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 없이 떠나는 101일간의 세계 인물 여행 지도 없이 떠나는 101일간의 세계 문화 역사 9
박영수 지음, 노기동 그림 / 풀과바람(영교출판)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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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 없이 떠나는 101일간" 시리즈의 9번째 책이구나.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이 책이 시리즈로 나온 책이란 걸 알게 됐는데, 이 책에 대한 인상이 좋아서 이전에 나온 시리즈에 대해서는 읽어보지도 않았는데 호감이 간다. 이 책은 어린이용 서적이다. 개인적으로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인지, 역사책이라면 그 대상을 불문하고 관심이 가서 손에 잡곤 한다. 이 책도 그런 이유에서 손에 들었던 책이다. 사실, 어린이용 서적을 읽기 전엔 항상 그런 생각을 한다. "어른"인 내가 "어린이"책을 보며 새로운 사실을 안다거나 얻을 것이 있겠냐는 거만한 생각 말이다. 하지만 책을 덮을 때 쯤은 그런 생각이 항상 나의 오만이었음을 알게 된다.

 

    이 책을 펴면서도 어린이책에 소개된 인물 "정도는" 내가 다 알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세계인물로 100명 안쪽의 사람을 선정해놓았다니, 그 정도는 내가 알고 있지 않을까 하고... 하지만 나는 이 책을 통해  태국의 13세기 왕 "람캄행", 멕시코의 독립영웅 "미겔 이달고", 말레이시아의 장군 "항 투아", 잉카의 마지막 지도자 "투팍 아마루 2세", 그리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권운동가 "앨버트 루틀리"는 이름조차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어린이용 책이라 쉬운 서술 덕분에 술술 읽어나가기 좋았다. 선정한 인물의 유명한 일화를 소개하고, 각 인물의 업적을 간단히 서술해 놓은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고, 아울러 인물의 초상화와 삽화가 깔끔하게 들어가 있다. 한 인물당 2쪽에서 4쪽 정도의 분량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2쪽정도로 짧게 소개된 인물에 대해서는 1일차로, 4쪽 정도의 비교적 많은 분량으로 소개되어 있는 인물에 대해서는 2일차로 구성되어 있는 책으로, 소개된 한 인물에 대해 하루 내지 이틀 정도로 읽어나가면 101일간의 여행이 완성되는 구성이다.

 

    여러 책들을 통해 비교적 "잘 안다"고 생각했던 인물들에 대해,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핵심되는 업적에 대해 깔끔하게 서술되고 있는 점이 좋았다. 초등 저학년부터 중학생까지 혹은 나처럼 어설픈 지식을 가진 어른에게도 유용해 보이는 책이다. 책을 읽으며, 각자 처한 상황이 다르지만 자신의 생을 열심히 살았던 인물들에 대해 읽으며 가슴이 벅찼다.

   책에 소개된 "멋진" 인물들이 한 곳에 모여 생활하는 그림을 그려 보았다. 옆집아저씨처럼 편안한 호아저씨 "호치민"과, 역시나 서민들을 위해 정치했던 "막사이사이" 같은 존경받는 정치인들이 정치를 담당하고, 셰익스피어` 생텍쥐베리` 톨스토이` 세르반테스`나쓰메소세키와 안데르센은 글을 쓰고, 베토벤`모차르트` 차이코프스키는 음악을 연주하며, 샤넬의 멋진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찰리채플린 혹은 월트디즈니의 영화를 보며, 록펠러나 카네기 같은 사람들이 사업을 하고, 뉴턴`갈릴레이`마리퀴리`뢴트겐`노구치헤데요 같은 과학자들이 연구를 하는 그런....

 

   한 인물에 대해 깊이가 있는 고찰은 아니었지만, 이런 책은 넓게 두루두루 알게 된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읽어볼만한 책인 것 같다. 누구보다도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았던 역사상의 멋진 인물들에 대해 알게 되는 재미가 있었다. 세계인물을 통틀어서 구성한 책의 의도도 좋았지만, 몇 개의 권역으로 나누어 좀더 많은 인물을 다룬 시리즈로의 구성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으며 요즘 어린이들이 부러워지는 건 왜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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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형 심리학 B형 - 자유를 노래하는 보헤미안
스즈키 요시마사 지음, 이윤혜 옮김 / 보누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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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B형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저 단순한 호기심 차원이었다. 몇해 전에 B형 남자친군가 하는 영화가 있었다. 그 영화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혈액형 심리학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그 영화에 반영이 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 즈음에 tv나 인터넷 공간에서 혈액형과 관련한 성격에 대한 말들이 많았던 기억이 난다. 그 중에서도 유독 B형 혈액을 가진 사람들이 성격이 괴팍한 쪽으로 비춰지는 걸 많이 접했다.(내가 B형이기에 선택수용된 정보들인지도 모르겠다.) 왜 하필 B형일까 했었는데, 나만 빼고 세상 사람들 거의가 B형 혈액을 가진 사람들의 성격에 대해 합의를 본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단정적으로 이야기들 하는 걸 보고 의아스러웠다. 성격 괴팍하고, 변덕스럽고, 자기중심적이고.. 하여간 이상한 성격을 대변하는 거의 모든 단어가 어울릴 것 같은 혈액형 B형. 하지만, 나는 혈액형에 의한 성격 구분을 도무지 신뢰할 수가 없다.

 

   이 책을 읽어보아야겠다고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B형"인 내가 이런 류의 책을 조목조목 비판해봐야지 하는 반발심의 발동이었다. 독서의 동기가 그러하였으니 이 책의 부분부분이 곱게 보일리 없었다. 솔직히 못마땅했다. 혈액형에 의해 성격이 결정된다는 과학적인 근거는 대체 어디에 있는가..?  글쓴이가 "산업심리연구소 부소장으로 재직하면서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인간관게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문제들을 고민해"온 사람이란 것?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대해보니 혈액형에 따라 성격이 확연히 구분되던가...? 별자리 운세만큼이나 믿기 힘든 혈액형 심리학 내지는 성격학. (이렇게까지 반발할 건 없는데, 심한 반발을 보이고 있는 것도 내가 "B형"이기 때문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B형의 괴팍한 피를 가진 나는 "어? 아닌데...? 난 한번도 그런 적 없는데.." 하는 생각을 여러번 해야만 했다. 예를 들자면 이런 문장 말이다. "쉽게 달아오르고 쉽게 식는 것이 B형 사랑의 키워드다. B형이 사랑에 빠지는 것은 그야말로 한순간이다."(p46)는 문장. 난 그런 적 없는데....? 글쓴이는 이런 반박을 예상했음인지 B형의 성격을 9가지 타입으로 분류하여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솔직히 나는 그 9가지 분류에서도 내 성격과 비스무리하게나마 일치한다고 생각되는 유형이 없었다. B형의 정체성, 사랑, 결혼, 가족, 일, 관계에 대한 설명이 실려 있는 이 책. 혈액형에 의한 성격구분을 믿는 사람에겐 괜찮은 연애지침서 혹은 인간관계 점검표가 될 것도 같지만.. 글쎄, 나처럼 혈액형에 의한 성격 구분을 아예 믿지 않는 사람에겐 설득력이 부족한 책이었다. 저자에게 미안하다. 하지만 난 당신의 말에 전혀 공감할 수 없었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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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첨론 - 당신이 사랑하고, 시기하고, 미워하는 사람 모두에게 써먹고 싶을 128가지 아첨의 아포리즘
윌리스 고스 리기어 외 지음 / 이마고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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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첨 : 남에게 잘 보이려고 알랑거리며 비위를 맞춤, 또는 그렇게 하는 짓.

국어사전에서 찾아본 아첨의 정의다. "남에게 잘 보이려고"라는 표현도 괜찮고, "비위를 맞춤"이란 표현도 그닥 부정적이지 않은데 "알랑거리며"란 단어 때문일까..? 혹은 간사한 표정과 교활한 말투의 내시와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의 인물이 연상되기 때문일까..? 아첨이란 단어를 한번도 긍정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칭찬과 아첨의 경계가 어디쯤일까를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아첨에 대해 논하고 있는 책을 한 권 만났다. 이미 몇 해전에 리처드 스텐걸의 [아부의 기술]이란 책이 출간되었고, 저자는 이 책에서 다루어질 내용이 "아첨이라는 주제를 다루다보니 이따금씩 스텐걸이 다룬 내용과 겹칠 때도 있"(p10)노라고 미리 이야기하고 있지만, 나는 [아부의 기술]이라는 책을 읽어보지 못했고, 그 [아부의 기술]이란 책 제목조차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기에, 아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 존재하는지 몰랐었다. 아첨론이라.. 아첨에 대해 논하는 책이라..? 역사상 아첨 때문에 망했던 국가 혹은 지도의 이야기이거나, 아첨꾼의 최후가 얼마나 비참했는가와 같이 아첨의 폐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 아닐까 하고 지레 짐작했다. 하지만 내 짐작은 완전히 틀렸다. 9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는 6장 "아첨의 위험" 단 한장만이 아첨의 폐해에 대해 언급하고 있을 뿐, 나머지 8장은 아첨의 긍정적 측면을 조목조목 설명하고 있다.

 

    어렵지 않을까 지레 걱정했었는데, 무겁지 않고 대화하듯 흘러가는 글쓴이의 어조가 마음에 들어 편안히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그리고 더러는 아첨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를 소개해주고 있어 몇몇 부분에선 혼자 낄낄대는 재미도 있었는데, 그 중 한 부분을 소개해 본다.   "전해져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홀바인은 클레베의 안나를 실물보다 훨씬 아름답게 그렸고, 이 초상화만 믿고 안나와 결혼한 헨리 8세가 안나를 실제로 보눈 순간, 홀바인은 나라를 떠나야했다."(p23) 역사책 혹은 미술사서적에서 간혹 보아왔던 클레베의 앤의 초상화와 관련하여 그런 일이 있었다니, "푸핫"하고 나도 모르게 쏟아지는 웃음이란.. 앞으로 헨리8세 혹은 그의 부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이 이야기가 생각날 것 같다. 기대하지 않았던 재미가 있는 책이었다.

 

    "당신이 사랑하고, 시기하고 미워하는 사람 모두에게 써먹고 싶을 128가지 아첨의 아포리즘"(aphorism : 금언 ·격언 ·경구 ·잠언 따위). 첫번째 아첨의 Rule부터 시선을 확 잡아 끌었다. "보상을 기대하는 칭찬이 아첨이다." 이런 의미의 아첨이라면, 솔직히 나는 아첨꾼이다. 내가 타인을 향해 던졌던 거의 모든 칭찬의 말 속에는 "보상"을 바라는 심리가 담겨져 있었으리라.. 눈에 보이는 보상은 물론이고, 하다못해, 그와의 관계가 조금이라도 친밀해지기를(혹은 개선되기를) 바라는 마음없이 칭찬을 했던 적이 없었던 듯 하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지금껏 해 온 거의 모든 칭찬의 말은 '아첨'이었다.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다양한 아첨 중에 나는 "나에게 아첨하라"라는 주제가 가장 와닿았고, 절박했다. "이 책의 지고한 목표는 여러분이 스스로에게 아첨을 하도록 도와주는 일이다."(p43) "내 잠재력을 찾아 그것에 아첨하라."(p48). 그래, 솔직히 나는 누군가의 칭찬보다 더한 아첨이 필요했었다. 그래서 이 책에 끌렸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들은 고생 끝에 교훈을 얻었지만, 독자 여러분은 그저 그 이야기를 읽으면 그만이다. 아첨은 덧없이 사라지기 때문에 많이 읽을 필요도 없다. 아첨을 다룬 이 책은 짧다."(p15)라는 글쓴이의 말 때문에, 이 책에서 읽었던 많은 경구가 한꺼번에 한꺼번에 다 기억나지 않지만 마음이 가볍다. 아첨이 필요할 때, 찾아보아야 할 책으로 한켠에 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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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 카네이션 - 비밀의 역사
로렌 윌릭 지음, 박현주 옮김 / 이레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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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칙릿이 대세인가..?  얼마전까지 칙릿이란 단어를 알지도 못했는데 요즘 자주 눈에 띄인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보았지만, "브리짓존스의 일기"는 보지 못했는데, 칙릿을 소개할 때마다 등장하는 브리짓존스의 일기가 궁금해진다. 최근들어 소위 "칙릿"이라고 분류되는 범주의 책을 두 권 읽었다. [렘브란트의 유령], [핑크 카네이션]. 칙릿의 정의와 그 범주에 대해서는  정확히 모르겠다. 칙릿의 정의에 "독자를 유혹할만한 제목"도 포함이 될꺼나..? [렘브란트의 유령]은 제목 때문에 너무 큰 기대를 갖고서 접한 책이라 실망이 많이 남는 책이었다. "렘브란트"를 보며 나의 지식욕을 채울 수 있지 않을까하고 지나친 기대를 했던 모양이다. 이 책 [핑크카네이션]은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은 "역사"라는 단어와, "19세기 파리" 그리고 "나폴레옹" 등에 혹해 손에 잡은 책이다. 칙릿의 범주에 드는 책이라면 펼쳐들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저 재미있는 역사 소설 한편을 읽을 수 있겠구나 하고 잡았는데, 책 뒷편의 "칙릿"이란 단어가 적잖게 걱정스러웠다.  "20대 여성 독자를 겨냥한 영미권 소설로 90년대 중반에 나온 '브리짓 존스의 일기'가 그 시작점이라고 볼 수 있다."는 칙릿. 한동안 유행처럼 번지던 "OO녀"의 부정적 이미지 때문일까 "20대 여성독자를 겨냥한"이라는 표현이 살짝 거슬렸다. 그 표현이 마치 이 책은 "가볍고 별 내용없소, 심심풀이용 땅콩이요~"하는 말 같이 들리는 건 왜인지 모르겠다. 다분히 개인적인 판단이지만 말이다.

  

    두 시대의 이야기가 번갈아 언급되고 있는 "액자식 구성" 되겠다. 프랑스대혁명 이후의 귀족 스파이에 대한 논문을 쓰기 위해 자료조사를 하고 있는 엘로이즈 켈리의 이야기와 그녀가 들여다보고 있는 19세기 초의 귀족스파이 퍼플젠션과 핑크카네이션의 이야기이다. 주가 되는 것은 19세기의 스파이 이야기. 그간 지나치게 딱딱하고 엄숙한 역사소설만 보아온 모양이다. 과거의 인물들을(물론 허구의 인물이지만) 이렇게 가볍고 유쾌발랄하게 그려낸 책은 처음 읽어봤다.  딱 한 문장으로 정리해보자면 책 앞 띠지에 소개된 "19세기 파리, 꽃미남 스파이와 천방지축 아가씨의 좌충우돌 예측불허의 모험이 시작된다!"는 글 말이 딱 어울리는 책이다. 로맨스코미디로 분류되는 한편의 영화를 본 기분이다. 로맨스코미디 영화의 주인공들이 그렇듯이, 독자들(혹은 관객들은) 두 주인공이 사랑에 빠졌다는 걸 훤히 알겠는데, 주인공들은 자신의 감정을 애써 부정하며, 서로에 대한 호감을 정반대의 감정으로 표현해내느라 매사 티격태격 아웅다웅이다. 그리고 가끔 주어진 임무(혹은 자신의 생계?)를 까먹을 정도로 상대방에 빠져들어서는 "별을 따다가 목걸이라도 만들어줄까?"(p312)하는 식의 전형적인 닭살멘트를 날려주곤 한다. 이 사람들, 나폴레옹의 영국침략을 저지한다는 거창한 목적을 가진  스파이가  맞나 몰라.. 연애하느라 날 다 새겠네. 그들의 애정행각이며, 두번쯤 등장하는 19금 장면은 아주 현대적이다. 게다가 현재시점의 엘로이즈와 콜린 역시도 뭔가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 같은 예감을 주는데.. 퍼플젠션과 에이미의 사랑이 19세기판 까칠남과 천방지축`말괄량이`(그렇지만)매력녀의 그것이라면 엘로이지와 콜린도..? 영화로 만들면 꽤나 흥행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내가 기대했던 역사적 사실에 충실한 그런 역사 소설은 아니었다. 하지만, 500여쪽의 페이지를 보며 진도가 나가지 않을까봐 염려했던 것과는 달리 속도감있게 읽을 수 있었던 유쾌발랄한 책이었다. 프랑스대혁명과 나폴레옹에 대해 많은 걸 알아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지만, 역사소설에 이렇게 가볍고 발랄한 로맨스가 함께 할 수도 있음을 처음으로 발견한 책이었기에 읽을만했다. 부정적으로만 보았던 칙릿의 매력에 빠져든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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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세자
박안식 지음 / 예담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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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다 읽고 나서는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국사시간에 멋모르고 무작정 외우기만 했던 예송논쟁의 원인(遠因)에 그가 있었다. 그리고 살아서 임금의 자리에 올랐다면, 조선후기 개혁군주라 칭송되는 정조보다 백여년 앞서, 조선을 확 뜯어고칠 수 있었던 인물이 바로 소현세자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사실, 소현세자의 이름은 생소했다. 핑계인지 모르겠지만, 국사시간에 비중있게 다루어졌던 인물이 아니었던 듯 하다. 내가 소현세자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게 된 것은 역사학자 이덕일의 글을 통해서였다. 이덕일의 책을 통해 소현세자에 대해 알고 나서, 그의 삶과 조선후기의 역사에 대해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난다. 마침 이 책 뒷표지에는 이덕일의 추천사가 실려 있다. "특히 이 책에서 [왕조실록]은 물론 [심양장계]등 1차 사료를 바탕으로 꼼꼼히 재현해낸 그 시대의 모습은 현재 고증 소홀 문제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 역사드라마나 소설들이 본받아야 할 점이다."라는 역사학자의 말 때문에라도, 제대로 된 역사소설 한 편을 읽을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감이 든 책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는 병자호란을 전후한 시기로부터 시작하여, 인질로서 청에서 생활했던 9년 동안의 일, 그리고 조선으로 돌아온지 불과 몇 개월만에 맞은 의문의 죽음과 세자빈 강씨의 죽음을 통해 본 소현세자의 삶을 서술하고 있다. 역사학자 이덕일의 말마따나, 충실한 역사고증을 통해 씌여진 글이라 그런지 한편의 역사서를 읽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중간중간 병자호란 전후의 사회상에 대한 사실적인 언급이 많아  역사공부에도 도움이 됐기 때문에 내가 잘 몰랐던 몇몇 부분들에는  밑줄을 그어가며 읽었다. 그러면서도 소설적인 재미를 잃지않는 서술이 참 좋았다. 하긴, 소현세자의 삶 그 자체가 한 편의 소설로서 손색이 없는 극적인 삶이었던 데다가,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했고 신문기자를 역임한 작가가 노년에 쓴 글이라 그런지 담백함과 재미라는 두 마리 토끼 모두를 잡을 수 있게 된 작품인 듯 하다. 그리고 그 문장에 대해 감히 평가해보자면 군더더기가 없고 깔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기에 참 좋은 글이었다.  

 

    남한산성에서의 농성전과 강화도의 함락, 삼전도에서의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의 항복은 치욕스러웠다. 역사에 대해 어설픈 지식밖에 없는 나는 인조반정의 의미를 잘 모르겠다. 폐모살제나 명에 대한 재조지은을 잊었다는 이유로 광해군을 내쫓은 반정정권에 대해 수긍이 되지 않는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고,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는 시시각각 변해가는 외교무대에서 실리를 추구하고자 했던 광해군의 중립외교가 그렇게 비난받을 일이었을까..? 폐위된 군주라는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인지, 나는 한동안 광해군의 "광"자를  미칠 "狂"자로 쓰는 줄 알았었다.  한명기 교수의 [광해군]을 읽으면서, 광해군에 대해 이제라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해했던 기억이 난다.

 

    어쩌면 시작부터 잘못된, 숭명대의崇明大義라는 쓸데없는 명분에 사로잡혀 있던 반정정권의 눈에 소현세자가 곱게 보였을 리 없다. 거기에 여자(인조의 후궁 조씨)의 무서운 시기심과 천한 신분에서 기인하는 열등감으로 비틀린 보복의식을 가진 사내(역관 정명수 같은 ; 중국과 우리가 껄끄러운 관계에 있을 때마다 종종 보이는 밉상스런 인물들이 있다. 우리 땅에서 태어난 천한 출신의 인물이 중국에 끌려가거나, 팔려 간 인물들의 중국에서 의외의 신분 상승을 한 인물들 말이다. 원 간섭기의 기황후를 등에 업은 기철 일당이나 환관 박불화가 그랬던 것처럼 이 책에 등장하는 정명수라는 역관은 조선의 노비출신이었으나 중국에서 역관이 되었고, 자신의 위치를 이용해 세자를 감시하거나 핍박하고, 조선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한다.)의 힘이 결합되어 버리면, 일은 엉뚱은 방향으로 흘러가게 마련이다. 청에 인질로 잡혀갔지만, 외교통로의 역할을 하며  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세자를 바라보는 못마땅한 시선들은 부왕인 인조에게서 부정父情을 앗아가버렸다. 권력은 부자지간에도 나누어 가질 수 없는 것이었던가.. ? 진실을 바라보지 못하고 자신의 정적으로 아들을 바라보는 인조 또한 괴로웠을까..?  소현세자의 죽음으로 조선은 서양과 우호적인 관계에서 접촉할 기회를 놓쳐버렸고, 역사의 흐름에서 뒤쳐졌던 것은 아닐까..?

 

    흔히들 역사에는 "만약"이 있을 수 없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역사에서 "만약"이라는 말을 떠올리는 건 잘못 흘러간 물줄기를 바라보는 안타까움 때문이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만약"이라는 말을 자주 되뇌였다. "만약" 인조반정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만약" 소현세자가 청과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했더라면.. "만약" 인조가 조금만 더 진실을 바라볼 수 있었더라면.. "만약" 소현세자가 그렇게 죽지 않았더라면.. "만약" 소현세자의 아들 석철이 임금의 자리에 올랐더라면... 역사적 사실에 충실한 역사소설을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너무나 괜찮았던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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