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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 (양장) ㅣ 소설Y
이희영 지음 / 창비 / 2021년 10월
평점 :
<나나>, 이희영 지음, 창비, 2021
생사의 기로에서 영혼이 빠져나와 인생을
돌아보는 이야기는 많은 영화와 소설로 접해서 익숙하다. 익숙하다 못해 뻔한 결말에 진부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영혼줄을 놓쳐서 혹은 놓아버려서 영혼이 제 몸밖으로 튕겨나온다면 어떨까? 육체는 멀쩡한데 ‘영혼 없는 리액션’, ‘영혼 없는 인사’ 등 ‘영혼
없이’ 사는 일상이 현실이 된다면 어떨까?
“영혼 없이 사는 사람들. 너도 곧잘 말하잖아. 영혼
없는 인사, 영혼 1도 없네. 뭐 그뿐인가? 영혼이 콩이냐 과일이냐? 뭐만 하면 영혼을 갈아 넣었대. 그렇게 쉽게 갈아 넣을 수 있는
거, 차라리 없이 살면 좀 어때?”(11쪽)
소설 <나나>의
주인공 한수리와 은류가 탄 버스가 가로수를 들이받는다. 사람들과 뒤엉켜 쓰러졌고, 눈을 뜨니 병원이었다. 다행히 큰 사고는 아니라, 금방 퇴원한다. 다만 버스 사고로 영혼이 몸 밖으로 튕겨 나왔는데, 일주일 안으로 몸 속에 들어가지 못하면 남은 평생을 ‘영혼 없는
육체’로 살아가야 한다. 영혼이 죽는 것이다.
한수리는 아무리 들어가려고 노력해도 육체가 무의식적으로 밀어내고 있어 쉬 들어가지 못한다. 은류는 ‘영혼 없는 삶’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그렇게 남은 일주일의 시간이 흘러간다. 날이 갈수록 초조해지는 ‘한수리 영혼’과 날이 지나도 태평하기만 한 ‘은류 영혼’.
정말 내가 한수리의 영혼인지, 한수리가
영혼을 잃어버린 것이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영혼이 있든 없든, 한수리는
살아가는 데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니까.(13쪽)
한수리는 고등학교 2학년으로 무엇이든 잘하는 학생이다. 공부도 잘하고, 운동하는 틈틈이 영어 단어를 외우는 등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는다. 남에게 보여지는 한수리의 일상과 보여지지 않는 한수리의 일상은 달랐다. 인스타 등 SNS 사진이 찰나의 행복한 순간을 보여 줄 뿐 ‘행복한 찰나’를 위한 고통과 소외는 볼 수 없는 것과 같았다. ‘영혼 한수리’는 비로소 자신을 제 3자의 시선으로 메타 인지한다.
나는 한 번도 힘껏 날아 본 적 없었다. 내
날개가 조금 더 크게 자라면 그때 날아오르리라 생각했다. 결국 제대로 된 날갯짓조차 해 본 적 없었다. 활짝 펼쳤을 때, 내 날개가 기대보다 작고 초라할까, 비웃음을 당할까 두려웠다.(161쪽)
“주위에서 잘한다 칭찬받을 때마다 좋은 게 아니라 불안했어. 더 잘해야 하는데, 더 좋은 성과를 보여 줘야 하는데. 모든 게 단순한 행운이었다는
두려움이 밀려들었어. 사실 나는 실력도 없는데 우연찮게 이 자리에 선 건 아닌가? 이 모든 결과는 내 것이 아닐지도 몰라. 언젠가 사람들이 진짜 나를
알아 버리면 실망할 거야. 그럴 줄 알았다고 야유를 보내겠지. 이런
생각만 하면 마음이 초조해져서…….”(139쪽)
은류도 17살 고등학생이다. 가족의
관심이 선천병이 있는 쌍둥이 동생에게 쏠려 있어, 일찍 철이 들었다.
‘스물네 시간 애한테만 매달려’ 노력했지만 끝내 동생은 하늘나라로 간다. 동생에게 헌신하는 가족의 모습을 보면서, 죽은 동생을 여전히 잊지
못하는 가족을 보면서 은류는 소외감을 느끼는 가운데, 버스 사고로 영혼이 튕겨 나온다. ‘영혼 은류’는 ‘육체
영혼’이 차라리 영혼 없이 살아가는 게 더 좋을 것이란 생각에 육체로 들어가려하지 않는다.
<나나>의
한수리와 은류는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다른 사람에겐 관대하고,
나에게는 엄격한 삶’을 사는 공통점이 있다. 나의
삶도 이들과 다르지만, 나를 향한 엄격한 잣대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사는 점은 같다. ‘자기 자신에게 살뜰하게 인사하고 다정하게 안부’를 물은 적 없이, 작은 실수도 크게 나무라기 일쑤다.
“자기 자신에게 살뜰하게 인사도 하고 반갑게 맞아 주고. 너 지금까지 한 번이라도 그래봤어? 스스로에게 다정하게 안부라도 물어봤냐고.”(46쪽)
영혼이 있고, 없고를 떠나 다른 사람에게 관대하듯 나에게도 관대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에게 베푼 친절만큼 나에게도 친절할 수 있다면 일상을 행복으로 채울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인생의
목적을 잃은 삶이 영혼 없는 삶이 아닐까 싶어, 인생의 목적을 끊임없이 자문하게 된다. 행복하기 위해 인생을 사는 것이란 믿음과 ‘행복은 복리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믿음에 변함 없다. ‘지금, 여기, 오늘’의 일상을
행복으로 채울 수 있다면 행복한 인생이었다 자평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다른 사람의 불행으로 나의
행복을 채우지 않도록 경계한다면.
인간은 실시간으로 자신의 뒷모습을 볼 수 없다. 자는 모습을 보는 것도 불가능하다. 스스로의 것임에도 보지 못하는
게 너무 많았다. 깊은 심연 속, 마음도 마찬가지다. 제 것이지만 스스로도 어쩔 수 없다. 때로는 방치하고 모른 척한다.(161쪽)
* 해당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제공받았으며, 제 주관에 따라 솔직하게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