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인칭 단수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인칭 단수』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문학동네 출판




 


『일인칭 단수』의 단편은 총 8편으로 엉뚱하고, 오래전의 기억들을, 꺼내본 적 없는 감정들을 만난 것 같았다. 요즘 말하는 T보다 F가 가득한 소설. <찰리 파커 플레이즈 보사노바>, <위드 더 비틀스>, <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 봉태규 배우, 고선향 편집자와 함께한 zoom북토크!

(봉태규 배우님을 게스트로 초대하다니요~♥)

배우님이 인물들이 책에서 튀어나온 듯 재밌게 설명하는데 기억나는 건 소설 속 찌질남(들)과 불벼락 단어만 기억에 남습니다 ㅎㅎ 스몰토크처럼 웃고 떠들다 끝난 줌토크지만 하루키의 팬들이 모여 수다스럽게 인사한 느낌이라 좋았어요. 봉태규 배우의 추천 책은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과 김승옥 <무진기행>입니다.

 

 

 

📚<돌베개에>


우연히 동침한 사람과의 인연. 그래서인지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그녀이지만 말은 가집(일본 고유의 시가)으로 남았다. 사람은 죽으면 사라지지만 글은 사라지지 않는다. 글이 있는 한 그녀도 글 속에 존재하는 것.

 


매우 신기하게도(어쩌면 그렇게 신기한 일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사람은 눈 깜짝할 사이 늙어 버린다. 우리의 육체는 돌이킬 수 없이 시시각각 소멸을 향해 나아간다. 잠깐 눈을 감았다가 떠보면 많은 것이 이미 사라져버렸음을 깨닫는다. P24

 


📚<크림>

 

약속한 장소에 아무 것도 없어 거짓말 당한 것 같은 느낌에 존재한 것인지도 확실하지 않은 노인의 말까지 더해져 특별한 원이 뭔지, 하찮고 시시한 것이 뭔지, 특별한 크림같은 것에 대해 생각해보는 주인공. 진심이 없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볼 수 없었던 것일까. 엉뚱하고 수수께끼 같은 소설.

 


“그래도 말이야, 시간을 쏟고 공을 들여 그 간단치 않은 일을 이루어내고 나면, 그것이 고스란히 인생의 크림이 되거든.”

“크림?”

“프랑스어로 ‘크렘 드 라 크렘’이라는 말이 있는데, 아나?”

모른다고 나는 말했다. 프랑스어 같은 것은 전혀 모른다.

“크림 중의 크림, 최고로 좋은 것이라는 뜻이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에센스ㅡ그게 ‘크렘 드 라 크렘’이야. 알겠나? 나머지는 죄다 하찮고 시시할 뿐이지.” P44-45

 


📚<찰리 파커 플레이즈 보사노바>

 

뉴욕 시내에서 자신이 쓴 글의 음반이 있다! 레코드는 35달러라서 사지 않고 나왔는데 다음 날 가보니 그런 음반은 없더라는 거다. 어느 날 꿈에서는 버드가 나와 찰리 파커의 음악을 연주할 기회를 제공해주어 고맙다고 한다. 내가 쓴 소설의 인물이 꿈에 나오기도 하고 음반을 실제로 보기라도 한다면,, 상상력 풍부한 하루키 작가님 ㅋㅋ 역시 엉뚱하다.

 

학창 시절 내가 그런 글을 썼다는 사실 자체를 오랫동안 까맣게 잊고 지냈다. 그 뒤로 내 인생은 뜻하지 않게 분주해졌고, 어차피 그 가상의 음악 평론은 젊은 날의 무책임하고 속 편한 조크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약 십오 년 후, 그 글은 생각지 못한 형태로 나에게 되돌아오게 된다. 마치 허공에 던져놓고 잊어버렸던 부메랑이 예상도 못한 순간에 되돌아오듯이. P61

 


📚<위드 더 비틀스>

 

나이가 들어도 마음은 소년같다. 남자에게도 소년스럽다라는 말이 어울리는 소설.

고등학교 때 비틀스 음반을 들고 있던 소녀에게서는 ‘종’이 울렸다. 대신 '동경의 수준기 水準器' 평균에 속하는 여자친구가 새로 생겼는데 종이 울리지 않아 헤어지자 말했던 여자친구다. 약속날짜를 잘못알아서 여자친구 오빠와 둘이 집에 있게 되고 책을 낭독해주게 되는데 그 상황이 몹시 코믹하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문득 왜 하루키 작가는 열여섯 살 소녀를 소설에 자주 등장시킬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종이 울렸던 기억이 있어서였을까. 몹시 궁금^^;

 


꿈이 죽는다는 것은 어찌 보면 실제 생명이 소멸하는 것보다 슬픈 일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때로 매우 공정하지 못한 일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P76-77

 

심장이 딱딱해지면서 빠르게 뛰고, 숨이 가빠지고, 수영장 바닥까지 가라앉을 때처럼 주위의 소음이 사라지더니, 귓속에서 작게 종이 울리는 소리만 들렸다. 누군가 내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 무언가를 서둘러 알려주려는 것처럼.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십초 내지 십오 초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다. 느닷없이 일어났다가, 정신을 차리자 이미 끝나버린 일이었다. 그리하여 그곳에 있었을 중요한 메시지는, 모든 꿈의 핵심들과 마찬가지로 미로 속으로 사라졌다. 인생에서 중요한 사건들이 대개 그러하듯이.

고등학교 건물의 어둑한 복도, 아름다운 소녀, 흔들리는 치맛자락, 그리고 . P77

 

어떤 때는 그 감각을 얻었고, 어떤 때는 좀처럼 얻기 힘들었다(안타깝게도 종이 만족스럽게 울린 적은 없다). 또 어떤 때는 손에 쥐고도 어느 갈림길에서 허무하게 놓쳐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경우건 그 재현의 감각은 내게 항상 이른바 '동경의 수준기 水準器'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현실세계에서 그런 감각을 쉽사리 얻지 못할 때는 과거에 느꼈던 그 기억을 내 안에 조용히 소환했다. 그렇게 기억이란 때때로 내게 가장 귀중한 감정적 자산 중 하나가 되었고, 살아가기 위한 실마리가 되기도 했다. 큼직한 외투 주머니에 가만히 잠재워둔 따뜻한 새끼고양이처럼. P79

 

팝송이 가장 깊숙이, 착실하고 자연스럽게 마음에 스미는 시절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정말로 그런지도 모른다. 혹은 그렇지 않은지도 모른다. 팝송은 그래봐야 그저 팝송일 뿐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은 결국, 그저 요란하게 꾸민 소모품일 뿐인지도 모른다. P87

 

그것은 무언가를ㅡ우리가 살아간다는 행위에 포함된 의미 비슷한 것을ㅡ시사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에는 우연에 의해 어쩌다 실현된 단순한 시사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을 뛰어넘어 우리 두 사람을 유기적으로 이어주는 요소는 없었다. P120

 


📚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집>

 

야구를 좋아하고 삼백부를 쓴 책이 리미티드 에디션이 된 이야기.

하루키 작가 자신의 에세이 같은 글

 


📚<사육제>

 

추한 얼굴 아래 다른 가면이 있을 것 같은 F* 여자친구와 사육제에 대해 음악을 공유했던 기억을 회상한다. 그런 추억들은 기억 속 어딘가에 묻혔다가 우연히 음악을 들을 땐 내 마음으로 찾아와 지금을 흔든다. 음악에 대한 추억을 못생긴 여자에 비유하는 하루키 작가..정말 매력있습니다^^;;


다시 말해 그녀의 추한 외모는 갖가지 추함의 요소가 어떤 엄숙한 규칙하에 한데 불려와서 특별한 압축력으로 결정화한 결과였다. P158

 

그 가면의 미추보다는 오히려 그 안쪽에 마련되어 있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기 두려웠던 탓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악령의 얼굴이건, 천사의 얼굴이건. P172

 

그리고 그 뒤에 헤어지면서 받은 그녀의 전화번호 쪽지를, 나는 어딘가에서 영원히 잃어버리고 말았다. 말할 필요도 없이, 영원이란 매우 긴 시간이다. P181

 


📚 <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

 

우연히 들어간 쓰러져가는 료칸에서 말하는 원숭이를 만난다.(하루키 작가의 상상력이란 ㅎㅎ) 좋아하는 여자들의 이름을 훔친다는 원숭이는 왠지 어딘가 존재할 것만 같다. 내가 경험했던 기이했던 일에 대해 나 혼자만 알아야 할 때가 있는데 공유하고 싶지 않은 이유조차 설명하기 힘들 수 있다는 그 느낌을 잘 표현된 소설.

 

아무리 선명한 기억도 시간의 힘은 좀처럼 당해내지 못한다. P208

 


📚<일인칭 단수>

 

그녀는 기억 없이 내가 저지른 일에 대한 건지. 양복입고 바에 앉은 내 복장을 지적한다.

그녀도, 나도 상대방보다 내 기준이다. 감정의 이기심. 나를 방어하는 모습들이다.

그런 방어는 논리적으로 따지고 들거나 무례함에 대한 화를 내는 것도 모두 차단시킨듯하다. 유미의 세포들에 나온 감정캐릭터들이 생각났다. 내가 생각지 못한 상황에서 누군가의 감정 공격을 받았을 때 혼란스러움과 난처함 캐릭터 둘만 공격을 상대못하고 덩그러니 서 있는 모습이 상상됐다.

 

어쨌든 지독히 불쾌한 어떤 감촉이 입안에 남았다. 삼키려 해도 삼킬 수 없고, 뱉어려 해도 뱉을 수 없는 무언가다. 할 수 있다면 그냥 화를 내고 싶었다. 그도 그럴 게 이렇게 터무니 없는, 불쾌한 일을 당할 이유가 없으니까. 그리고 나를 향한 그녀의 처사는 아무리 생각해도 공정하다고 하기 힘들었으니까. 어쨌거나 그녀가 말을 걸어올 때까지는 제법 기분좋고 평화로운 봄날의 저녁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신기할 정도로 화가 나지 않았다. 혼란스러움과 난처함의 파도가 그 외의 감정 혹은 논리를, 적어도 일시적으로 어딘가로 떠내려보냈다. P232


 

#일인칭단수 #무라카미하루키 #단편소설 #문학동네 #독파 #북클럽문학동네 #독파챌린지 #추천도서 #가을독서 #앰배서더 #앰배서더3기 #서평 #내돈내산



매우 신기하게도(어쩌면 그렇게 신기한 일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사람은 눈 깜짝할 사이 늙어 버린다. 우리의 육체는 돌이킬 수 없이 시시각각 소멸을 향해 나아간다. 잠깐 눈을 감았다가 떠보면 많은 것이 이미 사라져버렸음을 깨닫는다. - P24

"그래도 말이야, 시간을 쏟고 공을 들여 그 간단치 않은 일을 이루어내고 나면, 그것이 고스란히 인생의 크림이 되거든."

"크림?"

"프랑스어로 ‘크렘 드 라 크렘’이라는 말이 있는데, 아나?"

모른다고 나는 말했다. 프랑스어 같은 것은 전혀 모른다.

"크림 중의 크림, 최고로 좋은 것이라는 뜻이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에센스ㅡ그게 ‘크렘 드 라 크렘’이야. 알겠나? 나머지는 죄다 하찮고 시시할 뿐이지." - P44

학창 시절 내가 그런 글을 썼다는 사실 자체를 오랫동안 까맣게 잊고 지냈다. 그 뒤로 내 인생은 뜻하지 않게 분주해졌고, 어차피 그 가상의 음악 평론은 젊은 날의 무책임하고 속 편한 조크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약 십오 년 후, 그 글은 생각지 못한 형태로 나에게 되돌아오게 된다. 마치 허공에 던져놓고 잊어버렸던 부메랑이 예상도 못한 순간에 되돌아오듯이 - P61

어떤 때는 그 감각을 얻었고, 어떤 때는 좀처럼 얻기 힘들었다(안타깝게도 종이 만족스럽게 울린 적은 없다). 또 어떤 때는 손에 쥐고도 어느 갈림길에서 허무하게 놓쳐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경우건 그 재현의 감각은 내게 항상 이른바 ‘동경의 수준기 水準器‘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현실세계에서 그런 감각을 쉽사리 얻지 못할 때는 과거에 느꼈던 그 기억을 내 안에 조용히 소환했다. 그렇게 기억이란 때때로 내게 가장 귀중한 감정적 자산 중 하나가 되었고, 살아가기 위한 실마리가 되기도 했다. 큼직한 외투 주머니에 가만히 잠재워둔 따뜻한 새끼고양이처럼. - P79

다시 말해 그녀의 추한 외모는 갖가지 추함의 요소가 어떤 엄숙한 규칙하에 한데 불려와서 특별한 압축력으로 결정화한 결과였다 - P158

어쨌든 지독히 불쾌한 어떤 감촉이 입안에 남았다. 삼키려 해도 삼킬 수 없고, 뱉어려 해도 뱉을 수 없는 무언가다. 할 수 있다면 그냥 화를 내고 싶었다. 그도 그럴 게 이렇게 터무니 없는, 불쾌한 일을 당할 이유가 없으니까. 그리고 나를 향한 그녀의 처사는 아무리 생각해도 공정하다고 하기 힘들었으니까. 어쨌거나 그녀가 말을 걸어올 때까지는 제법 기분좋고 평화로운 봄날의 저녁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신기할 정도로 화가 나지 않았다. 혼란스러움과 난처함의 파도가 그 외의 감정 혹은 논리를, 적어도 일시적으로 어딘가로 떠내려보냈다. - P23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