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 세종대왕 - 조선의 크리에이터
이상각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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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적인 세종을 만나다>
    새로운 지도자를 뽑아야했고, 그 지도자에 대한 걱정과 기대가 함께 하기 때문일까 지난해부터 유난히 리더쉽에 관해 이야기가 많다. tv에서는 카리스마 넘치는 군주를 주인공으로 한 사극이 눈에 띄고 출판분야에서도 비슷한 분위기인 듯 하다. 그런 흐름 덕분인지 나 또한 이 책과 몇 개월 전에 읽은 그 세종에 관한 두 권의 책을 합해 3권의 세종에 관한 이야기를 읽게 된 셈이기도 하다. 처음에 펼쳐들었던 책은 내용이 방대하고 세세한 점은 좋았으나 그 방대함에 치여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으니 사실 "읽었다"고 하기엔 뭣하다. 두 번째로 펼쳐들었던 책에서는 세종의 인간적인 면모를 살펴볼 수 있었던 기회였다. 이번에 펼쳐든 책은 지난 번 책에서보다 세종의 업적에 대해 더 꼼꼼하게 살펴볼 수 있었던 듯 해서 두 책을 비교해 읽는 재미도 쏠쏠했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intro부분에서는 세종대왕의 수많은 업적 중에서 현재에도 칭송받고 있는 "훈민정음"창제와 관련한 이야기가 실려있다. 이런 식으로 편집된 책을 접해 본 적이 없어선지, 책의 초입부분에서 적잖게 당황했다. 글쓴이가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과감히 붉은 색 음영처리를 한 데다가 쪽수가 없어서..뭐, 나쁘진 않았다. 이 부분에선 훈민정음에 대한 세종의 확고한 의지와 최만리로 대표되는 신하들의 거센 반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언문은 여러 글자를 합하여 함께 써서 그 음과 해석을 바꾼 것이라 글자의 형상이 아닙니다."라며 거세게 반발하는 신하들. "글자의 형상이 아니라는" 그 글자로 훈민정음 창제에 반대한 그들의 글을 읽고 있으니, 이런 상황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알 수 없는 웃음이 나왔다.

 

   <1부 웅크린 잠룡, 승천하다>에서는 양녕이 세자로 있던 때의 이야기부터 양녕이 폐세자가 된 과정, 급하게 진행된 세종의 즉위에서부터 상왕이 된 태종 사망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들이라 특별할 건 그닥 없다. 1부를 읽으면서  문득 "젊은 독자를 겨냥하고 쓴 책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에 의해 재구성된 그들의 대화가 아주 현대적이다. "나는 조선에 올인한 사람이니 자식들을 생각해서 자중하시오. 오버하면 당신과도 남남이오."(p55)라는 태종의 말이나 "괜찮아. 저런 깜짝쇼가 다 나를 임금 만들려고 하는 일이니까."(p55)라는 세자 양녕의 발언을 보고 있자면 말이다. 그래도 역사서는 좀더 무게감이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보수적인 사고를 하는 내 입장에서는 글쓴이가 약간 "오버스럽다"고 오버스럽게 참견하고 만다.

   <2부 조선의 마스터플랜을 세우다>와 <3부 찬란한 문화시대를 열다>에서는 세종의 위대한 업적이 꼼꼼히 설명된다.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창업의 군주였다면, 세종은 수성의 군주로써 손색이 없는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그 많은 일들을 의욕적으로 계획하고 진행해나갈 수 있었는지, 만약 세종이 왕위에 오르지 못했더라면 우리 역사는 어떻게 흘러갔을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짐은 국가 제일의 공복' 이라고 서양의 군주가 이야기했다던가. 세종이야말로 그 말에 적합한 인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의 애민정신과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를 가진 군주가 서너명만 더 있었더라면 우리 역사가 지금보다 몇 배쯤은 더 긍정적인 모습을 가질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4부 고독한 임금의 초상>에서는 그의 불행했던 개인사와 그로 인해 불교에 심취하게 되는 모습, 훈민정음 창제와 관련한 신하들과의 마찰을 보여준다. 두 번의 세자빈 폐출, 그리고 세번째 세자빈마저도 세손(단종)을 낳은 산통으로 숨졌고, 유난히 자식들을 사랑했던 세종이 정소공주와 광평대군, 평원대군 등 잇따라 자식들을 앞세우면서 겪어야 했던 고뇌가 안타까웠다. 세종 말년의 내불당 투쟁이나 신하들과의 부딪힘은 세종의 개인적인 불행과 함께, 그간 모범생 역할만을 해야했던 그의 억눌린 감정의 폭발 같은 게 아니었을까 하고 어설프게 추측해본다.

   <5부 세종과 그의 신하들>  "세종 치세의 찬란한 업적들은 임금 개인의 뛰어난 식견과 학문적 소양에서 비롯된 것이었지만, 그를 보좌했던 뛰어난 인물들이 있었으므로 가능한 것이었다."(p332) 그렇기 때문인지 세종에 관한 책에는 그 신하들에 관한 이야기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듯 하다. 이 책에서도 황희정승이나 맹사성, 장영실 등 우리가 흔히 꼽는 세종 시대의 유명한 인물 말고도 (나는? 나만?) 잘 몰랐던 이천과 이순지 등에 대해서도 비교적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인간 세종과 군주 세종에 대해서 관찰해 볼 수 있었던 좋은 책이었다. 세상의 모든 지도자가 세종만큼만 잘 해 준다면 독재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위험한 발상으로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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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라무슈
프로메테우스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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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옆에 사람에게 읽어보라고 권해 주고 싶은 책이다. 예전에 tv토크쇼에 나온 어떤 개그맨이 영화 식스센스가 영화관에서 상영중일 때의 자신의 경험담이라며 이야기하는 걸 본 적이 있었다. 식스센스를 관람하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사람들에게 이미 그 영화를 본 그가"브루스 윌리스가 귀신이야~!"라고 소리를 질렀다는.. 이 책을 덮고 나니 나도 입이 막 근질근질하다. 재미있는 책이라고 권해주고 싶으면서도 "사실은 말이야~ 그 사람이 말이야~"하고 막 떠벌리고 싶은. 이러다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인 걸 보고만 두건 만드는 사람처럼 병이 나는 건 아닌지 몰라. 반전이 기가 막히는 책이다.

 

   사실 이 책을 펼쳐들 게 된 이유는 나의 숙제와도 같은 역사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책 소개글에서 얼핏 본 "프랑스혁명"이라는 단어가 아니었으면 이 책을 그냥 지나쳐버렸을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론 띠지에 있는 "활극소설"이란 단어 때문에 일본 중세의 사무라이가 먼저 떠올라 혹 칼싸움 얘기가 지루하게 나오면 어떻게 할까 걱정을 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런 걸 두고 "기우"라고 하는 모양이다.

 

   <BOOK1 시골변호사>. 이야기의 주인공은 앙드레 루이 모로. 부모가 없는 고아이지만, 그의 대부(대부라는 게 어떤 개념인지는 정확히가 아니라 대충 감이 올 뿐이다.)인 가브라앙의 영주 켕텡 드 케르까디유의 보살핌으로 그는 귀족도 아닌 그렇다고 평민도 아닌 약간은 어정쩡한 위치에 있는 변호사다("였다"가 더 맞을래나?). 그런 그였기에 흔히들 말하는 프랑스혁명 전야의 모순된 사회에 대해서도 약간은 어정쩡하고 다소 냉소적인 자세를 지닐 수 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랬던 그가 절친한 친구 필립 드 빌모렝의 어이없는 죽음으로 제3신분을 대변하는 위치로 전향(?)하게 된다. "당신들은 흐르는 강물에도, 풀과 보리로 만든 가난한 자의 빵을 굽는 불에도, 또한 방앗간을 돌리는 바람에도 봉건 권한을 행사하고 있지 않습니까?"(p48)라고 귀족계급을 비판하던 빌모렝이 라 뚜르 다쥐르 후작(이 사람이 이야기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과의 결투에서 저항 한번 못 해보고 개죽음을 당했으니 말이다.

 

   이 책의 매력은 재미와 함께 프랑스 혁명기의 프랑스 사회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거다. "여러분! 우리 프랑스의 구조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국민 중 백만 명이 특권계급을이루는데, 이들이 곧 프랑스를 의미합니다. 설마 나머지 국민들에게도 무슨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지는 않으시겠지요? 현재로선 나머지 이천사백만 명 역시 특권계급 만큼이나 중요하며, 이 나머지 국민들도 위대한 국가의 대표가 될 수 있다거나, 또는 선택된 백만 명 특권 계급의 노예 이외에 다른 존재 이유가 그들에게 있을 거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p88)와 같이 당시 프랑스 사회가 처한 상황이 이야기 곳곳에서 보인다. 그리고 교과서적으로만 암기하고 있던 인물 로베스피에르, 당통, 마라 등 프랑스혁명의 주역들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고, 역사학도였다는 역자가 낯선 프랑스 용어에 대해서도 괄호로 잘 풀어서 이야기해주고 있다.

 

  타고난 입담으로 정치를 비판하고 시민들을 선동한 죄로 쫓기게 된 앙드레의 삶은  떠돌이 극단과의 우연한 만남으로 완전히 달라져버리고 만다. <BOOK2 연극배우>에서는 떠돌이 극단에 합류한 앙드레의 이야기다.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비네 극단이 앙드레를 만나면서 규모있고, 관객의 환호를 받는 극단으로 변신하게 된 것이다. 앙드레는 정말 못하는 게 없다!! 너무나 매력적인 인물. <BOOK2 연극배우>에서 언급되고 있는 서양 연극의 전형적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와 시끌벅적하고 호화롭지만 뭔가 촌스런 연극판의 모습이 이국적이면서도, 우리네 판소리 혹은 탈춤 같은 서민적인 정서와의 공통점이 느껴져 정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가끔 프랑스영화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는데, 프랑스인들의 주거니받거니 하는 역설적이고 가끔은 말장난 같은 대화를 읽는 재미도 이 책의 매력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앙드레가 수배자라는 약점을 주고 있는 단장 비네와 자신없이는 극단이 성공할 수 없다는 약점을 쥐고 있는 앙드레와 비네의 "적과의 동침"도 재미있었다. 하지만 결국 앙드레와 사사건건 대립 구도를 이룰 수 밖에 없는 다쥐르 백작으로 인해 결국 앙드레의 연극배우로서의 삶도 파국으로 치닫고 만다. 그는 무대에서의 스카라무슈였을 뿐 현실의 옴네스 옴니버스가 그의 본 모습이 아니었을까..

    이후의 이야기 <BOOK3 검객>편에서는 또 우연히 만나게 되는 베르트랑 데자미와의 만남이 그의 삶을 변신시킨다. 검객으로써 말이다. 역시나 이야기의 클라이맥스는 다쥐르와 앙드레의 결투장면이겠지? 아니다. 그 뒤에 숨겨진 엄청난 반전이 더 스릴있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말이다.   정말 재미있게 봤는데, 리뷰를 쓰고 있자니 그 재미가 전달되지 못하고 오히려 훼손되는 것 같아서 내 글을 지워버리고 싶은 생각이 든다. 하하.. 만약 이 서평을 읽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 읽어도 후회 안 할 것 같으니 한 번 읽어보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실로 앙드레 루이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다. 이런 남자를 보고 가슴이 뛰지 않을 여자가 있을까? 누구나 드라마틱한 연인이 되어 줄 것 같은 이 다재다능한 남자"(p525 옮긴이의 말)를 한번 만나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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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단 하나뿐인 이야기
나딘 고디머 엮음, 이소영.정혜연 옮김 / 민음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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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책을 만든 취지가 너무 좋았다. "유명 가수들이 모여 자선 공연을 하는 것처럼 작가들도 이 세상을위해 함께 할 수 있는 있지 않을까?"라는 고민으로 1991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나딘 고디머가 주축이 되어  수익금을 사회에 환원하는 글 모음. 저자들이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작가들이다. 이 글모음의 주축이 된 나딘 고디머를 비롯하여 주제 사라마구, 귄터 그라스, 아모스 오즈, 오에 겐자부로, 살만 루슈디 등 21명의 작가. 저자들의 이름만으로도 눈이 호사스러웠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가도 있고 해마다 그 후보로 이름이 거론된다는 작가도 있고. 유명 작가들의 이름이 한권에 모아진 것만 보고도 괜한 뿌듯함이 느껴졌다.(물론 우리 나라 작가의 이름도 한명쯤 같이 실려 있었으면 하는 욕심과 아쉬움이 든 것도 사실이지만.. )

 

    하지만 문제는 그 유명한 작가들의 이름만 주워들었지 그 작품들을 많이 접해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이 책을 만난 나의 고민거리였다. 몇 개월 전에 아모스 오즈의 작품 <지하실의 검은표범>을  읽어보았고,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은 언젠가 펼쳐든 기억은 나는데 끝을 맺은 기억이 없다. 아서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은 문학교과서엔가 실렸던 작은 부분만을 접해 보았던 기억이 난다.

   글은 작가의 생의 반영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렇기에 작품을 읽는데는 작가에 대한 배경지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매번 하지만 그 생각이 이번처럼 절실했던 적이 또 있었던가. 작가 개개인이 그간 써왔던 작품이 어떤 것이었는지, 그가 처한 사회적 현실이 어떤 것인지는, 이 책의 각 작품 앞에 실린 서너줄의 작가이력만으론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그렇기에 "작가들이 평생 집필한 작품 중 최고라고 생각하는 대표작을 손수 골라 원고료나 저작권료 없이 기꺼이 보내 주어"(p7)서 만들어졌다는 이 책을 나는 "너무 어려워"를 연발하며 읽을 수 밖에 없었다.

   나의 얕은 이해력으로 이해할 수 있었던 몇 작품에 대해 언급해 보자면 이렇다.

폴 서루(Paul Theroux)의 <강아지의 온기>. 한 불임부부가 아이를 "사러"가서 당하게 되는 사건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이한테 간질 증상이 있는지 직접 실험할 수도 있고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는지도 알 수 있어. 유전적 문제가 있는지 가족력도 살펴보고 우울증 증세가 우려되는지도 볼게......후략"(p244)라는 말을 하고 있는 이 부부. 마트에 물건 고르러 가나 싶더니만 "무서운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것참. 작가가 말하려는 걸 내가 제대로 파악했는지 참으로 의심스럽지만 인과응보다 싶다.

또 이 책에서 자주 보이는 남아공 작가 몇몇의 작품은 아프리카가 처한 내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은자블로 은데벨레의 <아들의 죽음>은 공권력에 의해 어린 아이를 잃게 된 젊은 부부의 분노를, 나딘 고디머의 <최고의 사파리>에서는 내전에 휘말린 한 가족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나마 쉽게 이해하고 웃을 수 있었던 이야기는 우디앨런의 <불합격>. 세살짜리  아들 미샤가 맨해튼 최고의 유치원 입학에 불합격한 사실을 두고 펼치는 보리스 이바노비치와 그의 아내 안나의 과대망상적인 이야기가 참 뭐랄까 씁쓸한 웃음을 안겨준달까?

   "지금까지 이토록 뛰어난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들이 책 한권에 수록된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p6). 나는 이토록 뛰어난 작가들의 "너무나" 다양한 작품들이었기에 그 다양성에 치여 이야기를 다 이해하진 못 했다. 하지만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이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을 일일이 접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는다. 주변 사람들에게 권해줘야겠다. 그리고 그들이 이해한 바와 내가 이해한 바가 어떻게 다른지 혹은 같은지를 비교해보는 것도 좋은 책 읽기 방법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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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
이언 매큐언 지음, 박경희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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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덮고 나니 허하다. 표지에 있는 저 여자는 처음부터 뭔가 묘한 인상을 내게 던졌지만, 책을 덮고 나니 저 여자에게서  더욱 거리감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 저 여자는 누구일까?
  "오래전부터 짤막한 소설을 써보고 싶었습니다. 서너 시간 안에 읽을 수 있는 그런 소설 말이죠."(p206) 그래. 비교적 이야기는 짧은 편이다. 하지만 작가와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서인지, 혹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주의 이야기가 아니라서 그런지, 나는 책을 읽는데 서너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했다. "원고에서 잘려 나간 부분이 굉장히 많아요. 더 이상 뺄 것이 없다고 느껴질 때까지 삭제하고 또 삭제하는 과정을 반복했습니다."(p206). 글쓴이가 너무 많은 이야기를 잘라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글쓴이가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한 건지 잘 모르겠다. 나의 이해력 부족 탓인가...?

  한 여인의 장례식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몰리. 표지에 그려진 저 여자는 몰리인가..? 몰리를 사랑했던 클라이브 린리와 버넌 헬리데이. 그녀는 외무장관 줄리언 가머니의 정부(情婦)이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녀의 남편 조지. 이야기의 중심축은 작곡가인 클라이브와 신문사의 편집국장인 버넌이다. 둘은 몰리와 한때 연인이기도 했었지만, 절친한 친구 사이이기도 하다. 서양인들의 정서는 우리네와는 좀 많이 다른 모양이다. 한 여자를 사랑했던 두 남자가 절친한 친구이기도 했었다는 설정 자체에서 나는 어색함을 느끼는데, 이야기 속에선 너무나도 자연스러우니 말이다. 몰리의 남편 조지는 몰리가 남긴 "가머니의 사진 - 가머니는 성도착자였던가? 정부(情婦)인 몰리가 찍은 사진 속에서 가머니는 여자의 옷을 입고 요염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을 버넌에게 넘기고, 버넌은 가머니를 정치적으로 파멸시키기 위해 그 사진을 1면 기사로 싣는다. 하지만 황색언론이라는 비난을 받고 결국엔 실직에 이르고 만다. 클라이브는 미친듯이 오로지 작곡에만 몰두하지만 결국 그것은 "실패작"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스스로의 삶을 어떻게 결정짓지 못한 모양인지 극단의 선택을 한다.

   "내가 누군지조차 모르는 그런 상황. 그럴 때 누군가 나를 도와 끝은 내줄 사람이 있는지...... 나를 죽게 도와줄 사람 말이야. -중략- 자네가 봐서 달리 바업이 없다가 생각되는 그런 순간이 오면 나를 도와줘. "(p65) 클라이브는 이 때 이미 죽음을 결심했던 것일까? "좋아, 단 조건이 있어, 자네도 날 위해 똑같이 해주게.v"(p75) 버넌 역시도 이때 그런 결심에 다다랐던 것일까? 아니면 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은 몰리의 남편 조지로부터 시작되는 것인가? 조지는 이런 결말을 예상하고서 몰리가 남긴 사진을 버넌에게 넘겨줬던 것은 아닐까? 마지막 부분을 보자면 그랬던 것도 같다. 두 남자의 죽음과 한 남자의 정치적 몰락을 가져왔으니, 그의 계획은 성공한 셈인가?

   하. 지. 만.. 이 글을 통해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도덕적인 척하는 인간들의 위선? 혹은 흔들린 우정? 혹은 일을 그르치면 자살이 그 대안일 수 있다는 것? 죽고 싶을 땐 암스테르담으로 가라는 것?  어렵다. 글쓴이와 마주 앉아서 이 장면은 무슨 의미인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건지 물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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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 - 몸, 마음, 영혼을 위한 안내서
아잔 브라흐마 지음, 류시화 옮김 / 이레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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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 참 예쁘다. 아니, 예쁘다는 표현보다는 잔잔하고 푸근하다는 표현이 맞을까?  흑백톤으로 그려진 책 표지의 그림도 그렇지만, 책 속 각 장을 시작하는 쪽의 불교적인 냄새를 담고 있는 그림이 너무 푸근하다.

   책 서문에 류시화 씨가 인용한 이야기 중에  불편하고 불행한 표정을 지으며 매운 칠리를 씹는 남자의 이야기가 있다. "혹시 단맛이 나는 칠리 고추가 있을지도 모르잖소."(p12) 이 남자 바보 아냐? 그만큼 먹어봤으면 이제 단맛이 나는 칠리는 없다는 것을 알고 칠리를 씹어삼키는 것을 포기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 포기한다면 여기에 바친 내 시간들이 얼마나 아깝고 무의미하겠소? 이제 이것은 희망의 문제가 아니라 내 존재의 문제가 되었소."(p22)  아. 그런건가? 포기해야 하는 게 아니란 말인가? 지금까지 "낭비한(그건 분명 낭비로 보인다. 내겐..)" 시간만으로도 아까운데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는 단맛이 나는 칠리를 찾을 때까지 "불편하고 불행한 표정을" 지으며 칠리를 씹어 삼켜야한다는 말인가? 지금의 내 처지가 그 남자와 비슷하다. 몇 번이나 실패만 거듭하는 "그것"을 나는 포기하기로 연초에 계획을 세웠다. 절대로  "그것"에서 단맛 나는 칠리는 발견하지 못할 것 같아서.. 지금은 어떤 것에서 단맛이 날까를 살펴보고 있다. 내가 그간 매운 칠리 속에서 단맛 나는 칠리를 찾았던 것은 아닌가. 절대 불가능한 것을 희망한 것은 아닌가 싶어서 훨씬 가능성이 높은 그 무엇을 향해 눈을 돌리고 있는 참인데, 이 우직하고 미련스런 남자의 이야기가 나를 비난하고 있다. 넌 나만큼 칠리의 매운 맛을 보지도 못했으면서 벌써 도망치려고 하느냐고.. 포기했다고 말하면서도 남아있는 미련이 있기에 이야기 하나에 나는 흔들린 걸까..?

   <벽돌 두장>에서는 절을 지을 때 잘못 놓여진 두 장의 벽돌 때문에 벽을 폭파해버리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는 글쓴이. 하지만 잘못된 것은 두 장의 벽돌일 뿐, 나머지 훨씬 큰 부분은 제대로 놓여져 있었음을, 그리고 제대로 놓여진 벽돌 덕분에 아름다운 벽이었음을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조그마한 잘못이나 실수 때문에 아름다운 전체를 무너뜨리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는 교훈을 던져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 쉽지 않겠지만 말이다. <내려놓기>에서는 두려움을 내려놓으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책을 읽다보면 글쓴이는 어떤 사람일까 정말 궁금해 진다. 쉽사리 희로애락의 감정을 나타내고 마는 나와는 전혀 다른 초월적인 존재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기분이랄까. 뭐 하여간 그런... <울고 있는 소>에서 소개된 이야기. "아잔 차 스승께서는 당신에게 빗자루질을 할 때는 온 존재를 바쳐 빗자루질을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p148) 책을 읽으면서 나는 계속 반성적이 된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나는 그간 내 마음을 돌아볼 일이 거의 없었다. 세상에서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은 단 한권 "마음"의 책이라고 이 책에서 말하고 있다. 나는 그간 밖의 것들을 살피느라 내 마음을 놓쳐버린 모양이다. 그리고 내가  연초에 포기하기로 했던 그것에 대해서도 또 한번 다시 생각해본다. 그간 나는 빗자루질을 하는 척만 했지, 나의 온 존재를 던졌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고..."그래서" 나는 다시 시작해야 하는가? 나의 온 존재를 던져서..? 다시 용기가 생기지 않는다. 글쓴이처럼 깨친 수행승이 아니라서 그런가..잔잔한 그림과 함께 소개된 수행승의 이야기가 내겐 파문을 일으키고 말았다. 내 마음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러면서 고민거리도 함께 던져준 책. 내 마음 속의 성나고 비뚤어진 코끼리에게 시달릴 것이 아니라 주인이 되라고 말하고 있는데, 과연 그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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