 출판

 

사실 책 대부분의 이야기는 언뜻보면 선자이모의 첫사랑 K.H 찾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세세히 들여다보면 꼬리표처럼 사고로 언니를 잃었다는 말 때문에 자신은 행복해 하면 안될 것 같다고 생각했고, 가족 모두가 힘든 시간에 자신으로 인해 슬프면 안될 것 같아 독일에서 외톨이가 아니라는 거짓말이 들키지 않게 하기 위해 꼼꼼하게 수첩에 기록했다. 벽을 치고 자신을 방어하며 살았던 시간 속에서도 따스한 손길을 내밀어주는 이모, 레나, 한수가 있었다.

 

특히, 이모는 해미의 드러내지 않는 외로움을 알아봐주고 자신이 만든 벽 안에 거리두며 사는 마음을 이제는 가까이 해도 된다고 말해주며, 찬란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해주는데 이런 이모를 곁에 둔다면 돌보지 않고 방치해둔 상처받은 마음도 위로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벚꽃잎 날리는 풍경을 보며 ‘왜 선자이모는 독일 파독간호사로 가게 되었는지’ 궁금해하는 장면이 있었다. “완전히 잊어버린 줄 알았던 기억들이 봄밤의 꽃향기처럼 밀려왔다.”는 문장을 읽는데 기억이 나는 순간을 이렇게도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구나 생각들었다. 그만큼 이모와 함께 풍경을 보던 기억이 좋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겠지만 어디선가 꽃향기가 날려오는 표현이라 참 아름답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독일로 갔던 파독간호사들은 타지에서 외롭지만, 한국에 돌아와도 이방인 같은 느낌이 있다고 했다. 나 역시 고향을 떠나 다른 도시에서 생활하지만 고향이 그리워 내려가도 며칠이 지나면 불편해서 집 생각이 난다. 언제까지나 고향의 사람들과 지역의 문화는 변화하지 않을 것 같았지만 그들도 그 장소도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하기에 내가 기억하고 내가 만나고픈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지도. 장소가 어찌되었든 나는 이방인처럼 살아야겠지만 서글프기보다 세상이 변화했다는 것을 이제는 조금 알아가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독파에서 소설의 첫 단어 ‘야자수’의 의미에 대해 물어보는 미션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독일에서 생활하는 자신이 이방인 같다는 생각으로 야자수 단어를 쓴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는데 마지막 제주도에서 “그런 야자수들이 살아남아 이젠 제주의 일부가 되었으니, 정말 아름다운 일이지?”라는 문장을 읽고는 야자수가 다른 의미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파독간호사 이모들은 독일에서 이방인이었지만 그곳의 일부가 되어 아우러져 살아갔으니.

 

한수를 위해 찾기 시작한 선자이모의 첫사랑 찾기는 결국엔 언니를 잃은 해미가 언니를 되찾고자 있을지 없을지 모를 인물을 찾아 헤맨 것이 아니었을까. 모두가 아픈 시간이고 지나고 나서야 깨닫겠지만 해미는 KH를 찾고 나서야 자신이 상처를 줄까봐 멀리한 우재에게 다가가는 용기를 낸다.

이런 해미를 보면서 내가 지나온 불안했던 시절 속에서 눈부신 안부를 전할만한 사람은 있었는지 떠올리게 했고, 그 포기하지 않은 시간들처럼 앞으로 또 그런 회복이 필요한 날들이 지나고 찬란한 삶과 눈부신 인생이 다가오길 바래본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있을 때 그런 마음이 되는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니라는 걸 그 시절 나는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우리가 벚꽃이 만개한 텅 빈 캠퍼스를, 마음을 흐트러뜨리는 바람에 부는 한강 둔치를 달아오른 얼굴로 함께 걷던 밤들이 있었으니까. P8

 

우리사이에 잠시 침묵이 흐르는 동안 내가 잊고 살았던 무언가, 이를테면 오랫동안 방치해두어 먼짓더미에 뒤덮인 어떤 책의 한 페이지가 비밀스럽게 열리는 기분이 들었다. 갈피에 사진 한 장이 끼워져 있는 책, 눈을 감자 그 사진이 보일 것만 같았다. P17

 


 

“쟤가 걔래. 그 사고로 언니를 잃은 애.” 그런 말을 떠올리면 나는 해나와 <뾰로롱 꼬마 마녀> 나 <바람돌이 소닉> 같은 만화영화를 보며 하하하, 웃다가도 입을 다물어야 했다. 누구든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하면 어떻게 언니를 잃고도 그렇게 웃을 수 있냐고 다그칠 것 같았으니까. 너는 언니를 사랑하지 않았구나. 나에게 그렇게 비난하듯 말할 것만 같았으니까. P29

 

그곳에서 나는 그저 온전한 나였고, 레나는 온전한 레나였으며, 우리는 온전한 우리였다. 그런 시간은 이모가 시장에서 떨이로 사온 무른 산딸기나 살구로 만들어주던 잼처럼 은은하고 달콤해서, 나는 너무 큰 행복은 옅은 슬픔과 닮았다는 걸 배웠다. P40

 

🔖하지만 나는 신을 통해서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도, 극복할 수도 없을 거라고 은밀히 생각하고 있었다. 신이 존재한다면 그렇게 잔혹한 방식으로 언니가 죽을 수는 없었다. P47

 


 

나를 바라보는 이모의 눈빛에는 따뜻한 애정이 담겨 있었고, 그 눈빛 앞에서는 아직 언니가 살아 있고 막내가 태어나기 전의 날들처럼 한없이 어리광을 부리고 싶어지곤 했다. P64

 

🔖이따금씩 청신한 바람이 휘어진 나뭇가지들을 건드리며 지나가면 바람결을 따라 꽃잎들이 저마다 다른 빛깔로 반짝이며 흩날렸다. 대부분은 나무 근처로 떨어져 내렸지만 어떤 꽃잎들은 조금 더 가벼운 듯 두둥실 날아가기도 했다. 멀리, 먼 곳으로. 그렇게 봄 풍경의 한가운데 서서, 어디론가 멀어지는 벚꽃잎들을 보고 있노라면 완전히 잊어버린 줄 알았던 기억들이 봄밤의 꽃향기처럼 밀려왔다. P73

 


 

🔖그건 언니가 떠오르면 죄책감이 느껴질 만큼의 행복이었다. 죄책감이 가슴을 쿡쿡 찌를 때마다 속으로 언니에게 말을 했을 만큼의 행복. “언니, 사람의 마음엔 대체 무슨 힘이 있어서 결국엔 자꾸자꾸 나아지는 쪽으로 뻗어가?” P109

 

🔖내 삶을 돌아보며 더 이상 후회하지 않아. 나는 내 마음이 이끄는 길을 따랐으니까. 그 외롭고 고통스러운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자긍심이 있는 한 내가 겪은 무수한 실패와 좌절마저도 온전한 나의 것이니까. 그렇게 사는 한 우리는 누구나 거룩하고 눈부신 별이라는 걸 나는 이제 알고 있으니까. P303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슬픔에서 회복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P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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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씩 청신한 바람이 휘어진 나뭇가지들을 건드리며 지나가면 바람결을 따라 꽃잎들이 저마다 다른 빛깔로 반짝이며 흩날렸다. 대부분은 나무 근처로 떨어져 내렸지만 어떤 꽃잎들은 조금 더 가벼운 듯 두둥실 날아가기도 했다. 멀리, 먼 곳으로. 그렇게 봄 풍경의 한가운데 서서, 어디론가 멀어지는 벚꽃잎들을 보고 있노라면 완전히 잊어버린 줄 알았던 기억들이 봄밤의 꽃향기처럼 밀려왔다. - P73

내 삶을 돌아보며 더 이상 후회하지 않아. 나는 내 마음이 이끄는 길을 따랐으니까. 그 외롭고 고통스러운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자긍심이 있는 한 내가 겪은 무수한 실패와 좌절마저도 온전한 나의 것이니까. 그렇게 사는 한 우리는 누구나 거룩하고 눈부신 별이라는 걸 나는 이제 알고 있으니까. - P303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슬픔에서 회복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 P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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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원이 되고 싶어 (0차원 에디션)
박상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0월
평점 :
품절


『1차원이 되고 싶어』


박상영 작가

문학동네 출판




 

북클럽문학동네 6기만 참여할 수 있는 <네덜란드판 출간 기념 문장투표 이벤트>에 선정되어 『1차원이 되고 싶어』한국판과 네덜란드판을 받았는데요. 작가님 친필 사인까지 ❤ 주셨답니다~(^^**)

 


 


내가 두고 온 한 여름밤의 청춘 이야기를 보는 듯 했다.

 

대구 수성못의 떠오른 시체 한구가 발견되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내가 나고 자란 고향인 대구가 배경이라 첫 장부터 궁금증 가득안고 시작이었는데, 지역 토박이만이 알 수 있고 우리 세대가 기억하는 장소와 디테일들은 향수를 자극하기 충분했다. 교동시장, 대구의 강남 수성구, 동성로 시내 카페, 로데오 옷가게 예쁜 언니들, 파르페와 무한리필 토스트까지.

 

봉인된 기억이 떠오르는 것으로 소설은 본격적인 시작이다. 수성못 시체가 발견된 뉴스와 익명의 DM 글을 확인하면서.

사실 나는 동성간의 연애 소설은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소설은 터질듯한 육체적욕망으로 확 나가버리는게 아니라 사춘기 소년의 ‘그래도 될까, 정말 내가 그럴까’ 하는 갈팡질팡하는 마음과 사랑에 대한 순수함이 나타나 장면들이 아름답게 다가왔다.

 

예쁘장하지만 약해서 괴롭힘을 받는 타겟이 된 태리를 보면서 나는 태리와 다르다며 선을 긋고 우등생으로 태리처럼 되지 않기 위해 멀리하는 비겁함이 내 안에서도 있었기 때문일까. 그 비겁함이 결국에는 아무에게도 들키지 말아야할 비밀이었고 비밀을 덮고 감추기위해 추악해져가는 모습과 모른척한다고 달라지지 않는 사실로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더욱 외롭게 만들었다.

 

오래방에서 윤도가 목캔디를 입에 넣어주는 장면은 남녀가 아닌 상황이지만 달달함에 나도 모르게 슬며시 미소 지으며 보게 되었다.(남자 동성간의 미묘한 기류에 읽는 나는 왜 떨리는 건데. ㅎㅎ) 컨테이너에서만큼은 동성이지만 마음을 키워가는 것에 대해 허락될 것만 같고, 그 공간에서는 누구의 시선도 중요하지 않고 윤도와 나만 존재하는 1차원의 세계 같았다.

 

인물들이 매력적이라기보다 ‘나’의 덤덤하게 꺼내 놓는 속내들이 어쩌면 나도 학창시절 친구들에게 했던 행동들이 별 것 아니라고 그러면 안된다고 덮어두었던 감정들이 있었음을 대신 말해주는 것 같아서 조금 더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들에게 상처준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그 어린 시절을 일기장 속에 몰래 남겨둔 마음을 꺼내 본 것 같아 나도 모르게 ‘나’의 일상에 스며든 것처럼 좋기도 하면서 부끄럽기도 했다.

 

윤도를 두고 돌아나오는 나의 모습에서 둘만의 비밀관계는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청춘이었기에 뜨거웠고 아름다웠지만 말 못할 비밀을 갖고 있기에 그 세계 속에 인물들을 남겨두어야 할 것 같다.

 

끝으로,

박상영작가님 장편소설 계속 써주세요. ❤





🔖이렇게 갑자기 눈이 떠지는 밤이면 이 방에, 이 삶에 영영 갇혀버릴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곤 했다. 그럴때면 천장이, 하늘이, 온 세상이 통째로 날 짓누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영원히 끝나지 않는 천장과 나의 세계. 점점 더 몸을 움직이기 힘들어진 나는 천천히 심호흡을 시작했다. P91

 

🔖내가 알고 있는 윤도의 세계는 얼마나 단편적이었는지, 내 비밀의 무게에 짓눌려 남들도 자신 몫의 비밀을 짊어지고 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짐작도 하지 못할 만큼 나는 어렸고, 어리석었다. P125

 

🔖“너와 나라는 점, 그 두 개의 점을 견고하게 잇는 선분만이 존재하는, 1차원의 세계 말이야.”

지금도 방안에 누워 천장을 바라볼 때면 너를 생각해. 숨막히게 나를 짓누르던 너의 질량과 그 무게가 주던 위안을 기억해. P130



 

🔖 인생이 한쪽 방향으로만 흘러가고 있다고 믿었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모든 것들이 좀더 쉽고 간단했다. 나를 옥죄는 것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기만 하면 됐으니까. 그저 앞을 보며 힘껏 달리기만 하면 됐으니까. 십여 년 동안 끝없이 질주한 끝에 내가 다다른 곳은 결국 제자리였다.

때때로 절대 과거가 되지 않는 기억들도 있다. P131

 

🔖 윤도의 마음은 분명 나와는 다른 것 같았다. 함께 있을 때 우리 사이의 거리가 0에 가까운 것과는 달리, 타인과 함께 있을 때 윤도는 내게 곁을 내어주지 않았다. 그 간극이 나를 안달나게 만들었다. 어쩌면 그조차 내 과잉된 자의식이 빚어낸 오해일 수도 있지만. P187

 

🔖서로를 똑바로 바라보는 것. 그의 눈 속이 내가 들어 있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감각하는 것. 그 순간들이, 그때 우리의 마음이 다 진짜였다는 것. P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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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동네’로부터 도서지원 받았습니다.

"너와 나라는 점, 그 두 개의 점을 견고하게 잇는 선분만이 존재하는, 1차원의 세계 말이야."

지금도 방안에 누워 천장을 바라볼 때면 너를 생각해. 숨막히게 나를 짓누르던 너의 질량과 그 무게가 주던 위안을 기억해. - P130

인생이 한쪽 방향으로만 흘러가고 있다고 믿었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모든 것들이 좀더 쉽고 간단했다. 나를 옥죄는 것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기만 하면 됐으니까. 그저 앞을 보며 힘껏 달리기만 하면 됐으니까. 십여 년 동안 끝없이 질주한 끝에 내가 다다른 곳은 결국 제자리였다.

때때로 절대 과거가 되지 않는 기억들도 있다. - P131

서로를 똑바로 바라보는 것. 그의 눈 속이 내가 들어 있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감각하는 것. 그 순간들이, 그때 우리의 마음이 다 진짜였다는 것. - P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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