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들 - 냄새로 기억되는 그 계절, 그 장소, 그 사람 들시리즈 4
김수정 지음 / 꿈꾸는인생 / 2021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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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정말 오랜 만에 잠든 내 감성을 깨워준 책을 만나서 손에서 책을 놓지 못했다. 처음에는 냄새들 이라는 주제로 어떤 글들을 쓴 것일지 호기심과 궁금이 가득했다. 그저그런 일상 기록 정도로만 생각하고 가볍게 읽기 시작했다. 과거 소녀시절의 기억들을 떠올려준 것 만으로도 사실 좋았다. 기억뿐만 아니라 내가 지금 놓치고 있는 감정들. 일상 속의 섬세함들을 다시금 깨워주게 하였다.
나도 향수를 좋아하고 하루의 날씨와 옷, 기분에 따라 다른 향수를 뿌리면서 그 향기로 하루 일과를 어떻게 시작할 지 의식 아닌 의식을 치르는 게 습관이 었는데 나의 냄새라고 생각이 드니 조금 더 신중하게 선택을 해야겠다.


💛한 번 읽는 것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다. 틈만 나면 읽어보고 또 읽어 보면서 나의 과거는 어땠는지 타임머신을 탄 기분이었다. 작가님이 어린시절 냄새를 말하면 어느새 나도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리며 그때 어땠는지 떠올렸다. 실제 냄새가 나는 것도 아님에도 단어 하나로 나를 그 단어가 존재했던 그 장소, 시간으로 데려가 주었다. 그 시절의 나로 돌아가 그 때의 기분과 그 때의 두근 거림을 다시 기억해 절대 일상에서는 떠올릴 수도 없는 그 시간들을 단어 하나로 이끌어주시다니!!

💜기교 가득한 글도 아닌 아주 담백하고 사실적인 표현들이 저를 냄새들 책 속에 퐁당 빠지게 했습니다. 낙엽떨어지는 깊어가는 가을 행복한 냄새들로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명동 토다코사
토사코사에 줄기차게 출석 도장을 찍었지만, 정작 향수는 엉뚱한 곳에서 구매했다. 명동역 밀리오레는 향수를 작은 공병에 덜어 파는 가게가 있었다. 한 병에 5,000원씩, 그곳에서 나는 고등학생 용돈으로 살 수 없었던 향기들을 5,000원에 손에 쥘 수 있었다. 하도 자주 가다 보니 사장님은 서비스로 미니어처 향수나 추천 향수를 공병에 덜어 주곤 했다. 인심 넉넉한 사장님 덕분에 구찌 엔비미, 버버리 브리트, 위켄드 같은 향수를 접할 수 있었다. 그것들을 품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 그렇게나 행복할 수 없었다. 향수 하나로 내가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지루했던 고등학생의 삶이 조금은 다채로워진 듯 뿌듯했다.

——🛍핸드크림이 그냥 핸드크림이 아니라고
나는 신상 백화점에서 가난해진 기분을 3만 천원짜리 핸드크림을 사며 달랬다. 멋쟁이는 아니지만 멋쟁이들이 쓰는 향기는 살 수 있지. 살구색 이솝 향기를 맡으며 간만에 멋쟁이가 된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온 어느 주말이었다.

——🧸포근하지만 슬픈
코를 파묻고 오래도록 맡고 싶은 아끼는 냄새들이 있다.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배가 간질간질하고, 목울대가 따끔따끔 뜨거워지는. 냄새를 동그랗게 말아 주머니 안쪽에 소중하게 넣고 언제든 꺼내 맡고 싶은 냄새들. 언젠가 내가 이 냄새들 때문에 눈물 흘릴 걸 알면서도 자꾸만 맡게 되는 그런 냄새들.

——🧼친정집 비누
가끔은 내가 너무 호화롭게 지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죄책감이 들 때가 있다. 넓은 집도 아니고, 쇼핑을 즐겨 하는 것도 아니고, 외식을 자주 하는 것도 아니지만 엄마의 신혼을 떠올려 보면 이건 분명 호화로운 생활이다. 이래도 될까 싶은 마음이 들면 엄마에게 미안해진다. 나는 사고 싶은 몇만 원짜리 핸드크림도 턱턱 사고, 해외 쇼핑몰에서 샤워 젤도 맘껏 사고, 향기로운 비누도 사고, 샴푸도 2+1 말고 한 개를 사도 좋은 걸로 산다.

엄마와 이런 통화를 하고 나면 엄마의 마음과는 반대로 우리 집에 놓인 호화로운 것들만 눈에 띈다. 엄마가 누리지 못한 것들만 보여 미안해진다. 그래도 난 드봉 비누 말고 좋은 비누를 쓰고 싶은데. 우리 신혼집 화장실 냄새가 친정집 냄새보다 좋은데. 나는 이걸 누리고 싶은데. 냄새에서 나의 철없음이 느껴진다. 나도 엄마가 되면 철이 좀 들려나. 그냥, 친정집 화장실에만 가면 미안해진다. 그냥, 엄마에겐 늘 미안할 뿐이다.

——🎀머리 냄새
냄새에 민감한 어른이 되었다. 냄새나는 사람은 싫고, 냄새나는 사람을 친구로 맞이하고 싶진 않다. 냄새가 고약한 사람을 만나면 굳은 표정을 감추기 힘들다. 그런 어른이 되었다. 그러다 어느 날엔가 이제는 하늘의 별이 된, 설리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설리의 엄마는 연습생 시절 설리가 머리를 꼼꼼히 말리는 법을 몰라 냄새가 났었다고 슬프게 말했다. 사람들이 설리의 머리 냄새를 맡기 싫어 얼굴을 피했다고. 엄마인 내가 이런 것도 못 가르쳤구나 싶어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속이 쓰렸다. 어느덧 나는 이층집 할머니 같은 어른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머리 냄새를 미워하는 어른. 아이의 냄새를 품어 주기는커녕 얼굴을 피하는 어른.

자구 잊고 살지만 아이의 세계는 어른의 세계만큼이나 복잡하다. 어린 시절의 우리를 가만 떠올려 보면 우리는 많은 것을 느끼며 살았다. 그걸 어른의 단어로 이름 붙일줄 몰랐을 뿐이지. 냄새 떄문에 친구와 생이별했다. 정확히는 가난의 냄새가 옮겨붙을까 두려워한 어른 때문에 헤어졌다.

편견을 알려 주기보다 위로해 주는 어른. 아이의 서투름을 다그치기보다 건강한 습관을 일러 주는 어른. 냄새로 편 가르기 하지 않는 어른. 그런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마음에 굵은 글씨로 새겨놓은 것을, 잊지 않으려 이렇게 글로 쓰며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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