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도살장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0
커트 보니것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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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도살장』

- 혹은 소년 십자군

죽음과 억지로 춘 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0)

커트 보니것

정영목 옮김

문학동네 출판

 

 

빌리 필그램은 현재에서 제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의 드레스덴 폭격을 목격한 미국 보병 정찰대원으로 유럽에서 독일군에게 포로로 잡혀 드레스덴의 도살장을 개조한 수용소 제5도살장에 끌려간 과거 기억 속으로 소환된다.

 

어쩌면 책의 시작에 소설은 함축되어 있는 듯했다. 전쟁에서 살아 남았지만 왜 전투력을 상실했는지, 과거와 현재를 왔다갔다하는 정신없는 글을 쓰게 되었는지 조금은 알듯했다.

 

이 모든 일은 실제로 일어났다. 대체로는. 어쨌든, 전쟁이아기는 아주 많은 부분이 사실이다. 내가 아는 한 사람이 드레스덴에서 자기 것이 아닌 찻주전자를 가져갔다는 이유로 정말로 총살을 당했다. 내가 아는 또 한 사람은 개인적으로 원수진 사람들에게 전쟁이 끝나면 총잡이를 고용해 죽여버리겠다고 정말로 협박했다. P13

 

읽으면서 자꾸 과거로 돌아가는 빌리 필그림때문에 나도 자꾸만 흐름을 놓치기 일쑤였다. 주변에 누군가 죽어갈 때마다 슬픔도 애도도 없이 (책에서 106번이나 나오는) “뭐 그런거지“라는 표현은 삶을 이어가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모든 것을 체념하는 말로 보여 덩달아 기분이 축 쳐지는 느낌이었다.

 

주인공의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것은 전쟁 트라우마때문이겠지만 엉뚱한 시공간으로 가는 설정은 지구 밖에서 바라보는 전쟁을 일으키는 인간에 대해 말해주고 싶었던 것일까. 빌리는 트랄파마도어인이라는 가상의 존재를 만들어 그곳에서 발가벗어진 채로 자신이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존엄성, 자유의지 따위 없이 동물원의 원숭이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전쟁에 이유도 모른 채 징집되는 소년들과 전쟁과 관련없이 자신들 기분에 따라 이유없이 자행되는 살인같은 일들이 인간 너희들은 알고 있는지 질문을 던지듯.

 

끝까지 읽어야하나 책을 읽는 내내 고민되었던 책이다 😭 전쟁서사에 큰 감동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마도 영웅담을 내심 원했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아 그럴 수도) 반전의 내용이 있다고 하지만 난 끝내 반전도 찾지 못했다 ㅠㅠ 해설도 어렵긴 마찬가지.

 

기억에 남는 문장은 오로지

"뭐 그런거지(So it goes)"

 

 

ㅡㅡㅡㅡㅡㅡ

 

 

🔖그제야 나는 이해했다. 그녀를 그렇게 화나게 한 것은 전쟁이었다. 자기 아이나 다른 누구의 아이도 전쟁에 나가 죽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리고 책이나 영화가 전쟁을 부추기는 데 한몫한다고 생각했다. P29

 

🔖그리고 나는 현재에 관해 자문했다. 현재는 얼마나 넓고, 얼마나 깊으며, 그 가운데 내 것으로 챙길 것은 얼마나 되는가. P32

 

🔖시간은 흐르지 않으려 했다. 누군가 시계에 장난을 치고 있었다. 전기 시계만이 아니라 태엽시계에도. 내 손목시계의 분침은 한번 움찔거린 뒤 일 년을 흘려보냈고, 그러고 나서야 또 한번 움찔거렸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지구인으로서 시계가 말해주는 것을 믿을 수 밖에 없었다ㅡ그리고 달력이 말해주는 것을. P35

 

ㅡ심각한 전쟁 상황인데도 재미있는 사람이다.

🔖포는 전능하신 하느님의 바지 앞자락 지퍼를 여는 것처럼 찢어지는 소리를 냈다. 대포는 10미터 길이의 토치로 눈과 식물을 핥아먹었다. P52

 

🔖“자, 여기 우리도 그런 거죠, 필그림 씨, 이 순간이라는 호박에 갇혀 있는 겁니다. 여기에는 어떤 왜도 없습니다.“ P102

 

🔖빌리는 시간 여행을 하며 트랄파마도어의 동물원으로 갔다. 그는 마흔네 살이었으며, 지오데식 돔 아래 전시되고 있었다. 우주를 여행하는 동안 그의 요람이었던 안락의자에 몸을 파묻고 있었다. 알몸이었다. P144

 

🔖돔 안에 벽은 없었고, 빌리가 숨을 곳도 없었다. 민트색 욕실 설비들도 그대로 공개되어 있었다. 빌리는 안락의자에서 일어나, 욕실로 들어가 오줌을 누었다. 군중이 환호했다. P145

 

 



 

#제5도살장 #커트보니것 #문학동네 #세계문학 #전쟁소설 #북클럽문학동네 #독파챌린지 #독파 #7월독서 #서평 #내돈내산

그제야 나는 이해했다. 그녀를 그렇게 화나게 한 것은 전쟁이었다. 자기 아이나 다른 누구의 아이도 전쟁에 나가 죽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리고 책이나 영화가 전쟁을 부추기는 데 한몫한다고 생각했다. - P29

그리고 나는 현재에 관해 자문했다. 현재는 얼마나 넓고, 얼마나 깊으며, 그 가운데 내 것으로 챙길 것은 얼마나 되는가. - P32

시간은 흐르지 않으려 했다. 누군가 시계에 장난을 치고 있었다. 전기 시계만이 아니라 태엽시계에도. 내 손목시계의 분침은 한번 움찔거린 뒤 일 년을 흘려보냈고, 그러고 나서야 또 한번 움찔거렸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지구인으로서 시계가 말해주는 것을 믿을 수 밖에 없었다ㅡ그리고 달력이 말해주는 것을. - P35

포는 전능하신 하느님의 바지 앞자락 지퍼를 여는 것처럼 찢어지는 소리를 냈다. 대포는 10미터 길이의 토치로 눈과 식물을 핥아먹었다. - P52

"자, 여기 우리도 그런 거죠, 필그림 씨, 이 순간이라는 호박에 갇혀 있는 겁니다. 여기에는 어떤 왜도 없습니다." - P102

빌리는 시간 여행을 하며 트랄파마도어의 동물원으로 갔다. 그는 마흔네 살이었으며, 지오데식 돔 아래 전시되고 있었다. 우주를 여행하는 동안 그의 요람이었던 안락의자에 몸을 파묻고 있었다. 알몸이었다. - P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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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이 있는 집
김진영 지음 / 엘릭시르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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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이 있는 집』


김진영 지음

엘릭시르 출판

 

  판교 전원주택을 지어 이사 온 주란은 가정주부로 의사 남편 박재호, 아들 승재와 함께 살고 있다. 집들이 초대한 친구들이 집 마당에서 나는 악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기분이 나쁜 주란은 마당을 파다 손가락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과거 언니를 잃은 주란은 귀신을 본다거나 하는 이상 증세가 있어 남편에게 이야기했지만 남편은 주란에게 오늘 약을 먹었냐고 물으며 주란의 정신적 문제인 것으로 생각한다.

  불안정한 주란은 옆집 2층에서 주란의 마당이 보이는 곳에 서서 담배를 피우거나 남편을 주시하는 듯한 조선족 가정부 미령도 싫고, 주인 여자인 변호사 구은하도 논리적으로 말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주란과 전혀 다른 삶의 상은이 있다. 백화점 계약직인 상은은 임신한 직원은 고객에게 불편함을 줄 수 있어 해고 대상이 되므로 임신 4개월이라는 것을 숨기고 있다. 제약회사를 다니는 남편은 무력으로 상은에게 폭행을 일삼는데, 남편과 이혼을 하고 싶어 하던 상은은 임신을 하게 된다. 고아였던 남편 김윤범은 가정을 꾸리는 것이 목적인 것처럼 늘 함부로 대하던 상은에게 임신한 후로는 더 이상의 폭력은 하지 않지만 상은은 안다. 자신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뱃속의 자식을 위한 행동임을.

 

  실종 소녀 수민을 두고 주란, 주란의 남편 박재호, 상은, 상은의 남편 김윤범, 그리고 주란의 아들 승재까지 얽혀있는 사건들. 전혀 다른 삶의 환경에서 사는 상은과 주란, 두 여자는 무엇을 숨기는지 진짜 진실이 궁금해서 (내일 출근인데ㅜㅜ) 졸린 눈을 비벼가며 끝까지 읽게 했다.

 

  주란이 선택한 행동은 망상 때문에 저지른 것일지, 남편으로부터 자신이 무기력한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피해의식 때문에 자신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한 것인지 모르겠다.

  가정을 지키고 싶어 했던 남편처럼 주란도, 상은도 가정을 지키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가진 돈, 힘으로 부인을 자신의 소유물인 것 마냥 행하는 남편들의 행동으로 인해 주란과 상은의 바램들이 변질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자신이 늘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그 비열함이 가치 있는 행복을 부른다고 착각했던 남편들의 권위는 강제적이었다. 왜 권위를 부인에게서 찾는단 말인가! 자신의 발아래 부인을 두려고 하는 남편들의 깨달음은 부족하다. ㅎㅎ

 

  10살 차이 나는 남편. 부유하고 레지던트였던 남자친구였던 그때 주란은 가난했고 칭찬과 존중에 굶주렸기 때문에 그런 욕구를 남자친구였던 남편이 채워주는 것을 만족하며 결혼했다. 남편은 어리던 주란을 좋아했던 것이었고 지배적인 모습을 주란은 존중으로 생각하며 맞춰가며 살았다. 가난했던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주란은 남편이 항상 무시한다고 생각하고 피해자인 것처럼 행동했다. 언니를 죽게 만든 것은 자신이 아니었지만 자신의 원룸에서 일어난 일이었고, 자신이 거주하던 원룸은 사실상 언니의 월급으로 생활했던 곳이었기에 주란은 꼭 자신의 욕심으로 언니가 죽게 되었다고 그 피해 망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해결되지 않고 겉으로 억지로 맞춰가기만 한 관계들은 결국엔 끝이 있기 마련이고 그 끝은 늘 좋은 모습이 아니다. 주란의 불안정함과 주란을 이용하는 남편,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다른 사람의 삶 자체를 송두리째 흔들어버리는 인물들을 보며 주란이 말한 ‘이 세상에 쉬운 삶은 없어요. 자신을 특별히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요. 우린 모두 다 평범하게 불행한 거예요.’(P376) 말처럼 우리는 모두 평범하기 위해 가슴속 불행을 숨기며 사는 것은 아닐까.


 


 


🔖나는 그렇게 자신을 피해자로 두고 싶지 않았다. 피해자의 위치에 서게 만드는 가난을 증오했다. P52



 

🔖나는 거실 불을 켜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다시 혼자가 되었다. 이 공간에,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나 혼자뿐이라는 사실에 위안을 받았다. 어떤 사람에게는 혼자라는 사실이 큰 두려움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오로지 혼자 남기 위해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P105

 

🔖지금은 내가 꿈과 현실을 혼동하며 제대로 사리 판단도 못 하는 사람이 아니란 걸 증명하고 싶었다. 내가 본 것과 내가 들은 것과 내가 느낀 것이 맞을 수도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일단 나는 남편에게 소리친 것에 대해 사과하기로 했다. 사과하기로 한마음 이면에는 남편이 나를 구제불능 취급하며 떠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었다. P134

 

🔖나는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남편이 소파에서 일어난 뒤에도 한동안 거실 창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봤다. 창에 비친 내 모습은 너무도 불쌍했다. P185



 

🔖나락에 떨어진 감정에 휘둘리며 힘들어하며 도와달라고 발버둥 칠 때 그 외침을 들을 수 있는 자리에는 남편이 기다렸다는 듯이 서 있었다. 남편만이 그 위치에 있을 수 있었다. 남편은 사람들로부터 나를 소외시키고 배제시키면서 자신만이 그곳에 홀로 서 있고자 했다. 도와달라는 내 외침을 자신만이 들을 수 있도록. P264

 

#마당이있는집 #김진영 #엘릭시르 #독파 #독파챌린지 #북클럽문학동네 #꿀잼 #독서 #책스타그램 #서평 #내돈내산

‘이 세상에 쉬운 삶은 없어요. 자신을 특별히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요. 우린 모두 다 평범하게 불행한 거예요.’ - P376

나는 그렇게 자신을 피해자로 두고 싶지 않았다. 피해자의 위치에 서게 만드는 가난을 증오했다. - P52

나는 거실 불을 켜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다시 혼자가 되었다. 이 공간에,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나 혼자뿐이라는 사실에 위안을 받았다. 어떤 사람에게는 혼자라는 사실이 큰 두려움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오로지 혼자 남기 위해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 P105

지금은 내가 꿈과 현실을 혼동하며 제대로 사리 판단도 못 하는 사람이 아니란 걸 증명하고 싶었다. 내가 본 것과 내가 들은 것과 내가 느낀 것이 맞을 수도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일단 나는 남편에게 소리친 것에 대해 사과하기로 했다. 사과하기로 한마음 이면에는 남편이 나를 구제불능 취급하며 떠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었다. - P134

나는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남편이 소파에서 일어난 뒤에도 한동안 거실 창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봤다. 창에 비친 내 모습은 너무도 불쌍했다. - P185

나락에 떨어진 감정에 휘둘리며 힘들어하며 도와달라고 발버둥 칠 때 그 외침을 들을 수 있는 자리에는 남편이 기다렸다는 듯이 서 있었다. 남편만이 그 위치에 있을 수 있었다. 남편은 사람들로부터 나를 소외시키고 배제시키면서 자신만이 그곳에 홀로 서 있고자 했다. 도와달라는 내 외침을 자신만이 들을 수 있도록. -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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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 TOMY가 알려주는 1초 만에 고민이 사라지는 말 - 일, 생활, 연애, 인간관계, 돈 고민에 대한 마음 치료제
정신과 의사 TOMY 지음, 이선미 옮김 / 리텍콘텐츠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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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 TOMY가 알려주는

『1초 만에 고민이 사라지는 말』

정신과 의사 Tomy 지음
이선미 옮김
리텍콘텐츠 출판



 

  작가는 시작하면서 부터 본인은 정신과 의사이자 칼럼니스트, 동성애자라고 소개하며 정신과 의사라는 일은 한정된 시간 안에 많은 환자를 만나지만 천천히 이야기를 들어주고 조언을 곁들이는 일이라 말했다. 
  환자에게 도움을 주는 좋은 단어를 꾸준히 메모하여 둔 것들이 자신이 힘들고 괴로울 때 지탱해주었다고 말했는데 작가 자신이 모은 단어는 어떤 것들이기에 스스로가 힘들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었는지 궁금해졌다. 


  트위터 18만 명을 둔 작가는 의사라는 직업의 특성 때문인지 아니면 동성애라는 편견으로 환자들이 신뢰를 하지 못 할 수도 있다는 우려때문인지 TV 출연을 해야할 땐 복면을 쓴다.
 짧고 강력하게 고민을 사라지게 하는 말들은 사이다 같다. 트위터에서 인기가 많은데 그만큼 작은 고민들을 안고 산다는 말아닌가!! 
  작가는 큰 문제도 아닌데 참지말고 말하면 되지 뭘 그리 끙끙 앓고 있냐고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닌 고민들을 훌훌 버리라고 말한다. 고민 자체가 해결될 수는 없더라도 더 큰 스트레스로 가는 것은 ✋STOP 될 수 있으니. 그 잠깐이 참 좋은 것 같다. 


  첫 페이지 ‘망각’부터 마음이 사르르 풀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오늘 수 많은 말을 듣고 읽으면서 나에게 문제가 있는지 남에게 너무 의식하며 스트레스 받았는데 잊어버리라는 말 한마디에 스위치를 딸깍 바꾸듯 아무것도 아닌 일로 내가 너무 과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의 전환이 되며 잠시 잊게 되니 이것도 고민 해결이라면 맞지 않을까🫠


🔖

1.망각

최고의 복수는 신경쓰지 않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지나치게 의식할 필요 없습니다. 

대체로  큰 문제가 아니거든요. 

잊어버려요, 잊어버려~ 

P14



 

  중간 중간 만화가 있는데 이쁘진 않다. 왠지 촌스럽지만 친근한듯 토미 의사의 실제 모습같은 느낌이다. 🤭 
  철학적 깊이가 있거나 글이 많지 않은데 간단 명료한 단어와 문장이 오히려 쉽게 전달되어, 무겁지 않은 글과 가벼운 무게감으로 짬짬이 독서하기에 좋았다. 


  221개의 단어와 문장 중 기억하고픈 내용을 일기장에 하루를 마무리하며 필사하듯 쓰다보니 토미 의사가 왜 자신이 이 단어들로 스스로 힘을 얻을 수 있었는지 알겠다. 나를 먼저 생각하고 응원하며, 때로는 논리적으로 내가 하는 말버릇을 고쳐야 한다고 지적하거나 조금 멀리 떨어져 나를 바라보는 성찰을 주는 것 같았으니. 


🔖 

135. 멀리

싫은 일이 있을 때는 시점을 멀리 가져가면 좋습니다. 
-특히 사소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때는 더욱이요. 

예를 들어, 조금 전 직장에서 혼나 풀이 죽어있다면, 5년 후의 자신을 상상해 봅시다. 

아마 별 상관없이 잘하고 있거나, 이런 일이 있었던 것조차 잊고 있을 거예요. 

그렇죠? 

P159


  매일이 힘든 일만 있는 게 아니라 자신감이 오만함으로 될 때 인생의 위기가 온다고 하듯 나는 남들보다 낫고 잘 되고 있다는 시기에서도 내 자신으로 인해 누군가가 고통받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지나온 시간 속에서 잘 보살피고 살아왔는지 반성하기도 하고 뒤돌아보며 좀 더 단단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159. 기준

모두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에요. 

모두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에요. 
-언제나 자신의 기준을 마음에 두고, 자신의 눈으로 보세요. 

지금은 정보가 너무 많아서, 오히려 자신의 기준이 필요한 때예요. 

P185


🔖 181. 음미

그 순간은 다시 얻을 수 없는 것이에요. 
-똑같은 일을 하고 있어도 그 사람하고만, 그 시절에만, 그 순간에만 맛볼 수 있는 분위기라는 게 있어요. 우리는 한 번밖에 얻을 수 없는 값진 순간들을, 계속해서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어요. 현재 이 순간을 음미하며 값지게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도 중요해요. P209



 



#1초만에고민이사라지는말 #Tomy #정신과의사 #고민해결 #신간도서
#리텍콘텐츠 #자기계발 #심리 #상담 #도서 #서평


❤︎ ‘리텍콘텐츠’로부터 도서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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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망각

최고의 복수는 신경쓰지 않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지나치게 의식할 필요 없습니다.

대체로 큰 문제가 아니거든요.

잊어버려요, 잊어버려~ - P14

135. 멀리

싫은 일이 있을 때는 시점을 멀리 가져가면 좋습니다.
-특히 사소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때는 더욱이요.

예를 들어, 조금 전 직장에서 혼나 풀이 죽어있다면, 5년 후의 자신을 상상해 봅시다.

아마 별 상관없이 잘하고 있거나, 이런 일이 있었던 것조차 잊고 있을 거예요.

그렇죠? - P159

159. 기준

모두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에요.

모두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에요.
-언제나 자신의 기준을 마음에 두고, 자신의 눈으로 보세요.

지금은 정보가 너무 많아서, 오히려 자신의 기준이 필요한 때예요. - P185

181. 음미

그 순간은 다시 얻을 수 없는 것이에요.
-똑같은 일을 하고 있어도 그 사람하고만, 그 시절에만, 그 순간에만 맛볼 수 있는 분위기라는 게 있어요. 우리는 한 번밖에 얻을 수 없는 값진 순간들을, 계속해서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어요. 현재 이 순간을 음미하며 값지게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도 중요해요. -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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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멀었다는 말 - 권여선 소설집
권여선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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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멀었다는 말』

권여선 소설

문학동네


 

『아직 멀었다는 말』은 단편소설 8편이 있는데 책 표지처럼 출퇴근길 지하철을 타고 강을 건너 가는 날들, 헤어진 사람들을 미워하고 그리워하는 장면들이 많이 나왔다.

 

<모르는 영역>의 서로 간의 관계가 회복되는 시간이나 <손톱>의 나를 버리고 떠났지만 돌아올 거라 기다리고 있는 작은 믿음, <희박한 마음>의 떠난 후에 후회와 그리움으로 현실의 감각이 둔해질 때까지 생각하는 것, <너머>속 자신도 어쩌면 누군가 손 내밀어 주면 좋겠지만 돌봐주어야 하는 상황, <친구>의 신이 있다면 과연 주인공에게 그런 상황까지 내버려 두었을까 하는 의문, <송추의 가을>에서 아빠의 묘와 아직 살아계신 엄마의 화장에 대해 의견이 갈리는 남매들, <재>에서 제아무리 지식인인들 아내와 딸 없이 홀로 병원 생활을 해야 할 자신의 앞날을 담배 연기처럼 둥둥 떠나보내길 바라는 마음, <전갱이의 맛> 어쩌면 다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

 

『아직 멀었다는 말』 속의 인물들처럼 현재의 힘든 상황도 이미 나와 너무 함께 해 익숙해져 버린 상황들도 충분히 전투를 잘 하고 있는 중이라 생각한다. 위로하고 싶은 인물을 만나면 그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나를 보면서 위안을 삼기도 하고 또 그런 나에게 잘 살고 있다는 위로를 주는 것 같으니까.

 

 

📖모르는 영역

 

다영은 외계인이 모르는 영역인 만큼 아빠 명덕도 마찬가지라 한다. 고깃집 사장의 잘못된 계산을 한 번이니까 괜찮다고 하는 아빠를 보며 엄마를 떠올리며 왜 한 번은 해도 되냐고 윽박지르는 다영이의 모습이 섭섭한 게 많이 쌓였지만 몰라주는 아빠가 미우면서 또 걱정이다. 딸과 아빠의 거리감은 어릴 때부터 쌓여있지 않다면 쉽게 좁혀지지 않는 듯하다.

 

 

🔖 멍하니 서서 새가 몰고 온 작은 파문과 고요의 회복을 지켜보던 그는 지금 무언가 자신의 내부에서 엄청난 것이 살짝 벌어졌다 다물렸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새가 날아와 앉는 순간부터 나뭇가지가 느꼈을 흥분과 불길한 예감을 고스란히 맛보았다. 새여, 너의 작은 고리 같은 두 발이 나를 움켜잡는 착지로 이만큼 흔들렸으니 네가 나를 놓고 떠나는 순간 나는 또 그만큼 흔들려야 하리. 그 찰나의 감정이 비현실적일 정도로 생생해 그는 거의 고통스러울 지경이었다. P29

 

🔖 왜 아침 달 낮달 저녁달이 아니고 모두 낮 달인가 생각하다, 해 뜨고 뜬 달은 죄다 낮 달인 게지, 생각했다. 해는 늘 낮달만 만나고, 그러니 해 입장에서 밤에 뜨는 달은 영영 모르는 거지, 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차를 몰아 농가 펜션의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P46

 

 

📖손톱

 

아빠는 갯벌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해 죽고 엄마는 딸 대출금을 갖고 집을 나가고, 언니마저 소희 대출금과 저축까지 갖고 집을 나갔다. 소희는 십만 원 더 주는 매장으로 옮기며 출퇴근 시간은 40분이 더 걸리는 것에 대해 시급으로 따져본다. 대출과 생활비 등의 지출도 계획적으로 세워보지만 혼자 감당해 내기엔 벅차다. 그런 생각들로 짬뽕 곱빼기를 먹고 싶지만 맵게는 5백 원이 추가되니 예상했던 지출을 넘어가 먹지 않는다. 오른쪽 손톱을 다쳤지만 병원에 가면 7만 원이나 써야 해서 미루고 손톱 하나쯤 없는 거 어떠냐며 생각을 달리해본다. 조금은 돈 생각하지 않으려 소소한 곳에서 행복을 느껴보려 노력하지만 현실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언니는 엄마가 못된 사람, 말이 없는 사람이 되어간다고 했다. 말이 없는데 착한지 못된지 언니가 어떻게 알 수 있나. 생각해 보니 실은 언니도 몰랐던 거다. 엄마가 얼마나 못된 사람이 되어갔는지를. 그러니 당했던 거고. P58

 

🔖슬프면서 좋은 거, 그런 게 왜 있는지 소희는 모른다. 밖은 어두워지고 휴일이 지나가는데 소희는 조금만, 조금만, 하며 울듯이 앉아 있다. P82

 

 

📖 희박한 마음

 

그리워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방법이 애잔했다. 그 사람의 행동을 바라보고 떠올려보고 실재의 감각이 둔해질 때까지 오래도록 기다려보기도 했다.

데런은 디엔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는 듯 추억했는데 그때의 감정들에 대해 후회하고, 하염없이 생각한다. 생각을 너무 하다 보면 무슨 고민이었는지도 모를 만큼 머리가 어지러워지는데 그런 상태에 대해 결국은 희박한 유사성이라 말하며 포기해가는 마음을 너무 잘 나타내서 읽으면서 감탄을 연발했던 소설.

 

🔖🔖디엔이 그 손을 잡았다. 언제나 그렇듯 디엔의 손은 서늘했는데 아직도 데런은 그 온도와 감촉을 기억하고 있다. 그 온도를 잊지 않기 위해 가끔 한 손을 일부러 담요 밖에 놓아 서늘하게 만든 다음 따뜻한 다른 손으로 맞잡아보고 이게 디엔의 온도인지 아닌지 가늠하는 버릇이 들었다. P92

 

🔖데런은 평생 처음으로 디엔이 자신을 떠날지도 모르며 디엔 없이 자신이 혼자 남겨질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고 끔찍한 공포와 고통스러운 자책에 빠져 맞은편 벽의 낡은 벽지만 하염없이 노려보았다. 어느덧 세상은 사라지고 아득히 멀어지는 디엔과 자신 사이에 놓인 측량할 수 없는 거리만이 절박한 실재로 남았다. P96

 

🔖어쩌면 그런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아니면 망각 저편으로 넘어가버렸지만 어느 시절엔가 자신이 종종 이런 상태에 빠져 있어 몸이 기억하고 있는 흔적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데런은 생각했다. 자신은 끝내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으리라는 것을. 이토록 희박한 유사성만으로는. P97

 

 

📖너머

 

N은 기간제 교사로 학교의 부당함을 알고 있지만 내색할 수 없다. 엄마는 간병인의 도움으로 병원에 있는데 간병인을 대하는 태도가 학교에서 다른 선생님들이 자신에게 하는듯한 행동들이다. 참, 아이러니하다.

 

 

📖 친구

 

답답하기 짝이 없다. 선생님이 민수 엄마에게 이야기하는데도 알면서도 방치하는 건지 진짜 가해자들을 친구라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다. 신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다는 듯 맹신한다. 학폭은 벗어날 수 없는 테두리 안에서 고통받고 그 차가운 시선을 혼자 견뎌야 하는 감옥 안의 고문과도 같을 것이고, 벗어나도 그 후유증으로 정신적 고통은 여전할 것이다. 부모가 종교를 핑계 삼아 자식의 정상 발달을 저해시킨다면 자식이 성인이 되어 부모를 원망하지는 않을까. 무엇보다 엄마가 말하는 그 신이 있다면, 왜 지금 엄마와 민수의 상황을 이렇게 만들도록 두었는지도 의문이다.

 

🔖 이 모든 것도 그분만이 아시겠지, 나의 기쁨 되시는 그분만이…… 필사적으로 그런 생각에 매달리느라 해옥은 아들이 뭐라 뭐라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P165

 

 

📖 송추의 가을

 

살아생전 엄마는 아빠와 떨어지고 싶다는 말에 아빠의 묘를 화장을 시킬지 사 남매는 의견이 분분하다. 아빠 묘지 앞에서도 왜 직장은 옮겼는지 잔소리 같은 걱정을 막내 혁이에게 던진다. 엄마는 아직 돌아가시지도 않았는데 유골함을 할지 엄마와 합장 또는 평묘를 할지 이야기를 한다. 누구를 위한 의견인지 결국엔 자신들이 관리해야 하니 자신이 원하는 쪽으로 말하는 것 같은데, 혁이는 엄마가 원하는데로 왜 안 하냐고 화를 낸다. 모든 가족이 그렇듯 막내에게는 가르치려 들고 막내에게는 선택과 개인의 의견을 듣지 않는다. 왜 꼭 이렇게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그 앞에서 이렇게 다들 싸울까. 조용히 그리워하고 추모할 수는 없는 것인지..

 

🔖 혁이 니가 뭘 몰라서 그러는데 이건 합장하고는 좀 달라. 석실을 나눌 거거든.

누나 미친 거야? 한 무덤에 들어가는 게 합장이지 무슨 합장이 아냐?

니가 뭘 몰라서 그러는데,라고 작은형이 말하는 순간 그가 주먹으로 운전대를 내리쳤다. P191

 

 

📖 재

 

아내가 딸을 데리고 떠난 후, 아내는 죽고 딸 소식이 끊어진 현재. 자신은 곧 병원에 가망 없는 수술을 받아야 하는 처지에서 그레고르의 소설 속 인물을 상상하며 병원에서의 생활을 상상해 본다. 담배를 태우며 날리는 재들이 공기 중에 둥둥 떠다니는 모습을 그리며 본인도 재처럼 하늘을 날아보고 싶은 것은 아닐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는 이 장면이 그레고르에 대한 냉혹한 예언처럼 생각되었다. 긴 병원 건물은 벌레가 된 그레고르의 연약한 둥근 머리를 관통하는 잿빛 쇠막대처럼 여겨졌고, 더 나아가 어쩌면 모든 병원의 작은 창문 속 병실에 갇혀 있는 환자들을 불가능한 삶의 희망을 볼모로 꼬치처럼 꿰고 있는 쇠꼬챙이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자들은 쓸모없는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 가족의 재산을 갉아먹는 해충 같은 존재들이며 결국엔 가족의 행복과 안녕을 위해 바삭한 껍질만을 남기고 죽어야 하는 그레고르의 운명인지도 모른다고. P202-203

 

 

📖 전갱이의 맛

 

이혼한 부부. 아내는 3년이 지나 이혼 전과 달라졌다고 느낀다. 남자는 시간강사로 말하기 좋아하던 사람이었지만 성대 낭종 수술을 받은 후 말을 하지 않게 되면서 자신을 위한 자신을 향한 말을 찾고 싶었다 말한다. 전갱이 생선 가시를 발라먹는 모습도 다른 두 사람은 여자는 결혼생활 때는 자신이 모든 것을 맞추며 지냈지만 남자가 자신이 몰랐던 시간을 찾아가는 과정에 조금은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어떤 마음이 생긴다.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부부와 연인들을 보면 완벽하게 이별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그 사람의 얼굴을 본다는 것으로 과거의 상처들이 치유가 될 수도 있을까 하는 작은 마음들 때문에 멀어짐을 선택하기보다 만남을 선택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대화하기 위한 것 같지만, 근본적으로는 나와 대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러니까 그동안 난 쉴 새 없이 누군가에게 말을 해왔는데, 그 말을 사실 나도 듣고 있었던 거지. 그런 의미에서 말은 순순히 타인만 향한 게 아니라 나를 향한 것이기도 했던 거야. 그런데 말을 못 하게 되면서 타인을 향한 말은 그럭저럭 포기가 되는데 나를 향한 말은, 그건 절대 포기가 안 되더라고.” P241

 

🔖🔖묵언의 시간 속에서는 항상 나만의 말들이 태어난다. P249

 

🔖🔖어떤 말들은 뜻을 알 수 없는 채로 생겨난다고 그가 말했는데 정확히 그렇다. 어떤 감정이나 감각들은 나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몸으로 표현되고 기억에 각인된다. 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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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엔이 그 손을 잡았다. 언제나 그렇듯 디엔의 손은 서늘했는데 아직도 데런은 그 온도와 감촉을 기억하고 있다. 그 온도를 잊지 않기 위해 가끔 한 손을 일부러 담요 밖에 놓아 서늘하게 만든 다음 따뜻한 다른 손으로 맞잡아보고 이게 디엔의 온도인지 아닌지 가늠하는 버릇이 들었다. - P92

데런은 평생 처음으로 디엔이 자신을 떠날지도 모르며 디엔 없이 자신이 혼자 남겨질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고 끔찍한 공포와 고통스러운 자책에 빠져 맞은편 벽의 낡은 벽지만 하염없이 노려보았다. 어느덧 세상은 사라지고 아득히 멀어지는 디엔과 자신 사이에 놓인 측량할 수 없는 거리만이 절박한 실재로 남았다. - P96

어쩌면 그런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아니면 망각 저편으로 넘어가버렸지만 어느 시절엔가 자신이 종종 이런 상태에 빠져 있어 몸이 기억하고 있는 흔적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데런은 생각했다. 자신은 끝내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으리라는 것을. 이토록 희박한 유사성만으로는. - P97

"다른 사람과 대화하기 위한 것 같지만, 근본적으로는 나와 대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러니까 그동안 난 쉴 새 없이 누군가에게 말을 해왔는데, 그 말을 사실 나도 듣고 있었던 거지. 그런 의미에서 말은 순순히 타인만 향한 게 아니라 나를 향한 것이기도 했던 거야. 그런데 말을 못 하게 되면서 타인을 향한 말은 그럭저럭 포기가 되는데 나를 향한 말은, 그건 절대 포기가 안 되더라고." - P241

묵언의 시간 속에서는 항상 나만의 말들이 태어난다. - P249

어떤 말들은 뜻을 알 수 없는 채로 생겨난다고 그가 말했는데 정확히 그렇다. 어떤 감정이나 감각들은 나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몸으로 표현되고 기억에 각인된다. - 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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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드 쿠쿠 랜드
앤서니 도어 지음, 최세희 옮김 / 민음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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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드 쿠쿠 랜드』

 

앤서니 도어

민음사



 


‘몽상의 세계’를 뜻하는 『클라우드 쿠쿠 랜드(Cloud cuckoo land)』는 9세기 비잔티움 시대 디오게네스가 필사한 작품으로 팔십 년은 남자, 일 년은 당나귀, 일 년은 농어, 일 년은 까마귀로 산 아이톤의 이야기이다. 다섯 주인공 콘스턴스, 안나, 오메이르, 지노 니니스, 시모어의 15세기 콘스탄티노플부터 21세기 미국까지 다른 시대, 장소를 오가며 각 인물들은 현실에서 벗어나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닿고자 한다.

 

🔖유실된 그리스 산문 설화 『클라우드 쿠쿠 랜드』는 안토니우스 디오게네스가 하늘에 떠 있는 유토피아 도시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양치기의 이야기를 쓴 작품으로 집필 시기는 서기 1세기 말경으로 추정된다.(P18)

 

22세기 지구에서 다른 베타 Oph2로 향하는 아르고스호 우주선을 타고 가는 14살 소녀 콘스턴스는 인공지능 시빌과 함께 대화를 하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격리되어 볼트원에서 내부 생활만 하던 중 우주선에 살아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성간 공간을 질주하는 우주선에 갑자기 전염병이 나타난 것과 시빌과 모두가 자신들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것에 대한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간다. 미션 여행이라는 단어를 책의 마지막에 가서야 왜 그렇게 불렀는지 뒤늦게 이해했다.(^^;)

홀로 삶을 산다는 고독, 외로움이 기계장치인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머지않은 미래일 수 있겠지만 이미 다가온 바이러스 감염으로 개인화가 심해졌고 거리 두기를 빙자한 이기주의, 감염과 완치가 되었음에도 그들을 향한 시선들은 볼트원에 격리된 콘스턴스를 보면서도 느낄 수 있다.

 

 

15세기 콘스탄티노플의 여덟 살 소녀 안나는 언니 마리아의 자수 실력이 좋은 덕분에 칼라파테스 집에 있을 수 있다. 안나는 자수 실력을 늘리는 것보다 글과 책에 관심이 많았는데 리니키우스 스승에게 글 읽기를 배우면서 책을 읽고 싶은 욕망은 더 커져간다.

 

🔖 “하지만 책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죽는다. 불에 타거나 홍수에 쓸리거나 벌레들의 먹이가 되기도 하고, 또 변덕스러운 폭군을 만나면 죽기도 한다. 보호하지 않으면 책은 세계 밖으로 빠져나가 버려. 그리고 책이 세계 밖으로 사라질 때, 기억은 다시 한 번 죽는다.” (P78) 안나의 스승. 리니키우스

 

안나는 히메리우스와 함께 수도원에서 찾은 염소 가죽으로 제본한 필사본을 고대 이야기를 읽고 책 속의 내용을 이해하면서 놀란다.

 

🔖

“책이야.” 필경사가 미소 짓는다.

“그리고 노아와 책을 실은 우리의 방주 이야기에서 홍수는 뭔지 아니?”

안나는 고개를 흔든다.

“시간이야. 하루하루, 일 년 또 일 년, 시간은 이 세계에서 오래된 책을 지워 버린단다. 네가 저번에 우리에게 가져다준 필사본 있지? 로마 제국 시대에 살았던 학자 아에리아누스가 쓴 거였단다. 이 방에 있는 우리에게, 바로 이 시간에 도착하기 위해, 그 책 속의 문장들은 십이 세기를 견뎌야 했어. …(P249)



 

🔖 “저 책 한 권 한 권이 하나의 문, 또 다른 장소와 시간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란다. 네 앞에는 창창한 삶이 펼쳐져 있어. 그리고 앞으로 넌 오늘 본 것을 평생 누리게 될 거야.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니, 어떻게 생각하니?” (P292)

 

가난한 여자가 책을 읽으면 마녀로 몰릴 수 있는 시대의 불쌍한 안나. 양초를 책을 읽기 위해 켰는데 언니 마리아가 칼라파테스에게 끌려가 머리를 부딪치는 사고를 당하고 책(양피지 책첩)은 불길에 타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책 읽기를 더 갈망한다. 이후 불타는 콘스탄티노플에서 도망친 안나는 오메이르를 만난다.

 

🔖 그녀는 이곳에 와서 몇 번의 겨울을 지냈는지 잊어버리고 기억 또한 희미해진다. 물을 긷다가, 오메이르의 다리에 난 상처를 꿰매다가, 그의 머릿니를 잡아 주다가, 뜬금없이 시간이 두 겹으로 접히면서 그녀의 눈앞에 노를 잡은 히메리우스의 두 손이 떠오르거나, 소수도원 벽을 타고 내려올 때 몸을 끌어 내리던 중력의 아찔함이 느껴진다. 인생이 막바지로 향하면서 이런 기억들은 그녀가 사랑했던 기억들과 뒤섞여 하나가 된다. 고향이 그리운 나머지 폭풍우 속에서 뗏목을 버리고 파이아케스인들의 섬으로 가기 위해 바닷물에 몸을 맡기는 오디세우스, 바늘처럼 찔러 대는 쐐기풀에 보드라운 입술을 묻고 있는 당나귀 아이톤, 모든 시간과 모든 이야기는 결국 하나가 되며 같아진다. (P768)

 

이 장면이 늙은 안나가 과거의 기억과 책 속 내용들을 떠올리며 현재와 과거가 뒤섞여 있는 듯한데, 의식적으로 책 속 내용을 읽으며 장면 속으로 뛰어들 수도 있지만 안나는 아닌듯하다. 의지와 달리 시간과 장소가 달라지는 듯 새롭게 느껴진다면 느낌은 어떠할지 궁금해졌다. 노인 치매처럼 눈앞의 현재는 사라지고 머릿속의 기억이 눈앞에 보인다면 살아온 동안 읽었던 책의 한 장면의 감성으로 사는 것이 행운인지 불행인지는 잘 모르겠다.

 

 

15세기 오메이르. 안나와 같은 시대. 불가리아 로도페산맥 어느 나무꾼 마을. 얼굴에 언청이로 태어난다. 태어날 때 아버지가 죽어 악마라는 오해를 받아 산으로 올라와 살고 있지만 용기로 극복하라는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말씀은 늘 옳다. 오메이르는 갈색 소 ‘나무’와 회색 소 ‘달빛’과 함께 자연을 사랑하는 소년이다. 오메이르 이야기는 문명과는 거리가 멀어 도서관이나 사서, 선생이 존재하지 않을 장소 같아 책과 관련이 없을 것 같은데 왜 나오는지 궁금했었는데 안나와 만나는 장면이 나오면서부터 이해가 되었다. 어쩌면 할아버지의 옛날 신들의 호수에 누구도 찾을 수 없는 호수 밑바닥에 상자를 자물쇠로 채워 숨겨진 책 이야기를 들었을 때 오메이르는 이미 언어를 초월한 삶의 용기를 주는 방법을 알았고 언어로 인하여 인간이 신을 믿으며 벌어지는 전쟁에 대해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안나와 같은 시대 다른 장소라고만 생각했는데 오메이르가 술탄의 콘스탄티노플 전투에 징발되고 동물들의 죽어가는 모습에 탈출한다. 도주 중 안나와 만나 오메이르 고향으로 함께 가는데 안나가 가지고 온 필사본은 신이 어떻게 사람들을 믿게 만드는지 문자의 힘을 아는 안나는 오메이르의 도움으로 나무에 숨겨둔다. 시간이 흘러 오메이르와 안나의 막내 아들이 폭우 내리는 날 고열에 시달리자 오메이르는 답을 찾고자 숨겨둔 필사본을 안나에게 가져다 준다. 아이들에게 필사본의 모험이야기를 들려주며 행복한 날들이 이어진다. 안나와 오메이르의 이야기는 한편의 동화같은 이야기였다. 안나에 의해 콘스탄티노플에서 오메이르에 의해 우르비노까지 간 이 원고는 동물과 자연을 사랑하고 가족과 함께 평화로운 삶을 살고 싶은 여성과 장애, 약자의 보호에 대한 인식이 있는 세계를 꿈꾸는 자들이 그 희망을 전달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21세기 아이다호주 레이크포트. 지노는 마녀라 불리는 도서관 사서에게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다. 어느 날 일본 군대가 미국 진주만을 공격한 사건으로 지노 아빠는 군대 입대 하고 아빠에게 관심 있는 보이즈턴 부인과 살게 된다. 아빠는 전쟁 중 돌아가시며 영웅이 되고, 제설작업을 하던 지노는 아버지처럼 군대 입대하여 한국전에 참전하게 된다. 이등병 E-1 지노 니니스 이름을 듣게 되기 전까지 『클라우드 쿠쿠랜드』를 번역했던 지노 니니스가 아니라 다른 인물로 착각했었다(--;;) 전쟁 중 같은 포로인 렉스를 만나 솥단지 위, 눈 위 어디든 그리스 문자를 쓰는 렉스에게 고대 글을 배우고 제대 후에 렉스를 수소문하여 고대 문자에 대해 관심을 가진다. 렉스를 좋아했던 지노는 소설 다른 인물들처럼 사회의 소외자다. 동성애자이지만 책을 통해 도전하는 정신을 보여준 것 같다.

여든이 넘어 레이크 포트 공공도서관에서 5학년 학생들과 연극을 준비하며 지노는 아이들에게 관용구에 통달할 필요 없이 이야기 암시 내용만 있다면 나머지는 상상으로 채워갈 수 있다고 말하는 장면은 렉스가 지노에게 “고대 그리스인들이 말할 때 그것이 실제로 어떤 소리였을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아무리 해 봐야 그들이 쓴 단어를 지금 우리가 쓰는 단어에 결부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시작부터 실패가 자명한 작업이다. 하지만 무작정 도전하는 것, 역사의 어둠으로부터 강 건너편에 있는 무언가를 끌어내 우리의 시대로, 우리의 언어로 옮기려고 시도하는 것, 바로 그것이 가장 아름다운 헛고생이라고 그는 말했다.”(P618) 처럼 이해하지 못한다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언어로 해석해 보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치는 듯하다.

 

 

21세기 손 발 귀 청각에 예민한 시모어를 위해 엄마 버니는 유산으로 받은 자연 속 집으로 간다. 도서관 사서가 올빼미 책을 읽어준 후 시모어는 올빼미에게 트러스티프렌드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인간의 욕심으로 파괴되는 자연을 지켜보던 올빼미를 대신해 총을 쏜 시모어.

 

🔖그 세계, 그가 사랑했던 전부. 아케이디 레인 뒤편의 숲, 개미 떼가 바삐 오가며 물결을 이루던 모습, 잠자리들이 이리저리 빠르게 날아다니던 모습, 사시나무 숲에서 들려오던 바스락 소리, 7월 첫월귤 열매의 시큼털털한 달콤함, 폰데로사소나무 숲을 지키던 파수꾼들은 그가 만났고 만나게 될 어떤 존재보다 사려 싶었고 인내심이 많았다. 그리고, 자신의 나뭇가지에 앉아서 이 모든 것을 굽어보던 큰회색올빼미 트러스티프렌드. (P590)

 

모든 인물들에게 책이 있었다. 현실의 전쟁, 소음, 고독, 차별 등으로 부터 책 속의 또 다른 시간과 장소에 데려가 주었으며 온 세계의 이야기와 그 너머의 수수께끼들, 자신이 모르는 세상에 대해 인물들은 깨닫지 않았을까. 책이 시간과 장소를 초월한 모든 이들을 연결하고 있다는 느낌은 클라우드 쿠쿠랜드라는 소설이 주고 싶었던 메시지 인 듯하다. 벽돌책이 주는 무게는 어떤 날은 힘겨웠지만 인물들의 여정을 통해 책이 주는 깨달음을 얻기도 했다.

“때로 이젠 사라지고 없어졌다고 생각한 것이, 다만 감춰져 있을 뿐 다시 발견되기를 기다리기도 하니까.”(P550) 이 책의 또 다른 세계로 가는 문은 마지막 장까지 덮은 후에야 발견한 느낌이다.

 

  

 

🔖뿌리를 빻으면서 그녀는 모두에게 우리 몸은 한낱 먼지이며, 우리의 영혼은 지금껏 보다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을 그리워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제 그곳이 멀지 않으니, 우리의 영혼이 육신이라는 껍데기를 벗어 버리고 신이 거하는 집으로 가게 되리라는 기대에 떨고 있다고 말한다. P515



 

 

 

🔖언젠가 렉스는 그에게 말했다. 인간이 하는 미친 짓거리 가운데 죽은 언어를 번역하는 것만큼 겸손한, 아니, 숭고한 건 없을 거라고. 고대 그리스인들이 말할 때 그것이 실제로 어떤 소리였을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아무리 해 봐야 그들이 쓴 단어를 지금 우리가 쓰는 단어에 결부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시작부터 실패가 자명한 작업이다. 하지만 무작정 도전하는 것, 역사의 어둠으로부터 강건너편에 있는 무언가를 끌어내 우리의 시대로, 우리의 언어로 옮기려고 시도하는 것, 바로 그것이 가장 아름다운 헛고생이라고 그는 말했다. P618 렉스가 지노에게

 

 

🔖지저분하고, 벌레 먹은 구멍에, 곰팡이에 뒤덮여 있는 것이 흡사 곰팡이 균과 시간과 물이 합작하여 유실 시(erasure poem)*를 만들려고 손잡은 꼴이지만, 지노의 눈에는 마법처럼, 페이지 밑 깊은 곳 어딘가에서 그리스 문자들이 배경 위로 은은한 하얀빛으로 빛나는데, 손으로 필사한 것이라기보다는 글자의 유령처럼 보인다. 렉스의 편지가 도착했을 때 처음엔 렉스가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 떠오른다. 때로 이젠 사라지고 없어졌다고 생각한 것이, 다만 감춰져 있을 뿐 다시 발견되기를 기다리기도 하는 것이다. P632

 

*블랙아웃 시(blackout poem)라고도 불린다. 기존 텍스트에서 단어들을 상당수 지우고 남은 단어들로 완전히 새로운 시를 만드는 발견 시(found poem)의 한 형태.

 

 

🔖언젠가 할아버지가 옛날 신들이 지구를 떠나면서 남기고 간 책에 관해 들려준 이야기가 떠오른다. 할아버지는 그 책이 자물쇠를 채운 황금 상자에 들어 있다고 했다. 신들은 이 상자를 자물쇠를 채운 청동 상자에 넣고, 그런 후 청동 상자를 철 상자에 넣고, 마지막으로 나무 궤에 넣어 어느 호수 밑바닥에 내려놓은 후 길이가 30미터인 물의 용들을 시켜 그 상자를 맴돌게 했는데, 내로라하는 용자도 용을 죽일 수 없었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또 만에 하나 책을 손에 넣어 읽는 자는 하늘을 나는 새들과 땅 밑을 기어다니는 것들이 쓰는 온갖 언어를 알아듣게 된다고, 만약 귀신이 그 책을 읽게 된다면 죽기 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된다고 말했었다. P701 오메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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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음사’로부터 도서지원 받았습니다.

"하지만 책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죽는다. 불에 타거나 홍수에 쓸리거나 벌레들의 먹이가 되기도 하고, 또 변덕스러운 폭군을 만나면 죽기도 한다. 보호하지 않으면 책은 세계 밖으로 빠져나가 버려. 그리고 책이 세계 밖으로 사라질 때, 기억은 다시 한 번 죽는다." - P78

"저 책 한 권 한 권이 하나의 문, 또 다른 장소와 시간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란다. 네 앞에는 창창한 삶이 펼쳐져 있어. 그리고 앞으로 넌 오늘 본 것을 평생 누리게 될 거야.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니, 어떻게 생각하니?" - P292

그녀는 이곳에 와서 몇 번의 겨울을 지냈는지 잊어버리고 기억 또한 희미해진다. 물을 긷다가, 오메이르의 다리에 난 상처를 꿰매다가, 그의 머릿니를 잡아 주다가, 뜬금없이 시간이 두 겹으로 접히면서 그녀의 눈앞에 노를 잡은 히메리우스의 두 손이 떠오르거나, 소수도원 벽을 타고 내려올 때 몸을 끌어 내리던 중력의 아찔함이 느껴진다. 인생이 막바지로 향하면서 이런 기억들은 그녀가 사랑했던 기억들과 뒤섞여 하나가 된다. 고향이 그리운 나머지 폭풍우 속에서 뗏목을 버리고 파이아케스인들의 섬으로 가기 위해 바닷물에 몸을 맡기는 오디세우스, 바늘처럼 찔러 대는 쐐기풀에 보드라운 입술을 묻고 있는 당나귀 아이톤, 모든 시간과 모든 이야기는 결국 하나가 되며 같아진다. - P768

언젠가 렉스는 그에게 말했다. 인간이 하는 미친 짓거리 가운데 죽은 언어를 번역하는 것만큼 겸손한, 아니, 숭고한 건 없을 거라고. 고대 그리스인들이 말할 때 그것이 실제로 어떤 소리였을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아무리 해 봐야 그들이 쓴 단어를 지금 우리가 쓰는 단어에 결부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시작부터 실패가 자명한 작업이다. 하지만 무작정 도전하는 것, 역사의 어둠으로부터 강건너편에 있는 무언가를 끌어내 우리의 시대로, 우리의 언어로 옮기려고 시도하는 것, 바로 그것이 가장 아름다운 헛고생이라고 그는 말했다. - P618

언젠가 할아버지가 옛날 신들이 지구를 떠나면서 남기고 간 책에 관해 들려준 이야기가 떠오른다. 할아버지는 그 책이 자물쇠를 채운 황금 상자에 들어 있다고 했다. 신들은 이 상자를 자물쇠를 채운 청동 상자에 넣고, 그런 후 청동 상자를 철 상자에 넣고, 마지막으로 나무 궤에 넣어 어느 호수 밑바닥에 내려놓은 후 길이가 30미터인 물의 용들을 시켜 그 상자를 맴돌게 했는데, 내로라하는 용자도 용을 죽일 수 없었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또 만에 하나 책을 손에 넣어 읽는 자는 하늘을 나는 새들과 땅 밑을 기어다니는 것들이 쓰는 온갖 언어를 알아듣게 된다고, 만약 귀신이 그 책을 읽게 된다면 죽기 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된다고 말했었다. - P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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