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순종 - 로마서 김양재 목사의 큐티노트 로마서 2
김양재 지음 / 두란노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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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추천 권유도 5

 

작품을 읽고 내용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면 이전에 읽은 절대 복음에서 소개한 글로 대신

하고자 한다.

 

- 인생이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최종적인 기준은 구원이다.

- 이삭은 기쁨이라는 뜻이다.

-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이고 멸망과 사망은 인간의 책임이다.

- 바울의 원함과 구함은 언제나 구원이었다.

- 거짓된 열심은 의지를 우선으로 하고 마음과 지성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또한 거짓된 열심은

  언제나 행하는 것에만 관심을 둔다. 또한 자신을 검증하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 어느 한 가지에만 치우치는 것이 이단의 특징이다. 치우쳐서 추구하는 한 가지맹목적인

  열심이다.                            

-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가 바로 참된 열심이다. 내가 하려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는 기도와 전도와 구제가 참된 열심이다.

- 누구든지는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습니다. 내 죄를 아는 것이 바른 지식임.

- 완악은 굳은 살이 박여서 딱딱하고 둔해진 상태를 말한다.

- 지금 현재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내가 십자가를 짐으로 다른 사람을 살리는 하나님의

  직분이다.

-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모든 죄와 아픔으로부터 구원받는 것이며 무슨 일을 하든 누구를 만나든

  구원의 관점으로 보는 것이 하나님의 비밀을 나는 사람이다.

- 불순종하는 누군가 때문에 내가 긍휼을 입고 순종하게 되는 것, 이것이 구원의 신비다.

-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기까지 순종의 모습을 보이라. 내 판단을 버리고 하나님의 지혜에 의지할

  때 하나님은 반드시 회복할 길을 열어주신다.

-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옳으심을 인정하고, 십자가를 길로 놓는 사람이 주의 모사이다.

-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의롭다 함을 받은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성전이다.

- 말씀으로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는

  방법이다.

- 과거의 영광에 연연하지 말고 지금의 나를 인정해야 한다. 힘들어도 자신이 처한 상황과

  스스로에 대해서 냉정하게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 자신을 인정하지 않고 드리는 기도와 간구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신다.

- 가르치는 일은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삶의 본을 보이며 도전을 주는 것이다.

- 소망과 환난 그리고 기도는 성도의 필수과목이다.

- 주님은 상상할 수 없는 사랑과 친절로 악과 원수를 갚으라고 하신다.

-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행함이다.

- 통치자는 사단의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

- 참된 권위는 희생과 섬김을 통해서만 배출되는 것이다.

- 무엇을 판단하고 비판하는 이유는 첫째는 인내심이 부족하고, 둘째는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

- 누군가를 판단하기 전에 잘못한 일은 동기를 보고, 잘한 일에는 결과를 보고 칭찬하면 된다.

- 믿음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비판보다 중요한 건 하나님의 마음을 품는 것이다.

- 열받지 않고 자녀와 싸우는 법

   1) 먼저 판단하지 마라 아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을 지켜본다

   2) 미리 비판하지 마라 자녀의 의견을 충분히 들은 뒤 말한다

   3) 먼저 열받지 마라 부모가 감정적이면 아이도 감정적이 된다

   4) 미리 준비하지 마라 그냥 놓아두고 아이가 멋지게 문제를 풀 기회를 준다

   5) 먼저 물어보지 마라 아이가 이야기할 때까지 기다려 준다

   6) 미리 걱정하지 마라 부모가 믿어 줄 때 아이는 책임을 다한다

   7) 먼저 단정짓지 마라 언쟁만 생긴다

  아이가 성장했다는 것을 외면하지 마라. 자녀는 독립적 인격체이다.

- 하나님은 율법이 아닌 믿음으로 우리를 판단하신다.

  믿음으로 하는 것은 모든 것이 옳은 것이다.

- 내가 진실하게 반응하면 그 사람이 자신의 존재감을 확신하고 긍정적인 힘을 얻는다

- 인내는 지친 당나귀와 같아서 질질 끌고 터벅거리면서도 가기는 간다.

  그래서 끝이 있다.(셰익스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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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복음 - 로마서 김양재 목사의 큐티노트 로마서 1
김양재 지음 / 두란노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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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추천 권유도 5

 

지난 2012년 저자의 복 있는 사람’(두란노 출판사)이라는 작품을 읽고 아래와 같이 기록한

사실이 있다.

 

기독교 서적을 읽다 보면 불신자들을 주님 곁으로 인도하기 위한 말씀을 전해주는 데 몇 가지

유형이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하나님을 믿지 않거나, 순종하지 않는 자는 그리 평탄한 삶을

살지 못할 것이라는 거의 협박 수준의 말씀을 강조하는 내용이 있는 반면,

과거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모르나 지금부터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실천하면 복된 영생을

얻을 것이리라는 충고를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라 할지라도 전자의 경우와도 같은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는 비 신자들

에게 자칫 위화감 내지는 공포감을 조성해 오히려 하나님을 멀리하게 할 수 있는 요소가 있어

나는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

반면에 후자의 경우는 말씀을 전하는 과정에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들이 한 번쯤 경험했을 '고난'

혹은 '역경'이라는 단어를 화두로 던져서 '원죄' 속에 몸부림치고 있는 인간들이어서 회개하고

주님의 품 안으로 빨리 들어오기를 간곡히 권유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나뿐만이 아니라 웬만한

교인이라면 선호하는 전도 방식으로 아주 거부감 없이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권유의 말씀이 아닌가 생각한다.”

 

본 작품을 읽으면 저자의 이야기 패턴은 거의 비슷하다.

다시 이야기해 저자의 관점 내지는 주장하시는 내용은 거의 내가 위에서 언급한 사항 중 전자에

가깝다. 기독교 신자인 내가 읽어도 거북하고 신경에 거슬리는데 비신자 혹은 가뜩이나 기독교를

개독교라고 부르는 세태를 반추해 봐도 그리 환영할 만한 전도의 방식 혹은 아름다운 사례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 데 나만의 생각이기를 바랄 뿐이다.

좀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비신자들과 육욕에 찌든 남자들 저자의 관점 을 바라보고 인도

했으면 한다.

특히 짧게 끝난 저자의 결혼 생활이 어떠했는지는 작품을 통해 잘 알고 있기는 하나 비신자들

특히 남성들을 거의 동물 수준으로 표현하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솔직히 짜증에 짜증이 더

뿐이다.

앞으로 이미 구매한 본 작품인 절대 순종을 포함해 그 어떤 작품이라도 이 분 작품은 읽지

않기로 굳게 마음 먹었다. 나도 남자이기 때문이다.

종교인의 관점에서 작품을 읽고 느끼고 나를 더욱 생각하게 한 문구만 정리해 보았다.

      

- ‘바울이라는 이름은 헬라어 파울로스(paulos, 작은자)에서 온 말로, 어원인 paulos어근인

  파우어에는 포기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하나님을 만나기 전 바울의 이름은 사울이었다.

  ’사울의 뜻은 희망으로 하나님께 구한다라는 뜻이 있다.

  바울이 자기 자신을 자랑하는 첫째 근거는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것이다.

- ‘사도아포리톨로스라고 하는데, 부름심을 받은 자, 보냄 받은 자를 의미한다.

- ‘유앙겔리온(기쁜 소식)이 복음의 어원이다.

- 올바른 가치관이 갖춰져 있지 않으면 아무리 성공을 해도 자기 상처로 다른 사람을 상처 주게

  되어 있다.

- 피할 수 없는 인생의 고통이 축복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 죄를 알아야 한다. 내 죄를 깨닫고

  나면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때문에 무엇을 하든 영혼 구원이 목적이 된다.

- 내 삶에 불확실하고 혼란스럽던 것들이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확실해지는 게 복음이다.

- 하나님이 나에게 힘든 것을 요구하시는 것은 나를 통해 이루실 역사가 크기 때문이다.

- 밉지만 기도하다 보면 하나님이 나의 상한 마음을 바뀌 주신다.

  미운 너보다 너를 미워하는 나의 죄를 회개하게 하신다.

- 남을 위해 드리는 기도가 곧 자신이 복을 받는 비결이다.

- 복음의 능력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죄 사함의 능력이다.

- 복음은 전적으로 하나님 쪽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고 방법이다.

- 하나님은 의롭고 옳으시기 때문에, 이 세상의 어떤 세력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하나님이 택하신

  나를 지키신다.

- 사람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이 만드신 공백이 있다. 이것은 어떤 피조물로도 채워질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에 의해 채워질 수 있다.(파스칼)

- ’가득한죄를 짓느라고 하나님께 드려야 할 마음을 온통 빼앗기는 것이 상실이고, 실성이다.

  ’불의는 하나님은 틀렸고 내가 옳다고 하는 것이며, ’추악은 다른 사람을 해롭게 하는 것이고,

  ’탐욕은 필요 이상의 욕망이며 악의는 악한 마음이다. 사기는 하나님 없는 지혜로 간교

  하다는 뜻이다.

- 진노의 사건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말씀을 통해 내 죄를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간섭이 최고의 축복이다.

- 십자가는 예수님의 죽음 자체가 아니라, 그 죽음을 통해 담당하신 우리의 죄가 얼마나 참혹한지

  를 보여주는 것이다.

-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판단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이다.

- 누군가의 잘못을 지적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먼저 그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 그럴 때 죄를

  분별하는 지혜가 생긴다.

- 역할에 의한 책임은 상대적이고, 지위로 인한 특권은 절대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죄인인

  인간의 특징이다.

- 가정과 직장과 교회와 모든 사회의 관계 속에서 만족이 없는 이유는 우리가 역할과 지위를

  혼동하기 때문이다.

- 신앙의 기준은 열심히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기 죄를 보는가 못 보는 가에 달렸다.

- 악의 본질은 자신의 죄와 불완전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 신자가 불신자와 다른 점은 고난의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메시지를 듣는 것이다.

- 이웃은 정죄와 비난의 대상이 아니고 자기를 조라고 하나님이 주신 거울이다.

- 오직 소망이 있는 사람은 자기가 죄인인 것을 아는 사람이다.

- 죄 문제가 심각한 것은 인간이 근본적으로 남의 죄만 보고 내 죄는 못보기 때문이다.

- 하나님은 결코 우리의 욕망을 이루어 주시는 분은 아닙니다. 그러나 약속하신 것은 말씀하신

  대로 꼭 이루시는 분입니다.

- 믿는 자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화평을 누리는 특권입니다. 화평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화평은 이루는 것이 아닌 누리는 것이다.

- 환난과 인내와 연단을 이루어 갈 일이 우리의 삶에 쉬지 않고 찾아올 것이다.

  그때마다 자신을 바라보면 절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쉬지 않고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면 결론은 순종과 충성입니다.

- 죄는 교만의 형상으로 나타나고 가면을 쓰게 하고, 상황을 직시하지 못하게 합니다.

  자기 자신도 모르게 죄를 것이다. 매사에 최선을 다했다며 스스로를 의롭다고 하는 사람일수록

  죄를 깨닫기가 어렵다.

-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사신 것은 내가 더 이상 나를 위해 살지 않고 주님을 위해

  살게 하시려는 뜻이다.

- 육신은 죄의 도구이고, 죄는 율법을 통해 드러나며 그 결과는 죽음이다.

- 선함에서 선함을 이끌어 내려 하지 말고 악한 것,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환경을 통해 하나님께

  로 돌아오는 선함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 선악과의 용도는 그것을 볼 때마다 하나님의 명령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 ’탄식을 원어로 보면 해산의 고통이다. 피조물과 인간과 하나님의 탄식을 들으며 그것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우리 인생의 숙제이다.

- 미국인들이 쓰는 험한 용어 중 갓 뎀(God damn)’이라는 용어가 있는데 이는 성령이 너를

  떠난다라는 뜻이다.

- ‘환난을 원어로 보면 트리볼룸이라고 하는 데 이는 로마 시대에 쓰던 타작기를 뚯하는

  단어이다. 우리말로 하면 도리깨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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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이긴다 - 천국과 지옥, 그리고 사랑이 이기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인 복음에 관하여
마크 갤리 지음, 김명희 옮김 / 포이에마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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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5

 

작품은 사랑이 이긴다(랍벨, 포에이마)’라는 작품에서 언급된 내용에 대한 저자의 종교적 반론

내지는 자기만의 관점으로 해석한 의견을 다룬 기독교 신앙에 대한 일종의 해설서 혹은 한

개인의 주장론쯤으로 여겨도 무방할 것 같다고 본다.

, ‘사랑이 이긴다보다 하나님이 이긴다는 화두를 놓고 치열한 반박과 성경적 지식의 토대

위에서 형성된 저자의 자기 주장을 전개하고 있는데, 이런 신앙서를 놓고 비평을 한다는 것은

자칫 새로운 논쟁을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어 저자가 각 소주제별로 주장하고 있는 내용을 정리

하는 것으로 독후감을 대신하고자 한다.

   

 

[도입부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내용들]

- 네가 누구이기에 무지하고 헛된 말로 내 지혜를 의심하느냐?

  이제 허리를 동이고 대장부답게 일어서서, 묻는 말에 대답해보아라.(38: 2~3)(P 10)

- 지옥은 끔찍하지만 악은 아니다. 지옥은 악이 처벌을 받는 곳이다.(P 11)

- 하나님에게는 하나님의 방식이 있다. 우리의 임무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호의적으로 보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정확하게 보도록 돕는 것이다.(P 14)

- 사랑과 정의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이 둘은 함께 가는 것이다.(P 14)

- 하나님은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간격을 메우실 수 있고 또 메우실 것이다. 우리의 교리

  수정주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를 통해서.(P 14)

  

[정말 중요한 질문]

- 악하고 음란한 세대는 표징을 구한다.(16:4) 그것은 하나님을 법정에 세우는 것이다.

- 우리는 질문을 하려 할 때 회개와 겸손에 기초한 기도로 시작해야 한다.

  믿음 없는 나를 도와주십시오처럼(P 33)

- 우리가 얻지 못하는 것은 구하지 않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것은 자기가 쾌락을

  누리는 데에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질문을 하기 전에바른 마음으로 질문

  하는 법을 배울 수 있도록 도움과 자비를 구하는 기도를 드리는 것이 현명하다.(P 34)

- 비록 더디더라도 그때를 기다려라. 반드시 오고야 만다. 늦어지지 않을 것이다.(2:2~3)

-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그분의 자비로움이나 정의를 의심하는 질문들을 받으실 때 거의 대답

  하지 않으려 하신다.(P 42)

- 십자가에서 진정한 인간으로 우리를 대표하신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그 모든 질문을

  하신. 그리고 하나님의 대답은? 침묵이다.(P 43)

- 하나님의 선하심과 정의로우심을 신뢰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시는 그 순간, 진정한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다른 질문으로 그 질문에 대답하셨다.

  너는 너를 위해 죽을 그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랑하느냐?”(P 43)

  

 

[이 하나님은 누구신가?]

- 우리는 종종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혹은 예수님을 편안한 마음으로 거부하기 위해 그저

  예수님을 이용한다.(P 47)

- 진리가 무엇인가? 진리는, 그토록 죄를 경멸하셔서 그 죄의 악함 때문에 그것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이다. 진리는 모든 사람에게 죄 사함을 베푸시는 하나님이다.

  진리는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자신의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이다.(P 49)

- 예수님을 보내셔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게 하심으로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문제를

  해결하셨다. 그 결과로 인해 주어진 좋은 소식은, 우리가 사함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것이 복음이다.(P 52)

-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안과 기쁨과 사랑을 영원토록 경험할 수 있게 해 주셨다.(P 54)

- 기독교 신앙을 하나님이 우리 삶을 변화시키는 것, 혹은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세상을 변화

  시키는 것으로 생각한다.(P 57)

- 하나님의 사랑에 참여하는 것이란 삼위일체의 삶 자체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P 63)

- 우리는 죄로 인해 하나님에게서 멀어졌고, 우리의 허물로 인해 하나님에게 죽은 자여서 더 이상

  하나님과의 사귐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죄를 사하시고 우리와 화해하시기 위해,

  그럼으로써 우리가 그분과 하나가 되어 영원토록 교제를 누리도록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오셨다.(P 67)

- 사랑하는 하나님을 보기 시작할 때 비로소 창조주이자 주님이신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다.

(P 69)

[다시 하나가 되어]

- 하나님과 인간의 분리는 에덴동산에서 인류가 하나님의 은혜롭고 생명을 주는 명령을 거부

  함으로써 시작되었다.(P 81)

- 불의를 벌하는 용서가 필요하고, 용서하는 정의가 필요하다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우리를

  원래의 마음으로 회복시키는 길이며, 우리를 서로와 화복시키는 길이다.(P 82)

- 우주 전역에서 하나님과 사람이, 사람과 사람이 하나가 되었다. 이것이 속죄다.(P 83)

- 예수님은 우리가 그분 안에서 살도록 하기 위해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P 85)

- 속죄에 대한 초점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 하나님 안에 거하는 삶이다.(P 96)

- 속죄는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는 것을 훨씬 넘어서는 개념이다.(P 93)

- 구원은 단지 개인의 죄 사함에 대한 것일 뿐 아니라 악의 권세를 물리치신 그리스도의 승리에

  대한 것이다.(P 94)

- 십자가는 죽음과 부활에 대한 보편적인 상징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개별적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인간의 죄에 대한 심판이다. 또한 우리 중 누구도 받을 자격이 없는 이에게 베푸신 은혜의

  행위이다.(P100)

  

 

[믿음의 경이로움]

-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간섭으로만 믿음에 이르게 된다.(P113)

-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되게 하심으로써 우리에게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을 보이신다.

  (P119)

- 복음은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사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이다.(P122)

- 복음은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사 우리가 그분을 믿도록 이끌어주신다(P122)

- 성경에 따르면 믿음이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그리스도를 필사적으로 붙잡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알리지 않으셨다면 우리에게는 그분을 붙잡는 자유조차 없었을 것이다.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선물이다.(P127)

- 우리가 할 일은(P129)

   1) 믿어야 할 것을 믿는 것

   2) 사람들에게 알리라는 그분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

   3) 복음을 말할 때 성령이 마음과 생각을 열어주시도록 기도하는 것

   4) 그분이 뜻을 이루실라 신뢰하는 것

- 자유란 계시된 바를 받아들이고 신뢰하는 순종으로 살아가는 것(P130)

  

  

[천국에서 중요한 것]

-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는 천국에 합당한 자로 준비된다. 이는 우리가

  행하거나 성취한 무엇이 아니라 믿음으로 참여하는 것이다.(P140)

- 성령의 은혜로 죽음과 부활을 통해 그 처소를 예비하시는 분은 예수님이다.(P140)

- 복음의 핵심에는 믿음을 통해 얻는 은혜가 있다. 이 믿음에서 순종이 나온다.(P141)

- 예수는 현재의 영원하고, 강렬하고, 실제적인 기쁨과 평화와 사랑의 경험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 천국이라는 표현을 쓰셨다. 예수께 천국은 단순히 언젠가는이 아니었다.

  그것은 현재의 실재였다.(P149)

- 예수님에게 천국은, 자신이 아버지와 인격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맺은 것처럼 우리가 그분과

  인격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이다. 천국은 예수님과 함께하고 아버지와 함께하는 우리

  존재의 실재에 대한 것이다.(P150)

- 시편 기자는 사랑이란, 인격적이고 친밀한 것, 영혼이 갈망하고 몸이 애타게 그리워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P152)

  

 

[지옥과 심판]

- 많은 사람들이 구약은 심판을 증거하고 신약은 은혜를 증거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좁은 의미에서는 맞지만 사실 신약은 구약의 시판 개념을 강화한 것이다.(P161)

- 하나님이 지옥에 대해 계시해주신 바에 충실하고자 한다면, 하나님의 계시, 곧 성경을 통해

  전해주신 진리들을 굳게 붙드는 것이 지혜로울 것이다.9P163)

- 지옥과 최후의 심판이라는 문제에 대해 예수님은 공정하고 선한 분 이상이시라고, 완벽하게

  정의롭고 사랑 많으신 분이라고 우리는 올바르게 생각할 수 있다.

  우리는 확신을 가지고 질문들과 염려들을 그분께 맡겨놓을수 있다.(P165)

- 우리의 선택으로 야기된 고통은 우리에게 지옥을 만들어냈다.(P169)

- 많은 악한 사람들이 다른 이들에게 지옥을 만들어주면서도 이생에서 그 결과를 겪지 않는다.

  하나님이 정의로우시므로 그러한 행동에는 반드시 결과가 따를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를

  반드시 미래의 심판 때가 되어서야 겪는 것은 아니다.(P171)

-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주시는데 우리가 원하는 것이 지옥이라면 그것도 주신다.

  우리에게는 그러한 자유, 그러한 선택의 자유가 있다.(P176)

- 성경에서는 단지 사랑만 이기는 것이 아니라 정의 역시 이긴다.

  따라서 하나님이 이기신다고 말하는 것이 실제도 더 낫다.(P180)

 

[나쁜 소식 : 보편 구원론]

- ‘보편구원론이란 결국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가르침이다.(P185)

  이 이론은 극소수의 그리스도인들만이 견지했을 뿐 교회가 줄곧 거부한 입장이다(P194)

-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얻고 진리를 알게 되기를 원하신다.(P187)

- 자유란 여러 대안들 중에서 선택하는 능력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그분이 부르신 삶을

  사는 기적적인 능력이다.(P211) 

 

[인격적인 하나님의 승리]

- 예수님은 단지 의로운 예언자가 아니라 바로 메시아시다.(P215)

- 하나님에 대한 더 깊은 지식으로 이끄실 분은 우리 중 누구도 아닌 성령이시다.(P215)

- 복음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과의 영원한 사귐으로 시작하여, 하나님과 사람의 영원한

  사귐으로 끝난다.(P220)

- 성령의 사역 없이는,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과 그분의 우리를 믿음으로 반응하도록 초청하신

  일을 알 수조차 없다.(P228)

- 하나님과 나를 화해시키는 것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며, 나와 하나님을 화해시키는 것은

  성령이 주신 믿음이다.(P229)

- 복음은 우리 자신을, 우리의 의심을, 우리의 죄를, 우리의 선택을 바라보지 말라고 한다.

  복음은 그리스도를 바라보라고 말한다.(P230)

- 성경은 우리가 알게 된 복음을 믿고 나누라고 말할 뿐이다. 그 복음은 우리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오셔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

  나셨으며, 자신과 화해하도록 우리를 부르신다는 것이다.(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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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이긴다 - 천국과 지옥, 그리고 지금까지 살았던 모든 인간의 운명에 관하여
랍 벨 지음, 양혜원 옮김 / 포이에마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추천 권유도 10

 

내가 존경하는 분 중에서 종교 이론이 강한 분이 계시다면 본 제목과도 같은 질문을 던지고

싶었던 내용이었고 작품을 통해 깨달음을 확인한 그런 시간이었다

(그렇다고 '목사님'이나 '전도사님'을 붙잡고 물을 수도 없었다. 본 작품을 읽어 보시면 아시겠지

 만 초심자들도 약간의 고뇌만 한다면 쉽게 이해할만한 그런 내용이었지만 이런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있는 성질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겉모습만 자칭 기독교 신자인 나와는 달리 나의 와이프는 뼛속까지 착실한 크리스찬이다.

그래서 나는 아래와 같은 질문을 미안하게도 수시로 아내에게 던져서 괴롭혔다.

나의 질문은 이렇다.

1. 태어나자마자 죽거나, 깊은 산골에서 살다 주님이나 예수님을 알지도 못하고 죽어간 사람은

   천국에 갈 수 있을까?

2, 모두를 사랑하신다는 예수님은 정말 인간을 사랑하신다면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무조건

   유황불과 지옥불로 벌을 주실까?

3. 주의 종들의 설교를 들어 보면 대체적으로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천국에 가는 준비만

   하는 사람들 같다. 그럴러면 주님께서는 왜 이 땅에 우리 인간을 태어나게 하셨는가 바로

   천국이나 지옥으로 보내시지?

4. 다 사랑한다고 하시면서 이 땅에 정말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왜 구원하지 않으시고 착한사람을

  등치는 사기꾼들을 왜 활개치고 돌아다니게 세상을 만드셨나?

등 이었다.

이 질문을 놓고 마누라와 싸우다가는 화해하고 또 싸우기를 수 없이 했었다.

하지만 마음 한 켠에는 항상 그 답을 스스로 찾고자 노력했었다.

어느 날 우연히 마주한 본 작품이 그런 답을 줄 수 있는 것 같아 접하게 되었다.

작품은 나의 질문에 대한 답을 주는 대신 답을 내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질문을 던져 주고

있었는데, 나와 같은 덜 열렬한 신자뿐만이 아니라 비신자들도 가질 수 있는 기독교와 주님에

대한 의문들이기에 나는 가슴으로 읽으려 노력했다.

과거 한 때 우리 사회에서 한 편의 CF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CF 내용은 산골 소녀 영자네 집에 모회사 이동통신이 설치된다는 이야기였는데 그 CF

소녀는 일약 대 스타가 되었고 아마도 얼마간의 출연료도 받았던 모양인데, 이를 노린 불한당

같은 놈들이 출연료를 강탈하기 위해 소녀의 집에 들어갔다 소녀의 아버지를 살해했으며 그

소녀는 충격으로 스님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산골에 살면서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살다 돌아가신

그 아버지와 영자라는 소녀가 죽게 된다면 '천국에 갈 수 있을까? 없을까?'

나와 토론을 벌이던 와이프의 결론은 '갈 수 없다'였고, 나는 '간다고 보장은 못 하지만 만약에

못 간다면 소녀와 소녀의 아버지는 너무 억울하다'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라면 어떻게 생각할까?

작품도 이런 내용을 화두를 던지고 있다.

어느 소녀가 자동차 사고로 15세에 죽었는데, 그 소녀가 12살 이전에 죽으면 하나님이 거두어

주시는 데 그 소녀는 12세를 넘겼으니 하나님이 거두시기가 곤란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게 맞는 소리일까 생각해 본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굳이 12세를 넘어서 살 필요가 있을까?

대충 살다 12살만 되면 죽던지 죽임을 당하는 게 맞지 않을까?

또 그 악명 높은 아우슈비추 수용소에서 히틀러의 만행으로 아무 이유 없이 독가스 실에서

죽어간 자매가 있었는데 한 소녀는 11, 언니는 15살이었는데 죽어서 보니 동생은 천국에

언니는 12살이 넘어서 천국에 들어가지 못했다면 그것이 올바른 하나님의 잣대인지를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작품은 바로 이런 점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는데 무심하게도 어떤 답도 주지 않고 있지만,

작품의 서두를 보면 작품을 추천하고 있는 여러 분들의 이야기가 어느 정도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주고 있었지 않나 생각한다.

작품의 내용과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각종 추천사들을 읽어보면

추천사 1.

저자는 인간을 협박하고 종교적 신념을 배타적으로 갖도록 만들기 위해 천국과 지옥이 동원되는

것을 거부하며, 이 세상에서 진실로 이루어져야 할 하나님 나라의 모습에 우리가 눈뜨기를

호소하고 있다. 결국 사랑만이 이 모든 절망과 패배의 시간을 영원한 감격으로 전환시킬 힘의

근본임을 강조하고 있는 작품이다

추천사 2.

그의 관심을 지옥 자체가 아니라, 지옥에 대한 집착 속에 숨은 좁은 우리. '당신들의 지옥

말함으로써 '우리들의 천국'을 확보하려는 바리새인 같은 우리의 실상이다.

 

추천사 3.

내세에서의 지옥에 대해서는 두려워 떨면서 이 땅에 존재하는 지옥의 현실에 대해서는 무감각한

그리스도인들이 적지 않다. 저자는 현세의 천국과 지옥에 대한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나도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부분은 거듭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혹은 구원받았다고 믿는

사람들 대개가 '누가 구원받지 못할까?를 즐기는 경향이 있다.

이런 저런 추천사 보다 가장 가슴에 닿은 내용은 '임어당 선생'이 말씀으로

 

"내가 가 본 교회에서는 항상 분노한 목사가 분노한 목소리로 분노한 하나님에 대해

  설교했다"

 

였다.(나도 그런 기억 밖에는 없다)

 

내가 과거 교회 그러면 생각나는 모든 내용을 두 줄로 요약하신 아주 정곡을 찌르는 임어당

선생의 말씀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하는 데, 날벼락처럼 나를

'죄인'이라 부르고 착하게 살았다고 생각하는 데, 사사건건 '지옥'에 간다고 설교를 하는 목사님이,

전도사가, 교역자들이 정말 싫었고 그런 주장을 하셨다는 주님과 예수님은 더욱 싫었다.

그렇지만 와이프를 사랑하고 교회를 다니게 되면서 그런 설교가 주는 의미를 나름대로의 연구

끝에 정확히 알고는 그리 겁먹지 않게 되었지만 아직도 뭔가 찜찜한 구석은 남아 있다.

기독교가 뭔지, 산골에 사는 영자네 가족들과 같은 사람들에게 갑자기 찾아가 그냥 그렇게 살면

지옥에 간다던가, 최후의 날에 유황불로 심판받는다고 하면 어느 누가 좋아하겠는가?

짧은 시각으로 우리 기독교를 보았을 때, 기독교에 매료되어 믿게 하기보다는 위협당하여 믿게

하려 하고 있다는 저자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감하는 바이다.

, 설교자들은 메시아의 복된 말씀 전파가 아닌 위협으로 일관하면서 그 분의 참 뜻을 입만 열면

비신자들에게 '지옥''유황불'을 들먹이며 위협 아닌 위협을 일삼으면서 다가 올 신천지를

준비하라고 강제하고 있는 게 오늘날 우리들의 기독교라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현실에 대한 무기력을 유발시키는 발언을 서슴지 않게 하고 있다.

작품도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람들을 다른 어딘가로 가게 하는 것이 예수가 하시는 일이라면, 기독교 핵심 메시지와 이생의

 관계는 고작 다음 생에 필요한 것을 손에 쥐어 주는 것 밖에는 안 된다.“

 

는 논리라고 역설하고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원하시는 최선이란 말인가?

제반 여러 이야기를 읽으면서 최종적으로 이야기하는 저자의 이런 주장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가 던지는 중요 질문에 대한 작품의 요약과 거기에 덧붙인 나의

의견을 간단하게 피력해 보면

 

 

질문 1) 인간이 저지른 일순간의 실수를 이유로 영원한 고통 속에서 수천 년의 세월을 보내게

          하는 게 진정한 우리들의 하나님이라는 말인가?

 

그것은 아닐 것이다.

성경에도 자식이 밥을 달라고 할 때 돌을 줄 부모가 없듯이 자식이 공부는 안 하고 매일 놀기만

해 얄미운데 밥 때만 되면 짜증내며 밥 달라고 보챈다고 밥 대신 흙덩이나, 돌덩이를 던져 주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육신의 부모보다 더 크나 큰 사랑을 지니신 하나님께서 유한한 삶을 살다가

잘못을 저질렀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빌미로 인간에게 영원한 벌을 주신다?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게 저자와 나의 생각이다.

그렇다고 생명을 경시여긴 흉악범이나 전쟁같은 반 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놈들까지도 동일한

잣대를 적용하실 지 여부는 좀 뒤에 이야기하고 여기서는 위에 해당하는 간단한 사항만을 놓고

이야기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사소하게 저지른 순간의 실수 - 인간의 긴 일생을 놓고

보았을 때 - 를 이유로 절대 영원한 벌을 내리지 않으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질문 2) '천국'은 진실로 있는가?

 

나는 '천국'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천국'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각박한 현세를 사는 인간들에게 최소한의 '희망'도 없다는 이야기로

밖에는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들에게 '천국'이라는 희망마저도 없다면 그 날이 그 날이고,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내일이니 '절대 꿈도 꾸지 마라 그런 나라는 없다'라는 의미라고 한다면

현세의 고난과 괴로움을 무엇으로 이겨내고 힘든 하루 하루를 무슨 낙으로 견뎌 낼 것이며 그런

고난을 무엇으로 극복할 수 있겠는가?

'천국'의 실체는 사람마다 각자 주관적으로 생각한다 해도 공통적인 것은 아마도 걱정, 근심 없는

세상, 고통과 고난 없고 항상 복과 즐거움이 넘치는 신나는 곳일 것이다

현재가 힘들고, 어려워도 보다 나은 내일, 복되고 아름다운 날을 기대하며 사는 것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마인드 아니겠는가?

, 미래란 희망의 현실적 표현이고, 천국이란 각박한 현세를 살아가는 이들의 또 다른 희망의

현실적 증표라고 생각해 볼 때 나는 반드시 '천국'은 있다고 굳게 믿는 바이다.

천국이 반드시 있다고 믿는 또 하나의 강력한 이유는,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이생의

각박한 삶을 살고 돌아온 자녀들에게 편히 쉬게 해 주실 처소를 마련해 놓고 있을 것이라는

굳은 믿음이 있기 때문이라는 점도 있다

덧붙여서 저자가 '천국'에 대한 단상을 강조한 몇 가지를 첨언해 이야기한다면,

'천국''존재 유무'를 떠나 지금 살고 있는 우리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하면서 생각의 방식에 따라 현재 살고 있는 자신의 '시간''에너지' 사용 방법도

달라질 것임을 강조하고 있는데, 예수께서도 제자들을 불러 하나님의 세상에서 하나님의 방식

으로 사는 방법을 자신을 통해 배우게 하고 있다.

, 예수께서는 우리가 창조하는 것, 베푸는 것 그리고 시간을 사용하는 방법을 세상에서

지속되도록 지금 여기서부터 연습할 것을 가르쳐 주면서 '천국'을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지금

이 세상의 고통도 동일한 방법으로 진지하게 생각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누가 '천국'에 가느냐의 문제와 관련해서 예수가 우리에게 계속해서 경고하시는 것은, 누가 가고

누가 못 가는가에 대해 경솔한 판단을 내리지 말라는 것이다. 예수는 현재의 영원하고, 강렬하고,

실제적인 기쁨과 평화와 사랑의 경험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 '천국'이라는 표현을 쓰셨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천국'은 단순히 '언젠가는' 아니었다. 그건 현제의 실재였다.

그 경계를 흐리시면서 하늘과 땅이 합해지고 미래와 현재가 합해지는 삶을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살라고 우리를 초대하셨다.

 

 

질문 3) 그렇다면 '지옥'은 정말 있는가?

 

아주 어려운 질문이라고 생각하는 데, 아주 수준 낮은 나의 주장일 것으로 비춰 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천국이 있다면 이와 반대되는 '지옥'도 반드시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대개의 인간들은 '지옥'이라는 단어로부터 받는 중압감인지는 모르겠으나 죽어서 '지옥'가는

것에 대해서 무척 신경을 쓰고 있지만 지구상의 지옥에 대해서는 그만한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게 현실이 아닌가 생각한다. (저자의 이 주장에 대해 나는 천 %, % 동감하는 바이다)

'천국'의 존재를 부각시키기 위해서는 부득이하게 그 어떤 반대 개념의 존재가 필요했을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하나님의 세상에서 하나님의 방식으로 살지 못 할 때 일어나는 거대한 사회

전반적인 붕괴와 혼란에 이르기까지, 악을 지칭할 단어가 필요하다고 보았을 것이며 그것을

지칭하는 단어로 아마도 '지옥'이라는 단어가 제법 어울린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종교가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인간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던 중세 유럽 당시에 태동된

작품, 예로서 단테의 '신곡'을 읽어 보더라도, '지옥'은 반드시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다.

이유는 그를 비롯한 여러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성을 제고시키기 위해 헛소리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 믿음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이유는 이 땅에 태어나 사람답게 살지도 못했으면서 반

인륜적 범죄로 인해 많은 사람들에게 피 눈물을 흘리게 했던 인간들에 대해 비록 모든 것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용하시는 하나님이라 할지라도 그런 인간들에 대해 일정기간 단죄를

반드시 하실 것이라는 개인적인 소신이 있기 때문이며, 그런 인간들을 벌 줄 수 있는 곳으로

'지옥' 만한 장소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예수께서는 이교도와 이방 종교인들이 하나님을 믿도록 설득하려고, '지옥'을 사용하지

않고, 이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라고 하신 소명과 정체성에서 벗어나면 어떻게 되는지

경고하기 위해 매우 종교적인 사람들에게 대해 '지옥'에 대해 말씀하셨다고 하시는 데, 그 단적인

예로 ''히브리 성경'의 경우 '지옥'이라는 단어나 그러한 개념을 묘사하는 단어가 없고, 죽음과

무덤을 일컫는 단어들이 몇 개 있을 뿐이라고 한다.

'신약성경'에서는 '지옥'이라는 단어가 12번 정도 사용되었는데, 영어로 '지옥(hell)'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는 '게헨나'로 불리는데, 이를 어원적으로 따져 보면, '''골짜기'라는 뜻이고, '헨나'

'힌놈'이라는 뜻으로

, '게헨나''라는 뜻은 힌놈의 골짜기로 예루살렘 성의 남쪽에서 서쪽에 걸쳐 있는 실제 장소로

그 당시 '쓰레기 처리장'이었다고 한다. 쓰레기 처리장이란 무엇인가?

각종 폐기물과 불필요한 물건들이 물질로서의 자신의 생을 다한 뒤 소각되고 매몰되는 현장

아닌가. 쓰레기를 소각시키듯이 악인들을 완전 폐기시킨다는 상징성으로 당시 쓰레기

처리장이었던 '게헨나'라는 단어를 차용했을 것이고, '지옥'이라는 곳도 그 '게헨나'와 별반 다를

것이 없을 것으로 여겨 '지옥''게헨나'라는 곳을 동격으로 염두에 두고 사용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참고로 '바울''사탄'의 존재는 사람을 변화시키려는 목적에서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존재였다고

하는 바, '지옥''사탄'에 대한 사용 의미를 잘 새겨 볼 필요가 있다고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다.

 

 

질문 4) 복음은 그렇게 작지 않다.

 

우리는 하나님이 해석해서 들려주시는 우리의 이야기를 믿거나 아니면 우리가 해석하는 우리의

이야기를 고수할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야기를 믿으려면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복음이 '천국에 들어가느냐 마느냐'의 문제로 축소된다면 기쁜 소식은 문지기를 지나 클럽안으로

들어가는 티켓으로 축소되는 것이다. 복음은 그렇게 작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다

지옥에 가지만 자신은 천국에 간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 그리스도인이 벌이는 잔치는 재미가

없다. 복음을 즐거운 참여가 아니라 천국 입장권으로 이해하면 폭발적이고 해방감 넘치는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

 

 

기타 주요한 문구들

- 예수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하나님은 잃어버린 모든 것을 찾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정말 포기하지 않으신다. 결코

- 참으로 겸손해지고 상한 마음으로 화해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미안하지만 너무

  늦었구나'라고 말씀하실 수 있을까?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며 사과하고 회개하면서 하나님께

  들어가게 해 달라고 하는데, 하나님이 열쇠 구멍을 통해서 '문이 잠겼구나 미안하다 여기에

  좀 더 일찍 왔더라면 어떻게 든 해 보았겠지만 이제는 너무 늦었구나'라고 말씀하실까?

- 결국은 너희가 원하는 대로 될 것이다. 왜냐면 결국 사랑이 이기기 때문이다.

- 성경이나 고대 신앙을 보면 동물을 제단에 바치고 그 피를 뿌리는 모습이 보이는 데 이는 바로

  자신의 운명을 통제하는 신이나 세력이나 신적 존재들과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 모든 문화가 신들을 만족시키는 일을 중요하게 여겼다. 하지만 더는 그러한 희생이 필요

  없게 되었다. 그것은 예수가 정말로 신경 써야 할 유일한 신을 철저하게 만족시킨 궁극적

  희생이셨기 때문이다.

- 이생에서 예수를 믿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또 한 번의 기회'같은 것이 주어져야 한다.

- '속하지 않은' 그룹을 배제시키고 '속한 그룹'만 계속 인정하고 지지하는 편협한 복음은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을' 포함하는 이야기를 그대로 전하는 복음이 아니다.

- 예수는 죽음과 재 탄생의 양식이 우리를 지탱해주고 고취시키는 유일한 삶으로 가는 길임을

  보여 주는 근원이시며, 힘이시며, 모범이시고, 보증이시다.

- 자신의 죄와 증오를 꽉 쥐고 놓지 않으려는 것은 마치 낙엽을 떨어뜨리지 않으려는 나무와

  같다. 가을에 붙잡혀 있으면 봄은 오지 않는다.

- '십자가'는 새 창조에 참여하고 싶어 하는 우리의 가장 깊은 열망을 상기시키고 언뜻 보게하고,

  가리키는 아이콘이다.

- 예수는 모든 사람을 위해 오셨다. 그러나 예수는 어느 한 문화로 차출되거나 그에 소유되지

  않으신다. 예수라는 말을 쓸 때는 어떤 예수를 말하는 것인지를 묻는 것이 중요하다.

-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사랑 때문에 예수가 오셨고

  사랑 때문에 예수는 계속해서

  해마다 모든 사람에게 오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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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을수록 새벽은 가까워 온다
조용기 / 국민일보 / 1998년 4월
평점 :
절판


추천 권유도 8

 

우리 국가의 절체절명 위기의 시기인 IMF때 저자께서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격려하고 희망을

주기 위해 여러 말씀을 증거하고 계신 작품이다.

우리 모두가 평소에 알고 있음직한 내용을 성경 말씀에 근거하여 다시 한 번 정신 무장을

보라는 의미에서 집필된 것으로 먼 이국땅에서 고생하며 땀흘리고 있는 나 스스로를 격려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읽기에 도전하였다. 작품 내용을 갖고 중언부언하고 싶지 않다.

 

- 우리에게도 자주 온갖 종류의 시련들이 들어옵니다.

  이때 이것을 하나의 도전으로 여기고 받아들여 진주를 만드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어떤 사람은 이를 무시하고 회피하다가 파멸에 이릅니다.

- 우리가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않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능력을 나타내실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 하나님께서 우리 편이 되어 달라고 기도하기 보다는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라.(링컨)

- 인간을 공격할 가장 강력한 무기는 희망을 잘라내는 도끼다.

  인간이 희망의 줄을 놓지 않는다면 우리는 능히 이 세상을 이길 수 있다.

-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그 어떠한 삶의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인생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 사방이 막혀 있을 때, 그 때가 바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해야 하는 때입니다.

  그때가 바로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될 때인 것입니다.

- 감사할 제목을 도무지 찾지 못할 경우가 있다.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듣고 계신지, 무슨 일을 하고 계시는 건지 알 수 없어서 낙망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작은 것이라도 찾아서 감사를 드려야 한다.

- 우리에게 없는 것을 한탄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알라.

- 성공을 위한 세 가지 조건

   1) 분명한 목표    2) 열화같은 소원     3) 불퇴전의 인내

- 성공에 있어서 문제는 환경이 아니라 마음이다.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을 신뢰하며 긍정적이고 창조적이며 미래지향적인 마음을 가질 때,

  우리는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다. 

- 나는 믿노라 

  해가 비치지 않더라도 해가 있다는 것을

  나는 믿노라 

  사랑을 느낄 수 없을 때라도 사랑이 있다는 것을

  나는 믿노라 

  하나님께서 침묵하실지라도 여전히 침묵 뒤에 그분이 계시다는 것을

- 하나님은 우리를 축배의 잔이 넘치는 생활로 인도하시기 전에 반드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게 하신다.

실패를 좌절이 아닌 교훈의 기회로 삼을 때, 성공을 통해 얻을 수 없는 보다 큰 유익을 얻게

  될 것이다.

  실패했습니까? 그것은 결코 낙담할 이유가 되지 못합니다. 당신은 성공하지 못하는 또 하나의

  방법을 깨달은 것뿐입니다.

- 다 망해도 나만은 흥한다는 믿음 그것을 입으로 끊임없이

- 꿈이 깨어졌다 할지라도 걱정하지 말라. 우리의 자아가 깨어지면 사라져 버린 듯한 꿈은 우리의

  것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

- 성경에는 두려워 말라는 말씀이 365번 나온다. 무슨 뚯이겠는가?

- 문제 해결의 열쇠는 시련 자체에 있지 않고 그것에 대처해 나가는 당신 자신에게 있다.

- 인간의 환경과 운명은 우리 마음의 믿음과 소망에 따라 바뀌어진다.

- 나비는 태양으로부터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지만

  나방은 자기 힘으로 에너지를 얻는다. 무슨 의미겠는가?

- 하나님의 뜻을 아는 방법

   1) 마음에 간절한 소원이 있는지 살펴보라

   2) 소원이 말씀과 일치되는지 확인하라

   3) 환경의 문이 열리는지 눈여겨 보아라

- 염려한다고 해결되는 일이 있던가요? 염려할 시간이 있으면 그 시간에 기도하세요.

  기도는 하나님의 손을 움직이게 합니다

- 염려는 미래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매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도 염려가 밀려오면

  하나님 염려한다고 해서 나아지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줄 알면서도 자꾸 염려하게 됩니다.

   제 생각을 주님께서 주장해 주시고 저의 염려의 목록들을 조목조목 아뢰오니 맡아 해결해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라.

- 주님께서는 때로 우리의 기도를 거절하실 때가 있다. 거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거절을 톻해 큰 뜻을 깨닫게 하시기 위함이거나 더 나은 결과를 주시기 위해

  일시적으로 응답을 미루시는 것이다.

 

작품에서 인용된 성경 구절

  

-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벧전 4:12)

-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19:17)

-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6:38)

-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21:22)

-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37: 5~6)

-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내 걸음을 견고케 하셨도다.

                                                                                                          (40:1~2)

-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시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8:28)

-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7: 9~11)

-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41:10)

-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심이라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30: 18)

-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은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4: 6~7)

-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다.(벧전 2:9)

-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대하 20:20)

-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6:7)

-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12: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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