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첨론 - 당신이 사랑하고, 시기하고, 미워하는 사람 모두에게 써먹고 싶을 128가지 아첨의 아포리즘
윌리스 고스 리기어 외 지음 / 이마고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아첨 : 남에게 잘 보이려고 알랑거리며 비위를 맞춤, 또는 그렇게 하는 짓.
국어사전에서 찾아본 아첨의 정의다. "남에게 잘 보이려고"라는 표현도 괜찮고, "비위를 맞춤"이란 표현도 그닥 부정적이지 않은데 "알랑거리며"란 단어 때문일까..? 혹은 간사한 표정과 교활한 말투의 내시와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의 인물이 연상되기 때문일까..? 아첨이란 단어를 한번도 긍정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칭찬과 아첨의 경계가 어디쯤일까를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아첨에 대해 논하고 있는 책을 한 권 만났다. 이미 몇 해전에 리처드 스텐걸의 [아부의 기술]이란 책이 출간되었고, 저자는 이 책에서 다루어질 내용이 "아첨이라는 주제를 다루다보니 이따금씩 스텐걸이 다룬 내용과 겹칠 때도 있"(p10)노라고 미리 이야기하고 있지만, 나는 [아부의 기술]이라는 책을 읽어보지 못했고, 그 [아부의 기술]이란 책 제목조차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기에, 아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 존재하는지 몰랐었다. 아첨론이라.. 아첨에 대해 논하는 책이라..? 역사상 아첨 때문에 망했던 국가 혹은 지도의 이야기이거나, 아첨꾼의 최후가 얼마나 비참했는가와 같이 아첨의 폐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 아닐까 하고 지레 짐작했다. 하지만 내 짐작은 완전히 틀렸다. 9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는 6장 "아첨의 위험" 단 한장만이 아첨의 폐해에 대해 언급하고 있을 뿐, 나머지 8장은 아첨의 긍정적 측면을 조목조목 설명하고 있다.
어렵지 않을까 지레 걱정했었는데, 무겁지 않고 대화하듯 흘러가는 글쓴이의 어조가 마음에 들어 편안히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그리고 더러는 아첨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를 소개해주고 있어 몇몇 부분에선 혼자 낄낄대는 재미도 있었는데, 그 중 한 부분을 소개해 본다. "전해져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홀바인은 클레베의 안나를 실물보다 훨씬 아름답게 그렸고, 이 초상화만 믿고 안나와 결혼한 헨리 8세가 안나를 실제로 보눈 순간, 홀바인은 나라를 떠나야했다."(p23) 역사책 혹은 미술사서적에서 간혹 보아왔던 클레베의 앤의 초상화와 관련하여 그런 일이 있었다니, "푸핫"하고 나도 모르게 쏟아지는 웃음이란.. 앞으로 헨리8세 혹은 그의 부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이 이야기가 생각날 것 같다. 기대하지 않았던 재미가 있는 책이었다.
"당신이 사랑하고, 시기하고 미워하는 사람 모두에게 써먹고 싶을 128가지 아첨의 아포리즘"(aphorism : 금언 ·격언 ·경구 ·잠언 따위). 첫번째 아첨의 Rule부터 시선을 확 잡아 끌었다. "보상을 기대하는 칭찬이 아첨이다." 이런 의미의 아첨이라면, 솔직히 나는 아첨꾼이다. 내가 타인을 향해 던졌던 거의 모든 칭찬의 말 속에는 "보상"을 바라는 심리가 담겨져 있었으리라.. 눈에 보이는 보상은 물론이고, 하다못해, 그와의 관계가 조금이라도 친밀해지기를(혹은 개선되기를) 바라는 마음없이 칭찬을 했던 적이 없었던 듯 하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지금껏 해 온 거의 모든 칭찬의 말은 '아첨'이었다.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다양한 아첨 중에 나는 "나에게 아첨하라"라는 주제가 가장 와닿았고, 절박했다. "이 책의 지고한 목표는 여러분이 스스로에게 아첨을 하도록 도와주는 일이다."(p43) "내 잠재력을 찾아 그것에 아첨하라."(p48). 그래, 솔직히 나는 누군가의 칭찬보다 더한 아첨이 필요했었다. 그래서 이 책에 끌렸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들은 고생 끝에 교훈을 얻었지만, 독자 여러분은 그저 그 이야기를 읽으면 그만이다. 아첨은 덧없이 사라지기 때문에 많이 읽을 필요도 없다. 아첨을 다룬 이 책은 짧다."(p15)라는 글쓴이의 말 때문에, 이 책에서 읽었던 많은 경구가 한꺼번에 한꺼번에 다 기억나지 않지만 마음이 가볍다. 아첨이 필요할 때, 찾아보아야 할 책으로 한켠에 두어야겠다.