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너 자매 을유세계문학전집 114
이디스 워튼 지음, 홍정아 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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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버너 자매」는 이디스 워튼의 중단편 선집으로 「징구」, 「로마열(熱)」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버너 자매」는 작가의 초기 작품으로 몇몇 잡지사에 작품을 보냈지만 길이가 짧은 데다 연재하기 ‘부적절하다’는 이유로 거절당하다가 24년이 지나서야 『징구와 다른 이야기들』에 수록되어 빛을 볼 수 있었다.

언니 앤 엘리자 버너와 동생 에블리나 버너 두 자매는 화려한 도시 뉴욕의 뒷골목에서 미혼으로 조화, 작은 수예품, 모자 등을 근처 여성 고객들에게 팔아 겨우 생계를 유지하지만 그런 대로 행복하게 살아간다. 독일 이민자 시계 수리공인 래미라는 남자를 만나면서 버너 자매의 비극은 시작이 된다. 자매가 래미를 두고 질투를 하다 동생을 위해 언니는 래미에 대한 감정을 정리한다. 언니는 동생의 결혼을 위해 자신의 돈까지 주면서 배려하지만 래미는 실제로는 마약중독자로 돈을 위해 에블리나를 속였고, 친구의 딸인 린다 호치뮬러와 도망가버린다. 졸지에 남편한테 버림받고 길거리에 걸식하는 신분을 전락한 에블리나는 결국 병에 걸려 죽는다. 동생이 죽은 후 앤 엘리자는 빚을 갚기 위해 가게를 청산하고 일자리를 찾아 맨해튼 거리를 헤매는 것으로 끝내 한 줄기 희망의 빛도 남기지 않은 채 글은 끝난다.

버너자매는 사회에서 아래 계층에 속하나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누리고 싶어한다. 하지만 가난한 생활에서 벗어나기는 커녕 더 궁핍하고 힘들어진다. 왜 가난한 사람들은 행복하지 못하고 불행하게 삶을 살 수 없는 것인가. 책을 덮는 순간까지 여운이 남는 다. 특히 배경을 설명하는 장면들은 버너 자매의 희생당하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묘사하는 것처럼 보였다. 코가 빨간 남자들과 깨진 단지를 든 창백한 어린 소녀들이 슬며시 문을 여닫는 술집이 점점 더 많아지는 환경적인 배경도 버너 자매의 삶을 보여주듯 쓸쓸하고 우울하다.

버너자매에 이어 짦은 단편 2편이 함께 이 책에는 실려 있는데,
<징구>는 미국상류사회의 겉만 관심이 있는 독서 클럽에서 다들 아는 것처럼 하나의 강의 주제인 것 마냥 강이름을 다들 알지 못하면서 아는 척 하는 행동들은 상류층의 위선적인 가면을 들춰 재밌게 읽을 수 있고, <로마열(熱)>은 겉으로는 친해보이는 두 여자가 한 남자를 두고 질투, 비난, 분노하는 감정들을 볼 수 있는 감성가득한 글이다. 이 역시 마지막 문장은 여기서 끝이 나면 안될 것 같이 뒷 이야기가 더 궁금했다.

가을에 정말 어울리는 감성적이고 쓸쓸함을 느낄 수 있는 책! 입니다.


태양에 한 뼘도 자리를 내주지 않고 음산한 구름이 하늘을 덮은 그날 아침은 습하고 추웠지만, 아직은 눈송이가 어쩌다 떨어질 뿐이었다. 이른 아침 빛에 길거리는 철저히 버림받은 것처럼 누추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스스로 책임질 필요 없는 더러움에 대해서는 눈곱만치도 상관하지 않는 앤 엘리자에게 길거리는 이상하리만큼 친근해 보였다. P23

거친 난간 너무 저 멀리 땅이 움푹 파였고, 푹 꺼진 곳에는 작은 숲이 있었다. 그 더운 일요일 오후, 모든 게 이상할 정도로 싱그럽고 고요했다. 사과나무 가지들 밑으로 잔디밭을 가로지르자 앤 엘리자는 교회에서 보내던 조용한 오후와 어렸을 적 엄마가 불러 주던 찬송가가 생각났다. P61

앤 엘리자는 그들의 친절을 당연히 고맙게 생각했지만, 그들이 ‘위로‘라 믿고 건네는 말들은 그녀에게 빈 껍데기와 같았다. 그녀는 익숙하고 따뜻한 그들의 존재 바로 저편에 ‘고독‘이라는 손님이 문 앞에 서서 기다리는 것을 봤다. P88

누구든 독립적인 삶을 ‘아내‘라는 달콤한 이름과 바꾼 사람이라면, 반짝이는 것이 모두 금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각오를 해야 해. 그리고 나는 언니의 삶이 한여름 구름처럼 속박 없고 평온하길 바라. P91

다른 사람을 위해 자기 유익을 내려놓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우면서도 꼭 필요한 일이라 생각했었다. 그것이 곧 복을 받는 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자기가 인생의 선물을 거절한다고 하더라도 그 선물이 그녀가 양보한 사람들에게 전달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해서 그녀에게 익숙한 천국에는 아무도 살지 않게 되었다. 앤 엘리자는 더는 하느님이 선량하다고 믿을 수 없었다.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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