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비열한 역사와의 결별 징비록 [체험판]
배상열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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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임진왜란이라는 역사적 국난에서 얻은 귀중한 경험을 후손들에게 전해주기 위해 나아가

더 이상 나라와 민족을 힘들게 하는 이런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각오로 비장하게 작성된

징비록(懲毖錄)‘의 내용을 역사적 사실과 정황에 맞추어 분석한 작품이다.

저자는 해당 작품을 통해 여러 이야기를 해 주고 싶었을 것이지만 아마도 이 글을 읽는 후손에게

가장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는 아마도

우리의 역사를 보면 인재(人災)에 가까운 사고들이 계속 반복되는 까닭은 과거를 기억만 할 뿐

그에 대한 진정한 후회와 본질적인 반성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라는 한 문장이었을 것이고 우리의 선조들이 저지른 과오를 자꾸 되풀이하려는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고자 했을 것이다.

작품 제목 속 징비(懲毖)시경(詩經)에 나오는 말로 여기징이비후환(予其懲而毖候患),

, 지난 일을 경계해 뒷날의 근심거리를 삼가게 한다는 문구에서 나온 것으로 역사는 반복되기

때문에 기억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우리 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요, 실수였던

1592년 임진왜란과 1950년의 한국전쟁의 공통점을 대비하면서 지도자의 행태를 비판하고

있는데, 우리 역사에서 씻울 수 없는 상처를 찾아보면 무수히 많을 것이지만 여기서는 이 두

사건(전쟁)만을 예로 들어 당시의 지도자의 한심한 작태를 힐난하며 기술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7년이나 진행된 임진왜란(일본명 분로쿠 게이초노에키)은 일본인들 조차도

자신들의 역사에서 첫 번째 침략전쟁이었음에도 전쟁이 일어난 이유를 모르고 있다고 하며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무너뜨리고 막부를 세운 도꾸가와 이에야스

전임자가 일으킨 전쟁은 자신들과는 무관하다고 발뺌하였다는 대목에서 역시 사악한 일본인다운

대처법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한 느낌이었음을 밝혀둔다.

 

작품을 통해 한 가지 소득이 있었다면

명과 일본이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강화 협상을 서두르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기패에 대한

예우 문제를 갖고 명나라가 권위를 내세우며 조선에 고두례를 강요하려 할 때 항명하는

류성룡 선생의 기백 있는 행동을 접할 수 있었던 점이었다..

(상세한 것은 작품을 사서 읽어 보시는 게 좋을 듯하다고 생각함)

 

그 내용을 접하며 든 생각을 통해 작금의 우리 상황에 대한 것을 지적해 본다면,

오늘도 한미 연합훈련을 하지 말라는 식의 중국의 외교부장이라는 작자가 한마디 한 모양이다.

우리가 홍콩과 티벳 문제 등을 거론하면 내정 간섭이라고 난리치면서 우리가 우리의 자위권을

강화하기 위해 훈련을 하겠다는 데 내정 간섭성 발언을 아무 꺼리김 없이 하고 있음에도 이를

반박하는 우리의 위정자들은 한 명도 없다.

또 독도를 24시간 비추는 CCTV 방송을 중단하라고 요구하는 일본에 대해서는 의례적인 항의로,

우리의 통수권자를 성적으로 비하할 때도 역시 제대로 된 항의조차도 못하고 그냥 방관하였고

작년에 일어난 수출 금지조치에 대항해 또 도쿄 올림픽 지도 표기 문제를 보면서 우리가 평창

올림픽 때 그들에게 어떤 수모를 당했는지를 까맣게 잊었는지 우리의 위정자들은 조용히

좋은 게 좋은 것이다라는 식으로 어물쩡 넘어가고 있다.

정부와 위정자들은 완전히 국민을 졸로 알고 있는 행동을 하고 있다.

이런 물러터진 대응은 추후 분명한 댓가를 우리 후손들이 받게 될 것이다.

 

미우나 고우나 전임 대통령이 투자한 결과는 후임 대통령이 과실을 따 먹듯이 지금의 통치자가

행한 결과는 후대에 그 영향이 나타날 것임을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는데 지금과 같이 물러터진

국제문제 대응은 반드시 후일 그 댓가를 톡톡히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은 자명한데도 우리 위정자

누구도 류성룡 선생이 명나라 기패에 대해 기백 있게 한 행동과도 같은 행동을 보이지 않고

이리저리 눈치만 살피고 있으니 답답할 따름이다.

긴 시간 베트남이라는 곳에서 살지는 않아 그들의 속사정에 대해 다 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베트남인들은 중국이 자국에 대해 이상한 짓거리를 조금이라도 하면 눈하나 깜짝 안하고 중국에

대해 대 놓고 대거리를 한다.

그런 배짱이 있기에 중국은 연약한 약소국(?)인 베트남을 쉽게 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모르는

모양이다. 지금 중국에 대해, 일본에 대해 어렵고 힘든 대응을 하게 되어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다소 힘든 상황이 벌어진다고 해도 훗날 우리의 후손들이 좀 더 편하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작은 일이라도 단단히 손을 보았으면 하는 게 나의 생각이다.

후손들 보기에 창피하지 않게 제발 쫄지 좀 말자.

 

- 1589기축옥사가 정리될 무렵 조선과 국교 정상화를 희망한 일본은 국내를 평정한

  도요토미에 의해 쓰시마의 소 요시토시를 조선에 파견하자 선조에 의해 동인이 철저하게

  몰락한 당시 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류성룡은 일본의 심상치 않은 상황

  직감하고 동태 파악을 위한 통신사 파견을 주장해 1590년 통신사가 출발.

  * 막대한 비용을 감내하며 통신사를 불러들인 이유는 조선의 우월한 문화를 이용해 막부의

    권위를 내세우기 위한 것이었다.

 

- 통신사가 귀환한 다음 일본의 침공 가능성이 심도 있게 논의되었으나 정사(황윤길, 서인)

  부사(김성일, 동인)의 보고 내용이 완전히 달랐는데 서장관으로 함께 갔었던 허성의 의견은

  어떤 확실한 의견도 없는 상태였다.

  서인들에 의해 주도 기록된 선조수정실록에는 자신들의 선배인 황윤길100% 전쟁을

  주장했다고 기술하고 있는데 이는 의문이다.

 

- 당시 조선은 백성들이 어떻게 하든 군대에 가지 않으려는 풍조와 사람을 사서 대신 병역을 

  이행하게 하는 중앙군의 대립제, 입영 기간보다 빨리 보내주는 대신 댓가를 바치는 방수

  군포제로 인해 상당히 혼란스런 상태인데다, 이 모든 제도는 백성의 고혈을 짜내 탐관오리의

  배를 불리는 악제로 전락한 상태였다. 실전에서는 제승방략(制勝方略, 유사시 지방의 병력들이

  미리 지정된 지역으로 집결한 다음 중앙에서 파견된 지휘관에게 지휘를 받는 전략적 제도)으로

  대응했지만 고질적으로 병력이 부족해 심각한 상태였음.

  * 당초 조선의 군사 전략은 진관제(鎭管制)’였으나 왜구와의 전투에서 여러 문제점을 노출하여

    이를 바꾸었음


- 고니시 유키나카(1)와 가토 기요마사(2), 구로다 나가마사(3)이 이끄는 대군이

  명나라에 가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굳이 너희들과 싸울 생각이 없으니 길을 열라는 협박성

   요구를 앞세워 침공한다. 동래성을 포위한 일본군은 전즉전의 부전즉가아도(戰卽戰矣 不戰卽

   假我道, 싸우고 싶거든 싸우고, 싸우지 않으려면 길을 빌려달라)’라고 하자 이에 대해 송상현

   장군은 전사이가도난(戰死易假道難, 싸우다가 죽기는 쉽지만 길을 내주기는 어렵다)는 글로

   대응하지만 일본군의 파죽지세 공세에 속절없이 당하고 만다.

   그 이유는 조선 특유의 시스템인 제승방략 전술로 인한 것으로 지역을 지키는 무관들은 

   지휘 체계에 의한 명령 없이는 독단적으로 움직이지 못하게 되어 있었는데 이는 바녁을 통해

   보위를 찬탈한 세조 이후 조선은 지방 병력이 임의로 이동하는 것을 극도로 꺼렸기 때문이다.


신립 장군이 고군분투하다 전사한 탄금대 전투는 반드시 지켜야 할 새재를 포기하고 주력인

  기병을 활용하기 곤란 곳에 진을 치고 응전했기 때문이지만 그 보다 패전의 본질적인 이유는

  정치인들에게 있었다.

  세종 이후 여진족과 왜구들에게 계속 당하면서도 저녁이 증강되지 못한 책임은 위정자들이

  져야 마땅하다. 신립을 위시한 지휘관들이 충분한 병력과 보급을 지원받지 못하고 기본적인

  전투 정보조차 갖추지 못한 것 역시 당시 위정자들에게 원인이 있다.

 

- 왜란이 발발하자 통신사로 다녀와 전쟁 발생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한 김성일이 좌천성 인사로

  경상우병사로 부임하는 도중에 선조는 그를 크게 질책하려 하였지만 주변에서 만류하며 전쟁에

  임하게 한 결과 초유사로 활약하게 된다. 왜란을 그의 잘못에 기인한 전쟁이라기 보다는

  조선이 인근 국가에 대한 정보가 극히 미약해 벌어진 일로 보는 게 맞다 할 것이다.

  어찌 되었던 김성일의 노력 덕택에 조선은 절망적인 초기 전황에서 반격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

 

- 선조는 도성을 방어한다는 구실로 백성들을 불러들인 뒤 나가지도 못하게 한 뒤 430일 

   야반 도주를 한다.(베트남이 월맹군에 의해 점령된 날도 430일이다)

   53일 궁에 입성한 고니시 유키나가와는 당연히 궁에 남아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조선의

   왕이 도망쳐 버린 사실로 인해 혼란에 빠진다. 이런 왕실에 대한 불신은 함경도 쪽으로 피난

   와서도 끝임없이 민폐를 끼치는 임해군을 비롯한 왕실들과 종친들을 붙잡아 일본에 넘기는

   단초를 제공하기도 한다.


- 예상외의 속도로 점령 당한 조선으로 인해 히데요시는 혼란에 빠진다.

  그 이유는 히대요시는 일본을 통일하고 지배자의 반열에 오르기는 했지만 쇼균이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가장 두려운 존재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꼽고 있었는데,

  조선과 전쟁을 벌이면 이에야스를 투입시킬 명분도 생기면서 이에야스를 전쟁의 수렁으로 

  몰아넣을 수 있게 하여 그의 힘을 뺄 수 있다고 판단하였는데, 일본의 침공을 어느 정도 방어

  하며 전쟁을 소모전으로 만들어야 할 조선이 일순간에 무너지자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투이할 

  시기를 잡지 못하게 되면서 혼란에 빠지게 된다.

 

- 임진왜란에서 전쟁의 전황을 반전시킨 일본이 전혀 생각하지 못한 변수가 두 개 있었는데

  그것은 이순신 장군의 존재와 의병의 존재였다. 이순신 장군의 수군이 아니었으면 일본군은

  서해를 북상했을 것이며, 조선이 질식당하는 것은 물론 명까지 위험했을 것이다.

  ’의병의 출현도 역시 곡창지대였던 전라도 지역을 방어하는 것을 필두로 수많은 곳에서의

  전투로 일본군의 북진을 상당히 저지시키는 역할을 했는데 특히 조선의 의병은 일본인들 

  이해의 범주에 있지 않았다. 하지만 의병들은 철저하게 외면 당했는데 임진왜란이 종료된 후

  행해진 논공행상에서 의병장이었던 곽재우조차도 포상되지 못했던 것은 물론 심지어 역모의

  혐의를 씌워 죽여 버리는 일까지도 벌어지고는 했다.

  (경상도에 곽재우가 있으면 전라도에는 김덕령이 있다고 할 정도였으나 반역을 도모했다는

   누명을 씌워 의병장 김덕령과 고언백을 제거한다.한마디로 선조는 미쳤었다)

 

- 조선이 일본의 침공으로 너무도 속절없이 무너지자 명나라는 전쟁 초기, 조선과 일본이 서로

  짜고 전쟁을 통해 명을 침공할 것이라는 우려를 갖고 있었다. 그래서 조선이 유린 당할 때

  선조는 잇달아 명에 사신을 보내 망명을 애걸하지만 명의 반응은 싸늘했다고 한다.

  조선도, 선조도 명으로서는 다 믿지 못하는 대상이었던 것이다. 

  정권이 위태롭던 명은 본국 철수가 다급한 일본과 전쟁을 끝내기 위한 강화 회담을 벌이지만

  류성룡은 강경 일변도로 나간다.

  특히, 강화 회담장에 비치된 명의 황제를 상징하는 기패에 대해 조선의 왕이라도 절을 해야

  하는데 류성룡은

  ’기패에 고두례를 올리는 것은 감히 사양할 수 없으나 이것은 단지 적중으로 가는 기패인데

  우리들이 어떻게 먼저 고두례를 올릴 수 있단 말인가 또 우리는 왜적과 불공대천의 원수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절대 강화를 허락할 리가 없으니 더욱 고두례를 올리라는 명을 받을 수 없다

  며 죽음을 각오하고 극력 반대한다.

 

- 명은 일본에 히데요시를 왕으로 임명하는 책봉사를 파견하지만 일본은 이를 받아들일 의사가

  젼혀 없었고 명에 의해 자신이 왕에 책봉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전쟁을 끝낼 의향이 없었던

  히데요시는 다시 한 번 전쟁을 생각하게 되는데 조선에 보낸 부하들은 전쟁을 그만둘 수 

  있다면 무슨 수단이라도 동원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가 갑자기 히데요시가 죽는다.

 

-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전사 통보를 받은 선조는 전혀 놀라거나 애통해 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명군의 지휘부에서 이순신의 공로를 위로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을 들었을 때도

  공로는 오직 명군에세 세월을 따름이며 위로는 전사한 등자룡을 위시한 명군이 받아야 한다

  말하였다는 것은 선조의 정신 상태가 어떤 인물인지를 파악할 수 있다 할 것이다.

  선조는 나라가 망하지 않은 것은 오직 명 덕분이라는 얼빠진 소리의 주체자이기도 하다.

  아니 그런 왕 밑에서 뼈 빠지게 일하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전시작전권은 물론 외교권마저 가지지 못했던 조선은 어떠한 입장도 낼 수 없을

  것이다. 그 결과 승자와 패자를 나누는데 있어 결정적인 사실은 전쟁이 끝난 다음 조선이

  일본에게 아무런 요구를 하지 못한 데 있다,

  거기다가 일본의 이에야스는 히데요시의 가문을 멸망시키고 막부를 창건한 다음 자신들은 

  전쟁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공표했다.(전형적인 일본식 책임회피 방법)

 

 - 근대 일본에 의해 자행된 침략 전쟁과 식민 지배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20세기 초반

  일본 사학자들은 히대요시의 전쟁에 위해 명의 멸망이 촉발되고 그에 따라 누르하지가

  청의 전신인 후금을 건국할 수 있었다는 이른바 만선사관(滿鮮史觀)‘을 주장했다.

 

작품은 그 밖에 임진왜란 당시 류성룡 선생의 활약상과 조선을 돕기 위해 파견된 무능력한

명나라 장수들의 부실한 대응력, 전쟁의 피해자인 조선 몰래 일본과 은밀히 진행되었던

강화 협상과 그 내용을 알면서도 아무 대응도 할 수 없었던 우리의 위장자들, 선조의 추잡한

행동 등이 적나라하게 기술되어 있지만 너무도 창피한 내용이 많아 일일이 정리하는 게

부끄러울 따름이다.

 

이 땅의 위정자들이여 제발 이런 책 좀 읽고 정신차려서 후손에게 부끄럽지 않은 조상이 되도록

노력하는 인간들이 되자. 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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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뒤흔든 최대 역모사건 - 조선 천재 1000명이 죽음으로 내몰린 사건의 재구성
신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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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에필로그에 보면

역사란 많은 거짓말 중에서 진실과 가장 비슷한 거짓말을 골라내는 기술이다’(루소)

라는 문구가 있는데, 정여립 모반 사건을 가장 잘 관통하는 문구로 여겨진다.

 

작품을 읽은 지 거의 한 달여가 되어 가지만 작품을 정리하기가 정말 난해하다.

나름대로 중심을 잡고 작품을 정리한다고 해도 글을 읽는 이들의 관점에 따라 글쓴이를 특정

계파나 사상에 전도된 인물로 평가해 버리는 순간 나름대로 중심을 잡고 썼다고 믿는 내가 받게 

될 상처의 깊이를 알기 때문에 항상 책을 읽고 즐겨 해 왔던 작품 정리를 쉽게 하지 못하고 있다.

해당 작품을 두 번이나 완독하며 갖게 된 생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관점으로 평가하고

기록해 놓는 것도, 나의 그런 글을 읽고 비난하는 이들의 관점을 받아들이는 것도 전부 올바른

독서의 한 방편이라는 생각에 정리를 해 보았다.

 

조선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하인리히 법칙처럼 특정한 사건이 벌어지기 전에는 수많은 자잘한

사건들이 씨줄날줄처럼 얽혀져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한다.

지금도 우리의 역사학계에 여러 논쟁 중인 역사적 사실이 한 둘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작품도 그런 범주 중 하나가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본 작품 역시 그런 범주 - 개인적인 관심도에 따라 여러 사건을 들 수 있겠으나 에 속하는

사건이라 생각하며, 여기에 그런 애매모호한 사건 한가지를 더 들라고 한다면 아마도 '사도세자

죽음과 관련된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내용에 관한 것일 것이다

내가 두 사건에 관심을 갖고 있고 지금도 틈만 나면 관련되는 서적을 구매해 읽고 있는 이유는

역사서를 읽는 과정에서 접하게 된 두 사건의 이면에 감추어진 내용이 내가 학창 시절 배웠고

알고 있는 내용과 달라도 너무나 달라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정여립 역모사건의 경우는 작품의 에필로그에서도 언급하고 있지만 당초 선조 실록에서는

언급이 없었던 사건이 서인이 중심이 되어 기록된 선조수정실록에 나타나고 있다는 점으로

그런 국가적 혼란을 초래한 역모사건이 왜 이렇게 둘쭉날쭉으로 취급되고 있는지가 내 궁금증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한 사실은 해당 사건이 실제 있었다는 점이고, 그 파장이 장난이 아니었다는 점을 전제로

놓고 해당 사건에서 나타나고 있는 의구심에 대한 몇가지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정여립 사건을 접하면 접할수록 드는 의구심은

의문 1. 정여립은 여러 기성세대로부터 조정에 천거되는 큰 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희망하는 공직(이조전랑)에서 좌천되자 스승과 조정에 반기를 들게 되었다고 하는데

          단순히 그 내용이 사실일까?(작품 P 81)

의문 2. 정여립의 모반 계획을 완성하기 전에 왜 학식과 덕망이 출중했었을 당시의 권력자들은

          사전에 그런 가식을 사전에 알아차리지 못하였던 것일까?

          * 이 의문점은 오늘날도 문제이기도 하다.

의문 3. 정여립이 모반을 획책하며 조직했다던 '대동계'의 진정한 실체가 무엇이며 진정 모반을

          위한 결사대였을까?

의문 4. 본 사건이 왜 선조 실록에는 없다가 서인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진 선조수정실록에는

          기록되어 있는 것일까?

등 같은 수준 낮은 의문이지만 나는 작품을 읽는 내내 이 의문점으로 인해 마음 고생을 심하게

하였음을 고백한다.

 

선조는 재위 41년의 태반을 당쟁과 미증유의 전란에 시달린 시기를 지나왔다.

임진왜란 발발 3년 전 발생해, 1천 여 명의 선비의 목숨을 앗아간 기축옥사의 단초가 된

정여립 사건비밀 장계로부터 시작되는데,

선조 22(1589) 만만치 않은 관직을 역임하다 전주로 낙향한 정여립이 왕이 되기 위해 일을 

꾸미고 있다는 장계를 받게 되는데, 이를 보고 받은 선조는 금부도사를 파견해 주도자인 

정여립과 그 일당을 잡아오도록 명하지만 그들은 자결해 버리고 그 시신만 확보하는데 그치고

세부 사항을 파악하지 못하게 되자 이를 철저히 규명한다는 미명아래 동인의 영수인 영의정

정언신에게 책임을 맡기지만 증거라고는 급보외에는 없기에 조사가 답보에 빠지자 정언신을

대신해 재야에 있던 서인의 핵심정철을 우의정에 임명하며 조사를 맡기자 비로소 반역이

기정 사실로 전환되며 기축옥사는 완성된다.

 

참고로 동인의 영수 정언신은 조선 역사에 드물게 전략과 군사에 뛰어난 인물로 인재를 알아

보는 안목이 뛰어났다고 한다.

예로서 이순신 장군을 등용하고 기회를 주었으며 장군이 수형당할 위기에 처했을 때 적극

변호하여 백의종군으로 감형될 수 있게 하였으며 임진왜란 당시의 김시민 장군, 이억기 장군을

위시한 많은 인재를 발굴했다고 한다.

 

작품을 접하면서 내가 위에서 제시한 의구심 못지 않게 상당히 나를 힘들게 했었던 부분은

정여립에 대한 인물평이 상당히 상반되는 내용과 주장으로 구성되어 있어 해당 인물의 정확한

실체를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정여립이 누구에게 학문을 배웠는지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하며 기축옥사 당시

집중적으로 피해를 입은 최부의 제자들이 상당수였던 것으로 보아 최부의 후학이며 서경덕의

문인인 이중호(이발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한다고 하는 점이다.

 

정여립이 조정에 나가게 된 배경을 다루는 부분을 살펴보면,


선조가 영중추부사 노수신에게 우수인재(선비)를 추천하라는 명을 내려 김우옹, 이발, 백유양,

정여립(추천 되었던 해당 인물들은 추후 기축옥사 당시 전부 큰 피해를 입게 됨)을 추천하였다는

것으로 보아 그냥 과거에 급제해 두각을 나타내거나, 어느 명망 있는 가문의 후손이라는 잇점을

안고 기득권층에 발을 담근 것이 아닌 학식과 덕망이 어느 정도 겸비된 인물이었을 것으로

추측되며 한 때 선조를 가르친 적이 있는 한윤명역시 정여립을 당대에 가장 빼어난 유학자라

일컬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출발이 다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굳이 들라고 한다면

당초 정려립은 전주 출신으로 당시 호남 출신들이 대부분 동인이었음에도 서인인 이이의

문하에 들어가 나는 서인 당을 찾아온 것이 아니고 이이 선생님을 찾아온 것이라 일갈하며

이이 밑에서 활동하며 이이의 추천으로 여러 중요 보직에 보임되었다고 하는데,

당시 사회 분위기와 권력자들의 행태를 보았을 때 그런 기개를 높이 살만은 하다고 여겨지나

그런 기개 뒤에 숨겨진 어떤 야욕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서인들이 주도된 선조수정실록을 보면 그를 아주 다른 부정적인 인물로 평가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내용은 이이 선생이 죽은 후 정여립이 서인을 버리고 동인을 선택한 이유가

서인 측에서 이조전랑으로 천거된 정여립을 이이가 한사코 막았기 때문이라고 기록하면서

이이는 겉과는 달리 속으로는 정여립의 과격성을 견제했던 듯하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 대목이 사실이라면 내가 위에서 언급한 정여립의 야욕의 그림자가 이이 밑에서 드러났다고

보여지는 대목이며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말 그대로 정여립이라는 인물의 인간성이 저급한

인물이라고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는 조정에 나간 인물의 인간성을 주변인들에게 잠시 잠깐은 속일 수 있어도

긴 시간 동안은 숨길 수 없다는 점을 놓고 보있을 때 역사서에 기록된 내용이 사실이라면

웬지 앞 뒤가 안 맞는듯한 느낌 즉, 결론을 만들어 놓고 정여립이라는 인물을 그쪽으로 몰고간

느낌이 든 인물평이라 생각되게 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작품 전반에 걸쳐 혹은 부분적으로 정여립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가 나오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갖겠지만 뜬금없이 선조수정실록등을 이야기하면서

이이의 속마음을 전하면서 정여립이라는 인물이 이런 사람이다라고 기술하는 것은 내가 쉽게

납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특히, 더욱 웃긴 이야기는 아무리 역사가 승자의 기록물이라고는 하나 전주 부윤으로 정여립을

가까이할 기회가 많았던 심의겸은 윤두수에게

정여립은 아비와 임금을 시해하는 일이라도 할 만한 위인이다

라고 언급하고 있는데 어떤 사례를 갖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에 대한 예화도 없이 일방적으로

이런 이유로 정여립이라는 인물이 저급하다는 주장에 쉽게 동의하기가 어려웠다.

또한 문신 이경중 역시

만일 그를 쓰면 반드시 조정을 어지럽히고 선비들에게 욕을 끼치게 될 것이다

라는 말로 정여립을 평하고 있는데 이 역시 특정 근거 없이 언급한 내용으로 위와 같이 나는

정여립에 대한 역사적 인물들의 인물 평가에 쉽게 동의하기가 어려웠다.

 

정여립이 그렇게 평가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아마도 선조의 눈 밖에 난 것이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을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할 것이라 생각한다.

선조가 정여립이라는 인물을 나쁜 인물로 찍자, 주변인들이 아부하느라 관련 인물의 과거

행적을 들고파서 위와 같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꾸며낸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정여립이 선조의 눈에 난 결정적인 사건은 아마도 선조 17사직을 하고 조정을 떠났던

정여립이 1년 후 복귀하며 올린 글에서

박순은 간사한 무리들의 괴수이고 이이는 나라를 그르친 소인이며 성혼은 간사한 무리들을

편들어 상소를 올려 임금을 기만했습니다...(중략)’

라고 상소를 올리자 선조는 이이가 살아 있을 때 스승으로 섬기던 정여립이 스승인 이이를

비난하자 이를 크게 못마땅하게 여기면서라고 저자는 분석하고 있는데 나 역시 야기에 동감한다.

하지만 이런 정여립에 대해 소설가 이병주 선생은 정여립이 이이를 비방하고 나선 이유를

혼자 점잖은 태도, 자신만이 천하의 도리를 알고 있는 척하는 태도,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식의

독선에 대한 혐오 때문이었고, 그 위선의 가면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싶은 충동 때문이었을 것

이라는 분석을 내놓으면서 정여립을 편들고 있지만 이런 해석은 너무도 정여립 편에 선 해석이고

변명이 아닌가 생각한다.

정여립은 이이와 성혼을 비판함으로써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고 말았던 것이다.

 

의주 목사 서익의 상소로 인해 정여립은 완전 궁지에 몰리며 기축옥사의 서막이 열리게 된다.

선조는 상소를 보니 그의 말이 허망해 헤아리기 어렵다. 내가 말하는 현인이란 이이와 성혼인데

이 사람을 공격하는 자들은 반드시 간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정여립을 궁지로 내몬다.

선조의 그런 말을 들은 정여립은 선조 아래서는 어떤 일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동인들이 집권하던 시기에 신망을 한 몸에 받았던 정여립, 그는 벼슬을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

갈 수 밖에 없었던 데는 세간의 비난도 있었지만 선조가 자신에 대해 갖고 있던 감정도 한 몫

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인측에서는 정여립을 어떻게 하든 조정에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해 주려고

노력하지만 모두 무위로 돌아간다. 특히 정여립이 기축옥사가 일어나던 선조 22황해도사

희망하지만 선조는 정여립이 오만방자한 사람이라고 하여 동인의 청을 들어주지 않았고 이 건은

훗날 황해도는 명종 때 일어난 임꺽정의 난이 일어난 곳으로 당시 세간에 떠돌던 미륵신앙과

어우러지면서 또 정여립이 조직한 대동계로 인해 서인들로부터 역모를 준비했다는 의심을 받게

되는 단초를 제공하기도 한다.

 

참고로 대동계(大同契)’에 대해 알아보면, 대동계는 본래 주나라 시대에 어질고 재능 있는

인재를 등용할 목적으로 시행되었던 향사례(鄕射禮)‘를 지역사회에 구현한 것으로

대동이란 일반적으로 대동소이‘, ’대동단결‘, ’태평성세라는 의미로 쓰였는데,

이 가운데 태평성세라는 의미의 뿌리는 예기에 처음 등장하는 이상사회로서의 대동으로

이때의 동()’은 사람들이 장막 안에 모여서 대화를 나누고 음식을 먹는다는 의미로 ()’

()’를 뜻하는 의미로 대동사회는 천하위공(天下爲公) , 천하는 가문의 사물(私物)

아니고 만민의 공물(公物)이라는 의미이다.

정여립은 대동계를 조직해 운영하며 유교의 이단자인 순자에 대해 자주 말하면서

인간의 본성은 요 임금과 순 임금 그리고 포악한 사람과 큰 도둑이 다르지 않으며 시정잡배도

배우면 우 임금이 될 수 있다고 공언하며 봉건사회의 강령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천하는 만인의

것이라는 사상을 내세우게 되면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다.

 

정여립과 관련된 숨겨진 이야기를 확인해 보면,


- ‘기축옥사의 최고 사령관이 정철이었다면, 배후에서 조정한 인물은 송익필이었다는 게

일반적인 정설이라고 본다. 기축옥사 전개 과정에서 큰 영향을 준 양천회의 상소나 정여립에

불리한 여론 역시 대부분 송익필에게서 나왔으며, 송익필은 정여립을 함정에 몰아넣을

심산으로 승려 의엄을 시켜 길삼봉과 정여립을 결부시킨 정감록의 참설을 민간에 유포했고

해서지방의 백성들을 사주해 정여립에게 동조한 것으로 알리바이를 조작했다고 한다.

 

- ‘연루자를 고발하면 표창하겠다는 명을 조선 팔도에 내리자 기축옥사는 확대되어 나갔다.

정여립과 편지를 주고받았거나 옷소매라도 스친 인연이 있었던 사람들은 결코 피해 나갈 수

없었는데 가장 우려한 쪽은 정여립이 몸을 담았던 동인이었다.

 

- 기축옥사와 관련된 인물, ‘이산해조헌과 정개청의 가문 고성 정씨와 정철의 가문 연일

정씨그리고 이발의 가문 광산 이씨사이에는 서로 결혼하지 않는 풍습이 남아 있는 이유는

바로 기축옥사와 관련된 사항이지만 작품에서는 이를 이야기해 줄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부실하여 작품에 언급된 이야기만으론 전체를 알 수 없기에 여기서 취급을 제한하였다.

 

기축옥사 당시 성혼이 올린 상소문에 이런 글이 있다.(P278)

치도는 할 말이 따로 없다. 임금이 공손하고 검소하며 선을 좋아해야 한다. 말이 마음에 거슬리

면 반드시 정도에 의거해 따져보고, 말이 마음에 들면 반드시 정도가 아닌 것에 의거해 따져

보아야 한다. 그것 뿐이다.’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의 위정자들은 해당 글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며 예전에도

이런 작품류를 읽으며 왜 선거철만 되면 우리 역사에서 모반을 꿈꾸었고, 개혁을 주도했다

실패한 인물둘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언급되고 있는지를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라는 주장한 적이

있다. 왜일까?

선거는 개혁의 단초이고 개혁을 통해 혁명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끝으로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위정자들을 보면 왜 조선시대의 식자층처럼 자신의 뜻이

관철되지 않거나 혹은 권력자의 뜻과 일치되지 않으면 언제든지 자신의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자리를 박차고 야인으로 돌아서는 의연한 자세가 없는지가 아쉬울 따름이다.

 

자신을 임명해 준 리더에 대해 원칙과 명분도 없이 무조건 쓴소리만 하는 것이 진정한 참모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리더를 보좌하는 참모가 리더와 정책적인 의견 충돌로 자신의 자리를 내

던졌다 라는 소식을 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그런 사람이 아예 없기 때문이 아닐까?

당 태종이 책사인 이사를 두고

나는 이사 때문에 몸이 말라가지만 백성들은 편안해 지고 있다

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두고두고 생각해 볼 일이다.

리더와 책사(참모) 모두가 맘 편했던 세상은 임진왜란 당시 끝없이 부하의 허물과 잘못을 감싸고

돌았던 선조원균뿐이었음을 정확히 알아야 할 것이다. 답답한 작금의 세태다.

 

작품의 에필로그를 들추다 보니 이런 내용이 나온다.

혁명이 발생하는(라스웰, P332)는 다섯 가지 조건이 있다고 한다.

첫째 지식인을 뒷받침하는 정도가 약할 때

둘째, 분배 정책에 실패했을 때

셋째, 지배 세력이 무능할 때

넷째, 지식인이 폭력을 억제할 능력을 상실했을 때

다섯, 반 지식인의 조직이 강할 때

지금의 정부와 정권은 위에서 언급되고 있는 조건 중 몇 가지가 충족되고 있는지를 처절히

스스로 돌아보기를 바란다.

 

추신) 정철, 송익필.....그들은 한 때 정권의 실세였고, 넘사벽이었던 주역이었으나 시간이 흘러

        자신들이 한 짓만큼 되돌려 받고 역사에서 아주 저급하게 퇴출되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특히, 송익필 선생의 말로는 나는 선비로소이다’(임상혁, 역사비평)라는 작품에 잘 나와 

        있으니 참조하시기..........

        하여간 세상 만사는 자신의 행한 결과가 자신에게가 아니더라도 그 결과는 후손에게라도 

        반드시 뿌린만큼 거두게 되어 있음. 후손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음. 

        자신이 하지도 않은 조상의 악행으로 인해 후손인 자신이 손해를 보니...그래도 어쩔 수 

        없음. 그러니 어느 후손의 조상이 될 수 있는 나나 이글을 읽는 사람들이나 매사에 조심에 

        조심을 거듭하며 옳지 않은 일을 하며 살면 안 될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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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 흑역사 - 인간은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한다
톰 필립스 지음, 홍한결 옮김 / 윌북 / 202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추천 권유도 8


인간은 대체적으로 두 살 반쯤 되었을 때 처음 거짓말을 한다고 한다

그러면 왜 거짓말을 할까?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처음 만난 사람과 10분 대화하는 동안 거짓말을 평균 세 번 한다고

하며, 또 다른 연구에서는 평균적으로 거짓말을 하루 한 번 이상 한다고 한다.

작품을 읽고 본질적인 질문에 자문자답을 해 보지만 철학적 깊이나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별로 해 보지 않은 나로서는 딱히 정답을 찾을 수 없었다.

작품은 인간이 거짓말을 하는 이유를 아마도 인간이라는 존재가 유한한 삶을 살면서 부지불식간

마주하게 되는 생명과 관계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되거나 개인적 욕심이 증폭되면서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인간의 뇌와 사회가 가진 여러 가지 특성 때문에 거짓말은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거짓과 유사한 범주에 속하는 기만은 자연적인

현상일 뿐 아니라, 진화 과정에서 점차 발전한 능력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어찌되었던 인간은 기나긴 역사를 통틀어 그저 세상에서 일어났던 일을 날조하는 데 만족하지

않았고, ‘세상그 자체에 대해서도 허튼 소리를 잘 지어내는 동물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작품에서 제시하는 허위 사실이 퍼져 나가고 굳어지는 이치를 크게 7가지로 보고 있는데,

  1)     노력장벽        2) 정보공백     3) 개소리 순환구조    4) 진실이라고 믿고 싶은 마음

  5)     자존심의 덫     6) 무관심       7) 상상력 부족

  *  상기 내용과 관련되는 무엇인지 궁금한 분들은 책을 구매해 보시기를

작품을 읽다 재미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미국 건국의 아버지인 벤자민 플랭클린에 대한

이야기로, 저자는 그를 84세로 세상을 뜨기 전까지 어이없고 황당한 농간을 꾸준히 저지르며

즐긴 한마디로 진짜 대단한 인물이었다는 말 밖에 안 나오는 도발꾼이었다라고 표현할 정도의

농간꾼이었다고 한다.

그의 활약상에 관한 이야기는 작품에서 직접 확인해 보시기를…..

작품에서도 심각하게 다루고 있고 요즘 우리 사회를 비롯한 전 지구적인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

가짜 뉴스커피와 신문과 함께 지난 17세기부터 기득권층의 암적 요소로 여겼다고 한다.

이유는 바로 개소리 순환구조그릇된 정보가 한번 어느 신문에 실리면 사정을 잘 아는

누군가가 신속히 반박하지 않는 한 나머지 신문에도 모두 실리는 게 보통이었기 때문에 항시

골치 아픈 것이었다고 한다.

특히, 패러디를 만들어 놓으면 진짜로 받아들이는 독자들이 아무리 소수일 망정 꼭 있었다는

점이었고, 가짜 뉴스가 문제인 진짜 이유는 사회 혼란을 초래하는 단초를 제공하는 문제를 떠나

가짜 뉴스 자체를 믿는다는 점이 아니라 진실한 진짜 뉴스도 믿지 않게 된다는 것이 더욱 큰

문제였다는 것이다.

이를 증명하는 사례는 작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가짜뉴스의 횡포를 보면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1887년 창간된 더 라이터라는 잡지의 편집장인 윌리엄 힐스라는 인간은 신문이란 매체에 대해

높이 평가하면서 신문기자는 일을 잘하려면 훌륭하게 꾸며낼 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는 점은 작금의 사회에서 기자들이 왜 기레기라 불리우는지, 언론을 믿지 못하는 사회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점에 대해서는 깊은 반성이 있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우리의 역사까지는 아니어도 최근에 벌어진 근세사만 살짝 들춰보아도 알 수 있는 거짓말에 관한

사건을 작품에서 재미난 사례로 언급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거짓말이 한 두개가 아닌 것을 우리

모두는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특히 태생적으로 바른 소리를 하면 입이 삐뚤어지는지 일상화가 되어 버린 정치인들의 거짓말,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밝혀지고 있는 여러 범인 은폐조작 및 강요사건, 치매 때문에 벌어진

사건이라고 우기는 성희롱 사건, 선거철마다 이용되어 온 간첩단 사건, 다단계의 거두 조X,

X도를 필두로 라X사건 등 서민들 피눈물 빨아먹고 나자빠진 펀드 사기사건, 자동차 사고가 난

딸을 위해 법인 명의의 명품차를 제공하였다는 어느 철면피 아버지의 횡령사건, 광우병 걸린

소고기 먹으면 앉은뱅이 된다는 어느 유명인의 이야기, 오로지 회사만을 위해 일해온 종업원들을

상대로 펼치는 기업인들의 내로남불 수준의 거짓말 등은 진실의 흑역사가 아직도 살아 숨쉬며

우리를 옹죄고 있음을 확인하는 증거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런 거짓의 흑역사를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이 그런 정보에 취약할 수 밖에 없는

개개인이 정말 똑똑해져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게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다 보니 답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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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 혼돈의 시대, 당신을 위한 정치 인문학
육덕수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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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9


서양 속담에

남의 이야기를 하려면 그 사람의 신발을 신고 1주일은 걸어 다녀보아야 한다

는 말이 있다고 한다. 아마도 당사자보다 나은 것도 없으면서, 당사자의 입장이 되어 보지 않고서 벌어지는 여러 현상을 두고 장기판 훈수 두듯 감 놔라 대추 놔라하는 여러 인간들의 허튼 

소리에 대해 경각심을 알려주기 위해 나온 말이 아닌가 생각한다.

하지만 작금 돌아가는 우리 국가 경제와 사회의 모습을 보면서 그런 '구두'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즉, 그 사람의 신발을 신어보지 않고도 뭐가 문제인지를 내 신발을 신고 있는 상태

에서도 불편함을 느끼기에 그런 이야기가 피부와 닿는 교훈처럼 느끼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촛불 정국아래서 호기롭게 시작한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투명할 것이라는 기대는 연일 계속

되는 적폐청산, 이제 웬만하면 거둘 때도 된 각종의 XX사건 진상 위원회폭등하는 서민 주택 값

꽃다운 청춘을 짓밟힌 애절한 할머니들의 성금으로 자기들의 사욕을 채운 시민단체들과 어느 

폴리페서의 일탈에 대해 눈을 감는 모습에서 대다수의 서민들은 새롭게 백마 타고 올 철인을 

기대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만들어 가고 있다

정말로 아쉬운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최근에 나온 진실의 흑역사(톰 필립스, 윌북)이라는 작품의 서문에 이런 글이 게재되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래 869일 동안 거짓이나 오해를 유발하는 주장을 10,796건 했고 

  201897일에는 고작 120분만에 거짓이나 오해를 유발하는 주장을 125건 했다

고 한다.

비록 얼마 남지 않은 정권의 시간이지만 나는 후세의 사학자들이나 정치 평론가들이 우리의 

지도자를 그런 시각으로 평가하지 않기를 정말 기원해 본다.

작품이 이야기하고 있는 4개의 큰 줄기가 있다.

그 언급된 줄기는 비록 코로나라는 이상한 놈의 뒤에 숨어 있지만 정치를 조금 알고현실 경제

에서 고통받고 있으며, 주객이 전도되어 벌어지고 있는 이상한 사건들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

이라면 누구라도 쉽게 예측할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하는데,

훗날 지금의 정치, 경제, 사회를 아우르며 평가할 사람들이 이 작품에서 언급하고 있는 모든 

내용과 분석을 

‘3류 정치 평론가에 의해 분석된 치졸한 편협주의로 똘똘 뭉쳐진 저급한 넋두리

였다는 평가가 나오게 될 지

청나라의 침공으로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남한산성에서 인조대왕에게 피를 토하며 구국의 길을 

 외치던 최명길 선생의 부활

을 상징하는 내용과 버금가는 내용이었다고 평가할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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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발의 고독 - 시간과 자연을 걷는 일에 대하여
토르비에른 에켈룬 지음, 김병순 옮김 / 싱긋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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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3


작품을 읽으며 들었던 느낌과 생각은

'내가 작품과 같이 자연이 어우러진 길을 오롯이 혼자 걸었었던 적이 있었을까?'

였다. 모르긴 몰라도 대다수 대도시에서 성장기를 보낸 도시인들에게는 작품에서 언급되고 있는

내용이 꿈만 같은 이야기로 들릴 것이다.

한마디로 너무도 부러운 내용으로 가득한 작품이었다

한국의 성인 남자라면 아마도 나이가 들어 자신의 건강을 챙기기 위해 걷는 수단으로 걷기운동에 몰입하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거의 군대에서 경험한 천리행군, 100킬로 행군을 통해 걷기를 

혹독히 체험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제 우리나라도 곳곳에 도보 여행자들을 위한 순례길이 많이 생겨나 좋다고는 하나 작품과

같이 자연을 만끽할 수 있고 그 자연 속에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하는 그런 장소 개발이

아직은 부족한 게 현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너무도 부러운 작품이었다.

어찌되었던 작품은 단순한 과 관련된 이야기로 마무리를 짓고 있지 않고 을 매개로

어린 시절의 추억과 가족 이야기 그리고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점은 우리 모두 잊고 

살아왔던 것을 상기시켜 주는 작품이면서 내면적 성찰을 촉발시키는 작품이었다.

작품을 통해 나를, 내가 살아온 길을, 앞으로 내가 살아가야 할 길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

나만의 문구들을 정리해 보면

 1) 길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지만 동시에 과거의 우리 자신에게 되돌아가게 하기도 한다.

 2) 내가 어렸을 때, 길은 내 삶의 전반을 일관되게 흐르는 하나의 공통된 매락이었다.

    걷기는 존재의 자연스러운 부분이었다. 걷지 않고는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길은 모든 곳에 있었다

 3) 개울은 힘들이지 않고 지형을 헤치며 나아간다 그리고 똑바로 일직선을 그리며 흐르지

    않는다. 또한 가장 짧은 거리나 빠른 길을 골라 가지도 않는다

 4) 모든 문제의 핵심은 결국 선택이다. 스스로에게 충실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5) 길을 잃는다는 것은 현재 온전히 살아 있다는 것이다

 6) 걷는 것은 인간에 필요한 삶의 일부다

 7) 셰익스피어의 유명한 말 세상은 온통 무대다라는 말은 배역보다는 우리가 그 배역을

    연기하는 장소를 더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8) 천천히 걷는 것은 일종의 절제된 기술이다.

 9) 길은 자유와 모험의 상징이다.

10) 우리는 길을 어딘가로, 미래를 향해, 우리 앞에 놓인 무언가를 향해 가는 경로로 생각한다

     그러나 길은 뒤쪽, 우리가 그동안 지나온 시간과 장소를 가리키기도 한다.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는 문구들이라 생각하며 나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된 독서의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큰 교훈을 던져주는 문제적 작품은 아니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었다.

작품은 저자가 뇌전증이라는 건강상의 문제로부터 시작된 걷기 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나 역시 나이가 나이인지라 1년 전부터 외국 생활의 무료함을 달래면서 스스로의

건강을 챙기기 위해 헬스클럽도 다니며 뛰기도 하고 근력운동에도 매진하였지만 최종적으로는

걷기 운동을 선택하고 그 운동에 몰입하고 있다.

 

타지에서 단순히 체력 증진을 위해 선택한 운동은 내가 평소에 즐겨하는 뛰기 운동이었는데

오로지 무작정 뛰는 유산소 운동만이 진정한 운동이라 생각했는데,

우연히 새벽에 마주한 현지인들의 걷기 운동의 모습을 보면서 저게 운동이 될까?’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1년 여의 시간을 그들을 따라 걷다 보니 걷기의 매력이 한 두 가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인터넷을 통해 걷기 운동의 효과를 확인하고는 그 매력에 흠뻑도취 되어 걷기 

운동의 매력에 빠져 있는 상태다.

내가 경험해 본 바로는 새벽 걷기 운동의 잇점이 하루의 시작을 차분히 생각하며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작품에서도 언급되고 있지만 뛸 때 자신의 몸에 집중하지만 걷기 운동은 뛸 때는 몰랐던 더

정확히 말하면 그동안 간과했던 자신을 돌아보는 개인적 성찰의 시간을 더 맣이 확보할 수

있다는 잇점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 걸으면서 찬찬히 어제의 일을 반성하고 되짚어 보면서 오늘 해야 할 일 중에서 어제와 같은 

실수 내지는 부족한 부분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를 깊이 있게 성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나 스스로도 상당히 놀라며 만족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이제 나이도 어느 정도 된만큼 주변인들에게 걷기 운동의 효과를 널리 전하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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