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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은 힘이 세다
이철환 지음 / 해냄 / 2009년 8월
평점 :

연탄길.
따뜻한 에피소드와 문체로 전국민을 울렸던 베스트셀러.
가끔'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언제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는
안도현 시인의 시와 오버랩되면서 괜히 사람 사는 찡한 인생의 향취가 강해지는 바로 그책.
그 책의 작가가 첫 소설을 썼다니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눈물은 힘이 셀까?
이 책엔 다양한 인간군상이 자신의 약한 살을 드러내며 서로의 슬픔을 나누고 혹은 감추며 살아간다.
주인공 유진은 가난한 집에 태어나 파란색 크레파스를 아끼기 위해 바닷가에
온갖 물고기를 그려넣으며 작가를 꿈꾸는 소년이다.
그런 그에게 크레파스가 2개 있어 하나 준다며 다가온 라라는 천사같은 첫사랑이다.
가족을 부양할 능력이 없는 유진의 아버지는 평소엔 점잖으나
매일 술로 달래며 취하면 가족에게 폭력을 일삼고 그런 그의 옆집엔 시각 장애인 안마사 부부가 산다.
그러나 첫 페이지부터, 넘쳐나는 비유와 수식에 길을 잃었다.
기린같은 그림자, 착시처럼 가물거리는 길, 달빛 내린 시냇물과 느릿느릿 기어가는 달팽이 같던 은하수-
아직 이 책을 읽을 마음의 준비도, 여유도 없던 한 독자는 첫 페이지를 몇번이고 다시 읽어야 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거야? 라고 투덜거리다가-
결국- 책을 다 읽기도 전에 나는 투덜거리고 말았다.
"눈물이 정말 힘이 셀까?"
페이지를 넘기면서 작가(로 추정되는 주인공)의 과도한 자기연민에 지쳐버렸다.
아 정말 힘든 아이로구나, 라는 생각보다,
자기만 힘드나? 세상에 안 힘든 사람이 어딨어? 라는 냉소가 먼저 표출됐다.
손가락을 잘라야 하는 시각장애인 안마사도, 가족을 부양하지 못하는 아버지도,
집이 불에 타버린 달수도, 짝사랑에 시달리는 유진이도-
모두 자기가 가장 큰 상처와 아픔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지만,
그저 사회의 주변부에 있는 일반인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자기연민에 빠져있는 동안 세상을 향해 나아갔더라면 세상에 편입할 수 있었을 것이다.
도대체 왜 저렇게 미리 패배주의에 빠져서
가족들에게 상처주고 남에게 피해주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억지로 짜내려는 그 눈물에 동참하고 싶지 않았고, 관망하고 관조하며 냉소적으로 책을 읽었다.
그렇게 비겁하니까 아무것도 못하지, 라고 첫사랑 라라를 떠나보낸 유진을 조소했고,
술값만 아꼈어도 아들을 대학에 보냈을 것이라며,
가족 부양을 하지 못함을 슬퍼하며 술로 하루를 보내는 아버지를 비난했다.
착한척 하는 주인공의 삶은 가식적으로 느껴졌고,
우연히 계속되는 아저씨와 유진의 만남은 작위적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과도한 안마의 후유증으로 관절이 다쳐 손가락을 모두 잃게 되고,
아내가 뺑소니에 사망하면서 쪽방을 전전하는 신세가 된 시각장애인 아저씨의 삶이 안타깝긴 했지만,
정말 저런 사람이 있겠어? 하고 넘겨버렸다.
그런 나에게 시각 장애인 아저씨는 이렇게 말했다.
개미가 바위를 옮기려니 너무 힘들다고.
독사는 허물을 벗어도 독사라고.
이 사람들이 언제 나에게 이해를 구한적이 있던가.
그들의 슬픔을 공감해 달라고 윽박지르거나 강요한 적이 있던가.
그냥 그들의 삶을 보여줬을 뿐인데, 난 그냥 불편한 사실을 외면하고싶어 눈을 감았던 것이다.
눈을 감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들을 비난하고 조롱하며 나를 합리화시키려고 노력했다.
위선은 그들이 아니라 내가 행했고, 그들의 도와달라는 신호를 무시했으며,
그렇게 그들과의 세계를 단절해버렸다.
그렇게 잘 알지도 못하면서 비아냥 거릴 때 껌을 팔면서도 무지개를 노래하던 시각장애인 아저씨는
세상과 잘 지내길 꿈꾸느니 차라리 지네 발에 신발을 신기는 것이 낫겠다며
차가운 방에서 쓸쓸히 생을 포기한다.
아! 눈물이 힘이 셀지도 모르겠다.
사실 여전히 이글이 구구절절 감성을 자극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난 여전히 턱을 괴고 무표정한 얼굴로 이 책을 읽어내려가고 있다.
그런데 어쩌면 이런 삶이 지금도 있을 것이라고 인정하게 된다.
내가 도울 일이 없을까 생각하게 된다. 바로 그거다.
비록 이 책이 너무나도 계몽적으로, 직접적으로, 삶을 행동을 권장하고 권유하지만-
그 바탕에 진실이 있기에 울릴 수 있는 것이다.
눈물이란 울고 싶다고 나오지 않는다. 그 울림에 반응해야만 나올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울림이 있는자, 가 외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눈물은 힘이 센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상을 쓰기 위해 처음부터 다시 읽어봤더니
처음 읽었을 때 처럼 책의 표현에서 불편한 감정의 과잉은 느껴지지 않는다.
어쩌면 그렇게 나는 이 책에 익숙해진 것이다.
그걸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