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라무슈
프로메테우스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옆에 사람에게 읽어보라고 권해 주고 싶은 책이다. 예전에 tv토크쇼에 나온 어떤 개그맨이 영화 식스센스가 영화관에서 상영중일 때의 자신의 경험담이라며 이야기하는 걸 본 적이 있었다. 식스센스를 관람하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사람들에게 이미 그 영화를 본 그가"브루스 윌리스가 귀신이야~!"라고 소리를 질렀다는.. 이 책을 덮고 나니 나도 입이 막 근질근질하다. 재미있는 책이라고 권해주고 싶으면서도 "사실은 말이야~ 그 사람이 말이야~"하고 막 떠벌리고 싶은. 이러다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인 걸 보고만 두건 만드는 사람처럼 병이 나는 건 아닌지 몰라. 반전이 기가 막히는 책이다.

 

   사실 이 책을 펼쳐들 게 된 이유는 나의 숙제와도 같은 역사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책 소개글에서 얼핏 본 "프랑스혁명"이라는 단어가 아니었으면 이 책을 그냥 지나쳐버렸을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론 띠지에 있는 "활극소설"이란 단어 때문에 일본 중세의 사무라이가 먼저 떠올라 혹 칼싸움 얘기가 지루하게 나오면 어떻게 할까 걱정을 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런 걸 두고 "기우"라고 하는 모양이다.

 

   <BOOK1 시골변호사>. 이야기의 주인공은 앙드레 루이 모로. 부모가 없는 고아이지만, 그의 대부(대부라는 게 어떤 개념인지는 정확히가 아니라 대충 감이 올 뿐이다.)인 가브라앙의 영주 켕텡 드 케르까디유의 보살핌으로 그는 귀족도 아닌 그렇다고 평민도 아닌 약간은 어정쩡한 위치에 있는 변호사다("였다"가 더 맞을래나?). 그런 그였기에 흔히들 말하는 프랑스혁명 전야의 모순된 사회에 대해서도 약간은 어정쩡하고 다소 냉소적인 자세를 지닐 수 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랬던 그가 절친한 친구 필립 드 빌모렝의 어이없는 죽음으로 제3신분을 대변하는 위치로 전향(?)하게 된다. "당신들은 흐르는 강물에도, 풀과 보리로 만든 가난한 자의 빵을 굽는 불에도, 또한 방앗간을 돌리는 바람에도 봉건 권한을 행사하고 있지 않습니까?"(p48)라고 귀족계급을 비판하던 빌모렝이 라 뚜르 다쥐르 후작(이 사람이 이야기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과의 결투에서 저항 한번 못 해보고 개죽음을 당했으니 말이다.

 

   이 책의 매력은 재미와 함께 프랑스 혁명기의 프랑스 사회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거다. "여러분! 우리 프랑스의 구조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국민 중 백만 명이 특권계급을이루는데, 이들이 곧 프랑스를 의미합니다. 설마 나머지 국민들에게도 무슨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지는 않으시겠지요? 현재로선 나머지 이천사백만 명 역시 특권계급 만큼이나 중요하며, 이 나머지 국민들도 위대한 국가의 대표가 될 수 있다거나, 또는 선택된 백만 명 특권 계급의 노예 이외에 다른 존재 이유가 그들에게 있을 거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p88)와 같이 당시 프랑스 사회가 처한 상황이 이야기 곳곳에서 보인다. 그리고 교과서적으로만 암기하고 있던 인물 로베스피에르, 당통, 마라 등 프랑스혁명의 주역들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고, 역사학도였다는 역자가 낯선 프랑스 용어에 대해서도 괄호로 잘 풀어서 이야기해주고 있다.

 

  타고난 입담으로 정치를 비판하고 시민들을 선동한 죄로 쫓기게 된 앙드레의 삶은  떠돌이 극단과의 우연한 만남으로 완전히 달라져버리고 만다. <BOOK2 연극배우>에서는 떠돌이 극단에 합류한 앙드레의 이야기다.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비네 극단이 앙드레를 만나면서 규모있고, 관객의 환호를 받는 극단으로 변신하게 된 것이다. 앙드레는 정말 못하는 게 없다!! 너무나 매력적인 인물. <BOOK2 연극배우>에서 언급되고 있는 서양 연극의 전형적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와 시끌벅적하고 호화롭지만 뭔가 촌스런 연극판의 모습이 이국적이면서도, 우리네 판소리 혹은 탈춤 같은 서민적인 정서와의 공통점이 느껴져 정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가끔 프랑스영화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는데, 프랑스인들의 주거니받거니 하는 역설적이고 가끔은 말장난 같은 대화를 읽는 재미도 이 책의 매력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앙드레가 수배자라는 약점을 주고 있는 단장 비네와 자신없이는 극단이 성공할 수 없다는 약점을 쥐고 있는 앙드레와 비네의 "적과의 동침"도 재미있었다. 하지만 결국 앙드레와 사사건건 대립 구도를 이룰 수 밖에 없는 다쥐르 백작으로 인해 결국 앙드레의 연극배우로서의 삶도 파국으로 치닫고 만다. 그는 무대에서의 스카라무슈였을 뿐 현실의 옴네스 옴니버스가 그의 본 모습이 아니었을까..

    이후의 이야기 <BOOK3 검객>편에서는 또 우연히 만나게 되는 베르트랑 데자미와의 만남이 그의 삶을 변신시킨다. 검객으로써 말이다. 역시나 이야기의 클라이맥스는 다쥐르와 앙드레의 결투장면이겠지? 아니다. 그 뒤에 숨겨진 엄청난 반전이 더 스릴있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말이다.   정말 재미있게 봤는데, 리뷰를 쓰고 있자니 그 재미가 전달되지 못하고 오히려 훼손되는 것 같아서 내 글을 지워버리고 싶은 생각이 든다. 하하.. 만약 이 서평을 읽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 읽어도 후회 안 할 것 같으니 한 번 읽어보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실로 앙드레 루이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다. 이런 남자를 보고 가슴이 뛰지 않을 여자가 있을까? 누구나 드라마틱한 연인이 되어 줄 것 같은 이 다재다능한 남자"(p525 옮긴이의 말)를 한번 만나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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