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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든 램지의 불놀이 - 슈퍼 쉐프 고든 램지의‘핫’한 도전과 성공
고든 램지 지음, 노진선 옮김 / 해냄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평소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을 썩 달가워하지 않는 성품 턱에 자기계발서에 대해서는 부정적 생각을 했었다. 고든 램지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했지만, 뭔가 도전과 성공이라니 열심히 해서 잘하라는 뻔한 소리겠지 라는 편견으로 첫 페이지를 넘겼다. 그런데 은근 재밌다. 이 책!
최고가 되려는 시도가 언제나 성공했을까? 바보 같은 소리. 대신 나는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잭 니콜슨을 생각한다. 그는 정신병원에 갇혀 있던 다른 동료 수감자에게 자신이 바닥에서 수도꼭지를 떼어나 그걸 창밖으로 던져버릴 수 있다고 말한다. 동료들은 내기를 건다. 그의 허풍이 사실일 리 없기 때문이다. 영화는 땀을 뻘뻘 흘리고 끙끙대고 신음하는 잭 니콜슨을 보여주고, 결국 수도꼭지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잭 니콜슨은 마침내 포기하고 주위를 둘러본다. 그러고는 “적어도 난 노력은 했고, 그것만으로도 네놈들보다 나아”라고 말한다. - pp. 13-14. 본문 중에서
얼마 전 우연히 본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산적(?)에게 붙잡힌 덕만이 기우제를 지낸다며 3일간 절을 하다가 실패하자 우물을 파겠다며 나서는 장면이 나왔다. 황당해하는 천명공주에게 덕만공주는 이렇게 노력하다보면 지나가는 사람이 도와줄지, 정말 비가 내릴지 누가 알겠느냐며, 일단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 온 힘을 다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고든 램지의 글을 읽으며 선덕여왕의 일화가 생각난 이유는 램지 역시 성공한 레스토랑 경영자가 되겠다는 꿈을 처음부터 꾼 것이 아니라, 다만 접시는 내가 가장 깨끗하게 닦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더 잘하기 위해 주변 사람들에게 배우고 미친 듯 노력하다 보니 어느 새 다른 레스토랑에서 스카우트를 받게 되고, 그것이 레스토랑 사업의 발판이 되었던 것이다.
한 순간도 성공에 운이 필요하지 않다고는 생각하지 마라. 스스로 운을 만들어가는 일도 결코 멈추지 마라. 운은 성공하겠다고 결심한 사람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 p. 296. 본문 중에서
이 책에서 필자 역시 성공하는 데 운은 필요하지만, 그 운을 만들기 위해서는 현재 노력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그러나 필자의 피눈물나는 노력을 보고 있노라면, ‘아 정말 저렇게 하면 누구라도 성공하겠구나!’ 싶다가도, 그렇게 경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 결국 경쟁의 강도가 더 세지게 될 것을 생각하면 ‘나는 그냥 내 생활에 만족하며 살아서 저들이 덜 경쟁하게 해줘야지.’ 라는 자기합리화 성인군자 마인드가 발생한다. 그러나 목표를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다가 새로운 길을 찾거나 한 단계 성장하게 되는 마치 롤플레잉 게임 같은 그들의 성공담은 단순히 접하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흥분시키는 매력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매 레스토랑을 열면서 기존의 매뉴얼을 적용해 나가지 않고, 언제나 가장 제일 나은 방법을 고민하고 모색하여 실천해나갔던 것이다. 이쯤 되면 잘 짜인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진정한 해답은 처음부터 제대로 하는 것이다. 파도가 잔잔한 바다에서는 구명보트가 필요 없다. - p. 93. 본문 중에서
특히나 이 책에서 감명받았던 부분은 레스토랑 사업보다도, 레스토랑 사업을 벌이면서 부딪히게 되는 다른 분야 사업에 대한 비판이었다. 건물을 짓는 사람들이 쓸데없이 미적 감각만 고집하면서 결국 레스토랑의 용도와 동떨어진 건물을 설계해온다거나, 레스토랑에 단순히 음식을 먹기 위해 오는 1인용 손님을 위한 1인용 테이블이 없다면 예의가 없는 것이라거나, 기자들이 좋은 기사를 써주겠다며 공짜 식사를 요구하자 분노해서 공휴일을 알려준 것 등 핵심을 파고들면서 사고의 전환을 주는 통찰이 곳곳에서 (유머러스하게!) 펼쳐지는 것이다. 이런 일화를 보다 보면, ‘아! 이곳이 정말 사람을 위한 레스토랑이구나!’하는 감탄을 연발하게 된다.
뉴욕에서의 사업이 성공할까? 성공하고말고. 피라니아 같은 언론은 날 어떻게든 먹어치우려 하고. 노조는 탐욕스러우며, 전반적으로 우리가 훌륭하다는 걸 인정하기 싫어하는 여론이 존재할지라도 말이다. 우리는 성공하기 위해서 미국에 왔기 때문이다. - p. 226. 본문 중에서
이 책이 단순히 성공 이야기만 나열하는 것은 아니다. 때론 허영심에 들떠 무리한 투자를 진행했다가 큰 손실을 보기도 하고, 자동차 애호가로서의 기질을 버리지 못해 신차 구매에 낭비를 하기도 하며, 사람을 잘못 고용해서 전체 레스토랑의 분위기를 망쳐버리기도 한다. 사업 규모가 커지면서는 세무조사를 받아 고생하기도 하고(탈세로 말미암아 힘든 것이 아니라, 서류를 제때 정리하지 않아 조사받기 번거로워져서) 회계장부를 정확히 써야 함을 깨달았다며 이를 갈기도 한다. 이처럼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고든 램지는 이렇게 말한다. “실패는 깨끗이, 그리고 재빨리 인정하라!”고.
왜 전에는 그 사실을 몰랐을까? 분명 허영심 때문이고, 내가 깨달은 바에 의하면 허영심에는 지랄맞게 돈이 많이 든다. 그래도 이제 그 해독제를 알았다. 차가운 현실 한 바가지와 극단적인 조치. 출혈과다로 죽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 p. 55. 본문 중에서
그런데 고든 램지와 일하는 일은 정말 까다로운 일이 될 것 같다. 자선사업에도 자신만의 깐깐한 기준이 있고, 레스토랑 세면대에 수건을 놓아야 할지 비누를 놓는지 여부부터 화장실 벽걸이, 테이블 위 화분까지 세세하게 참견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직원은 바로 해고해버리며 앞선 예약 시스템을 누구보다 먼저 창안하는 부지런함에, 실수에는 독설을 늘어놓는 상사라니! 정말 24시간 내내 사시나무 떨 듯 떨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그가 그럼으로써 추구하는 것이 부정적 방향인 것도 아니고, 단순히 맛있는 요리를 제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를 수익으로 이끌어내는 탁월한 경영능력을 보여주며, 고든의 히스테리를 잘 견뎌내 환상의 팀워크를 보여준 인재는 적절히 선별하여 레스토랑을 운영할 수 있게 해주니- 서바이벌 게임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요식업계의 최고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도전해볼만할 것 같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책 곳곳에서 표현된 그의 인재상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1등감 경주마를 찾아냈다면 매일 그 녀석의 털을 손질해 주어라. 그리고 목숨을 걸고 지켜라. - p. 58. 본문 중에서
인재를 뽑는 최고의 방법은 이미 다른 곳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잘 관찰하다가 더 나은 연봉을 제안해서 낚아채는 것이다. - p. 212. 본문 중에서
전문가들의 도움 없이 일을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버려라. 불가능하다. 그저 그들을 잘 지켜보다가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면, 절대 놓치지 말고 꽉 붙잡아라. - p. 277. 본문 중에서
성실한 사람은 여름날의 시끄러운 말벌처럼 눈에 띈다. - p. 295. 본문 중에서
이 책을 읽고 있으니 주변 사람들이 다 이 사람을 알아본다. 알고 보니 케이블 TV에서 뭔가 요리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사람이란다. 입이 걸고, 성격이 괴팍한데 재밌다고. 그런데 그런 평판은 굳이 TV 프로그램을 보지 않더라도 책을 읽으면서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성장기를 회상하면서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간 역경과 성공담이 너무나도 익살스럽고 직설적으로 묘사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마치 술자리에서 친구가 하는 일상 얘기를 깔깔거리면서 듣는 기분을 전해준다. 그리고 분명히 그 화술은 이 책의 매력이다.
서리 방지 장갑과 산소 탱크를 준비하기도 전에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라봐야 좋을 게 없다. 밑에서부터 천천히 올라가는 게 낫다. 그게 훨씬 재미있기도 하고. - p. 289. 본문 중에서
그는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다만, 성공하기 위해 목적의식을 품고 좋은 인재와 제대로 된 시스템에서 일하되, 잘못된 일은 하지 말고 고객의 처지에서 생각하라고 조언한다. 이런 내면의 깊은 성찰과 태도가 괴팍한 언행에도 그를 우리 시대 트랜드로 자리하게 했던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