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케 이야기 1 대산세계문학총서 54
오찬욱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헤이케 이야기는 헤이안 시대 말기 무사 정권이 대두하면서 벌어지는 정권다툼 결과 가마쿠라 막부가 세워질 때까지의 사건을 그리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만 써놓으면 굉장히 무미건조하게 보이지만, 일본 문화에서는 굉장히 인상깊게 여겨진 것 같습니다. 이 시대 활약한 미나모토노 쿠로 요시츠네는 지금도 일본의 게임이나 만화 등에서 출연하고 있지요. 주로 박복한 영웅이라는 인상이지만.

저자가 없는 이유는, 이 이야기를 세간에 전파한 사람들이 눈 먼 비파 법사라 하여 법사의 모습을 하고 저자에서 이야기를 낭송하는 계층이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읽으면서 다소 놀란 점은 다이라 씨의 전횡에 의해 나라가 혼란스러워지고, 결국 미나모토 씨가 막부를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다이라 씨가 그리 나쁘게 그려져 있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악역이 미나모토 씨(...) 다이라 쪽의 무사들은 대개 무사도를 알고 귀족적이며 풍류 있고 우수어리게 그려지는 데 반해 미나모토의 무사들은 권모술수와 협잡에 능하고 승리를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으로 나옵니다. 황금 패턴은 대강 이렇습니다.

1. 다이라 무사가 미모와 무예를 뽐내며 미나모토 무사를 처바름

2. 다이라 무사가 미나모토의 무사가 너무 젋거나, 하여간 이러저러한 이유가 있어 죽이지 않고 풀어줌

3. 다이라 무사의 고고한 모습에 감탄한 미나모토의 무사는 '저 훌륭한 무사의 목을 내가 가져야겠다'라고 마음먹음

4. 뒤치기

......무사도... 무사도는 어디? 아니 가마쿠라 시대의 무사도와 에도 시대의 무사도는 다르기도 하겠지만....

이런 장면이 한 번만 나오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겠는데 전반적으로 꽤 자주 보입니다. 이런 꼴을 보고 나니 미나모토 씨도 고작 3대에 가서 끝나고 이후 호죠 씨가 정권을 잡게 된 것도 나름대로 납득하고 말았달까요...=ㅅ=

제가 재미있게 읽었던 장면은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마쿠라 막부 1대 쇼군이죠)가 가지고 있던 명마 이케즈키에 얽힌 이야기였습니다. 이 명마 이케즈키란 놈은 검은 빛이 도는 구렁말인데, 말이든 사람이든 가까이 다가가기만 하면 물어뜯어 '날 것을 먹기 좋아한다'라는 의미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하네요(...명마?) 이것을 요리토모의 부하 가지와라가 탐내어 달라고 졸랐더니 이건 자기가 타는 말이라면서 못지 않은 명마 스루스미를 내려줬다나요. 그런데 요리토모가 무슨 변덕이 들었는지 사사키라는 또 다른 무사에게 이케즈키를 대뜸 내주고 말았답니다. 교토로 상경하는 길에 이케즈키의 모습을 본 가지와라는 '우왕ㅋ 내가 그렇게나 조르고도 받지 못한 이케즈키를 사사키에게 내주다니ㅋ 저 놈을 죽이고 나도 죽겠어!'라는 얄딱스러운 마음으로 사사키에게 다가갔답니다. 그러자 사사키는 심상찮은 낌새를 눈치채고 '실은 이케즈키가 하도 타고 싶어서 주군의 마구간을 털어서 쌔벼왔음둥ㅋ'하고 대답. 그러자 가지와라는 껄껄 웃고 화를 풀고 돌아갔다는 훈훈한 이야기가..

....될 리가 있나!!!

가마쿠라의 무사도는 참 아리까리하군요=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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