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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 - 몸, 마음, 영혼을 위한 안내서
아잔 브라흐마 지음, 류시화 옮김 / 이레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이 참 예쁘다. 아니, 예쁘다는 표현보다는 잔잔하고 푸근하다는 표현이 맞을까? 흑백톤으로 그려진 책 표지의 그림도 그렇지만, 책 속 각 장을 시작하는 쪽의 불교적인 냄새를 담고 있는 그림이 너무 푸근하다.
책 서문에 류시화 씨가 인용한 이야기 중에 불편하고 불행한 표정을 지으며 매운 칠리를 씹는 남자의 이야기가 있다. "혹시 단맛이 나는 칠리 고추가 있을지도 모르잖소."(p12) 이 남자 바보 아냐? 그만큼 먹어봤으면 이제 단맛이 나는 칠리는 없다는 것을 알고 칠리를 씹어삼키는 것을 포기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 포기한다면 여기에 바친 내 시간들이 얼마나 아깝고 무의미하겠소? 이제 이것은 희망의 문제가 아니라 내 존재의 문제가 되었소."(p22) 아. 그런건가? 포기해야 하는 게 아니란 말인가? 지금까지 "낭비한(그건 분명 낭비로 보인다. 내겐..)" 시간만으로도 아까운데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는 단맛이 나는 칠리를 찾을 때까지 "불편하고 불행한 표정을" 지으며 칠리를 씹어 삼켜야한다는 말인가? 지금의 내 처지가 그 남자와 비슷하다. 몇 번이나 실패만 거듭하는 "그것"을 나는 포기하기로 연초에 계획을 세웠다. 절대로 "그것"에서 단맛 나는 칠리는 발견하지 못할 것 같아서.. 지금은 어떤 것에서 단맛이 날까를 살펴보고 있다. 내가 그간 매운 칠리 속에서 단맛 나는 칠리를 찾았던 것은 아닌가. 절대 불가능한 것을 희망한 것은 아닌가 싶어서 훨씬 가능성이 높은 그 무엇을 향해 눈을 돌리고 있는 참인데, 이 우직하고 미련스런 남자의 이야기가 나를 비난하고 있다. 넌 나만큼 칠리의 매운 맛을 보지도 못했으면서 벌써 도망치려고 하느냐고.. 포기했다고 말하면서도 남아있는 미련이 있기에 이야기 하나에 나는 흔들린 걸까..?
<벽돌 두장>에서는 절을 지을 때 잘못 놓여진 두 장의 벽돌 때문에 벽을 폭파해버리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는 글쓴이. 하지만 잘못된 것은 두 장의 벽돌일 뿐, 나머지 훨씬 큰 부분은 제대로 놓여져 있었음을, 그리고 제대로 놓여진 벽돌 덕분에 아름다운 벽이었음을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조그마한 잘못이나 실수 때문에 아름다운 전체를 무너뜨리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는 교훈을 던져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 쉽지 않겠지만 말이다. <내려놓기>에서는 두려움을 내려놓으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책을 읽다보면 글쓴이는 어떤 사람일까 정말 궁금해 진다. 쉽사리 희로애락의 감정을 나타내고 마는 나와는 전혀 다른 초월적인 존재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기분이랄까. 뭐 하여간 그런... <울고 있는 소>에서 소개된 이야기. "아잔 차 스승께서는 당신에게 빗자루질을 할 때는 온 존재를 바쳐 빗자루질을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p148) 책을 읽으면서 나는 계속 반성적이 된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나는 그간 내 마음을 돌아볼 일이 거의 없었다. 세상에서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은 단 한권 "마음"의 책이라고 이 책에서 말하고 있다. 나는 그간 밖의 것들을 살피느라 내 마음을 놓쳐버린 모양이다. 그리고 내가 연초에 포기하기로 했던 그것에 대해서도 또 한번 다시 생각해본다. 그간 나는 빗자루질을 하는 척만 했지, 나의 온 존재를 던졌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고..."그래서" 나는 다시 시작해야 하는가? 나의 온 존재를 던져서..? 다시 용기가 생기지 않는다. 글쓴이처럼 깨친 수행승이 아니라서 그런가..잔잔한 그림과 함께 소개된 수행승의 이야기가 내겐 파문을 일으키고 말았다. 내 마음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러면서 고민거리도 함께 던져준 책. 내 마음 속의 성나고 비뚤어진 코끼리에게 시달릴 것이 아니라 주인이 되라고 말하고 있는데, 과연 그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