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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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양윤옥 옮김

문학동네 출판



 

음악과 함께 떠오른 사람들. 상실과 고통의 경험. 갑자기 떠난 사람들로 텅 빈자리를 오롯이 혼자 감당해 내야하는 외로움이 느껴진 소설들이었다. (하루키 작가의 변태스러움이 중간 중간 나오지만 순수한 인간의 욕망을 담은 것이라 생각하며 읽어봅니다^^;; ) 모든 화자는 남자라서 그런지 고독, 술과 여자로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들에 대해 찾으려고 애쓰는 모습들도 보였고, 외적으로 보이는 모습에 긴장감으로 버티는 모습은 어쩐지 안쓰러워 보이면서도 교양적이다. 반면에 난잡한 여자관계들로 인해 벌을 받는 듯 본인들이 걷어차이거나 버림받는 걸로 불행했다.

 

 

📚<드라이브 마이 카>


소설 속 인물들은 음악을 좋아하고 클래식, 팝, 재즈 가리지 않고 폭넓은 음악적 지식을 갖고 있다. 교양적이다.

연극배우인 가후쿠씨는 여자 운전사 마사키를 고용한다. 여자가 운전하는 것이 뭔가의 불안도 아닌 편안도 아닌 신경쓰인다는 사람이 말이다. 아내가 죽은 후 아내의 비밀을 알게 되고 배신감을 느끼지만 왜 라는 의문이 풀리지 않자 아내의 남자와 친구가 되어보기도 한다. 결국엔 뭐든 다 이해 안되는 일 투성이지만.

(뭉그적, 헤싱헤싱 적확했다는 표현들이 좋았던 소설)

 

가후쿠는 프로 배우였다. 자신의 몸에서 벗어나 타인을 연기하는 것이 그의 생업이다. 그리고 그는 있는 힘을 다해 연기했다. 관객이 없는 연기를. P28

 

 

📚 <예스터데이>


비틀즈의 예스터데이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부르던 기타루를 기억해서 쓴 글이다.

기타루는 덴엔초후에서 태어나 내내 거기서 자랐지만 간사이 사투리를 외국어 배우듯 악센트까지 외워 습득했다. 야구 커뮤니티에 잘 어울리기 위해서.. 참 이런 특이한 인물들이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데 (우리 주변에도 있을 법하고) 재미있는 건 화자도 나와 같은 시점으로 소설 속 인물을 독특하게 바라본다는 것. 그래서 더 공감하게 되는 듯하다.

 

 

"내가 어릴 적부터 한신 타이거스 광팬이라서 도쿄에서 한신시합이 있으면 꼭 보러 갔는데, 세로줄무늬 한신 유니폼 입고 외야 응원석에 가봤자 도쿄 말을 써버리면 아무도 상대를 안 해주더라고. 커뮤니티에 낄 수가 없는 거야. 그래서 이거 간사이 사투리를 배워야지 안 되겠다 싶어서, 그야말로 피눈물 나게 고생해가면서 공부했지." P66

 

아무튼 전부 없었던 일로 돌리고 완전히 새로운 인간으로 도쿄에서 새 출발을 하고 싶었다. 나라는 인간의 새로운 가능성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내게 간사이 사투리를 버리고 새로운 말을 익히는 것이란, 그러기 위한 실제적인 (또한 상징적인) 수단이었다. 결국 내가 하는 말이 나라는 인간을 형성하는 것이니까. 적어도 열여덟 살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P69

 

🔖음악에는 그렇듯 기억을 생생하게, 때로는 가슴 아플 만큼 극명하게 환기해내는 효용성이 있다. P112



 

📚 <독립기관>

 

의사인 도카이는 ‘내적인 굴곡이나 고뇌가 너무도 부족한 탓에, 그 몫만큼 놀랍도록 기교적인 인생을 걷는 부류의 사람’ 이라고 시작하는데, 이런 굴곡은 사실 본인이 만든 것은 아닐까 생각도 들었다. 불안감과 충족되지 못한 관계 속에서 여러 여자들과 만남을 갖거나 나름 만족하다고 할 수 있는 현재의 삶이 송두리째 사라지고 몸만 남는다는 상상도하며 사는 인물은 남에게 보이는 삶을 오히려 중요하게 생각하며 스스로를 힘들게 만드는 것 같다고 생각든다. 이 모든 것이 상사병으로 인한 것이고, 어이없는 죽음이지만 화자는 여자는 거짓말을 하기 위한 독립기관을 태생적으로 갖추고 있다며 편협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말한다. 여자가 그런 것이 아니라 독립기관이 그렇게 했다며 옹호하지만 이미 읽고 있는 여자 독자인 나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 화자를 바라볼 수밖에 없다. 흠흠

 

 

자신이 지극히 자연스럽게, 숨기는 것도 없고 꾸미는 것도 없이 있는 그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어디선가 꽂혀들어온 특별한 햇빛을 받아 그들이 자기 삶의 인공성을, 혹은 비자연성을 깨달았을 때, 사태는 비통하고 또 한 때로는 희극적인 국면을 맞이한다. P118

 

내게서 성형외과 의사의 능력이나 경력을 걷어낸다면, 지금 누리고 있는 쾌적한 생활환경을 잃는다면, 그리고 아무 설명도 없이 한낱 맨몸뚱이 인간으로 세상에 툭 내던져진다면, 그때 나는 대체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 P140

 

🔖만일 내가 어떤 이유로든ㅡ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ㅡ지금의 생활에서 어느 날 갑자기 끌어내려져 모든 특권을 박탈당하고 그저 번호뿐인 존재로 전락한다면, 나는 대체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 P142



 

📚 <셰에라자드>

 

하바라는 셰에라자드 여자를 만나며 그 여자에 대해 기록한다. 그 여자는 칠성장어였다는 기억에 대한 이야기(자신이 물고기였다는 건 왜 인지 아직도 이해는 안된다ㅠㅠ)와 십대 때 빈집털이 했던 이야기를 한다. 좋아했던 같은 반 남학생의 집에서 연필을 훔치고 자신의 탐폰을 두고 오고, 다음번엔 남학생의 축구공 배지를 가져오고 자신의 머리카락 세 올을 책 속에 끼워둔다. 특이한 여자이지만 하바라는 이 여자의 이야기를 듣고 또 다음 이야기를 기다린다. 언젠가 끝이 날 것을 아는 관계이지만 이야기를 더 듣고 싶은 마음은 서로에게 친밀한 시간이라는 것을 하바라는 안다.

 

 

열일곱 살의 내가 그의 어떤 점에 그토록 깊이 빠졌었는지, 그것조차 잘 생각나지 않아. 인생이란 묘한 거야. 한 때는 엄청나게 찬란하고 절대적으로 여겨지던 것이, 그걸 얻기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내버려도 좋다고까지 생각했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 혹은 바라보는 각도를 약간 달리하면 놀랄 만큼 빛이 바래 보이는 거야. 내 눈이 대체 뭘 보고 있었나 싶어서 어이가 없어져. 그게 나의 ‘빈집털이 시대’ 이야기야. P212

 

현실에 편입되어 있으면서도 현실을 무효로 만들어주는 특수한 시간, 그것이 여자들이 제공해주는 것이었다. P214

 

📚<기노>

 

아내의 외도로 ‘기노’는 자신의 이름을 딴 골목 안쪽의 작은 술집을 운영하게 된다.

의문의 가미타 손님은 늘 혼자 오고 책을 읽는다. 뱀이 나타나 떠돌이 생활을 해야 하는 기노의 이야기부터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았는데 자신이 마주하고 거쳐야할 고통을 피하기만 했던 과거에서 아직도 기노는 마음의 문을 닫고 있어 돌아갈 수 없는 것인지..

 

🔖나는 상처받아야 할 때 충분히 상처받지 않았다, 고 기노는 인정했다. 진짜 아픔을 느껴야 할 때 나는 결정적인 감각을 억눌러버렸다. 통절함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서 진실과 정면으로 맞서기를 회피하고, 그 결과 이렇게 알맹이 없이 텅 빈 마음을 떠안게 되었다. P265

 

📚<사랑하는 잠자>

 

눈을 떠보니 자신은 그레고르 잠자로 변신해 있다. 어딘지도 누군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집의 자물쇠를 수리하러 온 꼽추의 몸인 수리공 여자를 보고 성적 욕망을 느낀다. 밖은 전쟁통처럼 사람도 없고 검문과 탱크, 외국병사가 가득하니 조심하라고 말하며.. 이 잠자라는 사람은 전쟁 중에 정신줄을 놓은 사람인지 아니면 정말 다른 영혼이 들어온 것인지. 어려운 소설;;

 

설령 세계가 지금 당장 무너진다 해도, 그렇게 자잘한 일들을 꼬박꼬박 착실히 유지해가는 것으로 인간은 그럭저럭 제정신을 지켜내는지도 모르겠어요. P308

 

📚<여자 없는 남자>

 

사귄 여자 3명이 죽고, 죽은 여자의 남편은 나를 어떻게 알고 그녀의 부고를 전했는지 궁금하다. 소식을 전하는 남편은 말과 말 사이에 스페이스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정작 본인도 그 소식에 표현을 멈춰버린 침묵 상태다.

열네 살 때 만난 엠. 이름 없는 세 번째 여자를 그렇게 부르고 싶어 했고, 잃어버린 여자를 남편과 그 여자와 얽혔던 남자들을 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으나 여자 없는 남자들을 자신과 같은 감정을 느낄 것이라 생각한 듯하다.

 

근사한 서풍을 잃는 것. 열네 살을 영원히ㅡ십억 년은 아마 영원에 가까운 시간이리라ㅡ빼앗겨버리는 것. 저멀리 선원들의 쓸쓸하고도 서글픈 노랫소리를 듣는 것. 암모나이트와 실러캔스와 함께 캄캄한 바다 밑에 가라앉는 것. 한밤중 한시가 넘어 누군가의 집에 전화를 거는 것. 한밤중 한시가 넘어 누군가에게서 전화가 걸려오는 것. 지와 무지 사이 임의의 중간지점에서 낯선 상대와 만날 약속을 하는 것. 타이어 공기압을 측정하며 메마른 길바닥에 눈물을 떨구는 것. P327-328

 

🔖당신은 연한 색 페르시아 카펫이고, 고독은 절대 지워지지 않는 보르도 와인 얼룩이다. 그렇게 고독은 프랑스에서 실려오고, 상처의 통증은 중동에서 들어온다. 여자 없는 남자들에게 세계란 광대하고 통절한 혼합이며, 그건 그대로 고스란히 달의 뒷면이다. P332

 

#여자없는남자들 #무라카미하루키 #단편소설 #문학동네 #북클럽문학동네 #앰버서더 #독파 #독파챌린지 #완독 #가을독서 #외로운소설 #가을에어울리는소설 #책스타그램 #서평

 

❤︎ 독파 앰버서더 3기로 ‘문학동네’로부터 도서지원 받았습니다.

음악에는 그렇듯 기억을 생생하게, 때로는 가슴 아플 만큼 극명하게 환기해내는 효용성이 있다. - P112

자신이 지극히 자연스럽게, 숨기는 것도 없고 꾸미는 것도 없이 있는 그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어디선가 꽂혀들어온 특별한 햇빛을 받아 그들이 자기 삶의 인공성을, 혹은 비자연성을 깨달았을 때, 사태는 비통하고 또 한 때로는 희극적인 국면을 맞이한다 - P118

내게서 성형외과 의사의 능력이나 경력을 걷어낸다면, 지금 누리고 있는 쾌적한 생활환경을 잃는다면, 그리고 아무 설명도 없이 한낱 맨몸뚱이 인간으로 세상에 툭 내던져진다면, 그때 나는 대체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 - P140

만일 내가 어떤 이유로든ㅡ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ㅡ지금의 생활에서 어느 날 갑자기 끌어내려져 모든 특권을 박탈당하고 그저 번호뿐인 존재로 전락한다면, 나는 대체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 - P142

현실에 편입되어 있으면서도 현실을 무효로 만들어주는 특수한 시간, 그것이 여자들이 제공해주는 것이었다 - P214

나는 상처받아야 할 때 충분히 상처받지 않았다, 고 기노는 인정했다. 진짜 아픔을 느껴야 할 때 나는 결정적인 감각을 억눌러버렸다. 통절함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서 진실과 정면으로 맞서기를 회피하고, 그 결과 이렇게 알맹이 없이 텅 빈 마음을 떠안게 되었다. - P265

당신은 연한 색 페르시아 카펫이고, 고독은 절대 지워지지 않는 보르도 와인 얼룩이다. 그렇게 고독은 프랑스에서 실려오고, 상처의 통증은 중동에서 들어온다. 여자 없는 남자들에게 세계란 광대하고 통절한 혼합이며, 그건 그대로 고스란히 달의 뒷면이다. - P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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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칭 단수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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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칭 단수』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문학동네 출판




 


『일인칭 단수』의 단편은 총 8편으로 엉뚱하고, 오래전의 기억들을, 꺼내본 적 없는 감정들을 만난 것 같았다. 요즘 말하는 T보다 F가 가득한 소설. <찰리 파커 플레이즈 보사노바>, <위드 더 비틀스>, <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 봉태규 배우, 고선향 편집자와 함께한 zoom북토크!

(봉태규 배우님을 게스트로 초대하다니요~♥)

배우님이 인물들이 책에서 튀어나온 듯 재밌게 설명하는데 기억나는 건 소설 속 찌질남(들)과 불벼락 단어만 기억에 남습니다 ㅎㅎ 스몰토크처럼 웃고 떠들다 끝난 줌토크지만 하루키의 팬들이 모여 수다스럽게 인사한 느낌이라 좋았어요. 봉태규 배우의 추천 책은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과 김승옥 <무진기행>입니다.

 

 

 

📚<돌베개에>


우연히 동침한 사람과의 인연. 그래서인지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그녀이지만 말은 가집(일본 고유의 시가)으로 남았다. 사람은 죽으면 사라지지만 글은 사라지지 않는다. 글이 있는 한 그녀도 글 속에 존재하는 것.

 


매우 신기하게도(어쩌면 그렇게 신기한 일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사람은 눈 깜짝할 사이 늙어 버린다. 우리의 육체는 돌이킬 수 없이 시시각각 소멸을 향해 나아간다. 잠깐 눈을 감았다가 떠보면 많은 것이 이미 사라져버렸음을 깨닫는다. P24

 


📚<크림>

 

약속한 장소에 아무 것도 없어 거짓말 당한 것 같은 느낌에 존재한 것인지도 확실하지 않은 노인의 말까지 더해져 특별한 원이 뭔지, 하찮고 시시한 것이 뭔지, 특별한 크림같은 것에 대해 생각해보는 주인공. 진심이 없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볼 수 없었던 것일까. 엉뚱하고 수수께끼 같은 소설.

 


“그래도 말이야, 시간을 쏟고 공을 들여 그 간단치 않은 일을 이루어내고 나면, 그것이 고스란히 인생의 크림이 되거든.”

“크림?”

“프랑스어로 ‘크렘 드 라 크렘’이라는 말이 있는데, 아나?”

모른다고 나는 말했다. 프랑스어 같은 것은 전혀 모른다.

“크림 중의 크림, 최고로 좋은 것이라는 뜻이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에센스ㅡ그게 ‘크렘 드 라 크렘’이야. 알겠나? 나머지는 죄다 하찮고 시시할 뿐이지.” P44-45

 


📚<찰리 파커 플레이즈 보사노바>

 

뉴욕 시내에서 자신이 쓴 글의 음반이 있다! 레코드는 35달러라서 사지 않고 나왔는데 다음 날 가보니 그런 음반은 없더라는 거다. 어느 날 꿈에서는 버드가 나와 찰리 파커의 음악을 연주할 기회를 제공해주어 고맙다고 한다. 내가 쓴 소설의 인물이 꿈에 나오기도 하고 음반을 실제로 보기라도 한다면,, 상상력 풍부한 하루키 작가님 ㅋㅋ 역시 엉뚱하다.

 

학창 시절 내가 그런 글을 썼다는 사실 자체를 오랫동안 까맣게 잊고 지냈다. 그 뒤로 내 인생은 뜻하지 않게 분주해졌고, 어차피 그 가상의 음악 평론은 젊은 날의 무책임하고 속 편한 조크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약 십오 년 후, 그 글은 생각지 못한 형태로 나에게 되돌아오게 된다. 마치 허공에 던져놓고 잊어버렸던 부메랑이 예상도 못한 순간에 되돌아오듯이. P61

 


📚<위드 더 비틀스>

 

나이가 들어도 마음은 소년같다. 남자에게도 소년스럽다라는 말이 어울리는 소설.

고등학교 때 비틀스 음반을 들고 있던 소녀에게서는 ‘종’이 울렸다. 대신 '동경의 수준기 水準器' 평균에 속하는 여자친구가 새로 생겼는데 종이 울리지 않아 헤어지자 말했던 여자친구다. 약속날짜를 잘못알아서 여자친구 오빠와 둘이 집에 있게 되고 책을 낭독해주게 되는데 그 상황이 몹시 코믹하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문득 왜 하루키 작가는 열여섯 살 소녀를 소설에 자주 등장시킬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종이 울렸던 기억이 있어서였을까. 몹시 궁금^^;

 


꿈이 죽는다는 것은 어찌 보면 실제 생명이 소멸하는 것보다 슬픈 일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때로 매우 공정하지 못한 일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P76-77

 

심장이 딱딱해지면서 빠르게 뛰고, 숨이 가빠지고, 수영장 바닥까지 가라앉을 때처럼 주위의 소음이 사라지더니, 귓속에서 작게 종이 울리는 소리만 들렸다. 누군가 내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 무언가를 서둘러 알려주려는 것처럼.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십초 내지 십오 초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다. 느닷없이 일어났다가, 정신을 차리자 이미 끝나버린 일이었다. 그리하여 그곳에 있었을 중요한 메시지는, 모든 꿈의 핵심들과 마찬가지로 미로 속으로 사라졌다. 인생에서 중요한 사건들이 대개 그러하듯이.

고등학교 건물의 어둑한 복도, 아름다운 소녀, 흔들리는 치맛자락, 그리고 . P77

 

어떤 때는 그 감각을 얻었고, 어떤 때는 좀처럼 얻기 힘들었다(안타깝게도 종이 만족스럽게 울린 적은 없다). 또 어떤 때는 손에 쥐고도 어느 갈림길에서 허무하게 놓쳐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경우건 그 재현의 감각은 내게 항상 이른바 '동경의 수준기 水準器'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현실세계에서 그런 감각을 쉽사리 얻지 못할 때는 과거에 느꼈던 그 기억을 내 안에 조용히 소환했다. 그렇게 기억이란 때때로 내게 가장 귀중한 감정적 자산 중 하나가 되었고, 살아가기 위한 실마리가 되기도 했다. 큼직한 외투 주머니에 가만히 잠재워둔 따뜻한 새끼고양이처럼. P79

 

팝송이 가장 깊숙이, 착실하고 자연스럽게 마음에 스미는 시절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정말로 그런지도 모른다. 혹은 그렇지 않은지도 모른다. 팝송은 그래봐야 그저 팝송일 뿐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은 결국, 그저 요란하게 꾸민 소모품일 뿐인지도 모른다. P87

 

그것은 무언가를ㅡ우리가 살아간다는 행위에 포함된 의미 비슷한 것을ㅡ시사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에는 우연에 의해 어쩌다 실현된 단순한 시사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을 뛰어넘어 우리 두 사람을 유기적으로 이어주는 요소는 없었다. P120

 


📚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집>

 

야구를 좋아하고 삼백부를 쓴 책이 리미티드 에디션이 된 이야기.

하루키 작가 자신의 에세이 같은 글

 


📚<사육제>

 

추한 얼굴 아래 다른 가면이 있을 것 같은 F* 여자친구와 사육제에 대해 음악을 공유했던 기억을 회상한다. 그런 추억들은 기억 속 어딘가에 묻혔다가 우연히 음악을 들을 땐 내 마음으로 찾아와 지금을 흔든다. 음악에 대한 추억을 못생긴 여자에 비유하는 하루키 작가..정말 매력있습니다^^;;


다시 말해 그녀의 추한 외모는 갖가지 추함의 요소가 어떤 엄숙한 규칙하에 한데 불려와서 특별한 압축력으로 결정화한 결과였다. P158

 

그 가면의 미추보다는 오히려 그 안쪽에 마련되어 있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기 두려웠던 탓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악령의 얼굴이건, 천사의 얼굴이건. P172

 

그리고 그 뒤에 헤어지면서 받은 그녀의 전화번호 쪽지를, 나는 어딘가에서 영원히 잃어버리고 말았다. 말할 필요도 없이, 영원이란 매우 긴 시간이다. P181

 


📚 <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

 

우연히 들어간 쓰러져가는 료칸에서 말하는 원숭이를 만난다.(하루키 작가의 상상력이란 ㅎㅎ) 좋아하는 여자들의 이름을 훔친다는 원숭이는 왠지 어딘가 존재할 것만 같다. 내가 경험했던 기이했던 일에 대해 나 혼자만 알아야 할 때가 있는데 공유하고 싶지 않은 이유조차 설명하기 힘들 수 있다는 그 느낌을 잘 표현된 소설.

 

아무리 선명한 기억도 시간의 힘은 좀처럼 당해내지 못한다. P208

 


📚<일인칭 단수>

 

그녀는 기억 없이 내가 저지른 일에 대한 건지. 양복입고 바에 앉은 내 복장을 지적한다.

그녀도, 나도 상대방보다 내 기준이다. 감정의 이기심. 나를 방어하는 모습들이다.

그런 방어는 논리적으로 따지고 들거나 무례함에 대한 화를 내는 것도 모두 차단시킨듯하다. 유미의 세포들에 나온 감정캐릭터들이 생각났다. 내가 생각지 못한 상황에서 누군가의 감정 공격을 받았을 때 혼란스러움과 난처함 캐릭터 둘만 공격을 상대못하고 덩그러니 서 있는 모습이 상상됐다.

 

어쨌든 지독히 불쾌한 어떤 감촉이 입안에 남았다. 삼키려 해도 삼킬 수 없고, 뱉어려 해도 뱉을 수 없는 무언가다. 할 수 있다면 그냥 화를 내고 싶었다. 그도 그럴 게 이렇게 터무니 없는, 불쾌한 일을 당할 이유가 없으니까. 그리고 나를 향한 그녀의 처사는 아무리 생각해도 공정하다고 하기 힘들었으니까. 어쨌거나 그녀가 말을 걸어올 때까지는 제법 기분좋고 평화로운 봄날의 저녁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신기할 정도로 화가 나지 않았다. 혼란스러움과 난처함의 파도가 그 외의 감정 혹은 논리를, 적어도 일시적으로 어딘가로 떠내려보냈다. P232


 

#일인칭단수 #무라카미하루키 #단편소설 #문학동네 #독파 #북클럽문학동네 #독파챌린지 #추천도서 #가을독서 #앰배서더 #앰배서더3기 #서평 #내돈내산



매우 신기하게도(어쩌면 그렇게 신기한 일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사람은 눈 깜짝할 사이 늙어 버린다. 우리의 육체는 돌이킬 수 없이 시시각각 소멸을 향해 나아간다. 잠깐 눈을 감았다가 떠보면 많은 것이 이미 사라져버렸음을 깨닫는다. - P24

"그래도 말이야, 시간을 쏟고 공을 들여 그 간단치 않은 일을 이루어내고 나면, 그것이 고스란히 인생의 크림이 되거든."

"크림?"

"프랑스어로 ‘크렘 드 라 크렘’이라는 말이 있는데, 아나?"

모른다고 나는 말했다. 프랑스어 같은 것은 전혀 모른다.

"크림 중의 크림, 최고로 좋은 것이라는 뜻이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에센스ㅡ그게 ‘크렘 드 라 크렘’이야. 알겠나? 나머지는 죄다 하찮고 시시할 뿐이지." - P44

학창 시절 내가 그런 글을 썼다는 사실 자체를 오랫동안 까맣게 잊고 지냈다. 그 뒤로 내 인생은 뜻하지 않게 분주해졌고, 어차피 그 가상의 음악 평론은 젊은 날의 무책임하고 속 편한 조크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약 십오 년 후, 그 글은 생각지 못한 형태로 나에게 되돌아오게 된다. 마치 허공에 던져놓고 잊어버렸던 부메랑이 예상도 못한 순간에 되돌아오듯이 - P61

어떤 때는 그 감각을 얻었고, 어떤 때는 좀처럼 얻기 힘들었다(안타깝게도 종이 만족스럽게 울린 적은 없다). 또 어떤 때는 손에 쥐고도 어느 갈림길에서 허무하게 놓쳐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경우건 그 재현의 감각은 내게 항상 이른바 ‘동경의 수준기 水準器‘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현실세계에서 그런 감각을 쉽사리 얻지 못할 때는 과거에 느꼈던 그 기억을 내 안에 조용히 소환했다. 그렇게 기억이란 때때로 내게 가장 귀중한 감정적 자산 중 하나가 되었고, 살아가기 위한 실마리가 되기도 했다. 큼직한 외투 주머니에 가만히 잠재워둔 따뜻한 새끼고양이처럼. - P79

다시 말해 그녀의 추한 외모는 갖가지 추함의 요소가 어떤 엄숙한 규칙하에 한데 불려와서 특별한 압축력으로 결정화한 결과였다 - P158

어쨌든 지독히 불쾌한 어떤 감촉이 입안에 남았다. 삼키려 해도 삼킬 수 없고, 뱉어려 해도 뱉을 수 없는 무언가다. 할 수 있다면 그냥 화를 내고 싶었다. 그도 그럴 게 이렇게 터무니 없는, 불쾌한 일을 당할 이유가 없으니까. 그리고 나를 향한 그녀의 처사는 아무리 생각해도 공정하다고 하기 힘들었으니까. 어쨌거나 그녀가 말을 걸어올 때까지는 제법 기분좋고 평화로운 봄날의 저녁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신기할 정도로 화가 나지 않았다. 혼란스러움과 난처함의 파도가 그 외의 감정 혹은 논리를, 적어도 일시적으로 어딘가로 떠내려보냈다. -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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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그리고 저녁
욘 포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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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그리고 저녁』

욘 포세 장편소설

박경희 옮김

문학동네 출판



 

21세기 베케트, 서사기법의 신비주의자로 불리는 2023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욘 포세 Jon Fosse'의 대표작 『아침 그리고 저녁』을 독파챌린지로 읽었다. 152쪽이라 금방 읽혔다.

1부는 요한네스가 태어나고, 2부는 갑자기 노인의 이야기다. 아침 그리고 저녁의 제목처럼 점심 없이 바로 삶의 처음과 끝을 본다. 왜 중간 없이 건너뛰었을까 한참 고민했는데, 엉뚱하게도 내 주변 노인들이 최근 기억보다 오래 전의 기억을 자주 떠올리고 이야기하던 모습이 생각났고 노인의 특징들이 담겨 있는 건 아닐까 생각들었다.

요한네스는 늙은 지금보다 힘 좋던 젊은 시절을 떠올린다. 페테르는 풍족했던 꽃게를 노처녀 안나 페테르센이 가져가지 않았다며 주고 싶어했고, 요한네스는 죽은 부인 에르나와 일곱 명의 아이를 낳을 만큼 사이가 좋았던 일을 회상했다. 이렇게 느닷없이 갑자기 흐리기만 했던 옛날이 눈앞에 펼쳐지기도 한다.

2부의 중반 쯤 읽으니 이 끝나지 않는 쉼표들이 뭔가 이어지기를 바라는 요한네스의 마음 같기도 했다. 1부의 그 둥둥 떠다니는 소리들 사이의 글들이 느껴졌다면, 2부는 아련한 기억 속에서 글들이 있는 느낌 같았다.

정신 줄을 놓은 사람이 아니라 기억 속의 무언가를 계속 꺼내려는 듯한 말들. 그래서 온점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쉼표로 문장들이 계속 이어지는 듯하다(1부만 읽었을 때는 완전 막막했는데 2부 중반부터는 노인 요한네스를 조금 이해가 되는 듯하다) 왜 이해가 된 걸까..

특별할 것 없던 일상적인 하루가 반복되고, 결국 일상은 삶이었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읽어서일까.

노인이 된다면. 죽음을 마주한다면 이런 모습일 수도 있겠다. 두렵기도 하면서도 또 떠나보내고 떠나는 모습이 나도 저럴테지, 상상하게 된다.

삶도 죽음도 왠지 이 책의 속도와 같을 것 같아서 무섭기도 하다. 죽음 속에서 삶을 보고 또 요한네스는 그 죽음 속에서도 삶을 이어가는 듯하다. 소리 없는 고요한 삶. 아니 죽음이겠지만

❤️여담인데요…

출판사 직원분들은 발표 전날부터 야근하며 수상작품에 대한 자료를 수정하고 준비한다는데 촌각을 다투는 기자들이 떠올랐어요. 열정이 대단하게 느껴지는 현장감을, 밤에 불켜진 출판사의 사무실 사진으로도 알 수 있었구요. 이번 첵첵레터💌는 직원분들의 노고가 느껴져서 짠했지만 😅 또 그만큼 좋았어요👍

 

 

🔖책 속 밑줄긋기

확실한 것은, 그가 올라이이고 어부이며 마르타와 결혼했고 요한네스의 아들이며 이제, 언제라도, 조그만 사내아이의 아버지가 될 것이며, 아이가 할아버지처럼 요한네스라는 이름을 갖게 되리라는 것이다. P17

그리고 페테르가 팔을 꽉 붙잡아주는 동안 요한네스는 다른 발도 페테르의 고깃배 난간 위로 올리며 생각한다, 여기서 한 발만 헛디디면 물속으로 풍덩 가라앉는 거군, 하지만 무슨 상관인가, 에르나도 죽었고 아이들은 다 컸으니, 물고기밥이 된다 한들 대수로울까, 아무래도 좋다, 요한네스는 생각한다 그리고 요한네스는 두 다리로 갑판 위에 안전하게 서 있다 P72-73

하지만 그것들은 마치 소리처럼, 그렇다 그 안의 소리처럼 그의 일부로 그 안에 머물 것이었다, 요한네스는 손을 들어 눈을 비비고 다시 바라본다, 모든 것이 아스라이 멀어져가는 것을, 하늘 저 뒤편에서, 사방에서, 돌 하나하나가, 보트 한 척 한 척이 그에게서 희미하게 멀어져가고 그는 이제 더이상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P74

에르나가 살아 있다면 더없이 좋을 텐데, 에르나가 가고 없는 것이 슬프다, 그래도 집이 따뜻하기는 하겠지, 먹을 것도 조금 있고, 하지만 에르나 일은 너무나 안타깝다. 그녀가 떠나야 했던 것은, P101

그러면 게망은 뭐하러 걷어올렸나, 요한네스가 묻는다

자네 삶과의 연결을 끊어야 하니 뭔가는 해야 했지, 페테르가 말한다

그런 거로군, 요한네스가 말한다

그런 거라네, 페테르가 말한다 P130

모든 것이 하나이며 서로 다르고, 하나이면서 정확히 바로, 그 자신이기도 하다, 저마다 다르면서 차이가 없고 모든 것이 고요하다 P134

#아침그리고저녁 #욘포세 #장편소설 #노벨문학상 #문학동네 #북클럽문학동네 #독파 #독파챌린지 #신간도서 #책추천 #서평 #내돈내산

하지만 그것들은 마치 소리처럼, 그렇다 그 안의 소리처럼 그의 일부로 그 안에 머물 것이었다, 요한네스는 손을 들어 눈을 비비고 다시 바라본다, 모든 것이 아스라이 멀어져가는 것을, 하늘 저 뒤편에서, 사방에서, 돌 하나하나가, 보트 한 척 한 척이 그에게서 희미하게 멀어져가고 그는 이제 더이상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 P74

그러면 게망은 뭐하러 걷어올렸나, 요한네스가 묻는다

자네 삶과의 연결을 끊어야 하니 뭔가는 해야 했지, 페테르가 말한다

그런 거로군, 요한네스가 말한다

그런 거라네, 페테르가 말한다 - P130

모든 것이 하나이며 서로 다르고, 하나이면서 정확히 바로, 그 자신이기도 하다, 저마다 다르면서 차이가 없고 모든 것이 고요하다 -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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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은 미치고 반은 행복했으면
강혜정 저자 / 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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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은 미치고 반은 행복했으면』

강혜정 산문

달 출판

 

 

 

 

 

 

배우 강혜정 에세이에 50편의 짧은 산문과 사진들이 있다.

예전만큼 작품활동도 많이 하지 않아 궁금했는데 에세이 출간 소식이 반갑게 느껴졌다.

작품을 하지 않는 시간동안 배우가 아니 사람 강혜정으로 어둠에 사로잡히기보다 글을 쓰며 자신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상대방에 대한 자신의 행동에 대한 반성, 감정에 대해 고민하고 또 고민했던 흔적들도 가득하고. 오랜 기억과 상처받은 마음, 자신의 믿음으로 인해 생긴 일에 대해 자책하기도 하며.

돈벌이를 해야하나. 시간만 축내는 것은 아닌가. 회의감과 막연한 생각들로 시간들을 채워간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은 배우라는 직업때문이라기보다 완벽함을 추구하고 싶은 욕망때문에 더 외롭게 자신을 몰아부치는 듯해서 외줄타기 하는 사람을 보는 듯 불안 불안했다.

스스로는 스무 살의 봄은 그다지 아름답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완벽한 혼자가 되었고 실패까지 덤으로 안았다는 생각과 함께.

술에 취한 모습조차 즐거워야하는 스무 살이지만 세상 잃은 듯 소리를 듣는 것도 힘들어했다.

밝고 활기찬 느낌보다 지금껏 달려온 것에 모두를 소진시켜 멈춘 상태처럼 상실감, 공허함이 많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힘을 내야한다고 움직이고 준비해야하는 마음이 억지로 움직이게도 했고.

(왜이리도 어두운지ㅠㅠ)

아름다움을 드러내 보이기 바빴던 젊은 날은 뒤로하고, 쓸쓸할 수 밖에 없었던 넓은 마음을 이제는 행복으로 채워갔으면 좋겠다. 삶에서 미치도록 열심히 했던 시간들은 나를 소진시키는 것이 아니라 성장할 수 있는 동력이었다고 기억을 한다면 그 시간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도 생기지 않을까.

ㅡㅡㅡㅡ

 

​▦ 책 속 밑줄긋기

 

후회가 배부른 트림처럼 깊은 한숨으로 쏟아진다. 애써 분위기를 전환하려 가볍게 뱉은 말로 어색함을 배로 만드는 아둔함이란 고치려 해봐도 고쳐지지 않는 착한 질병이겠지. 타인을 위한다는 자만심은 결국 잘못된 선택을 하게끔 만든다. 이럴 때 우리는 조용히 침묵하고 듣고 끄덕이며 안아주기만을 바라면서도, 이내 내뜻을 밝히는 오류를 범할 때가 있다.

P15 <착한 질병>

내 삶에 대한 책임감과 열망의 끝에는 한 뼘짜리 지문으로 통하는 세상에서 자멸하는 엄지손가락의 고뇌만 춤출 뿐이다.

P17 <인피니트 스크롤>

 


 

몸을 단련시키듯 고통의 과정을 반복해야만 그나마 방어구가 생겨나는 것처럼 나는 벌써 이런 이들을 제법 겪은 듯하다. 부디 더이상 결핍에 흔들리는 미련을 범하지 않길 되새김질 해댈 뿐이다.

P20 <그 사람 믿지 마>

상처를 기회로 펴낸 이 작은 책 역시도 아름다움을 표방한 포장지로 서술될 것이다. 그리고 곧 짧은 감탄의 시간이 주어지고 이내 파헤쳐질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멈추지 않고 갈 것이다. 또다시 숨어들 곳을 찾을 준비릉 하면서 말이다.

P68 <흉터>

제발 나서지 말라며 내 허리춤을 붙들고 있던, 냉소를 품은 절제력이 힘에 부쳐 엉덩방아를 찧는 순간, 정으로 빚은 살점을 조금씩 떼어 나눈다. 때론 서슬 퍼런 날에 베여 피가 줄줄 흐를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P158 <당신의 라임오렌지나무>

여전히 칭찬은 나를 어렵게 한다.

그렇지만 처절하게 고독하게 순간을 양분삼아 괴로워하고 기뻐하며 세상에 내어놓은 것들이 여전히 관심 있게 보이고 좋게 평가받는 것에는 감사함과 감격이 차오른다.

P221 <강아지풀>

불이 났다.

다 죽었는데 시간만 살아남았다. 다 멈추었는데 저 녀석 혼자 흐르고 있다. 모든 것을 검게 녹인 역동적인 화마를 비웃기라도 하듯 유난히 시간만 차갑게 흐른다.

P231 <魔(마)>

 

 

#반은미치고반은행복했으면 #강혜정 #에세이 #달 #외로움 #북클럽문학동네 #문학동네 #독파 #독파챌린지 #신간도서 #앰배서더 #서평

❤︎ 독파 앰버서더 3기로 ‘문학동네’로부터 도서지원 받았습니다.


후회가 배부른 트림처럼 깊은 한숨으로 쏟아진다. 애써 분위기를 전환하려 가볍게 뱉은 말로 어색함을 배로 만드는 아둔함이란 고치려 해봐도 고쳐지지 않는 착한 질병이겠지. 타인을 위한다는 자만심은 결국 잘못된 선택을 하게끔 만든다. 이럴 때 우리는 조용히 침묵하고 듣고 끄덕이며 안아주기만을 바라면서도, 이내 내뜻을 밝히는 오류를 범할 때가 있다. - P15

내 삶에 대한 책임감과 열망의 끝에는 한 뼘짜리 지문으로 통하는 세상에서 자멸하는 엄지손가락의 고뇌만 춤출 뿐이다. - P17

몸을 단련시키듯 고통의 과정을 반복해야만 그나마 방어구가 생겨나는 것처럼 나는 벌써 이런 이들을 제법 겪은 듯하다. 부디 더이상 결핍에 흔들리는 미련을 범하지 않길 되새김질 해댈 뿐이다. - P20

상처를 기회로 펴낸 이 작은 책 역시도 아름다움을 표방한 포장지로 서술될 것이다. 그리고 곧 짧은 감탄의 시간이 주어지고 이내 파헤쳐질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멈추지 않고 갈 것이다. 또다시 숨어들 곳을 찾을 준비릉 하면서 말이다. - P68

제발 나서지 말라며 내 허리춤을 붙들고 있던, 냉소를 품은 절제력이 힘에 부쳐 엉덩방아를 찧는 순간, 정으로 빚은 살점을 조금씩 떼어 나눈다. 때론 서슬 퍼런 날에 베여 피가 줄줄 흐를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 P158

여전히 칭찬은 나를 어렵게 한다.
그렇지만 처절하게 고독하게 순간을 양분삼아 괴로워하고 기뻐하며 세상에 내어놓은 것들이 여전히 관심 있게 보이고 좋게 평가받는 것에는 감사함과 감격이 차오른다. - P221

불이 났다.
다 죽었는데 시간만 살아남았다. 다 멈추었는데 저 녀석 혼자 흐르고 있다. 모든 것을 검게 녹인 역동적인 화마를 비웃기라도 하듯 유난히 시간만 차갑게 흐른다. - 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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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열정 (무선) -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아니 에르노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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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열정』

세계문학전집 099


아니 에르노 지음
최정수 옮김
문학동네 출판

 


 

소설 시작부터 유부남과의 사랑, 일상의 주부에서 불륜을 저지르는 여자의 불안감이 보였다. 그 남자를 생각하며 행복을 느끼지만 그 행복이 사그라질까 걱정했다. 하지만 또 어떤 날은 그는 떠날 것이므로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언젠가 나를 떠나는 순간이 올 거라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고통스러운 미래의 쾌락 속에 살고 있다는 표현을 쓰며 이 열정적인 연애를 유지하는 동안 극심한 불안감에 지낸다. 나는 이 모습이 흡사 짝사랑하는, 권태기의 연인을 떠올리게 했다. 


독파 미션 질문 중 A의 손목시계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의 질문에 화자인 '나'는 시계를 보지 않고 존재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싶지만 A는 나와의 시간을 정해두고 자신의 삶과 분리 시킨다는 의미 같았다. 계획적으로. 마음이 아닌 개념으로. 


그녀는 A를 욕구의 대상이 아니라 진짜 사랑했다. 잊기로 하고 한 모든 행동과 시간의 장소에서 그를 떠올렸고 상상했고 함께 했다. 자신은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뜻대로 안되는 혼란 속에서 더 고통스럽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말할 수 없는 비밀을 안고 살 것인데 그 비밀을 텍스트로 꺼내 놓으며 내 비밀이 세상에 드러난 듯한 부끄러움이 느껴졌던 책이다. 솔직하지만 같은 감정이었다고 차마 말할 수 없는 과거형의 그 글들이 현재 다른 시점에 다른 이가 썼었지만 왜 내 글 같았는지. 
나도 그 욕망에 그 부재에 대해 솔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는 것을 에르노의 글을 읽으며 부끄럽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드러내 보일 수 없는 무존재로 부재인 상태로 있고 싶다. ^^

 


ㅡㅡㅡ


 

하나하나 어떤 몸짓이나 순간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그 물건들을, 그것들이 이루는 생생한 무질서를 지금 상태 그대로 보존하고 싶었다. 그것들은 미술관에 소장된 다른 어떤 그림도 내게 주지 못할 힘과 고통을 간직한 하나의 그림을 이루고 있었다. P17

 

🔖우리는 욕망이라는 자산을 서서히 탕진하고 있었다. 육체적인 강렬함 속에서 얻은 것은 시간의 질서 속에 사라져갔다. P17

 


 

 

나는 자주 만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혹시라도 내 속 마음을 드러내는 일이 없도록 적잖이 노력해야 했다. 끊임없이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P20

 

대화를 나누면서 “맞아요. 나도 그래요. 나도 그런 적이 있어요.“하고 남의 말에 맞장구를 치다가도 어느 순간 갑자기 이런 말들이 내 열정의 실상과는 아무 상관없는 쓸데없는 것으로 느껴지는 것이었다. 이 알 수 없는 감정 속에서 무언가가 사라져가고 있었다. P21

 

우리 관계에서 그런 시간적인 개념은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나는 그저 존재 혹은 부재만을 알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언제나’와 ‘어느 날’ 사이에서 끊임없이 동요하면서 열정의 기호들을 모으고 있었다. 그 기호들을 한데 모으면 나의 열정을 좀더 사실적으로 그려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을 열거하거나 묘사하는 방식으로 쓰인 글에는 모순도 혼돈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글은 순간순간 겪은 것들을 음미하는 방식이 아니라, 어떤 일을 겪고 나서 그것들을 돌이켜보며 남들이나 자기 자신에게 이야기하는 방식인 것이다. P26

 


 

나는 필사적으로 그 사람의 몸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떠올려보았다. 그 사람의 푸른 눈, 이마 위에서 물결치던 그 사람의 머리카락, 어깨의 곡선이 자세히 생각났다. 그 사람의 치아와 입 안의 감촉이 느껴졌고, 허벅지의 모양이며 꺼끌꺼끌하던 살갗마저 만져지는 것 같았다. 내가 그 사람을 떠올리는 행위와 환각 사이에, 그리고 그 사람에 대한 나의 기억과 광기 사이에는 차이점이 전혀 없는 듯했다. P47

 

🔖주말이면 나는 일부러 집안 청소나 정원 손길 같은 고된 육체노동에 매달렸다. 저녁이 되면 나는 완전히 지쳐버렸다. A가 내 집에서 오후를 지내고 갔을 때처럼 사지가 마비되아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타인의 육체에 대한 기억이 없는,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공허한 피로감이었다. P51

 

나는 과거에 실제로 일어난 일과 허구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가늠해보았다. P55

 

살아 있는 텍스트였던 그것들은 결국은 찌꺼기와 작은 흔적들이 되어 버릴 것이다. 언젠가 그 사람도 다른 사람들처럼 내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리겠지. P59

 


 

 

🔖 나는 내 온몸으로 남들과는 다르게 시간을 헤아리며 살았다.
나는 한 사람이 어떤 일에 대해 얼마만큼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숭고하고 치명적이기까지 한 욕망, 위엄따위는 없는 부재, 다른 사람들이 그랬다면 무분별하다고 생각했을 신념과 행동, 나는 이 모든 것들을 스스럼없이 행했다. 그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세상과 더욱 굳게 맺어주었다. 

 

그 사람은 ”당신, 나에 대해 책을 쓰진 않겠지“하고 말했었다. 나는 그 사람에 대한 책도, 나에 대한 책도 쓰지 않았다. 단지 그 사람의 존재 그 자체로 인해 내게로 온 단어들을 글로 표현했을 뿐이다. 그 사람은 이것을 읽지 않을 것이며, 또 그 사람이 읽으라고 이 글을 쓴 것도 아니다. 이 글은 그 사람이 내게 준 무엇을 드러내 보인 것일 뿐이다. P66

 

#단순한열정 #아니에르노 #문학동네 #독파 #북클럽문학동네 #독파챌린지 #앰배서더 #앰배서더3기 #책추천 #세계문학전집 #꼭읽어봐야할책 #2022노벨문학상수상 #서평 #내돈내산

우리는 욕망이라는 자산을 서서히 탕진하고 있었다. 육체적인 강렬함 속에서 얻은 것은 시간의 질서 속에 사라져갔다. - P17


나는 자주 만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혹시라도 내 속 마음을 드러내는 일이 없도록 적잖이 노력해야 했다. 끊임없이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 P20

대화를 나누면서 "맞아요. 나도 그래요. 나도 그런 적이 있어요."하고 남의 말에 맞장구를 치다가도 어느 순간 갑자기 이런 말들이 내 열정의 실상과는 아무 상관없는 쓸데없는 것으로 느껴지는 것이었다. 이 알 수 없는 감정 속에서 무언가가 사라져가고 있었다. - P21

우리 관계에서 그런 시간적인 개념은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나는 그저 존재 혹은 부재만을 알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언제나’와 ‘어느 날’ 사이에서 끊임없이 동요하면서 열정의 기호들을 모으고 있었다. 그 기호들을 한데 모으면 나의 열정을 좀더 사실적으로 그려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을 열거하거나 묘사하는 방식으로 쓰인 글에는 모순도 혼돈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글은 순간순간 겪은 것들을 음미하는 방식이 아니라, 어떤 일을 겪고 나서 그것들을 돌이켜보며 남들이나 자기 자신에게 이야기하는 방식인 것이다. - P26

나는 필사적으로 그 사람의 몸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떠올려보았다. 그 사람의 푸른 눈, 이마 위에서 물결치던 그 사람의 머리카락, 어깨의 곡선이 자세히 생각났다. 그 사람의 치아와 입 안의 감촉이 느껴졌고, 허벅지의 모양이며 꺼끌꺼끌하던 살갗마저 만져지는 것 같았다. 내가 그 사람을 떠올리는 행위와 환각 사이에, 그리고 그 사람에 대한 나의 기억과 광기 사이에는 차이점이 전혀 없는 듯했다. - P47

주말이면 나는 일부러 집안 청소나 정원 손길 같은 고된 육체노동에 매달렸다. 저녁이 되면 나는 완전히 지쳐버렸다. A가 내 집에서 오후를 지내고 갔을 때처럼 사지가 마비되아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타인의 육체에 대한 기억이 없는,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공허한 피로감이었다. - P51

나는 과거에 실제로 일어난 일과 허구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가늠해보았다. - P55

살아 있는 텍스트였던 그것들은 결국은 찌꺼기와 작은 흔적들이 되어 버릴 것이다. 언젠가 그 사람도 다른 사람들처럼 내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리겠지. - P59

그 사람은 "당신, 나에 대해 책을 쓰진 않겠지"하고 말했었다. 나는 그 사람에 대한 책도, 나에 대한 책도 쓰지 않았다. 단지 그 사람의 존재 그 자체로 인해 내게로 온 단어들을 글로 표현했을 뿐이다. 그 사람은 이것을 읽지 않을 것이며, 또 그 사람이 읽으라고 이 글을 쓴 것도 아니다. 이 글은 그 사람이 내게 준 무엇을 드러내 보인 것일 뿐이다. - 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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