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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뿌리는 소녀
니시 카나코 지음, 고향옥 옮김 / 케미스토리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당장 지금은 말고 언젠가, 이 책의 내용이 가물가물할 때 쯔음에,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 '우주를 뿌리는 소녀'를 덮으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이다. 사춘기를 겪고 있는 소년의 이야기를 담은,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평범한 이야기였는데, 그래서 더 보편적 진리를 읽을 수 있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가 아닌가 싶다
소녀의 비밀이 나의 세계를 색칠해놓았다는데, 표지만 보면 전형적인 일본 소설의 느낌을 준다. 일본 소설에 대해 잘 알지 못해서 니시 가나코라는 이름도 생소했는데, 일본에서 152회 나오키상을 수상한 작가라고. 이란에서 태어나 이집트 카이로와 일본 오사카에서 자랐다는데, 소설과 함께 그림책도 쓴다고 한다. 시선이 굉장히 독특하고 넓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그러한 성장환경 때문일 수도 있겠다 싶다.
이야기도 별다른 챕터 없이 하나의 챕터로 마무리된다. 260페이지에 달하는 소설이지만, 동화같은 구성이라 금방 읽게 되는 것도 장점. 다만, 성장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읽다보면 환타지로 마무리되어서 책을 덮을 때쯤, 응?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런데 그 마무리가 황당하고 어이없다기 보다 동심을 자극하는 측면이 있어서, 그 결론에 대해 시간이 조금 더 지났을 때 다시 한 번 음미하고 싶어지는 그런 느낌.
시작은 한 소녀의 등장에서부터이다. 어른들의 야만적인 삶, 또래 남자아이들의 유치한 행동, 또래 여자아이들의 훌쩍 커버린듯 거만한 태도,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는 소년 사토시는 어느 날, 그 모든 경계에 속하지 않는 고즈에를 만난다. 온천 근처에서 여관을 하는 사토시네 집에 일하러 온 모녀였는데, 뭔가 묘한 분위기를 풍기고 당연히 알아야 할 것들을 모르는 이상한 사람들이다.
사토시가 어른을 싫어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남자 어른인 아빠가 두 번이나 바람을 피우다가 걸린 적이 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마을 축제에 어른으로 인정받고 싶어하는 허세기 있는 남자애들이 어린이들이 열심히 만든 신여를 부수기 때문이다. 사토시는 축제 자체도 폭력적이고 흥분하는 남자들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런데 속마음 깊이 사토시가 성장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다로 있는데, 바로 성장의 끝은 죽음이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면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이니까,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것.
그런 사토시를 위로해주는 사람이 바로 고즈에이다. 고즈에는 마치 듣지 않는 것처럼 사토시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엉뚱한 얘기에도 웃지 않는다. 그런 고즈에와 친해지고 싶은 사토시는 동시에 어른들이 자기를 아빠처럼 여자를 밝히는 것으로 볼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이 계속 갈등중이다.
게다가 이 고즈에라는 여자애가 (예쁘긴 하지만)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모습도 많이 보이는데, 우선 남의 것을 가져온 것에 대한 죄의식이 없고, 상식적인 대화가 불가능하며, 자기가 토성근처 별에서 UFO에서 내려온 외계인이라고 소개한다는 것.
그게 아주 이상할 것도 아닌 것이, 사토시의 반에는 자기가 다른 사람의 미래라고 주장하는 미라이도 있고, 입만 열면 거짓말을 쏟아내는 루이도 있으며, 뭔가 어리숙하게 말을 더듬는 도노도 있어서 고즈에가 우주인이라고 주장하는 게 아주 이상한 일만은 아니다. 그렇게 사춘기 소년의 성장을 담은 이야기로 계속되는 것 같더니 소설의 마지막은 뭔가 황당. 이게 정말 끝난거야? 싶은 마무리가 되는데, 그 때즘 사토시에게 이야기했던 도노의 말이 생각나는 것이다.
믿은 게 거짓말이란 걸 알게 될까 봐, 처음부터 믿지 않는 거, 시, 싫다. 나는 전부 믿고, 내, 내 머리로 거짓말이라는 걸 알고, 알고 나서, 상처입을 거다
그러면 갑자기 고개가 끄덕여지면서, 겨우 12살 소년의 이야기가 사실이든 아니든, 그게 뭐가 중요한가. 결국 그 소년이 본 세상이 이렇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닌가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아울러 그냥 그런 이야기군! 하고 덮어버리기엔 마음에 와 닿는 대사들도 있고.
모든 걸 전부 다수결로 결정해서는 안돼. 다수결로 하면 쉽게 결정될 수는 있으나 다수가 아니었던 사람들의 의견을 무시돼 버린다. 그것은 매우 위험하다.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생각을 하며 살아간다. 그것이 지금 나의 생각이나 상식과 다르더라도 온전히 받아들이기엔 너무 어른이 되어버린 건 아닐까? 이 책을 덮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문득, 초등학교 때 시험지에 자기의 이름을 콩시라고 적어냈던 동급생이 떠올랐다. 그 친구는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