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 설자은 시리즈 1
정세랑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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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

-설자은 시리즈1

 

정세랑 장편소설

문학동네 출판

 

"680년대 후반 통일신라를 배경으로 기록과 유물의 빈틈을 파고들어 완전히 꾸며낸 이야기이며, 없었던 사람들의 없었던 사건들"

 

 


 

 

지금의 경주, 신라의 서라벌. 수도 금성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주인공은 ‘설자은’ 셋째 아들 자은의 죽음을 대신해 다섯째 딸 미은이 집안을 조금이라도 도움주기 위해 자은을 대신하여 당나라 유학을 다녀오게 되고 자은의 이름으로 살게 된다.

 

금성으로 돌아오는 배에서 만난 돌과 철을 이용해 누반박사가 되고 싶었던 손재주 있는 ‘목인곤’을 만난다. 배 안 상인의 죽음과 그의 짐에서 백제의 정교함이 담긴 장신구들이 발견되는데 이 죽음의 이유는 풀리지 않고 끝이 나고 다음 사건으로 넘어간다. (신라시대의 남자들이 반지를 여러 개 끼는 등 장신구를 좋아했다는 재미있는 사실도 있다)

집으로 돌아온 자은은 죽은 셋째 오빠 자은과 연이 있었던 귀부인 산아의 아버지가 쓰러지고 손바닥 붉은 글귀를 발견했다며 자은에게 도움을 청한다. 산아의 집으로 가서 식객으로 묵게 된 목인곤과 자은은 사혈택에서 독군 어른의 죽음을 파헤치는 약야 스님과 함께 범인을 잡게 되지만 산아의 기분이 좋았을지는 모르겠다.;;;

 

다음 사건. 베틀 짜는 일은 왕실의 일을 맡을 수 있고 노비처럼 노동만 해야 하는 궁노이지만 금전의 모로 뽑히면 상을 받기도 한다. 베틀 짜는 일로 진골 여자들은 길쌈 대회를 여는데, 말 그대로 베틀로 베틀을 하는 신라시대의 독특한 풍속과 남자 못지 않은 여자들의 열정이 보였다. 베틀이 부서진 일로 범인을 찾는 일을 맡게 된 자은은 상을 꼭 받아야 하는 간절함이 있는 여자를 찾는다. 범인은 엉뚱하게도 늙은 이에게 시집가는 친구를 돕기 위해 벌인 일!;

 

1권 마지막 사건으로 흰 매를 다루는 매잡이의 죽음을 해결해 가는 자은은 왕의 눈에 띄게 된다.

10권이 될 수도 있는 설자은 시리즈는 1권에서 자은이 왕의 사람이 되기까지의 과정들과 신라시대의 기록과 그 시대 사람들의 생활을 상상해 볼 수 있는 재미는 있었지만, 엎치락뒤치락 추리의 쫄깃함은 없었다. 정세랑 작가의 첫 미스터리 소설이고 먼 시간 여행을 하는 기분으로 읽는다면 좋겠다.

 

ㅡㅡㅡ

 

🔖 책 속 밑줄긋기

 

우리가 진짜 칼을 받았을 때 너는 나무칼을 쥔 채, 네가 쓰이지 않으면 신라가 잃는 것이라고 했지. 자, 내가 네게 쓰일 기회를 주겠다. 너는 이제 어쩔 것이냐? 

P29 <갑시다, 금성으로>

 

“며칠이었을 뿐인데 몇 년을 늙어버렸다는 옛날이야기의 주인공 같아졌어. 듣지 말아야 할 것들을 듣고 보지 말아야 할 것들을 봐버려서 겉의 나이와 속의 나이가 달라져버렸달까? 껍질과 안 사이가 벌어지며 찢어질까 두렵네.“ 

P170 <손바닥의 붉은 글씨>

 

여름처럼, 젊음처럼 끝이 난 줄 알았던 것이 한줄기 남아 계속되고 있었다. 담장 밖 버들이 흔들리는 것과 맞추어 자은의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저도 모르게 회소곡을 흥얼거리자, 도은이 목소리를 더해 자은이 틀리게 부른 부분을 고쳐주었다. 한 바퀴 돌고 끝날 줄 알았는데 인곤도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가 형체 없이 허공으로 사라진다는 것이 어쩐지 다행한 밤이었다. 

P226 <보름의 노래>

 

“내가 베라는 것을 베어라. 또 네가 베어야 할 것을 베어라. 보름마다 이곳으로 와 무엇을 베었는지 고하라.“ 

P284 <월지에 엎드린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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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진짜 칼을 받았을 때 너는 나무칼을 쥔 채, 네가 쓰이지 않으면 신라가 잃는 것이라고 했지. 자, 내가 네게 쓰일 기회를 주겠다. 너는 이제 어쩔 것이냐? - P29

"며칠이었을 뿐인데 몇 년을 늙어버렸다는 옛날이야기의 주인공 같아졌어. 듣지 말아야 할 것들을 듣고 보지 말아야 할 것들을 봐버려서 겉의 나이와 속의 나이가 달라져버렸달까? 껍질과 안 사이가 벌어지며 찢어질까 두렵네." - P170

여름처럼, 젊음처럼 끝이 난 줄 알았던 것이 한줄기 남아 계속되고 있었다. 담장 밖 버들이 흔들리는 것과 맞추어 자은의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저도 모르게 회소곡을 흥얼거리자, 도은이 목소리를 더해 자은이 틀리게 부른 부분을 고쳐주었다. 한 바퀴 돌고 끝날 줄 알았는데 인곤도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가 형체 없이 허공으로 사라진다는 것이 어쩐지 다행한 밤이었다. - P226

"내가 베라는 것을 베어라. 또 네가 베어야 할 것을 베어라. 보름마다 이곳으로 와 무엇을 베었는지 고하라." - P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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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은유가 찾아왔다 - 교유서가 소설
박이강 지음 / 교유서가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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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은유가 찾아왔다』

박이강 소설
교유서가 출판

 


 

 

작가는 글로벌 기업을 다니다 소설이 좋아 소설가로 되었는데 그 과정들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찐 사무직이 아니면 절대 알 수 없는 갑질도 아닌 감정을 소모하고 다치고 나를 붙잡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은 나날들의 내용들이 가득했으니. 누구에게도 쉽게 꺼낼 수 없는 내 비밀 일기장 내용 같은 소설이었다. 

 

공간에 대한 글이 많았는데 권위있고 독립된 장소이지만 반대로 자신의 어둠을 자꾸 들여다보게 만드는 외로움을 키우게 만드는 곳을 말하는 것 같았다. 직장에서 그런 단독 오피스 공간을 가지면 알 수 있는 감정들이 많이 드러났는데 자리를 붙들고 있기까지 능력을 쥐어짜고 자신을 소모하는 일에 지침이 많이 나와서 이 책은 직장인이 읽으면 많이 공감할 것 같다.  

 



 

 

📚 <흔들리는 것들>

 

부장의 듣기 싫은 말을 뒤로 발리로 왔다. 휴가지에서 부장의 딸같은 조카에게 조언을 해주라는 말도 안되는 전화를 받고, 마사지를 받으며 휴양을 즐기고 있다. 하스나 이름의 마사지사는 딸과 함께 출장을 오게되었고 그 상황에서 부모님을 떠올리게 된다. 

열심히 슈퍼를 하며 살았지만 다음에라는 말로 여유를 유보하며 살았던 부모님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더 회사를 벗어나고 싶어할지도. 왠지 작가 자신의 회사를 그만둬야하는 시기에 스트레스가 담겨있는 듯한 소설이다.


시든 채소 같은 꼴로 매사에 심드렁해진 지가 꽤 오래되었다는 자각에 이르자 더 꼼짝도 하고 싶지 않았다.P13

 

그들은 모든 것을 다음으로 유보하는 방식으로 그들 자신 역시 지금과는 다를 거라고 믿는 미래로 유보했다. 나는 부모님의 다음에를 불신했고 나중엔 혐오했다. 그러면서도 삶에 큰 불만이 없는 그들이 비겁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그들과 비교하면 나는 영영 나태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 게 싫었다. P29



📚 <오피스>

 

피 이사. 차장인 나(세영)보다 상사이지만 그녀의 오피스 공간이 부러웠고, 꽃을 배달시키고 지시하는 모습이 자신과 선이 그어진 모습이다. 피이사의 휴가에 결재를 대신하며 손에 쥐게 된 피아노 티켓으로 공연을 보러가서 어릴 적 의도와 반대로 작은 집으로 옮기며 피아노도 강제 종료되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피이사의 제대로 일을 하지 않으면 헛일이라는 말에 억눌린듯, 부모님 잘못으로 자신의 피아노가 빼앗긴 기억때문인지 다시 피아노를 배우며 자신을 찾으려한다. 복귀한 피이사가 꽃의 물을 갈아달라고 할 때 세영은 수국을 버리고 더이상 하지 않겠다며 피아노 뚜껑을 닫던, 피이사의 문을 닫던 쾅 을 자신이 한번 냄으로 자신감을 찾는 모습이다.


조금은 무거운. 직장 상사가 내 자리가 될 수도 있다는 짜릿한 상상. 권력욕인가..ㅎㅎ

 

사장의 소박한 꿈을 완성해주는 일부가 되고 싶진 않았다. 미래의 가능성을 그 조그만 회사의 초라한 사무실에 한정한다는 건 나 자신에게 비겁한 일 같았다. P43

 

그때부터 꽃병의 물을 가는 건 자연스럽게 내 일이 되었다.
기꺼이 시작한 일이었지만 돌이켜보면 비굴에 가까운 선의가 아니었나 싶다. P46



📚 <도시는 밤>

 

계약직으로 전전하는 나. 낯선 싱가포르에서 아무도 나를 모를 것 같은 사람과의 일탈과 아무도 그걸 모를 거라는 안도감에 고무된다. 도시의 야경을 보고 빌딩들이 묘비같다고 말하던 알래스카 남자와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는데 그 남자가 자살했다는 뉴스를 듣게 된다.
회사 사람들은 그만둔 지부장과 반대되는 적당하게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는, 오지랖보다 업무에 충실한 사람들을 좋아한다.

타지에서의 그 남자와 지 부장이 그만둔 일에 대해 도시의 밤을 밝히는 불빛들의 화려함 속에 어둠도 함께 있다는 것. 

 

나를 주시하는 낯선 이들의 시선을 느꼈지만, 그런 경계의 시선은 익숙한 사람들이 타성적으로 범하는 무례보다는 낫기에 개의치 않았다. P69

 

“지 부장은 항상 쓸데없는 말이 너무 많았어요.”
그 마지막 말이 이상하게 가슴에 와 박혔어. 쓸데없는 말. 그래, 나는 그게 듣고 싶었던 거야. 결국 도시의 밤 속으로 형체도 없이 사라져버릴 거라는 걸 잘 알면서도. 이 컵을 전해준다면 지 부장은 내게 고마움을 표시할 테고 둘 사이엔 무언가가 계속 꼬리를 물게 되겠지? 그러다 그녀의 쓸데없는 말에 연연하게 될까봐 두려워졌어. P90



📚 <파라다이스 리조트>

 

직장인 희수를 바라보는 시점이다. 발리로 여행을 떠났지만 긴 시간 이동도 모두 짜증스럽다. 자신의 사무실 방이 생긴 이후라 그럴까. 이메일 확인이 되지 않는 리조트도 불만이고 휴가이지만 코코넛 열매따듯 업무를 잘 해야한다는 생각에 초조함이다. 
최악의 진상 고객으로 리조트의 아니쉬 직원에게 화풀이다. 

정작 자신의 화를 어디에 내야할 지 모르는 화풀이를 엄한데 하는 사람들. 여기서 희수는 최악이다. 

 

무엇보다 금단현상처럼 자꾸 사무실에서의 저녁 시간이 생각나 미칠 지경이었다. 희수는 사람들이 퇴근한 후 아무의 방해도 받지 않고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저녁 시간을 사랑했다. 방이 생긴 후부터 굳어진 버릇이었다. 딴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 그 꽉 찬 시간 속에 머물 때 희수는 살아 있음을 느꼈다. P109



📚 <방문객>

 

형의 손님을 거절하지 못한 동생네 부부는 방문객의 등장으로 교양적인, 지적인 모습으로 드러내보이려 노력했으나 와인 한병으로 남편과 부인의 감추고 있던 섭섭함이 술주정이 되면서 초대는 엉망이 된다. 
변기 속 똥을 그냥 두고 나간 미스터 자파. 형의 부채감만 아니었다면 저런 무례한 사람을 초대하고 부부가 싸울일은 없었을 텐데 이 모든 것이 형에 대한 부채감 때문으로 돌아갈지도. 쯧쯧

 

두 사람의 형제애는 대단했다. 하지만 그게 여자의 눈에는 오랜 세월 한쪽이 일방적으로 다른 한쪽에 물질적인 관대함을 베풀며 굳어진 결속 같았다. 남자에게 아버지 같은 형의 말은 ‘안 된다’는 가정조차 상상할 수 없는 당위였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P131



📚 <디디를 기다리며>

 

잘난척 쩌는 인간들이 자신이 쩔쩔매던 시절 기억못하고 자본력과 인맥으로 권력을 유지한다. 빌라 그레이에 모인 예술로 투자를 받고 하기 위한 목적으로 모인 사람들은 파티를 개최한 최종 목적 디디를 기다리는데 거들먹거리는 제프 강이 꼭 꼴보기 싫은 임원을 보는 듯했다. 교양과 배려따위는 갖다 버린. 오로지 위로 오르기만을 연구하는 사람들. 디디가 궁금했는데. 안나옴!

 

“아니, 주제 파악 못 하고 나대는 게. 난 말이지. 맥도날드 알바가 글로벌 전략을 논하는 꼴은 정말 못 봐주겠어.” P159



📚 <2백만 원어치 마음>

 

아빠와 전처 딸 혜선 언니는 한국에 두고 엄마와 나(혜린)는 미국으로 왔다. 엄마는 재혼 후 동생 폴을 낳았고. 
언니와는 어릴 적 헤어진 후 아빠 장례식장에서 만났는데 언니는 갑자기 돈을 빌려달라고 한다. 그것도 문제인데 언니가 일하던 중 쓰러지며 보호자로 등록되었다며 연락까지 온다. 

내가 원해서 봉사하고 기부하는 마음과 반 강제적으로 지출해야하는 마음은 전혀 다르다!! 

 

유전자 일부를 공유했다고 해서 그녀와 나는 가족이 될 수 있는 걸까. 불시에 뒷덜미를 잡혀 원치 않는 곳, 원치 않는 사람들 앞에 끌려나온 기분이 들었다. P208



📚 <무탈>

 

하나도 되는 일 없는. 늘 있는 일이지만 하나하나 신경 곤두서 날늘 세우고 상대방을 대하게 되는 매일. 인내심을 갖고 사는 수 밖에. 또 내일이 올테니까…

 

오늘 하루가 지났다. 나는 무너지지 않았다. 어쩌면 아무것도 아닐지 모른다. 오늘이 어제와 비슷했듯이 내일도 오늘과 비슷하겠지. 따지고 보면 다 거기서 거기인 날들일 뿐이다. P233



📚 <어느 날 은유가 찾아왔다>

 

제주도로 갑자기 떠난 어느 날. 은유를 보러 경태의 권유로 갔다고 해서 실제 인물인 줄 ㅠㅠ. 원래의 모습을 잃어가는 나를 과거 깜깜한 밤하늘로 수박씨를 날리던 외삼촌이 날 것의 은유법을 말하듯 자신을 꺼내보라고 스스로 되뇌이는 듯했다. 

 


 

나는 하루하루를 견디는 데 몰두하느라 충동이 멋진 추동이 되는 순간을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P242

 

바보들은 출구를 알려줘도 못 찾아가지.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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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동네’로부터 도서지원 받았습니다.

시든 채소 같은 꼴로 매사에 심드렁해진 지가 꽤 오래되었다는 자각에 이르자 더 꼼짝도 하고 싶지 않았다.P13 <흔들리는 것들>

그들은 모든 것을 다음으로 유보하는 방식으로 그들 자신 역시 지금과는 다를 거라고 믿는 미래로 유보했다. 나는 부모님의 다음에를 불신했고 나중엔 혐오했다. 그러면서도 삶에 큰 불만이 없는 그들이 비겁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그들과 비교하면 나는 영영 나태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 게 싫었다. P29 <흔들리는 것들>

사장의 소박한 꿈을 완성해주는 일부가 되고 싶진 않았다. 미래의 가능성을 그 조그만 회사의 초라한 사무실에 한정한다는 건 나 자신에게 비겁한 일 같았다. P43 <오피스>

그때부터 꽃병의 물을 가는 건 자연스럽게 내 일이 되었다.
기꺼이 시작한 일이었지만 돌이켜보면 비굴에 가까운 선의가 아니었나 싶다. P46 <오피스>

"지 부장은 항상 쓸데없는 말이 너무 많았어요."
그 마지막 말이 이상하게 가슴에 와 박혔어. 쓸데없는 말. 그래, 나는 그게 듣고 싶었던 거야. 결국 도시의 밤 속으로 형체도 없이 사라져버릴 거라는 걸 잘 알면서도. 이 컵을 전해준다면 지 부장은 내게 고마움을 표시할 테고 둘 사이엔 무언가가 계속 꼬리를 물게 되겠지? 그러다 그녀의 쓸데없는 말에 연연하게 될까봐 두려워졌어. P90 <도시는 밤>

"아니, 주제 파악 못 하고 나대는 게. 난 말이지. 맥도날드 알바가 글로벌 전략을 논하는 꼴은 정말 못 봐주겠어." P159 <디디를 기다리며>

나는 하루하루를 견디는 데 몰두하느라 충동이 멋진 추동이 되는 순간을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P242 <어느 날 은유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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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의 계절
권여선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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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의 계절』

 

권여선 소설

문학동네 출판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중년을 넘은 여성으로 자신이기도 했고, 엄마이기도 했고, 3인칭 시점에서 바라보기도 했는데 각각 인물 모두가 개성이 뚜렷했다. 내가 알지 못했던 내 안에 짓눌려 있던 무거웠던 감정들을 쏟아내는 느낌들이었다. 점점점점 자신의 숨은 기억을 꺼내보다 결국엔 <기억의 왈츠>에서 다 축척해놓은. 너무 좋았다. 필사로 노트를 빼곡히 채울만큼 🩷

 



📚<사슴벌레식 문답>

 

시대를 바꾸기 위해 연대했던, 할 수밖에 없던 시절의. 내 친구가 가족이 눈앞에서 피 흘리며 쓰러지고 사라지는 것을 견뎌내고 싸워야 했던 이겨내야 했던 아픈 시절의 이야기라 조금 무거웠다.

 

가슴 한 켠에 새끼오리친구들이 이제는 각자의 삶으로 살고 있겠지만 그 친구들과 헤어지게 된 계기가 나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는 꺼내기 두려운 답답한 마음이 있다. 궁금하기도 하고 내 소식을 전하고 싶지만 연락이 닿지 않기도 하고 이제는 그 간극 사이를 좁힐만한 무언가가 없다. 내가 버린 것도 아닌 무언가.

 

인간의 자기 합리화는 타인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비합리적인 경로로 끝없이 뻗어나가기 마련이므로, 결국 자기 합리화는 모순이다. 자기합리화는 자기가 도저히 합리화될 수 없는 경우에만 작동하는 기제이니까. P36

 

직시하지 않는 자는 과녁을 놓치는 벌을 받는다. P40

 

📚<실버들 천만사>

 

딸 채운과 아빠와 이혼한 엄마 반희가 여행을 떠난 이야기.

채운이 다니던 코로나도 아닌 무좀으로 체육관은 휴관으로 들어가고 엄마는 딸 말하는 스타일을 놓치지 않고 이직에 대한 불안도 알아차린다.

 

부모의 각자 다른 삶이 딸에게는 얼마나 큰 상처일지 안다. 서로 보지 않고 살아도 눈에 보이지 않은 수만 가닥의 실처럼 눈빛, 걸음걸이, 표정, 숨 쉬는 소리만 들어도 딸의 기분이, 상태가 어떤지 엄마는 안다. 나를 닮지 않았으면 좋겠다가도 닮은 모습을 보면 또 웃음 짓는. 모녀사이의 표현할 수 없고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이야기.

 

안 그러면 내가 죽을 것 같아서. 죽기 전에 나를 조금이라도 회복해놓고 싶어서. P76

 

엄마, 나는 미래완료라는 말이 그렇게 슬퍼. 언제부턴가 난 알았던 것 같아. 엄마가 집을 나갈 거라는 걸. 엄마가 나간 다음에 나 혼자 엄마 없이 살 거라는 걸. P77

 

우리 모녀 사이에 수천수만 가닥의 실이 이어져 있다면 그걸 밧줄로 꼬아 서로를 더 단단히 붙들어 매자. P79

 

아무것도 아니야, 채운아.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었어. P79

 

📚<하늘 높이 아름답게>

 

독일 파독 간호사로 가서 아들을 낳고 다음날 남편은 돌연사한 마리아는 이름도 못지은 아들을 독일 부부에 입양보내고 한국으로 송환되었다. 태극기를 팔며 첫아들의 청회색 눈동자를 떠올리며 그리워했는데 성당의 사람들은 마리아가 죽은 후 그녀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떠난 사람은 잊혀지기 마련이다.

 

도대체 이들은 이렇게 해서 뭐가 만족스러운 건가, 베르타는 신음하듯 생각했다.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는 말을 떠들어대면서 도대체 어떤 기쁨을 느끼는 걸까. P91-92

 

한 계절이 가고 새로운 계절이 왔다. 마리아의 말대로라면 새로운 힘이 필요할 때였다.

각각의 계절을 나려면 각각의 힘이 들지요, 사모님. P114

 

📚<무구>

 

대학동창 현수와 소미는 페이스북을 통해 우연히 다시 만나고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현수의 소개로 소미는 U시의 땅을 사게 된다. 하지만 그 땅에 묘역이 들어온다는 소문이 돌더니 현수와도 연락이 끊겼다. 다행히도 시간이 지나 개발이 되면서 건물을 짓고 건물주가 된다.

 

사람의 무구함을 소미는 믿지 않고, 불안한 투자도 다 젊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나이를 떠나 사람의 무구한 행동은 현수처럼 쇳가루 떨어질듯 키로 돌려야 시동이켜지는 팥죽 자동차쯤 쿨하게 몰아줘야 그런 때묻지 않은 무구한 사람으로 보일까. 나는 무구하게 보이는 사람도 자신의 이득만 챙기는 모습을 숱하게 봐서 그런지 외향으로 판단할 수는 없겠다. 흠흠

 

그때 우리는 젊었으며……두렵고 또 두려웠지. 현수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가끔 그 말이 떨쳐지지 않는 주문처럼 소미의 머릿속을 맴돈다. 그때 우리는 젊었으며……현수가 말한 그때는 그때가 아니었지만, 자신들이 다시 만났던 그때가 그래도 자신들이 마지막으로 젊었던 시절이었다는 것을 이제 소미는 안다. 그래서 여전히 두렵고 또 두려웠다는 것을. 그래서 그렇게 많이 웃고 죽자고 담배를 피워대고 겁없이 땅을 사고했다는 것을. P144

 

사람은 절대 무구하지 않다. 또 현수가 얼마나 거칠게 변했을지 누가 알겠는가. P145

 

📚<깜빡이>

 

혜진과 혜영은 엄마 신숙과 신애 이모와 교류도 잦고 친하지만 자신들의 시간을 방해하는 듯 귀찮아한다. 엄마와 이모도 이모부가 자기들 모임에 안 오길 바라는 마음처럼 ㅋㅋ 걱정하는 건지 욕을 하는 건지 하소연을 하는 건지 랩을 늘어놓는 엄마의 토크.

 

혜진의 속사포 같은 날 선 말을 듣고 있자니 혜영은 이상하게 불안하면서도 위로가 됐다. 그래서 코뚜레를 꿰듯 해서라도 얘를 데려왔나……나 대신 들이받으라고. P155

 

📚<어머니는 잠 못 이루고>

 

오익과 여동생 오숙, 그리고 엄마와의 마음의 채무에 대한 이야기.

엄마는 말을 빌려 섭섭했던 자식의 행동을 말한다. 가깝고 늘 사랑하고 살아도 부족하지만, 어긋나고 상대방에게 상처주는 말들만 한다. 자신이 희생한 시간에 대해 생각하고 보상받길 바라는 건 잘못된 것일까. 보상을 받으면 마음은 편해질까. 잘 모르겠다.

 

원채는 다 갚기 전에는 절대 안 없어진다고, 죽어도 안 끝나고 죽고 또 죽어서도 갚아야 하는 빚이 원채라고 어머니는 말했다. 오익은 그게 바로 사는 일 같다고 생각했다. 기피 의지와 기피 불가능성이 정비례하는, 그런 원채 같은 무서운 말과 일들이 원체처럼 쌓여가는. P172

 

의미를 찾으려고 애쓰다보면 실제로 들려온 소리가 점점 더 모호하게만 생각되었고 과연 들려온 것이 맞는지, 자신이 들은 것이 확실한지 알 수 없었다. P194

 

무지는 가장 공격받기 쉬운 대상이지만, 무지한 자는 공격 앞에서 두려워 떨 뿐 무지하여 자기 죄를 알지 못하므로 제대로 변명조차 할 수 없다. P199

 

📚<기억의 왈츠>

 

동생과 제부와 밥을 먹으러 숲속 식당에 갔다가 눈앞에 마치 그때로 돌아간 듯 선명히 오래 전 스물네 살의 경서와의 기억을 소환시킨다. 경서와 주고받았던 편지를 읽으며 젊었지만 아프고 힘들었던 기억으로 나는 그렇게밖에 살 수 없었나 후회하기도 했다. 자신을 몰랐다. 그래서 울 수조차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모른다고 도망치지 않을 자신을 안다.

 

젊은 시절의 두려움. 부러움. 그렇지만 생기 있고 에너지 있던 것들을 모조리 이 소설에 부어 놓은 느낌이다. 젊다는 이유로 술에 취해 살며 허비한 시간들을 숲속식당에서 찾다니.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어떤 장면들처럼 어느 장소에서 누군가의, 당시의 나를 돌이켜보게 했던 영화같았던 소설.

 


 

🔖오래전 기억 속의 자신은 원래 그렇게 생각되는 법인지 모른다. 하지만 원래 그렇더라도 놀라운 건 놀라운 것이다. 내가 손쓸 수 없는 까마득한 시공에서 기이할 정도로 새파랗게 젊은 내가 지금의 나로서는 결코 원한 적 없는 방식으로, 원하기는커녕 가장 두려워해 마지않는 방식으로 살았다는 사실이, 내게는 부인할 수도 없지만 믿을 수도 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이런 게 놀랍지 않다면 무엇이 놀라울까. 시간이 내 삶에서 나를 이토록 타인처럼, 무력한 관객처럼 만든다는 게. P204

 

나는 어지간한 고통에는 어리광이 없는 대신 소소한 통증에는 뒤집힌 풍뎅이처럼 격렬하게 바르작거렸다. 턱없이 무거운 머리를 가느다란 목으로 지탱하는 듯한 그런 기형적인 삶의 고갯짓이 자아내는 경련적인 유머가 때때로 내 삶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발사된 건 아니었을까. P218

 

누구나 자기가 한 일에 대해서는 최소한 받아들일 만한 수준으로 만들기 위해 그 처참한 비열함이라든가 차디찬 무심함을 어느 정도 가공하기 마련인데, 나 또한 그렇게 했다.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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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자기 합리화는 타인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비합리적인 경로로 끝없이 뻗어나가기 마련이므로, 결국 자기 합리화는 모순이다. 자기합리화는 자기가 도저히 합리화될 수 없는 경우에만 작동하는 기제이니까.P36 <사슴벌레식 문답> - P36

엄마, 나는 미래완료라는 말이 그렇게 슬퍼. 언제부턴가 난 알았던 것 같아. 엄마가 집을 나갈 거라는 걸. 엄마가 나간 다음에 나 혼자 엄마 없이 살 거라는 걸. P77 <실버들 천만사> - P77

무지는 가장 공격받기 쉬운 대상이지만, 무지한 자는 공격 앞에서 두려워 떨 뿐 무지하여 자기 죄를 알지 못하므로 제대로 변명조차 할 수 없다. P199 <어머니는 잠 못 이루고>

오래전 기억 속의 자신은 원래 그렇게 생각되는 법인지 모른다. 하지만 원래 그렇더라도 놀라운 건 놀라운 것이다. 내가 손쓸 수 없는 까마득한 시공에서 기이할 정도로 새파랗게 젊은 내가 지금의 나로서는 결코 원한 적 없는 방식으로, 원하기는커녕 가장 두려워해 마지않는 방식으로 살았다는 사실이, 내게는 부인할 수도 없지만 믿을 수도 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이런 게 놀랍지 않다면 무엇이 놀라울까. 시간이 내 삶에서 나를 이토록 타인처럼, 무력한 관객처럼 만든다는 게. P204 <기억의 왈츠>

나는 어지간한 고통에는 어리광이 없는 대신 소소한 통증에는 뒤집힌 풍뎅이처럼 격렬하게 바르작거렸다. 턱없이 무거운 머리를 가느다란 목으로 지탱하는 듯한 그런 기형적인 삶의 고갯짓이 자아내는 경련적인 유머가 때때로 내 삶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발사된 건 아니었을까. P218 <기억의 왈츠>

누구나 자기가 한 일에 대해서는 최소한 받아들일 만한 수준으로 만들기 위해 그 처참한 비열함이라든가 차디찬 무심함을 어느 정도 가공하기 마련인데, 나 또한 그렇게 했다. P230 <기억의 왈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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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최선
문진영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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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선 어둠 속에 자신을 내버려둘 용기가 필요한 게 아닐까. 너무 어두워서 도무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다가도. 시간을 견디면 결국에는 아주 느린 속도로 시야가 밝아지듯이. 캄캄한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일.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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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최선
문진영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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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최선』

 

문진영 소설

문학동네 출판



 


우선 읽기가 쉬웠다. 그래서 더 재미있게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오! 상그리아>에서 엄마는 자꾸 떠나고, <내 할머니의 모든 것>의 끝내 사라져버리는 배정심 할머니, <지나가는 바람>의 나에게만 멈추지 않는 바람같은 소설들. 조금은 이기적일 수 있으나 자신의 삶을 찾아떠난 멋진 인물일 수도 있는 인물들, 해결되지 않고 답답한 날들의 연속이지만 하루를 충실하게 살아가는 인물들, 다양한 인물들이 많다. 늘 가까이 있는 가족과 친구의 이야기이지만 생각해보면 나는 잘 살았는가, 잘 살고있는가 질문하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독파챌린지 '문진영 작가님'과 Zoom 토크!!

 

|작가님이 애정하는 소설책

- 존 윌리엄스 ‘스토너’

-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올리브 키터리지’

 

|작가님 요즘 근황

- 다음 쓰려는 경장편에 관련된 생각과 독서를 하고 있다.

슬퍼할 권리에 대한 얘기를 쓰고 있어서 개인의 슬픔과 사회에서 바라보는 슬픔이

어떻게 어긋나는지 많이 생각하고 있다.

 

(이재현 편집자님 머리스타일이 바뀌셨는데 더 잘 생겨지신듯 😊)

 


📚미노리와 테츠

 

항상 수민과 반대같던 나(희주)는 일본으로 여행을 갔다가 미노리와 테츠 부부를 만난다. 테츠는 수민을 볼 때 미노리가 처음보는 표정을 짓거나 둘 사이의 에너지를 알아챘을 때, 수민의 2인자같은 느낌이 싫었던 희주는 미노리와 같은 마음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수민과 미노리는 빛이 없는 그림자같은 느낌 때문이었을까. 그렇게 말없이 헤어졌다. 좋아하지만 마음이 하나일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으니까.

 

아, 이애는 빈 종이에 자기 이름을 적을 때의 기분 같은 건 평생 모르겠구나. 아보카도 씨앗처럼 웅크리고 있던 뭔가가 그 순간 뿅, 하고 돋아났다. 결코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에. 테츠가 말하려던 건 이것이었을까. 그렇게 한번 자라난 것은 되돌릴 수 없었고, 나는 그것을 마음 속 어두운 구석에 숨겨두고 문을 잠갔다. P27

 

집으로 돌아오는 길, 버스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있으면 주변의 소리들이 활자처럼 머릿속에 들어와 박혔다. 그때마다 나는 다른 무엇보다도 내가 이 불가해한 세계와 소통하려고 애쓰는 와중에, 쏟아지는 말들의 의미를 해독하는 와중에 조금씩 소진되어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종종 두려웠다. P28-29

 

빛이 환할수록 더 짙어지는 그림자에 관해. 임계점에 닿기도 전에 쉽게 무너져버리는 마음에 관해. P31


 

📚변산에서

 

수온의 아빠 승민의 산재가 승인되던 날 민주와 내가 신나게 먹는 장면, 항소를 포기하던 날 저녁 또 갈비를 먹던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무기력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모습이 아니라 전투적으로 먹는 모습들에서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느껴졌다. 번데기 세 명은 서로가 서로를 알아주는 마음이 있기에 아름다운 나비가 되어 날아갈 거다. 함께 싸워주는 친구가 있기에, 지금 졌어도 끝내 이겨낼 수 있다!

 

매일 밤 통화할 때는 침묵이 찾아오는 법이 없었는데 막상 오랜만에 마주앉으니 할말이 없었다. 이미 할 이야기는 다 해버린 뒤라 그런 건지도 몰랐다. P57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선 어둠 속에 자신을 내버려둘 용기가 필요한 게 아닐까. 너무 어두워서 도무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다가도. 시간을 견디면 결국에는 아주 느린 속도로 시야가 밝아지듯이. 캄캄한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일. P61



 


📚오! 상그리아

 

술에 늘 취해 있던 할아버지의 사생아로 태어난 엄마. 그런 엄마를 따스히 보듬어준 할머니. 딸에게 취한 것처럼 살라던 상그리아 같다고 말하던 엄마는 아빠없는 아이로 할머니 손에 딸이 자라게 했다. 독특한 가족 형태였는데, 지금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이 소중해서 왜 자꾸 떠나는지 이유는 물을 수 없었던 슬픈 사연.

 

코가 기억하는 엄마의 냄새가 있다면, 그건 바로 바람냄새다. 바람 속에 서 있을 때 그것은 아무런 냄새가 없는 것 같다가도. 분명하게 몸에 스며들었다가는 바람 없는 곳에서 그 향을 퍼뜨린다. P82


 

📚 내 할머니의 모든 것

 

대물림인가. 할머니가 자신의 길을 간다고 할아버지와 이혼하고 엄마도 아빠와 자신의 길을 가겠다고 이혼을 했다. 자신의 삶을 살겠다고 한 마음은 멋있지만 자식을 두고 떠난 것은 책임감이 없어보이는 부모의 모습이다. 소설을 다 읽어도 왜 할머니는 모두에게서 떠났고, 또 지금의 손녀에게서도 떠났을까 궁금했다. 다 버리고 흔적도 남기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혼자만 알고 있었을까. 수수께끼 같은 배정심 여사. 그녀는 누구인가. (외계인 혹은 국정원 혹은 사기꾼? ㅎㅎ)

 

다만 후에 내가 알게 된 것은, 그날 할머니는 자신이 가진 최선의 것들을 몸에 걸치고 나왔다는 사실이다. 최선의 것들이자 유일한 것들을. 단 한 벌의 코트, 하나의 모자, 하나의 목도리, 한 켤레의 장갑. 나는 뒤늦게야 그녀가 살아온 삶의 방식을 감히 짐작해볼 수 있었다. 최소한의 최선. 그것이었다. P96

 


📚 너무 늦지 않은 어떤 때*

 

영상을 찍는 알바를 하다 그냥 직업이 되어버린 일상 중 학원 영상을 찍던 중 남자를 만난다. 자신을 너무 불행하게 바라보는 그 남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름다운 폐허, 인도에서 만난 스무 살이나 차이 나는 친구 ‘안와’를 만나 인도여행의 풍경과 그들의 삶이 어느 순간 내 삶과 닮아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들처럼 지나가는 지금이지만 또 살아보자고 마음먹는 것 같았다.

 

말의 홍수보다는 말의 빈곤이, 그보다는 침묵이 언제나 나았다. 그래서 우리는 대부분 침묵했고 그 침묵에 만족했다. 그리고 결국에는, 서로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게 되었다. P140

 

다만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영원히 살 수 있는 꿈 같은 건 없다는 것을. 이 순간은 오직 지금뿐이라는 것을. 어떤 오늘도 내게 너무 늦지는 않았다는 것을. P150



 

📚 고래 사냥

 

인천 석모도 어느 해안가 민박집을 하는 부모님을 둔 룸메씨와 삼수는 하기 싫어 성적에 맞춰 생각지도 않은 대학에서 만났다. 잘해보려고 알바도 하며 열심히 살았기에 앞으로 다가올 미래도 좋을 거라는 상상을 한다. 수업 대신 바이킹을 타러 월미도로 탈출하고 하늘엔 돌고래 풍선이 날고 있으니 지금처럼 앞으로도 행복할 거라는 즐거운 상상.

 

이 년째 그런 일상이 반복되고 있었다. 우리는 제일 저렴한 시리얼로 아침을 먹고, 점심에는 참치 캔 하나 따는 것을 세상 고민하면서도, 저녁이 되면 편의점에서 제일 비싼 수입 맥주를 종류별로 돌아가며 하나씩 사다 먹었다. 그건 일종의 보상이었다.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아냈다는 데 대한 보상이 아니라, ‘아무 일 없음’을 또 하루 견뎌 냈다는 데 대한. P157

 

📚 네버랜드에서

 

풍차돌리기 적금을 들며 계획적인 삶을 살고 있는 남자친구 희욱을 두고 부모님을 모시고 언니와 조카, 형부가 일하고 있는 태국으로 휴양을 떠났다. ‘피터 팬’ 이름을 가진 태국 남쪽 바다 어느 작은 섬으로. 그곳에서 차갑지만 나에게만 보이는 바보같은 웃음을 짓는 희욱과 달리 수영을 알려주는 다정한 론을 만난다.

희욱이 없기 때문일까. 즐거워하는 언니네, 휴양지의 모습 모든 것이 다 싫다. 동화 속 네버랜드처럼 친구를 두고 다시 현실로 오지만 휴양지에서의 만남으로 내 삶은 행복한지 되돌아보게 된다.

 

‘그냥 젊다는 것’에 관해 생각했다. 단지 젊기만 하다는 것은 젊음 외에 내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의미했고, 나는 그 사실을 견디느라 젊음을 다 소모해 버린 것 같은데. 그러면서도 무언가가 되라는 목소리에는 늘 저항감을 느꼈었다. P189

 

뭔가 여기, 조그만 구멍이 하나 있는데, 이건 새 옷을 사도, 맛있는 걸 먹어도, 애인을 바꿔도 메워지질 않는 거야. P191



 

📚 지나가는 바람

 

한없는 무기력에 빠진 나. 전 직장 동료 민지씨처럼 SNS 유명인사가 되어 매달 천만 원을 벌고 싶었다. 영상장비를 사고 여행준비물을 샀지만 코로나가 터졌다.

가만 누우면 표팀장의 콘텐츠MD 라는 사람이 그걸 모르냐는 얼굴이 떠오를 만큼 정신적으로는 힘들다.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퇴사를 했는데 경제적으로 힘들어져서 다시 일을 해야하는 삶이란.. 이런 힘듦도 지나가는 바람이겠지만 지금은 매섭고 차갑다.

 

그냥 쉬고 싶다. 잠깐이 아니고 계속.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르는 게 아니라, 전원을 끄고 싶다.

배터리를 빼고 싶다. P210

 

세상은 왜 이렇게 나에게 불친절한가.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였다. 카페에서, 마트에서. 아무도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얼굴의 반쪽이 마스크로 가려진 세계에서는, 입가에 희미하게 묻어 있을지도 모를 미소가 상대에게 가닿지 못한다. P212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은 바람이.

지나가는 바람.

그냥 지나가는 바람이 간판을 떨어뜨리고, 전봇대를 넘어뜨린다면. 벚꽃 잎을 남김없이 탈탈 털어버리는 바람에 대해 생각했다. 꽃잎은 바로 이 순간에도 떨어지고 있겠지. 한번 떨어진 건 다시 붙지 않아. 봄은 찰나 같고 곧장 여름이었다. P222

 

내가 할 수 있는 건 겨우 이런 게 아닐까 생각했다. 누군가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가만히 지켜보는 것. P226



 

📚 한낮의 빛

 

부유한 집 딸이었지만 가세가 기울어 나의 집에 잠시 오게 된 유영언니가 오빠와 침대 위에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내가 부모님께 말함으로 두 집은 완전 남이 되었고, 학교에서 말함으로 언니는 결국 우리나라를 떠났다. 어릴 때 그림을 잘 그리고 싶었지만 소질없던 나의 모습이 스물다섯 유럽 여행 중 엘로이즈의 <이중 자화상>을 보고 놀라게 된다.

언니에 대한 말을 자신이 했다는 것에 죄책감으로 누구에게도 언니라 부르지도 듣지도 않는데 현재 전시장에서 엘로이즈의 <이중 자화상>을 보고 있는 아르바이트 생 주명을 보게 되고, 자신을 언니라 부르고 싶다고 말하는 주명을 보며 유영언니를 떠올린다.

 

아무렇지 않게 유영언니는 나를 만나주었는데. 과거의 일을 용서한 것일까. 나는 평생을 정신과 치료를 요할만큼 부채를 떠안고 지냈는데 언니는 괜찮았던 건지 궁금해졌다.

 

내가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면 찰나의 웃음기가 느껴지는 눈인사를 건넸으나, 다른 것은 일체 묻지도 관심을 보이지도 않았다. 그는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어디에 사는지는 몰랐지만 내 연애의 연대기를 알았다. 그와 나는 모종의 비밀을 공유하는 사이인 동시에 절대 궤도가 겹치지 않을 행성 같았고, 그래서 편안했다. P234

 

‘한낮의 빛이 어둠의 깊이를 어찌 알겠는가.’

그러나 밤의 어둠도 한낮의 빛을 알지 못한다. P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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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동네’로부터 도서지원 받았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선 어둠 속에 자신을 내버려둘 용기가 필요한 게 아닐까. 너무 어두워서 도무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다가도. 시간을 견디면 결국에는 아주 느린 속도로 시야가 밝아지듯이. 캄캄한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일. - P61

빛이 환할수록 더 짙어지는 그림자에 관해. 임계점에 닿기도 전에 쉽게 무너져버리는 마음에 관해. - P31

다만 후에 내가 알게 된 것은, 그날 할머니는 자신이 가진 최선의 것들을 몸에 걸치고 나왔다는 사실이다. 최선의 것들이자 유일한 것들을. 단 한 벌의 코트, 하나의 모자, 하나의 목도리, 한 켤레의 장갑. 나는 뒤늦게야 그녀가 살아온 삶의 방식을 감히 짐작해볼 수 있었다. 최소한의 최선. 그것이었다. - P96

말의 홍수보다는 말의 빈곤이, 그보다는 침묵이 언제나 나았다. 그래서 우리는 대부분 침묵했고 그 침묵에 만족했다. 그리고 결국에는, 서로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게 되었다. - P140

다만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영원히 살 수 있는 꿈 같은 건 없다는 것을. 이 순간은 오직 지금뿐이라는 것을. 어떤 오늘도 내게 너무 늦지는 않았다는 것을. - P150

이 년째 그런 일상이 반복되고 있었다. 우리는 제일 저렴한 시리얼로 아침을 먹고, 점심에는 참치 캔 하나 따는 것을 세상 고민하면서도, 저녁이 되면 편의점에서 제일 비싼 수입 맥주를 종류별로 돌아가며 하나씩 사다 먹었다. 그건 일종의 보상이었다.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아냈다는 데 대한 보상이 아니라, ‘아무 일 없음’을 또 하루 견뎌 냈다는 데 대한. - P157

‘그냥 젊다는 것’에 관해 생각했다. 단지 젊기만 하다는 것은 젊음 외에 내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의미했고, 나는 그 사실을 견디느라 젊음을 다 소모해 버린 것 같은데. 그러면서도 무언가가 되라는 목소리에는 늘 저항감을 느꼈었다. - P189

뭔가 여기, 조그만 구멍이 하나 있는데, 이건 새 옷을 사도, 맛있는 걸 먹어도, 애인을 바꿔도 메워지질 않는 거야. - P191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은 바람이.

지나가는 바람.

그냥 지나가는 바람이 간판을 떨어뜨리고, 전봇대를 넘어뜨린다면. 벚꽃 잎을 남김없이 탈탈 털어버리는 바람에 대해 생각했다. 꽃잎은 바로 이 순간에도 떨어지고 있겠지. 한번 떨어진 건 다시 붙지 않아. 봄은 찰나 같고 곧장 여름이었다. - P222

‘한낮의 빛이 어둠의 깊이를 어찌 알겠는가.’

그러나 밤의 어둠도 한낮의 빛을 알지 못한다. - P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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