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멀었다는 말 - 권여선 소설집
권여선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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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멀었다는 말』

권여선 소설

문학동네


 

『아직 멀었다는 말』은 단편소설 8편이 있는데 책 표지처럼 출퇴근길 지하철을 타고 강을 건너 가는 날들, 헤어진 사람들을 미워하고 그리워하는 장면들이 많이 나왔다.

 

<모르는 영역>의 서로 간의 관계가 회복되는 시간이나 <손톱>의 나를 버리고 떠났지만 돌아올 거라 기다리고 있는 작은 믿음, <희박한 마음>의 떠난 후에 후회와 그리움으로 현실의 감각이 둔해질 때까지 생각하는 것, <너머>속 자신도 어쩌면 누군가 손 내밀어 주면 좋겠지만 돌봐주어야 하는 상황, <친구>의 신이 있다면 과연 주인공에게 그런 상황까지 내버려 두었을까 하는 의문, <송추의 가을>에서 아빠의 묘와 아직 살아계신 엄마의 화장에 대해 의견이 갈리는 남매들, <재>에서 제아무리 지식인인들 아내와 딸 없이 홀로 병원 생활을 해야 할 자신의 앞날을 담배 연기처럼 둥둥 떠나보내길 바라는 마음, <전갱이의 맛> 어쩌면 다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

 

『아직 멀었다는 말』 속의 인물들처럼 현재의 힘든 상황도 이미 나와 너무 함께 해 익숙해져 버린 상황들도 충분히 전투를 잘 하고 있는 중이라 생각한다. 위로하고 싶은 인물을 만나면 그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나를 보면서 위안을 삼기도 하고 또 그런 나에게 잘 살고 있다는 위로를 주는 것 같으니까.

 

 

📖모르는 영역

 

다영은 외계인이 모르는 영역인 만큼 아빠 명덕도 마찬가지라 한다. 고깃집 사장의 잘못된 계산을 한 번이니까 괜찮다고 하는 아빠를 보며 엄마를 떠올리며 왜 한 번은 해도 되냐고 윽박지르는 다영이의 모습이 섭섭한 게 많이 쌓였지만 몰라주는 아빠가 미우면서 또 걱정이다. 딸과 아빠의 거리감은 어릴 때부터 쌓여있지 않다면 쉽게 좁혀지지 않는 듯하다.

 

 

🔖 멍하니 서서 새가 몰고 온 작은 파문과 고요의 회복을 지켜보던 그는 지금 무언가 자신의 내부에서 엄청난 것이 살짝 벌어졌다 다물렸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새가 날아와 앉는 순간부터 나뭇가지가 느꼈을 흥분과 불길한 예감을 고스란히 맛보았다. 새여, 너의 작은 고리 같은 두 발이 나를 움켜잡는 착지로 이만큼 흔들렸으니 네가 나를 놓고 떠나는 순간 나는 또 그만큼 흔들려야 하리. 그 찰나의 감정이 비현실적일 정도로 생생해 그는 거의 고통스러울 지경이었다. P29

 

🔖 왜 아침 달 낮달 저녁달이 아니고 모두 낮 달인가 생각하다, 해 뜨고 뜬 달은 죄다 낮 달인 게지, 생각했다. 해는 늘 낮달만 만나고, 그러니 해 입장에서 밤에 뜨는 달은 영영 모르는 거지, 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차를 몰아 농가 펜션의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P46

 

 

📖손톱

 

아빠는 갯벌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해 죽고 엄마는 딸 대출금을 갖고 집을 나가고, 언니마저 소희 대출금과 저축까지 갖고 집을 나갔다. 소희는 십만 원 더 주는 매장으로 옮기며 출퇴근 시간은 40분이 더 걸리는 것에 대해 시급으로 따져본다. 대출과 생활비 등의 지출도 계획적으로 세워보지만 혼자 감당해 내기엔 벅차다. 그런 생각들로 짬뽕 곱빼기를 먹고 싶지만 맵게는 5백 원이 추가되니 예상했던 지출을 넘어가 먹지 않는다. 오른쪽 손톱을 다쳤지만 병원에 가면 7만 원이나 써야 해서 미루고 손톱 하나쯤 없는 거 어떠냐며 생각을 달리해본다. 조금은 돈 생각하지 않으려 소소한 곳에서 행복을 느껴보려 노력하지만 현실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언니는 엄마가 못된 사람, 말이 없는 사람이 되어간다고 했다. 말이 없는데 착한지 못된지 언니가 어떻게 알 수 있나. 생각해 보니 실은 언니도 몰랐던 거다. 엄마가 얼마나 못된 사람이 되어갔는지를. 그러니 당했던 거고. P58

 

🔖슬프면서 좋은 거, 그런 게 왜 있는지 소희는 모른다. 밖은 어두워지고 휴일이 지나가는데 소희는 조금만, 조금만, 하며 울듯이 앉아 있다. P82

 

 

📖 희박한 마음

 

그리워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방법이 애잔했다. 그 사람의 행동을 바라보고 떠올려보고 실재의 감각이 둔해질 때까지 오래도록 기다려보기도 했다.

데런은 디엔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는 듯 추억했는데 그때의 감정들에 대해 후회하고, 하염없이 생각한다. 생각을 너무 하다 보면 무슨 고민이었는지도 모를 만큼 머리가 어지러워지는데 그런 상태에 대해 결국은 희박한 유사성이라 말하며 포기해가는 마음을 너무 잘 나타내서 읽으면서 감탄을 연발했던 소설.

 

🔖🔖디엔이 그 손을 잡았다. 언제나 그렇듯 디엔의 손은 서늘했는데 아직도 데런은 그 온도와 감촉을 기억하고 있다. 그 온도를 잊지 않기 위해 가끔 한 손을 일부러 담요 밖에 놓아 서늘하게 만든 다음 따뜻한 다른 손으로 맞잡아보고 이게 디엔의 온도인지 아닌지 가늠하는 버릇이 들었다. P92

 

🔖데런은 평생 처음으로 디엔이 자신을 떠날지도 모르며 디엔 없이 자신이 혼자 남겨질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고 끔찍한 공포와 고통스러운 자책에 빠져 맞은편 벽의 낡은 벽지만 하염없이 노려보았다. 어느덧 세상은 사라지고 아득히 멀어지는 디엔과 자신 사이에 놓인 측량할 수 없는 거리만이 절박한 실재로 남았다. P96

 

🔖어쩌면 그런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아니면 망각 저편으로 넘어가버렸지만 어느 시절엔가 자신이 종종 이런 상태에 빠져 있어 몸이 기억하고 있는 흔적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데런은 생각했다. 자신은 끝내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으리라는 것을. 이토록 희박한 유사성만으로는. P97

 

 

📖너머

 

N은 기간제 교사로 학교의 부당함을 알고 있지만 내색할 수 없다. 엄마는 간병인의 도움으로 병원에 있는데 간병인을 대하는 태도가 학교에서 다른 선생님들이 자신에게 하는듯한 행동들이다. 참, 아이러니하다.

 

 

📖 친구

 

답답하기 짝이 없다. 선생님이 민수 엄마에게 이야기하는데도 알면서도 방치하는 건지 진짜 가해자들을 친구라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다. 신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다는 듯 맹신한다. 학폭은 벗어날 수 없는 테두리 안에서 고통받고 그 차가운 시선을 혼자 견뎌야 하는 감옥 안의 고문과도 같을 것이고, 벗어나도 그 후유증으로 정신적 고통은 여전할 것이다. 부모가 종교를 핑계 삼아 자식의 정상 발달을 저해시킨다면 자식이 성인이 되어 부모를 원망하지는 않을까. 무엇보다 엄마가 말하는 그 신이 있다면, 왜 지금 엄마와 민수의 상황을 이렇게 만들도록 두었는지도 의문이다.

 

🔖 이 모든 것도 그분만이 아시겠지, 나의 기쁨 되시는 그분만이…… 필사적으로 그런 생각에 매달리느라 해옥은 아들이 뭐라 뭐라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P165

 

 

📖 송추의 가을

 

살아생전 엄마는 아빠와 떨어지고 싶다는 말에 아빠의 묘를 화장을 시킬지 사 남매는 의견이 분분하다. 아빠 묘지 앞에서도 왜 직장은 옮겼는지 잔소리 같은 걱정을 막내 혁이에게 던진다. 엄마는 아직 돌아가시지도 않았는데 유골함을 할지 엄마와 합장 또는 평묘를 할지 이야기를 한다. 누구를 위한 의견인지 결국엔 자신들이 관리해야 하니 자신이 원하는 쪽으로 말하는 것 같은데, 혁이는 엄마가 원하는데로 왜 안 하냐고 화를 낸다. 모든 가족이 그렇듯 막내에게는 가르치려 들고 막내에게는 선택과 개인의 의견을 듣지 않는다. 왜 꼭 이렇게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그 앞에서 이렇게 다들 싸울까. 조용히 그리워하고 추모할 수는 없는 것인지..

 

🔖 혁이 니가 뭘 몰라서 그러는데 이건 합장하고는 좀 달라. 석실을 나눌 거거든.

누나 미친 거야? 한 무덤에 들어가는 게 합장이지 무슨 합장이 아냐?

니가 뭘 몰라서 그러는데,라고 작은형이 말하는 순간 그가 주먹으로 운전대를 내리쳤다. P191

 

 

📖 재

 

아내가 딸을 데리고 떠난 후, 아내는 죽고 딸 소식이 끊어진 현재. 자신은 곧 병원에 가망 없는 수술을 받아야 하는 처지에서 그레고르의 소설 속 인물을 상상하며 병원에서의 생활을 상상해 본다. 담배를 태우며 날리는 재들이 공기 중에 둥둥 떠다니는 모습을 그리며 본인도 재처럼 하늘을 날아보고 싶은 것은 아닐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는 이 장면이 그레고르에 대한 냉혹한 예언처럼 생각되었다. 긴 병원 건물은 벌레가 된 그레고르의 연약한 둥근 머리를 관통하는 잿빛 쇠막대처럼 여겨졌고, 더 나아가 어쩌면 모든 병원의 작은 창문 속 병실에 갇혀 있는 환자들을 불가능한 삶의 희망을 볼모로 꼬치처럼 꿰고 있는 쇠꼬챙이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자들은 쓸모없는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 가족의 재산을 갉아먹는 해충 같은 존재들이며 결국엔 가족의 행복과 안녕을 위해 바삭한 껍질만을 남기고 죽어야 하는 그레고르의 운명인지도 모른다고. P202-203

 

 

📖 전갱이의 맛

 

이혼한 부부. 아내는 3년이 지나 이혼 전과 달라졌다고 느낀다. 남자는 시간강사로 말하기 좋아하던 사람이었지만 성대 낭종 수술을 받은 후 말을 하지 않게 되면서 자신을 위한 자신을 향한 말을 찾고 싶었다 말한다. 전갱이 생선 가시를 발라먹는 모습도 다른 두 사람은 여자는 결혼생활 때는 자신이 모든 것을 맞추며 지냈지만 남자가 자신이 몰랐던 시간을 찾아가는 과정에 조금은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어떤 마음이 생긴다.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부부와 연인들을 보면 완벽하게 이별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그 사람의 얼굴을 본다는 것으로 과거의 상처들이 치유가 될 수도 있을까 하는 작은 마음들 때문에 멀어짐을 선택하기보다 만남을 선택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대화하기 위한 것 같지만, 근본적으로는 나와 대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러니까 그동안 난 쉴 새 없이 누군가에게 말을 해왔는데, 그 말을 사실 나도 듣고 있었던 거지. 그런 의미에서 말은 순순히 타인만 향한 게 아니라 나를 향한 것이기도 했던 거야. 그런데 말을 못 하게 되면서 타인을 향한 말은 그럭저럭 포기가 되는데 나를 향한 말은, 그건 절대 포기가 안 되더라고.” P241

 

🔖🔖묵언의 시간 속에서는 항상 나만의 말들이 태어난다. P249

 

🔖🔖어떤 말들은 뜻을 알 수 없는 채로 생겨난다고 그가 말했는데 정확히 그렇다. 어떤 감정이나 감각들은 나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몸으로 표현되고 기억에 각인된다. 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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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엔이 그 손을 잡았다. 언제나 그렇듯 디엔의 손은 서늘했는데 아직도 데런은 그 온도와 감촉을 기억하고 있다. 그 온도를 잊지 않기 위해 가끔 한 손을 일부러 담요 밖에 놓아 서늘하게 만든 다음 따뜻한 다른 손으로 맞잡아보고 이게 디엔의 온도인지 아닌지 가늠하는 버릇이 들었다. - P92

데런은 평생 처음으로 디엔이 자신을 떠날지도 모르며 디엔 없이 자신이 혼자 남겨질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고 끔찍한 공포와 고통스러운 자책에 빠져 맞은편 벽의 낡은 벽지만 하염없이 노려보았다. 어느덧 세상은 사라지고 아득히 멀어지는 디엔과 자신 사이에 놓인 측량할 수 없는 거리만이 절박한 실재로 남았다. - P96

어쩌면 그런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아니면 망각 저편으로 넘어가버렸지만 어느 시절엔가 자신이 종종 이런 상태에 빠져 있어 몸이 기억하고 있는 흔적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데런은 생각했다. 자신은 끝내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으리라는 것을. 이토록 희박한 유사성만으로는. - P97

"다른 사람과 대화하기 위한 것 같지만, 근본적으로는 나와 대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러니까 그동안 난 쉴 새 없이 누군가에게 말을 해왔는데, 그 말을 사실 나도 듣고 있었던 거지. 그런 의미에서 말은 순순히 타인만 향한 게 아니라 나를 향한 것이기도 했던 거야. 그런데 말을 못 하게 되면서 타인을 향한 말은 그럭저럭 포기가 되는데 나를 향한 말은, 그건 절대 포기가 안 되더라고." - P241

묵언의 시간 속에서는 항상 나만의 말들이 태어난다. - P249

어떤 말들은 뜻을 알 수 없는 채로 생겨난다고 그가 말했는데 정확히 그렇다. 어떤 감정이나 감각들은 나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몸으로 표현되고 기억에 각인된다. - 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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